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3931295 도서출판 학영
괴물, 교회, 그리고 우리
(저자) 이상환
도서출판 학영 · 2026-06-30 140*206 · 340p
도서출판 학영 · 2026-06-30 140*206 · 3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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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교회 밖에만 있는가?
이 책은 지젝과 괴물 이론을 통해 우리가 ‘정상’이라 믿어 온 신앙과 공동체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은혜로운 말이 고통을 덮고, 정상이라는 질서가 누군가를 배제하며, 선한 의도가 폭력이 되는 순간을 끝까지 추적한다. 흔히 우리는 괴물을 세상, 이단, 타락한 문화, 낯선 타자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이 책은 불편한 질문을 통해 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낸다. 자유라는 이름의 통제,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 평화라는 이름의 침묵, 희망이라는 이름의 미룸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작동할 때, 교회 안에도 괴물이 나타난다. 이 책은 우리가 스스로를 다시 보게 만드는 날카로운 거울이다. 안전한 거짓 위로에 머물고 싶지 않은 독자라면, 이 책의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당신의 신앙은 정말로 괜찮은가? 당신의 교회는 정말로 괜찮은가?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이상환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했다(STM; Highest Honor). 담임 목회자로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들을 섬겼고, 현재는 실리콘밸리 IT스타트업에서 Business Intelligence 디렉터로,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및 해석학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New Testament Studie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Biblica, Novum Testamentum,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Religions, Journal of Ancient Judaism, Journal of Greco-Roman Christianity and Judaism 등 다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출간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들과 함께 달라스에 거주하며 일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달라스 신학교에서 신약학을 공부했다(STM; Highest Honor). 담임 목회자로 미국에 있는 이민 교회들을 섬겼고, 현재는 실리콘밸리 IT스타트업에서 Business Intelligence 디렉터로, 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및 해석학 조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New Testament Studies,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Biblica, Novum Testamentum,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Religions, Journal of Ancient Judaism, Journal of Greco-Roman Christianity and Judaism 등 다수의 학술지에 논문을 출간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들과 함께 달라스에 거주하며 일과 연구에 힘쓰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괴물 앞에 서기 … 7
1부 거짓 보증자와 뒤집힌 자유 … 19
제1장 | 준비된 세계를 떠나는 자유 … 20
제2장 | 파괴로만 상상되는 항의 … 31
제3장 | 뒤집힌 세계의 향유 … 46
제4장 | 거짓 보증자의 죽음 … 58
2부 파국의 시간과 보는 자리 … 69
제5장 | 이미 도착한 파국의 시간 … 70
제6장 |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 … 82
제7장 | 안전한 언덕 위의 관객 … 94
3부 욕망, 투명성, 이웃 … 105
제8장 | 즉시 만족과 사라진 그리움 … 106
제9장 | 거리가 사라진 세계 … 119
제10장 | 너무 가까운 이웃 … 132
제11장 | 약함이 전염된다는 환상 … 146
4부 권력은 어떻게 듣지 않고,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가? … 159
제12장 | 듣지 않는 권력 … 160
제13장 | 보이지 않는 권력의 격자 … 172
제14장 | 존엄을 지우는 관리 … 185
5부 폭력, 평화, 자유의 궤변 … 197
제15장 | 부끄러움을 잃은 시대 … 198
제16장 | 두 고통을 함께 담는 마음 … 210
제17장 | 평화라는 이름의 승인 … 222
제18장 | 자유를 강제하는 질서 … 235
제19장 | 고귀함으로 장식되는 악 … 247
6부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지옥 … 259
제20장 |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 … 260
제21장 | 공포와 죄책감의 생태학 … 272
제22장 | 부스러기로 유지되는 동정 … 283
제23장 | 이미 일어난 종말 … 294
제24장 | 지옥을 정상으로 만드는 언어 … 308
제25장 | 희망이라는 미룸을 넘어서 … 320
에필로그: 괴물 이후의 교회 … 333
참고문헌 … 337
1부 거짓 보증자와 뒤집힌 자유 … 19
제1장 | 준비된 세계를 떠나는 자유 … 20
제2장 | 파괴로만 상상되는 항의 … 31
제3장 | 뒤집힌 세계의 향유 … 46
제4장 | 거짓 보증자의 죽음 … 58
2부 파국의 시간과 보는 자리 … 69
제5장 | 이미 도착한 파국의 시간 … 70
제6장 | 괜찮을 것이라는 위로 … 82
제7장 | 안전한 언덕 위의 관객 … 94
3부 욕망, 투명성, 이웃 … 105
제8장 | 즉시 만족과 사라진 그리움 … 106
제9장 | 거리가 사라진 세계 … 119
제10장 | 너무 가까운 이웃 … 132
제11장 | 약함이 전염된다는 환상 … 146
4부 권력은 어떻게 듣지 않고,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가? … 159
제12장 | 듣지 않는 권력 … 160
제13장 | 보이지 않는 권력의 격자 … 172
제14장 | 존엄을 지우는 관리 … 185
5부 폭력, 평화, 자유의 궤변 … 197
제15장 | 부끄러움을 잃은 시대 … 198
제16장 | 두 고통을 함께 담는 마음 … 210
제17장 | 평화라는 이름의 승인 … 222
제18장 | 자유를 강제하는 질서 … 235
제19장 | 고귀함으로 장식되는 악 … 247
6부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지옥 … 259
제20장 | 보호라는 이름의 감금 … 260
제21장 | 공포와 죄책감의 생태학 … 272
제22장 | 부스러기로 유지되는 동정 … 283
제23장 | 이미 일어난 종말 … 294
제24장 | 지옥을 정상으로 만드는 언어 … 308
제25장 | 희망이라는 미룸을 넘어서 … 320
에필로그: 괴물 이후의 교회 … 333
참고문헌 … 337
책 속으로
1998년에 개봉한 「트루먼 쇼」(The Truman Show)는 피터 위어(Peter Weir) 감독이 세상에 소개한 영화다. 짐 캐리(Jim Carrey)가 연기한 트루먼 버뱅크(Truman Burbank)는 어린 시절부터 거대한 세트장 안에서 자라왔다. 그가 사는 도시도, 만나는 사람들도, 직장도, 아내도 모두 24시간 방송되는 텔레비전 쇼의 일부다. 그러나 트루먼 자신만 그 사실을 모른 채, 매일 ‘자유롭게’ 출근하고 ‘자유롭게’ 사람을 만나고 ‘자유롭게’ 산다. 지젝은 이런 자유를 가리켜 자유로 경험되는 비자유라고 부른다. 문제는 우리도 비자유를 자유로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디지털 시대의 통제는 더 이상 외부에서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우리가 자유롭게 검색하고, 선택하고, 표현하는 바로 그 행위 속에 숨어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장 자유롭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오히려 가장 비자유적일 수 있다는 역설이다(2020: 32).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트루먼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지가 놓인 판 자체가 이미 짜여 있다. 그 안에서 자유는 그가 자유라고 믿도록 설계된 형식일 뿐이다. 영화 중반에 무대 천장의 조명 하나가 떨어지지만, 라디오는 곧장 비행기 사고로 둘러대고 균열은 봉합된다. 트루먼은 자기가 본 것을 말할 언어를 갖지 못한다. 의심은 떠올라도 그것을 표시할 기호가 없다. 여기서 괴물은 자유로 경험되는 비자유다. 트루먼은 억압받는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낀다. 단지 그 자유의 좌표를 누가 짰는지 모를 뿐이다. 20-21
여기서 지젝은 또 하나의 구분을 제시한다. 도덕(morality)과 윤리(ethics)의 구분이다. 지젝에게 도덕은 공동체가 함께 좋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춰 관계를 조율하는 일로 설명된다. 반면 윤리는 내가 붙들어야 할 대의 앞에서,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충실하게 서는 일을 가리킨다(2022: 329). 쉽게 말해, 도덕은 공동체의 평화로운 표면을 지킨다. 윤리는 그 표면 아래 무엇이 덮여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자주 이 두 가지를 혼동한다. 예의, 화평, 점잖음, 덕은 도덕의 언어다. 그것은 필요한 언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에 대한 충실함을 대신하면 문제가 생긴다. 피해자의 말이 “덕이 안 된다”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질문이 “분란을 일으킨다”라는 이유로 제지되고, 진실의 추구가 “은혜롭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보류된다. 그때 교회는 겉으로는 점잖아 보이지만, 진실 앞에서는 무너진다. 38
교회 생활에서도 이 문제는 즉시 만족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은혜마저 즉시 만족의 형식으로만 경험하려는 상태다. 설교는 즉시 위로를 주어야 한다. 찬양은 즉시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기도는 즉시 불안을 낮추어야 한다. 예배는 한 주를 버틸 힘을 빠르게 공급해야 한다. 신앙 콘텐츠는 짧고 선명하고 공유하기 좋아야 한다. 성도는 바쁘고 지쳐 있으니, 교회는 가능한 한 빠르게 그 마음을 채워 주어야 한다. 물론 위로는 귀하다. 감동도 필요하다. 지친 사람에게 즉각적인 돌봄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문제는 신앙 전체가 즉시 효과를 내는 경험으로 좁아질 때 생긴다. 그때 말씀은 오래 씹어야 할 양식보다 즉시 기분을 바꾸는 문장이 되고, 기도는 하나님 앞에 머무는 자리보다 불안을 조절하는 기술이 되고,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시간보다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된다. 이런 교회는 성도를 굶기기보다 계속해서 먹인다. 메시지, 영상, 찬양, 모임, 프로그램, 이벤트, 감동적인 간증이 끊임없이 공급된다. 그러나 공급의 양이 곧 깊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너무 빨리 먹이면 씹는 힘이 약해진다. 너무 자주 자극하면 조용한 은혜를 견디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괴물의 위치가 바뀐다. 괴물의 얼굴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다. 대신, 결핍을 너무 빨리 제거하려는 교회의 조급함이다. 111
교회는 평화를 좋아한다. 갈등이 끝나기를 원하고, 공동체가 다시 하나 되기를 원하고, 예배가 안정되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 마음 자체는 선하다. 그러나 어떤 평화는 가해자가 만든 현실을 그대로 둔 채, 피해자에게 그 현실에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이제 그만하자”, “공동체를 위해 덮자”, “다 지나간 일이다”, “서로 용서하자”, “앞으로 나아가자”. 이런 말들은 평화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피해자의 입을 닫는 명령이 된다. 이때 교회 안의 사후 승인은 조용히 진행된다. 폭력을 저지른 사람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상처 입은 사람은 공동체를 떠난다. 잘못된 결정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불편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공동체는 말한다. “이제 평안해졌다”. 227
회칠에는 실제 기능이 있었다. 무덤을 표시해 사람들이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돕는 기능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판에서 회칠은 다른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죽음을 드러내기보다 죽음을 가리는 표면이 된다. 안쪽의 부패는 그대로인데, 바깥은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인다. 이것이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지옥과 맞닿는 지점이다. 더러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러움이 깨끗함의 언어로 덮일 때 문제가 깊어진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이 경건과 질서와 정상성의 표면으로 가려질 때 공동체는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예수님의 비판은 종교 바깥의 악인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 중심에 있는 사람들, 성경을 알고, 예배를 알고, 율법을 알고, 경건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을 향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가 세상을 비판하기 위해 들고나갈 무기이기 전에, 교회가 자기 자신을 향해 들어야 할 말씀이다. 회칠한 무덤의 괴물은 흉측한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표면으로 나타난다. 훌륭한 말, 정돈된 절차, 경건한 태도, 평화로운 분위기, 좋은 평판, 안정된 운영. 그러나 그 아래 누군가의 고통이 묻혀 있다면, 그 표면은 아름다움보다 회칠의 성격을 띤다. 여기서도 괴물은 경계의 존재다. 무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있고, 회칠은 깨끗함과 부정함의 경계에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경계는 뒤집힌다. 깨끗해 보이는 표면이 오히려 죽음을 숨기고, 종교적 정상성이 부패를 보존한다. 괴물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깨끗한 표면으로 유지하는 종교적 기술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312-313
여기서 지젝은 또 하나의 구분을 제시한다. 도덕(morality)과 윤리(ethics)의 구분이다. 지젝에게 도덕은 공동체가 함께 좋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춰 관계를 조율하는 일로 설명된다. 반면 윤리는 내가 붙들어야 할 대의 앞에서, 손해와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충실하게 서는 일을 가리킨다(2022: 329). 쉽게 말해, 도덕은 공동체의 평화로운 표면을 지킨다. 윤리는 그 표면 아래 무엇이 덮여 있는지를 묻는다. 우리는 자주 이 두 가지를 혼동한다. 예의, 화평, 점잖음, 덕은 도덕의 언어다. 그것은 필요한 언어다. 그러나 그것이 진실에 대한 충실함을 대신하면 문제가 생긴다. 피해자의 말이 “덕이 안 된다”라는 이유로 밀려나고, 질문이 “분란을 일으킨다”라는 이유로 제지되고, 진실의 추구가 “은혜롭지 못하다”라는 이유로 보류된다. 그때 교회는 겉으로는 점잖아 보이지만, 진실 앞에서는 무너진다. 38
교회 생활에서도 이 문제는 즉시 만족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교회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은혜마저 즉시 만족의 형식으로만 경험하려는 상태다. 설교는 즉시 위로를 주어야 한다. 찬양은 즉시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기도는 즉시 불안을 낮추어야 한다. 예배는 한 주를 버틸 힘을 빠르게 공급해야 한다. 신앙 콘텐츠는 짧고 선명하고 공유하기 좋아야 한다. 성도는 바쁘고 지쳐 있으니, 교회는 가능한 한 빠르게 그 마음을 채워 주어야 한다. 물론 위로는 귀하다. 감동도 필요하다. 지친 사람에게 즉각적인 돌봄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문제는 신앙 전체가 즉시 효과를 내는 경험으로 좁아질 때 생긴다. 그때 말씀은 오래 씹어야 할 양식보다 즉시 기분을 바꾸는 문장이 되고, 기도는 하나님 앞에 머무는 자리보다 불안을 조절하는 기술이 되고, 예배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시간보다 영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된다. 이런 교회는 성도를 굶기기보다 계속해서 먹인다. 메시지, 영상, 찬양, 모임, 프로그램, 이벤트, 감동적인 간증이 끊임없이 공급된다. 그러나 공급의 양이 곧 깊이를 만들지는 않는다. 너무 빨리 먹이면 씹는 힘이 약해진다. 너무 자주 자극하면 조용한 은혜를 견디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괴물의 위치가 바뀐다. 괴물의 얼굴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다. 대신, 결핍을 너무 빨리 제거하려는 교회의 조급함이다. 111
교회는 평화를 좋아한다. 갈등이 끝나기를 원하고, 공동체가 다시 하나 되기를 원하고, 예배가 안정되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를 원한다. 이 마음 자체는 선하다. 그러나 어떤 평화는 가해자가 만든 현실을 그대로 둔 채, 피해자에게 그 현실에 적응하라고 요구한다. “이제 그만하자”, “공동체를 위해 덮자”, “다 지나간 일이다”, “서로 용서하자”, “앞으로 나아가자”. 이런 말들은 평화의 언어처럼 들리지만, 때로는 피해자의 입을 닫는 명령이 된다. 이때 교회 안의 사후 승인은 조용히 진행된다. 폭력을 저지른 사람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상처 입은 사람은 공동체를 떠난다. 잘못된 결정으로 이익을 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고,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불편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공동체는 말한다. “이제 평안해졌다”. 227
회칠에는 실제 기능이 있었다. 무덤을 표시해 사람들이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돕는 기능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판에서 회칠은 다른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죽음을 드러내기보다 죽음을 가리는 표면이 된다. 안쪽의 부패는 그대로인데, 바깥은 아름답고 깨끗하게 보인다. 이것이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지옥과 맞닿는 지점이다. 더러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더러움이 깨끗함의 언어로 덮일 때 문제가 깊어진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죽음이 경건과 질서와 정상성의 표면으로 가려질 때 공동체는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진다. 예수님의 비판은 종교 바깥의 악인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 중심에 있는 사람들, 성경을 알고, 예배를 알고, 율법을 알고, 경건의 언어를 아는 사람들을 향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회가 세상을 비판하기 위해 들고나갈 무기이기 전에, 교회가 자기 자신을 향해 들어야 할 말씀이다. 회칠한 무덤의 괴물은 흉측한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름다운 표면으로 나타난다. 훌륭한 말, 정돈된 절차, 경건한 태도, 평화로운 분위기, 좋은 평판, 안정된 운영. 그러나 그 아래 누군가의 고통이 묻혀 있다면, 그 표면은 아름다움보다 회칠의 성격을 띤다. 여기서도 괴물은 경계의 존재다. 무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에 있고, 회칠은 깨끗함과 부정함의 경계에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경계는 뒤집힌다. 깨끗해 보이는 표면이 오히려 죽음을 숨기고, 종교적 정상성이 부패를 보존한다. 괴물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깨끗한 표면으로 유지하는 종교적 기술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31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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