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88764381 아침영성지도연구원
치유의 목회
(저자) 프랜시스 맥너트 / 신현복
아침영성지도연구원 · 2010-12-20 155*225 · 263p
아침영성지도연구원 · 2010-12-20 155*225 · 2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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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만 명이 치유된 고전적 스테디셀러
치유의 신학적 의미와 목회적 실천방안
치유의 신학적 의미와 목회적 실천방안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프랜시스 맥너트
프랜시스 맥너트 박사는 치유목회의 바람을 현대인들에게 다시 불러일으킨 개척자요, 이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치유사역자이다. 그는 아내 주디스와 함께 잭슨빌에 있는 크리스천치유목회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 <치유의 영성> 외에도 <치유의 기도>, <치유의 능력> 등 치유분야의 고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옮긴이 ┃ 신현복
신현복은 한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지은 책으로는 <당신이 아파할 때 하나님도 우셨다.>, <내 영혼의 치유기도>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울타리>, <희망의 목회상담>, <신학과 목회상담> 등이 있다.
프랜시스 맥너트 박사는 치유목회의 바람을 현대인들에게 다시 불러일으킨 개척자요, 이 분야에서 가장 존경받는 치유사역자이다. 그는 아내 주디스와 함께 잭슨빌에 있는 크리스천치유목회연구원 공동원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 <치유의 영성> 외에도 <치유의 기도>, <치유의 능력> 등 치유분야의 고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이다.
옮긴이 ┃ 신현복
신현복은 한신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으며, 지은 책으로는 <당신이 아파할 때 하나님도 우셨다.>, <내 영혼의 치유기도>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아서>, <울타리>, <희망의 목회상담>, <신학과 목회상담> 등이 있다.
목차
‧ 들어가는 말 : 플로르 이야기
1. 치유의 네 가지 기본 유형
2. 죄의 치유
3. 내면세계, 상한 감정의 치유
4. 육체의 치유
5. 귀신들린 사람의 치유
6. 질병의 뿌리,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7. 사람들이 치유받지 못하는 12가지 이유
8. 의학과 치유
9. 성례전과 치유
10. 가장 자주 받는 질문들
‧ 나가는 말 :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 고함
‧ 주
1. 치유의 네 가지 기본 유형
2. 죄의 치유
3. 내면세계, 상한 감정의 치유
4. 육체의 치유
5. 귀신들린 사람의 치유
6. 질병의 뿌리,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7. 사람들이 치유받지 못하는 12가지 이유
8. 의학과 치유
9. 성례전과 치유
10. 가장 자주 받는 질문들
‧ 나가는 말 : 이 시대 목회자들에게 고함
‧ 주
책 속으로
• • 들어가는 말
플로르 이야기
1972년 11월, 그리고 1973년 2월, 우리 치유목회 팀은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깔리에서 영성수련을 이끌었다. 이 영성 수련에서 칠레의 몰리나에 살고 있는 플로르 집사는 이 책에서 앞으로 기술할 네 가지 유형의 치유를 예증해 주는 일련의 현저한 치유를 받았다.
플로르 집사의 치유사건은 여러 유형의 치유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녀가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고 나서야 그녀의 딸도 병이 치유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프롤르 집사가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았을 때 분명히 귀신축출 사역도 경험했다. 그녀가 용서하고(회개)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자, 그녀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악한 영들(예컨대, 분노)의 억누름에서 느슨해지고 자유로워졌다. 게다가, 이러한 과거의 기억치유 사건을 통하여 한 사람이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와 어떤 단계들을 거쳐야 치유가 일어나는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마치 약속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게 우리 인생의 강물 흐름을 가로막고 떠 있는 통나무더미에서 통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치워 버리고 마침내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통나무마저도 제거하여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자유롭게 하시는가를 서술한 것이다. 1973년 2월 18일, 플로르 집사가 콜롬비아 깔리에서 스페인어로 간증한 것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1. 영성적인 치유
1972년 10월, 우리는 프랜시스 맥너트, 진 힐, 루스 스테이플턴이 이끄는 영성수련에 참석하기 위하여 깔리에서 보고타로 갔습니다. 거기 있는 동안, 우리는 성령 안에서 더 깊은 삶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성수련 둘째날에 루스 스테이플턴 여사는 내면세계의 치유기도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날 나는 영성수련 장소에서 프랜시스 박사님이 계신 것을 보고 그분에게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사님은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더니 나더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울부짖기 시작했지요.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청년은 나에게 키스를 하고 껴안아 주며,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4개월 뒤, 나는 프랜시스 박사님이 콜롬비아 깔리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지난번 보고타에서 체험한 것과 박사님으로부터 배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출석하던 성공회와 장로교에서 열리는 영성수련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오전 영성지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영성수련 첫날부터 나는 앓고 있던 딸 마리아 페르난다를 데리고 가서 프랜시스 박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때 나의 두 이복여동생들도 같이 있었습니다.
2. 과거를 직면하기
영성수련이 끝나기 하루 전날인 목요일에, 프랜시스 박사님은 내면세계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면세계의 치유기도를 드리다가 그분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필요로 하는 사랑을 결코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그분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곧 유년시절과 아동기 시절을 회고해 보라는 것이었지요. 또한 그분은 우리들 가운데 혹시 부모들이 원하지 않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시간에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나는 갑자기 온몸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감성에 복받쳐 울부짖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나 역시도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자식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내 옆에는 어머니가 두 번째 결혼하여 낳은 이복여동생들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지금 이 경련을 멈추어 주시고 겉으로라도 평온함을 주옵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들이 지금 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 들 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나는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아이였음을 큰 소리로 절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실 내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때에 어머니가 내뱉었던 처음 몇 마디 말들이 제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너랑 네 동생은 첫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엇기에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만 보면 그 옛날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는구나.”
그 때 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요. 내 오빠는 엄마랑 나랑 함께 산 적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늘 친할머니와 살았습니다. 나는 한 살 반이 되는 때부터 기관지 천식으로 고통을 받아온 오빠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젊었을 때 아버지와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이를 갈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못된 버릇이 많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아주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결혼을 하셨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고아였기에, 아마도 결혼이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결혼만 하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지요.
어머니가 낳은 첫째아이, 큰오빠는 태어난 지 40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 뒤, 지금 내 오빠가 태어났는데, 오빠는 나와 함께 자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들이 이미 별거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난 뒤 나를 보러 오셨는가를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대답하셨지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르셨고, 또 아버지가 나를 무척 사랑하셨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시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한 살이 되던 해에 콜롬비아에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살해당하셨습니다. 끔찍하고도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 나이는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총알이 복부를 관통했는데, 라 꿈 브레라는 조그마한 도시 길바닥에 창자가 다 쏟아지는 끔찍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굉장히 기쁘다고 내게 말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런 작자는 차라리 뒈지는 편이 낫다던 그 말씀. 이 때부터 자녀양육 문제를 놓고 법정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법원판결에 따라 오빠는 친할머니가 양육하고, 나는 어머니가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목요일 아침,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 뿐.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섭고 비틀어곱새겨진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악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상을 지니고 있었던 거지요.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까지도 끔찍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또 13살 때에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도 이제는 돌아가신 분이니 최소한 존경심은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결혼은 치욕적인 것이었고 결코 바라지 않았던 거였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너한테 아무런 유산도 남겨놓지 않았는데, 넌 왜 자꾸만 뭘 사달라고 보채니?”라고 짜증을 내시곤 했습니다.
이 때, 의붓아버지도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는데도,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면, 그는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해 왔습니다. 만일 내가 그 요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나를 집에서 내쫓거나, 자신이 집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를 결코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고 있었구요.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나는 의붓아버지가 한 말을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이후부터는 한술 더 떠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양쪽에서 나한테 증오를 쏟아부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끊임없이 요구해 올 때마다, 나는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이에 맞서 왔기 때문입니다.
16살 되는 해에, 나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더 이상 그 집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두 번째 결혼을 하신 뒤 5명의 아이들을 더 낳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증오와 악의로 가득 찬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떤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일했습니다. 두달 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네달 뒤,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환경에 따라 그렇게 저질러 버린 결혼!
남편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처음에는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하고 말았습니다. 이왕 결혼한 것, 좋은 아내와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어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 약속을 잘 지켜 왔습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셋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 가고 있지요.
목요일 아침, 나는 과거의 모든 쓰라린 기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회상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행복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울음이 북받쳤습니다. 몹시 괴로웠습니다. 엄청난 내면의 혼돈을 느꼈습니다. 그 때 내 양옆에는 두 명의 이복여동생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자기 아버지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무서운 고통을 모르고 있을 터.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나는 이복여동생들이 커피를 마시러 간 동안에도 교회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교회 길러모 목사님이 마침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 날 아침 내가 겪었던 일과 고통받았던 모든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속으로 느끼고 있는 바를 오빠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오빠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그 여자’에 관하여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길러모 목사님에게 오빠가 어머니를 몹시 미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오빠가 하나님을 모르기에 그토록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내게는 커다란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플로르 이야기
1972년 11월, 그리고 1973년 2월, 우리 치유목회 팀은 콜롬비아의 보고타와 깔리에서 영성수련을 이끌었다. 이 영성 수련에서 칠레의 몰리나에 살고 있는 플로르 집사는 이 책에서 앞으로 기술할 네 가지 유형의 치유를 예증해 주는 일련의 현저한 치유를 받았다.
플로르 집사의 치유사건은 여러 유형의 치유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녀가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고 나서야 그녀의 딸도 병이 치유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프롤르 집사가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았을 때 분명히 귀신축출 사역도 경험했다. 그녀가 용서하고(회개) 내면세계의 치유를 받자, 그녀는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악한 영들(예컨대, 분노)의 억누름에서 느슨해지고 자유로워졌다. 게다가, 이러한 과거의 기억치유 사건을 통하여 한 사람이 치유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와 어떤 단계들을 거쳐야 치유가 일어나는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마치 약속된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게 우리 인생의 강물 흐름을 가로막고 떠 있는 통나무더미에서 통나무를 하나씩 하나씩 치워 버리고 마침내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는 통나무마저도 제거하여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자유롭게 하시는가를 서술한 것이다. 1973년 2월 18일, 플로르 집사가 콜롬비아 깔리에서 스페인어로 간증한 것을 영어로 번역하였다.
1. 영성적인 치유
1972년 10월, 우리는 프랜시스 맥너트, 진 힐, 루스 스테이플턴이 이끄는 영성수련에 참석하기 위하여 깔리에서 보고타로 갔습니다. 거기 있는 동안, 우리는 성령 안에서 더 깊은 삶을 느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방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성수련 둘째날에 루스 스테이플턴 여사는 내면세계의 치유기도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날 나는 영성수련 장소에서 프랜시스 박사님이 계신 것을 보고 그분에게 나와 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사님은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더니 나더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날 나는 생전 처음으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울부짖기 시작했지요.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한 청년은 나에게 키스를 하고 껴안아 주며,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4개월 뒤, 나는 프랜시스 박사님이 콜롬비아 깔리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지난번 보고타에서 체험한 것과 박사님으로부터 배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가 출석하던 성공회와 장로교에서 열리는 영성수련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날마다 오전 영성지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영성수련 첫날부터 나는 앓고 있던 딸 마리아 페르난다를 데리고 가서 프랜시스 박사님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때 나의 두 이복여동생들도 같이 있었습니다.
2. 과거를 직면하기
영성수련이 끝나기 하루 전날인 목요일에, 프랜시스 박사님은 내면세계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내면세계의 치유기도를 드리다가 그분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셨고, 필요로 하는 사랑을 결코 받아본 적이 없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때 그분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삶을 돌이켜 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곧 유년시절과 아동기 시절을 회고해 보라는 것이었지요. 또한 그분은 우리들 가운데 혹시 부모들이 원하지 않고 부모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시간에 부모님을 위하여 기도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나는 갑자기 온몸이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감성에 복받쳐 울부짖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나 역시도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자식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 내 옆에는 어머니가 두 번째 결혼하여 낳은 이복여동생들도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 지금 이 경련을 멈추어 주시고 겉으로라도 평온함을 주옵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들이 지금 내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이해하려 들 턱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나는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아이였음을 큰 소리로 절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실 내 마음은 어린 시절부터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내가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된 때에 어머니가 내뱉었던 처음 몇 마디 말들이 제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하였습니다: “너랑 네 동생은 첫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엇기에 네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구나. 너희들만 보면 그 옛날 암울하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는구나.”
그 때 나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어머니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요. 내 오빠는 엄마랑 나랑 함께 산 적이 없었습니다. 오빠는 늘 친할머니와 살았습니다. 나는 한 살 반이 되는 때부터 기관지 천식으로 고통을 받아온 오빠를 부끄러워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젊었을 때 아버지와 결혼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나한테 아버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이를 갈며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못된 버릇이 많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두 분 모두 아주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결혼을 하셨답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고아였기에, 아마도 결혼이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결혼만 하면 자신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거지요.
어머니가 낳은 첫째아이, 큰오빠는 태어난 지 40일 만에 죽었습니다. 그 뒤, 지금 내 오빠가 태어났는데, 오빠는 나와 함께 자란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들이 이미 별거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난 뒤 나를 보러 오셨는가를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렇다고 대답하셨지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르셨고, 또 아버지가 나를 무척 사랑하셨기에,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시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가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가 한 살이 되던 해에 콜롬비아에 내전이 일어났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살해당하셨습니다. 끔찍하고도 무서운 일이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 나이는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한 스물여덟이었습니다. 총알이 복부를 관통했는데, 라 꿈 브레라는 조그마한 도시 길바닥에 창자가 다 쏟아지는 끔찍한 모습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굉장히 기쁘다고 내게 말하셨습니다.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런 작자는 차라리 뒈지는 편이 낫다던 그 말씀. 이 때부터 자녀양육 문제를 놓고 법정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법원판결에 따라 오빠는 친할머니가 양육하고, 나는 어머니가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목요일 아침,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아버지 없이 자랐습니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 뿐.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섭고 비틀어곱새겨진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악하고 무책임한 아버지상을 지니고 있었던 거지요. 심지어 아버지의 죽음까지도 끔찍하게 그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또 13살 때에 어머니와 심하게 다투었던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도 이제는 돌아가신 분이니 최소한 존경심은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자유의사에 따라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그 결혼은 치욕적인 것이었고 결코 바라지 않았던 거였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무엇인가를 사달라고 요구할 때마다, 어머니는 “네 아버지가 너한테 아무런 유산도 남겨놓지 않았는데, 넌 왜 자꾸만 뭘 사달라고 보채니?”라고 짜증을 내시곤 했습니다.
이 때, 의붓아버지도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는데도,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면, 그는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해 왔습니다. 만일 내가 그 요청을 받아주지 않으면 나를 집에서 내쫓거나, 자신이 집을 떠나버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나를 결코 멀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늘 가까이 하고 있었구요.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나는 의붓아버지가 한 말을 어머니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이후부터는 한술 더 떠 어머니와 의붓아버지 양쪽에서 나한테 증오를 쏟아부었습니다. 의붓아버지가 끊임없이 요구해 올 때마다, 나는 굴욕감을 느끼면서도 이에 맞서 왔기 때문입니다.
16살 되는 해에, 나는 집에서 도망쳐 나왔습니다. 더 이상 그 집에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도 두 번째 결혼을 하신 뒤 5명의 아이들을 더 낳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를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증오와 악의로 가득 찬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떤 집에 가정부로 들어가 일했습니다. 두달 뒤,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네달 뒤, 우리는 결혼했습니다. 환경에 따라 그렇게 저질러 버린 결혼!
남편은 나보다 열 살이나 많았습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였지요. 처음에는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하고 말았습니다. 이왕 결혼한 것, 좋은 아내와 훌륭한 가정주부가 되어야지 다짐을 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이 약속을 잘 지켜 왔습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셋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다운 가정을 가꾸어 가고 있지요.
목요일 아침, 나는 과거의 모든 쓰라린 기억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회상했습니다. 그것은 결코 행복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울음이 북받쳤습니다. 몹시 괴로웠습니다. 엄청난 내면의 혼돈을 느꼈습니다. 그 때 내 양옆에는 두 명의 이복여동생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마도 자기 아버지 때문에 내가 겪고 있는 무서운 고통을 모르고 있을 터.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드렸습니다.
나는 이복여동생들이 커피를 마시러 간 동안에도 교회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교회 길러모 목사님이 마침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그 날 아침 내가 겪었던 일과 고통받았던 모든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속으로 느끼고 있는 바를 오빠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얼마 전에 오빠가 나를 찾아와서는 자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그 여자’에 관하여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길러모 목사님에게 오빠가 어머니를 몹시 미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오빠가 하나님을 모르기에 그토록 어머니를 증오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내게는 커다란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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