9788955364569 예수전도단
담임목사가 꿈꿔야 할 예배 (목회를 위한 예배에서 예배를 위한 목회로 나아가다)
(저자) 김진호ㆍ조건회ㆍ김경진ㆍ박정관
예수전도단 · 2014-11-06 138*210 ·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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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를 위한 예배’에서 ‘예배를 위한 목회’로의 패러다임의 전환!
“예배가 목회 성공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쇼’가 되지 않으려면?”
한국교회 예배갱신과 개혁운동을 이끌어 온 전문가인 김진호·박정관·조건회 목사 및 예배를 가르치는 신학자 김경진 교수(現 장신대)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목회자인 당신은 지금, 예배자입니까? 설교자입니까?”
도서출판 예수전도단의 신간 ‘담임목사가 꿈꿔야 할 예배(도서출판 예수전도단)’는 예배에 대한 성서적·신학적·사역적 성찰이 필요한 지금, 목회자에게 진정한 예배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며 ‘예배를 위한 목회’로의 회귀를 설파하고 있다.
현現 한국교회는 주관적인 예배 경험에 의존해 회중예배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오해를 갖고 있는 담임목회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 예배를 설교의 들러리나 교회 성장의 수단 정도로 여겨 목회 성공의 도구 혹은 성도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배 리더십으로서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지도자인 본인이 예배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목회를 위한 예배, 회중을 위한 예배, 세대를 분리해서 드리는 예배는 미래 목회의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바라는 예배의 핵심은 성경적 예배관과 올바른 예배신학의 정립,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예배다. 나이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아 가는 예배, ‘예배를 위한 목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이에 이 책은 진정한 예배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 지금의 한국교회 앞에, 진정한 예배로의 첫걸음이자, ‘담임목사를 위한 지역 교회 예배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배가 목회 성공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쇼’가 되지 않으려면?”
한국교회 예배갱신과 개혁운동을 이끌어 온 전문가인 김진호·박정관·조건회 목사 및 예배를 가르치는 신학자 김경진 교수(現 장신대)가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목회자인 당신은 지금, 예배자입니까? 설교자입니까?”
도서출판 예수전도단의 신간 ‘담임목사가 꿈꿔야 할 예배(도서출판 예수전도단)’는 예배에 대한 성서적·신학적·사역적 성찰이 필요한 지금, 목회자에게 진정한 예배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며 ‘예배를 위한 목회’로의 회귀를 설파하고 있다.
현現 한국교회는 주관적인 예배 경험에 의존해 회중예배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오해를 갖고 있는 담임목회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 예배를 설교의 들러리나 교회 성장의 수단 정도로 여겨 목회 성공의 도구 혹은 성도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예배 리더십으로서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지도자인 본인이 예배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목회를 위한 예배, 회중을 위한 예배, 세대를 분리해서 드리는 예배는 미래 목회의 방식이 아니다.
모두가 바라는 예배의 핵심은 성경적 예배관과 올바른 예배신학의 정립, 공동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예배다. 나이와 문화적 차이를 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을 알아 가는 예배, ‘예배를 위한 목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이에 이 책은 진정한 예배에 대한 갈망이 높아진 지금의 한국교회 앞에, 진정한 예배로의 첫걸음이자, ‘담임목사를 위한 지역 교회 예배 지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김경진 목사
예비 목회자들을 가르치며, 한국교회가 인본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요소를 분별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좇아 올바른 예배신학을 정립하도록 돕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Th. B.)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거쳐 미국의 보스턴대학교(Th. D.)를 졸업했으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학과 설교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해마다 발간되는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 핸드북》(공저, 예배와설교아카데미), 《성공적인 목회를 위한 예배교육 프로그램》(공저, 한국기독교교육교역연구원) 등이 있다.
지은이 ┃ 김진호 목사
한국 복음성가의 고전인 “우리에게 향하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의 작곡자이자 예수전도단이 한국에서 최초로 ‘예배학교’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예배 회복과 갱신 운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예수마을교회의 담임목사인 그는 자신의 진정한 사역의 시작은 육십부터임을 깨닫고, ‘1세기 로마’라는 뉴욕 맨해튼을 향한 새로운 연합선교 전략으로 주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고자 만년 청년의 가슴으로 달려가고 있다. 저서로는 《그 집에서 만난 복음》, 《예배자의 마음 기르기》, 《예배와 구원》 등이 있다.
지은이 ┃ 박정관 목사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 장신대를 졸업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문화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신학 및 패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장신대, 서울장신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현재 한국 다리놓는사람들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등이 있다.
지은이 ┃ 조건회 목사
과거 20여 년 전, 찬양과 경배 운동이 한국교회에 널리 파급되던 때에 소망교회(서울 압구정동 소재)에서 목요찬양모임을 시작하고 인도하였다. 그가 가진 에배사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은, 현재 한국 다리놓는사람들 대표로의 역할로 이끌었고 또한 현재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예능교회(서울 평창동 소재)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장로회 신학대학원(M.Div),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Th.M)을 졸업하였고 미국 시카고의 매코믹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min)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예배,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 《신앙위인들의 기도》와 《예배팀 사역의 노하우》(공저)가 있다.
예비 목회자들을 가르치며, 한국교회가 인본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요소를 분별하고 종교개혁의 정신을 좇아 올바른 예배신학을 정립하도록 돕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Th. B.)와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거쳐 미국의 보스턴대학교(Th. D.)를 졸업했으며,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예배학과 설교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해마다 발간되는 《교회력에 따른 예배와 설교 핸드북》(공저, 예배와설교아카데미), 《성공적인 목회를 위한 예배교육 프로그램》(공저, 한국기독교교육교역연구원) 등이 있다.
지은이 ┃ 김진호 목사
한국 복음성가의 고전인 “우리에게 향하신”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의 작곡자이자 예수전도단이 한국에서 최초로 ‘예배학교’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예배 회복과 갱신 운동의 개척자 중 한 사람이다. 예수마을교회의 담임목사인 그는 자신의 진정한 사역의 시작은 육십부터임을 깨닫고, ‘1세기 로마’라는 뉴욕 맨해튼을 향한 새로운 연합선교 전략으로 주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고자 만년 청년의 가슴으로 달려가고 있다. 저서로는 《그 집에서 만난 복음》, 《예배자의 마음 기르기》, 《예배와 구원》 등이 있다.
지은이 ┃ 박정관 목사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 장신대를 졸업했다. 1980년대와 90년대에 문화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유학을 떠나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한 뒤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신학 및 패석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장신대, 서울장신대 등에서 가르쳤으며 현재 한국 다리놓는사람들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 등이 있다.
지은이 ┃ 조건회 목사
과거 20여 년 전, 찬양과 경배 운동이 한국교회에 널리 파급되던 때에 소망교회(서울 압구정동 소재)에서 목요찬양모임을 시작하고 인도하였다. 그가 가진 에배사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은, 현재 한국 다리놓는사람들 대표로의 역할로 이끌었고 또한 현재 담임하여 목회하고 있는 예능교회(서울 평창동 소재)를 부흥케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장로회 신학대학원(M.Div),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Th.M)을 졸업하였고 미국 시카고의 매코믹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min)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예배,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 《신앙위인들의 기도》와 《예배팀 사역의 노하우》(공저)가 있다.
목차
1부 담임목사가 알아야 할 예배의 의미 _박정관
1장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18
예배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장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의미 · 28
‘예배’의 성서신학적 의미 탐구
3장 성경에서 말하는 찬양의 의미 · 40
‘찬양’의 성서신학적 의미 탐구
4장 문화의 옷을 입는 예배 · 54
우리 예배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적 요소에 대한 성찰과 분별
2부 담임목사가 붙들어야 할 예배의 초점 _김경진
5장 아는 만큼, 아는 대로 드리는 예배 · 82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
6장 제사가 아니라 믿음, 의식보다 삶, 건물 대신 공동체 · 94
신약의 예배 정신을 이어받은 초대교회
7장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속은 텅 빈 예배 · 106
전적 은혜와 삶의 예배를 잃어버린 중세교회
8장 의식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예배 · 117
‘예배 회복’의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개혁
3부 담임목사가 가져야 할 예배 영성 _김진호
9장 담임목사도 예배자다 · 132
예배가 ‘일’이 되지 않으려면
10장예배를 위한 목회를 하라 · 146
예배가 목회 성공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11장회중을 관객이 아니라 예배자로 세우라 · 160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쇼’가 되지 않으려면
12장어떤 형식의 변화에도 잃지 말아야 할 예배 정신 · 170
예배가 ‘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게 하려면
4부 담임목사가 시도해야 할 예배의 실제 _조건회
13장지금 우리가 서 있는 예배의 자리 · 194
담임목사의 고민을 통해 바라본 한국교회 예배의 현실
14장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동체 예배 · 211
예배 세대차의 대안, 통합적 예배(Blended Worship)
15장통합적 예배로 가기 위한 다리 · 222
예배의 큰 그림을 그려 보라
16장통합적 예배의 실제 · 236
예능교회의 주일예배 살펴보기
마치며 · 256
참고도서 · 260
1장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 · 18
예배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2장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의미 · 28
‘예배’의 성서신학적 의미 탐구
3장 성경에서 말하는 찬양의 의미 · 40
‘찬양’의 성서신학적 의미 탐구
4장 문화의 옷을 입는 예배 · 54
우리 예배에 녹아들어 있는 문화적 요소에 대한 성찰과 분별
2부 담임목사가 붙들어야 할 예배의 초점 _김경진
5장 아는 만큼, 아는 대로 드리는 예배 · 82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
6장 제사가 아니라 믿음, 의식보다 삶, 건물 대신 공동체 · 94
신약의 예배 정신을 이어받은 초대교회
7장 화려하고 장엄하지만, 속은 텅 빈 예배 · 106
전적 은혜와 삶의 예배를 잃어버린 중세교회
8장 의식과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예배 · 117
‘예배 회복’의 관점에서 바라본 종교개혁
3부 담임목사가 가져야 할 예배 영성 _김진호
9장 담임목사도 예배자다 · 132
예배가 ‘일’이 되지 않으려면
10장예배를 위한 목회를 하라 · 146
예배가 목회 성공의 ‘도구’가 되지 않으려면
11장회중을 관객이 아니라 예배자로 세우라 · 160
예배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쇼’가 되지 않으려면
12장어떤 형식의 변화에도 잃지 말아야 할 예배 정신 · 170
예배가 ‘교회 안’에 갇혀 있지 않게 하려면
4부 담임목사가 시도해야 할 예배의 실제 _조건회
13장지금 우리가 서 있는 예배의 자리 · 194
담임목사의 고민을 통해 바라본 한국교회 예배의 현실
14장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동체 예배 · 211
예배 세대차의 대안, 통합적 예배(Blended Worship)
15장통합적 예배로 가기 위한 다리 · 222
예배의 큰 그림을 그려 보라
16장통합적 예배의 실제 · 236
예능교회의 주일예배 살펴보기
마치며 · 256
참고도서 · 260
책 속으로
목회자가 예배를 아는가_p.25
이제 참으로 중요하고도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목회자는 과연 예배를 알고 있는가?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기초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를 들여다보면, 예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알 수 있다. 열린 예배는 미국의 윌로우 크릭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의 ‘구도자모임’(seeker service)에 대한 번역어다. 이 모임은 원래 윌로우 크릭 교회가 비신자들을 위해 마련한 모임이었는데, ‘seeker’에 대한 번역어인 ‘구도자’라는 말이 우리로서는 어색하기 때문에 비신자에게 열렸다는 의미로 당시 자주 사용하던 ‘열린’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고, ‘service’는 ‘예배’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열린 예배’라는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비신자들에게 예배라는 개념이 가능한가? 물론 이 문제에는 ‘service’의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service’를 곧바로 예배로 번역해 버리는 것은 이 단어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일 뿐이다. 구도자 모임의 성격에 대한 이해 부족도 있다. 이 모임의 순서는 찬양, 설교, 헌금으로 이어지는 예배모임의 순서를 토대로 하되, 비신자들에게 맞게 각 순서를 약간씩 각색해서 음악 공연, 강연(주제를 제시하기 위한 짧은 연극이나 영상물 포함), 헌금의 순서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 모임은 신자들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마련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관심 있는 비신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오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구도자 모임과 달리 열린 예배는 어중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우선 그 주요 대상을 생각해 보면, 구도자 모임의 원래 목적은 비신자여야 하는데 우리말 번역의 ‘예배’라는 명칭을 보면 신자인 셈이고, 실제로는 (신자든 비신자든) 젊은이들이었다. 또한 그 내용은 예배와 문화 행사가 겹친 모습이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신자를 위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예배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하고 간단한 이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왜 자주 무너지는 것일까? ‘사람만 많이 모인다면’이라는 목회적 동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을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예배와 예배회_p.29
1980년도에 예배를 표현하는 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배는 관람하는 것이 아니니 ‘예배 본다’는 것은 틀렸고, ‘예배드린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맞는 말 같지만, 이 논쟁을 잘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 심각한 두 가지 오류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말 ‘보다’에 대한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배’와 ‘예배회’ 사이의 혼돈이다.
우리말의 ‘보다’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말의 ‘보다’는 시각 활동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가리킨다. 그러니 ‘예배 본다’는 것은 예배를 구경하거나 관람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린다’는 말은 어떠한가? ‘기도하다’는 말과 ‘기도(를) 드리다’는 말은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배하다’는 말과 ‘예배(를) 드리다’는 말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표현에는 (한국교회는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예배회와 예배 사이의 범주에 대한 잘못된 오류가 있다.
그릇에 해당하는 예배회와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인 셈인 예배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개념임에도 동일시되는 것이다. 기도회와 기도는 구분된다. 간단히 말해 기도회는 기도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니 기도회에 참석한 것과 실제로 기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예배회와 예배도 구분된다. 예배회는 예배를 위한 모임인데, 우리가 ‘주일예배’, ‘수요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주일예배회’, ‘수요예배회’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도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기도한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예배회에 참석했다고 예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예배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실제로 예배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이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 표현부터 예배를 위한 모임과 그 모임에서 실제로 예배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예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예배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 표현이다(창22:5; 삼상 1:3; 시 99:9; 겔 46:3; 요 4:23; 행 8:27). 이 표현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지난 주일예배회에서 주님을 예배했는가, 아니면 설교만 했는가?”
이제 참으로 중요하고도 심각한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 목회자는 과연 예배를 알고 있는가? 무슨 말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기초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에 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를 들여다보면, 예배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알 수 있다. 열린 예배는 미국의 윌로우 크릭 교회(Willow Creek Community Church)의 ‘구도자모임’(seeker service)에 대한 번역어다. 이 모임은 원래 윌로우 크릭 교회가 비신자들을 위해 마련한 모임이었는데, ‘seeker’에 대한 번역어인 ‘구도자’라는 말이 우리로서는 어색하기 때문에 비신자에게 열렸다는 의미로 당시 자주 사용하던 ‘열린’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했고, ‘service’는 ‘예배’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열린 예배’라는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인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비신자들에게 예배라는 개념이 가능한가? 물론 이 문제에는 ‘service’의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service’를 곧바로 예배로 번역해 버리는 것은 이 단어를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일 뿐이다. 구도자 모임의 성격에 대한 이해 부족도 있다. 이 모임의 순서는 찬양, 설교, 헌금으로 이어지는 예배모임의 순서를 토대로 하되, 비신자들에게 맞게 각 순서를 약간씩 각색해서 음악 공연, 강연(주제를 제시하기 위한 짧은 연극이나 영상물 포함), 헌금의 순서로 만들었다. 한마디로 이 모임은 신자들의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마련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 관심 있는 비신자들이 편한 마음으로 교회에 들어오도록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구도자 모임과 달리 열린 예배는 어중간한 것이 되어 버렸다. 우선 그 주요 대상을 생각해 보면, 구도자 모임의 원래 목적은 비신자여야 하는데 우리말 번역의 ‘예배’라는 명칭을 보면 신자인 셈이고, 실제로는 (신자든 비신자든) 젊은이들이었다. 또한 그 내용은 예배와 문화 행사가 겹친 모습이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신자를 위한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예배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하고 간단한 이 원칙이 실제 현장에서 왜 자주 무너지는 것일까? ‘사람만 많이 모인다면’이라는 목회적 동기 때문에 예배의 본질을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둘 다인가?
예배와 예배회_p.29
1980년도에 예배를 표현하는 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예배는 관람하는 것이 아니니 ‘예배 본다’는 것은 틀렸고, ‘예배드린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맞는 말 같지만, 이 논쟁을 잘 들여다보면 그 저변에 심각한 두 가지 오류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우리말 ‘보다’에 대한 오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배’와 ‘예배회’ 사이의 혼돈이다.
우리말의 ‘보다’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우리말의 ‘보다’는 시각 활동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가리킨다. 그러니 ‘예배 본다’는 것은 예배를 구경하거나 관람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 행위를 한다는 뜻이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린다’는 말은 어떠한가? ‘기도하다’는 말과 ‘기도(를) 드리다’는 말은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배하다’는 말과 ‘예배(를) 드리다’는 말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표현에는 (한국교회는 이 말을 잘 쓰지 않지만) 예배회와 예배 사이의 범주에 대한 잘못된 오류가 있다.
그릇에 해당하는 예배회와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물인 셈인 예배가 서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개념임에도 동일시되는 것이다. 기도회와 기도는 구분된다. 간단히 말해 기도회는 기도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러니 기도회에 참석한 것과 실제로 기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예배회와 예배도 구분된다. 예배회는 예배를 위한 모임인데, 우리가 ‘주일예배’, ‘수요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주일예배회’, ‘수요예배회’다. 이 구분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기도회에 참석했다고 해서 기도한 것이 되지 않는 것처럼, 예배회에 참석했다고 예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예배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실제로 예배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이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어 표현부터 예배를 위한 모임과 그 모임에서 실제로 예배하는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먼저 예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예배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도 바로 이 표현이다(창22:5; 삼상 1:3; 시 99:9; 겔 46:3; 요 4:23; 행 8:27). 이 표현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지난 주일예배회에서 주님을 예배했는가, 아니면 설교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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