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98300128 예책
한국 성도를 위한 예언서 강의 (성경 바로 읽기 시리즈 1)
(저자) 기민석
예책 · 2017-03-20 149*210 · 276p
예책 · 2017-03-20 149*210 ·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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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성도인가?
구약성경의 예언, 그것도 거의 2600년 전에 선포된 예언을
지금 한국을 사는 성도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쾌락과 음란을 따라 이방의 우상을 죽도록 섬기고, 뇌물로 법질서가 흐트러지고, 기득권자들의 권력에 가난한 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강대국의 포로로 잡혀가 마른 뼈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떻게 보이는가? 지금 한국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시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한국을 사는 성도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만약 2600년 전 이스라엘의 상황과 오늘 한국의 상황이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지금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저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말고 현재를 변화시킬 적극적인 각오를 해야 한다. 벌거벗은 이사야처럼 광화문으로 뛰쳐나가든지, 아모스의 서슬 퍼런 지적 앞에 부도덕한 사업 장부를 과감히 버리든지, 다니엘처럼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로 맞서든지, 에스겔처럼 회복의 메시지로 서로를 위로하든지 어떤 행동으로 반응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국가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한국 성도도 함께 가슴에 새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책 소개]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현재’를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경고요, 은혜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예언자란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예언이란 무엇인지, 왜 하는지, 초기의 예언자들에는 누가 있는지, 그들은 어떤 능력이 있었는지를 말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이스라엘의 멸망 이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예언자들은 누구였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지, 이스라엘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각 예언자들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중간에 쉬어 가는 페이지로 지금 우리가 구약의 예언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집어본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포로기와 귀환 이후 예언자들의 활동과 메시지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모든 예언자를 다루지는 않는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 스가랴, 다니엘을 언급하면서 각 예언자의 특징을 다룬다. 독설가 아모스, 창녀와 결혼한 호세아, 귀족 이사야, 우울증 예레미야, 묵시의 아버지이자 희망의 에스겔, 학개와 스가랴의 성전 건축, 하늘의 권세 다니엘을 이야기한다.
[출판사 리뷰]
현재를 변화시키지 않는 예언은 예언이 아니다.
이 책의 참된 의미는 단순히 예언자들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데 있지 않다. 도리어 이 책에서 밝히는 예언서에 대한 학문적 내용은 매우 초보적이다. 근간의 첨단 이론은 배제되었고, 가장 기본적인 예언서에 대한 역사, 문헌적 이해를 쉽게 설명했다. 도리어 이 책에서는 이런 학문적 접근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저자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사회에 불의가 가득하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사회 정치 문제에 적극 참여한 ‘행동파’(activists)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한국의 성도도 이웃과 사회 속에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예언은 비록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는 무관심한 채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심만 고취하려는 것은 예언자적 신앙전통을 무시하는 모습이다. 내면의 문제만 평생 붙들며 기도하고 위로받는 신앙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고통에도 참여하는 신앙이 예언자적 전통을 잘 구현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불꽃같은 심장으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구약성경의 예언, 그것도 거의 2600년 전에 선포된 예언을
지금 한국을 사는 성도가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쾌락과 음란을 따라 이방의 우상을 죽도록 섬기고, 뇌물로 법질서가 흐트러지고, 기득권자들의 권력에 가난한 자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강대국의 포로로 잡혀가 마른 뼈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의 상황이 어떻게 보이는가? 지금 한국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시에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한국을 사는 성도에게도 유효하지 않을까? 만약 2600년 전 이스라엘의 상황과 오늘 한국의 상황이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지금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저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말고 현재를 변화시킬 적극적인 각오를 해야 한다. 벌거벗은 이사야처럼 광화문으로 뛰쳐나가든지, 아모스의 서슬 퍼런 지적 앞에 부도덕한 사업 장부를 과감히 버리든지, 다니엘처럼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로 맞서든지, 에스겔처럼 회복의 메시지로 서로를 위로하든지 어떤 행동으로 반응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국가와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마음을 한국 성도도 함께 가슴에 새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책 소개]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현재’를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경고요, 은혜다.
이 책은 총 세 개의 파트로 나눠져 있다.
첫 번째 파트는 예언자란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예언이란 무엇인지, 왜 하는지, 초기의 예언자들에는 누가 있는지, 그들은 어떤 능력이 있었는지를 말한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이스라엘의 멸망 이전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예언자들은 누구였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지, 이스라엘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각 예언자들의 특징은 무엇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중간에 쉬어 가는 페이지로 지금 우리가 구약의 예언자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집어본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포로기와 귀환 이후 예언자들의 활동과 메시지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모든 예언자를 다루지는 않는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 스가랴, 다니엘을 언급하면서 각 예언자의 특징을 다룬다. 독설가 아모스, 창녀와 결혼한 호세아, 귀족 이사야, 우울증 예레미야, 묵시의 아버지이자 희망의 에스겔, 학개와 스가랴의 성전 건축, 하늘의 권세 다니엘을 이야기한다.
[출판사 리뷰]
현재를 변화시키지 않는 예언은 예언이 아니다.
이 책의 참된 의미는 단순히 예언자들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데 있지 않다. 도리어 이 책에서 밝히는 예언서에 대한 학문적 내용은 매우 초보적이다. 근간의 첨단 이론은 배제되었고, 가장 기본적인 예언서에 대한 역사, 문헌적 이해를 쉽게 설명했다. 도리어 이 책에서는 이런 학문적 접근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저자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사회에 불의가 가득하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사회 정치 문제에 적극 참여한 ‘행동파’(activists)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한국의 성도도 이웃과 사회 속에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예언은 비록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는 무관심한 채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심만 고취하려는 것은 예언자적 신앙전통을 무시하는 모습이다. 내면의 문제만 평생 붙들며 기도하고 위로받는 신앙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고통에도 참여하는 신앙이 예언자적 전통을 잘 구현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불꽃같은 심장으로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기민석
《구약의 뒷골목 풍경》의 저자로,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구약성서학을 강의한다. 대전 ‘꿈의교회’(정임엘 담임)에서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는 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극동방송의 “성경인물열전”의 진행자로, 카이스트와 솔브릿지국제 학생 채플인 KIC와 SIC에서는 설교자로, 꿈의교회 카페에서는 주방 보조로 만날 수 있다. 그는 어려운 신학을 어떻게 하면 중고등학생도 볼 수 있을 만큼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학을 우리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쓰인 성경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읽고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를 늘 궁리하며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구가 아니라 대화이며, 전달이 아니라 공감이다. 이 책 《한국 성도를 위한 예언서 강의》도 그런 맥락에서 쓰였다. 한국 성도가 잘 읽지 않는 2,600여 년 전의 예언서가 왜 지금 한국을 사는 성도에게 유익한가, 무엇을 취해야 할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를 대화와 공감을 통해 풀어낸다. 수도침례신학교(현 침신대)를 졸업하고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과 성서학을 수련한 후 만체스터 대학에서 구약학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국내외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출간하며, 여러 교회와 기관에서 알차면서도 쉬운 성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강연과 저술로 여러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구약의 뒷골목 풍경》의 저자로,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구약성서학을 강의한다. 대전 ‘꿈의교회’(정임엘 담임)에서 협동목사로도 섬기고 있는 저자는 유튜브를 통해 극동방송의 “성경인물열전”의 진행자로, 카이스트와 솔브릿지국제 학생 채플인 KIC와 SIC에서는 설교자로, 꿈의교회 카페에서는 주방 보조로 만날 수 있다. 그는 어려운 신학을 어떻게 하면 중고등학생도 볼 수 있을 만큼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신학을 우리 삶과 연결시킬 수 있을까, 2,000년 전에 쓰인 성경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읽고 무엇을 깨달아야 할지를 늘 궁리하며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연구가 아니라 대화이며, 전달이 아니라 공감이다. 이 책 《한국 성도를 위한 예언서 강의》도 그런 맥락에서 쓰였다. 한국 성도가 잘 읽지 않는 2,600여 년 전의 예언서가 왜 지금 한국을 사는 성도에게 유익한가, 무엇을 취해야 할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지를 대화와 공감을 통해 풀어낸다. 수도침례신학교(현 침신대)를 졸업하고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에서 신학과 성서학을 수련한 후 만체스터 대학에서 구약학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국내외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출간하며, 여러 교회와 기관에서 알차면서도 쉬운 성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강연과 저술로 여러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쉽게 풀어 쓴 예언서, 한국을 사는 나에게 적용한다!
PART 1 예언자, 그들은 누구인가
chapter 01. 예언자란 누구인가?
01. 예언자란 누구인가? | 02.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chapter 02. 예언은 왜 하는가?
03. 예언의 의미는 무엇인가? | 04. 예언의 목적은 무엇일까?
chapter 03. 초기 예언자들은 누구인가?
05. 고대 이스라엘의 초기 예언자들은 누구인가? | 06. 예언자에도 종류가 있을까?
chapter 04. 예언자들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었나?
07. 예언자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PART 2 예언자의 프로파일 Ⅰ _ 이스라엘 멸망 이전
chapter 05. 아모스와 심판 그리고 사회 정의
08. 아모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 09. 아모스는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가? | 10. 아모스는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 11. 이스라엘은 무엇을 잘못했나?
chapter 06. 호세아의 바람난 아내와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
12. 호세아의 삶은 어땠나? | 13. 호세아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 14. 바알은 왜 인기가 많았을까? | 15.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배신했나?
chapter 07. 이사야의 사상과 이사야서
16. 이사야서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 17. 이사야서의 문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 18. 이사야 예언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 19. 이사야서의 특징은 무엇일까?
chapter 08. 예레미야의 소명과 우울증
20.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인가? | 21. 예레미야의 소명은 무엇일까? | 22. 예레미야의 예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 잠깐!! _ 예언자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PART 3 예언자의 프로파일 Ⅱ _ 포로기와 귀환 이후
chapter 09. 묵시의 아버지이자 이민 목회자 에스겔의 희망
23. 에스겔서는 어떤 특징이 있나? | 24. 묵시문학의 특징은 무엇일까? | 25. 에스겔의 예언은 어떤 특징이 있나? | 26. 에스겔서의 환상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chapter 10. 포로기와 귀환 사회에서의 이사야서
27. 이사야서는 왜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할까? | 28. 이사야서의 유일신 사상이 왜 중요할까? | 29. 이스라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 30. 귀환 사회에는 어떤 갈등이 있었나?
chapter 11. 학개, 스가랴 그리고 성전
31. 귀환 사회가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 32. 성서 속의 상반된 목소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chapter 12. 다니엘과 하늘의 권세 그리고 오직 믿음
33. 다니엘서는 어떤 특징이 있나? | 34. 다니엘서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PART 1 예언자, 그들은 누구인가
chapter 01. 예언자란 누구인가?
01. 예언자란 누구인가? | 02.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역할은 무엇일까?
chapter 02. 예언은 왜 하는가?
03. 예언의 의미는 무엇인가? | 04. 예언의 목적은 무엇일까?
chapter 03. 초기 예언자들은 누구인가?
05. 고대 이스라엘의 초기 예언자들은 누구인가? | 06. 예언자에도 종류가 있을까?
chapter 04. 예언자들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었나?
07. 예언자들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을까?
PART 2 예언자의 프로파일 Ⅰ _ 이스라엘 멸망 이전
chapter 05. 아모스와 심판 그리고 사회 정의
08. 아모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 09. 아모스는 어떤 메시지를 전했는가? | 10. 아모스는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 11. 이스라엘은 무엇을 잘못했나?
chapter 06. 호세아의 바람난 아내와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
12. 호세아의 삶은 어땠나? | 13. 호세아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 14. 바알은 왜 인기가 많았을까? | 15.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배신했나?
chapter 07. 이사야의 사상과 이사야서
16. 이사야서의 핵심 주제는 무엇일까? | 17. 이사야서의 문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 18. 이사야 예언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 | 19. 이사야서의 특징은 무엇일까?
chapter 08. 예레미야의 소명과 우울증
20. 예레미야는 어떤 사람인가? | 21. 예레미야의 소명은 무엇일까? | 22. 예레미야의 예언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 잠깐!! _ 예언자와 나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PART 3 예언자의 프로파일 Ⅱ _ 포로기와 귀환 이후
chapter 09. 묵시의 아버지이자 이민 목회자 에스겔의 희망
23. 에스겔서는 어떤 특징이 있나? | 24. 묵시문학의 특징은 무엇일까? | 25. 에스겔의 예언은 어떤 특징이 있나? | 26. 에스겔서의 환상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chapter 10. 포로기와 귀환 사회에서의 이사야서
27. 이사야서는 왜 창조주 하나님을 강조할까? | 28. 이사야서의 유일신 사상이 왜 중요할까? | 29. 이스라엘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 30. 귀환 사회에는 어떤 갈등이 있었나?
chapter 11. 학개, 스가랴 그리고 성전
31. 귀환 사회가 요구한 것은 무엇일까? | 32. 성서 속의 상반된 목소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chapter 12. 다니엘과 하늘의 권세 그리고 오직 믿음
33. 다니엘서는 어떤 특징이 있나? | 34. 다니엘서는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책 속으로
한편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이 매우 ‘행동파’(activists)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예언자들이 다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행적을 보면 그들이 사회 정치 문제에 적극 참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회에 불의가 가득하고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에, 이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저항하던 행동파 인물들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은 그저 앉아서 찾아오는 이들만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사로운 개인의 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점들까지 짚어 소리치던 사회운동가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현대의 많은 사역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독교는 개개인의 신앙생활만 염려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구약성경 예언자들이 전해 주는 신앙의 전통은, 기독교가 이웃과 사회 속에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가르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에는 무관심한 채 개인의 내면적인 신앙심만 고취하려는 것은 예언자적 신앙전통을 무시하는 모습입니다. 내면의 문제만 평생 붙들며 기도하고 위로받는 신앙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의 고통에도 참여하는 신앙이 예언자적 전통을 잘 구현하는 모습입니다. _p.17-18
예언자들의 선포 양식도 이와 같습니다. 아모스나 예레미야,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이 전달한 메시지는 매우 비판적이고 과격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당시 부패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히 비난하거나 방탕한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내 생각에는 말이야…” 하면서 시작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잖아도 예언자들은 평소에도 미움을 받아 많이 얻어맞고 다녔는데, 아마 더 두들겨 맞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까불지 말고 정중히 들어라” 했던 것입니다. 사자언체의 또 다른 기능은 절대로 자기 자신의 사견을 섞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_p.25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예언자들의 첫 마디를 기억해야 합니다. 늘 속으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되뇐 다음 말씀을 시작한다면, 개인적인 생각과 철학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술일 뿐이지 절대 두뇌가 아닙니다. 우리의 입술을 움직이는 두뇌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겸허하게 주의 입술로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_p.26
이렇게 예언은 비록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미래의 일을 말한 것은 현재의 삶을 잘 정리하라는 의미이고, 선고를 들은 환자 역시 이 예언을 통해 현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성경의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한 예언자들은 그저 단순히 미래의 멸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근거들을 제시하였고 신랄히 비판하였습니다. 예언을 듣는 자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한 것입니다. _p.35
소위 멸망 선지자라 불리는 참 예언자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을 선포하던 이들입니다. 어떤 예언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매국노’니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과격분자’니 하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반면에 늘 평화만 이야기하던 거짓 선지자들은 평생을 존경 받고 인기도 누리며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_p.54
여러분은 기적을 믿습니까? 너무 황당한 질문인가요? 맞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적을 믿습니다. 아니,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기적적인 부활을 믿는 것이니까요. 기적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실증될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요. 기적은 과학적으로 실증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은 이해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_p.61
아모스가 당시 성소의 제사장들을 향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들도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보다 교회의 양적 발전을 위해 성도들의 머릿수와 헌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수천 년 전 이스라엘에 퍼붓던 아모스의 독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는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것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당신은 교인이 되었으니 이웃을 사랑하세요. 남을 용서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렇게 가르친다면, 그 사람이 혹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교회란 사랑하는 곳, 용서하는 곳 그리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곳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_p.79-80
교회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요한일서의 말씀과 상통하는 말씀입니다. …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교회에 열심히 들락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와 그 이웃이 다 같이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올바른 행동양식인 것입니다. 아모스의 말처럼 거칠지는 않지만,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최고의 신앙적 가치를 찾는 말을 했습니다. _p.100-101
가나안의 첫 번째 유혹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두 번째 유혹은 매우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기면 비가 올 뿐 아니라 성적인 쾌락도 누릴 수 있습니다. 앞장에서 살펴본 대로 가나안의 종교적 제의는 성적인 행위도 포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마도 성전에 매춘 행위를 하는 이들, 소위 성전 창기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지만요. 고대 사회는 자손 번성이 곧 부의 번성을 의미했기 때문에 성행위는 곧 ‘다산’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적 제의 속에 다산을 비는 종교적 성행위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소위 예배드리러 가서 여자들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_p.122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생활 방식과 풍습은 너무나 큰 유혹이었습니다. 그들처럼 바알을 섬겨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더불어 큰 쾌락도 뒤따랐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경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환경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가나안의 유혹이 이렇게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강하고 달콤하였기에 하나님은 그토록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배교와 음란을 일삼던 북이스라엘은 아모스와 호세아의 예언처럼 기원전 8세기 말경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_p.124-125
한마디로 이사야서는 이사야 한 개인이 한때에 저작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예언집이라는 것입니다. 8세기 말에 활동하던 이사야의 예언이 기록된 부분도 있지만, 그의 사후에 제자나 그의 학파가 새롭게 해석하여 첨부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대체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는 매우 싫어합니다. 이사야서는 반드시 이사야 단독으로 씌어져야 하나님의 영감 어린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사야가 이사야서 전체를 혼자서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시대적인 배경이 서로 다른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즉 1-39장은 이사야가 살던 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예언이고, 40-55장은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며, 56-66장은 포로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이사야서를 읽을 때 이 시대적 구분만큼은 반드시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_p.141
하나님은 더 나아가 예레미야에게 기이한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소들이 메는 멍에를 어깨에 메고 있으라는 겁니다. 가뜩이나 밉보인 예레미야가 그러고 다니니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멍에를 지고 다니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길, ‘우리가 다 포로로 잡혀 이렇게 바벨론의 멍에를 멜 것이다’(렘 27장)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한 대 맞을 것도 두 대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_p.169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이 그저 폭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이라고 못 박은 후, 종교 행위를 하러 성전에 온 이들에게 ‘길과 행위’를 고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교회만 열심히 다니지 말고 똑바로 살라는 거지요. 교회에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정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라는 겁니다. _p.176
하나님의 계시는 하늘에서 번개 떨어지듯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런 일은 성경에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 예는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 정도에서 찾을 수 있지요. 대개는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삶과 일생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겪은 바가 예언으로 드러납니다. _p.177
예언자들의 선포 양식도 이와 같습니다. 아모스나 예레미야,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이 전달한 메시지는 매우 비판적이고 과격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당시 부패한 정치, 종교 지도자들을 신랄히 비난하거나 방탕한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내 생각에는 말이야…” 하면서 시작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러잖아도 예언자들은 평소에도 미움을 받아 많이 얻어맞고 다녔는데, 아마 더 두들겨 맞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까불지 말고 정중히 들어라” 했던 것입니다. 사자언체의 또 다른 기능은 절대로 자기 자신의 사견을 섞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_p.25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예언자들의 첫 마디를 기억해야 합니다. 늘 속으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되뇐 다음 말씀을 시작한다면, 개인적인 생각과 철학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입술일 뿐이지 절대 두뇌가 아닙니다. 우리의 입술을 움직이는 두뇌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늘 겸허하게 주의 입술로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_p.26
이렇게 예언은 비록 미래를 말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현재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미래의 일을 말한 것은 현재의 삶을 잘 정리하라는 의미이고, 선고를 들은 환자 역시 이 예언을 통해 현재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킵니다. 성경의 예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한 예언자들은 그저 단순히 미래의 멸망만 말한 것이 아니라 왜 망할 수밖에 없는지 그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근거들을 제시하였고 신랄히 비판하였습니다. 예언을 듣는 자로 하여금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한 것입니다. _p.35
소위 멸망 선지자라 불리는 참 예언자들은, 대부분 살아 있는 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을 선포하던 이들입니다. 어떤 예언자들은 죽을 때까지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안 ‘매국노’니 나라의 기강을 흔드는 ‘과격분자’니 하는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반면에 늘 평화만 이야기하던 거짓 선지자들은 평생을 존경 받고 인기도 누리며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_p.54
여러분은 기적을 믿습니까? 너무 황당한 질문인가요? 맞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기적을 믿습니다. 아니, 반드시 믿어야만 합니다. 기독교 가르침의 핵심 중의 핵심이 바로 죽음을 물리치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기적적인 부활을 믿는 것이니까요. 기적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실증될 수 있는 당연한 일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무슨 믿음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요. 기적은 과학적으로 실증될 수 없고 납득할 수 없는 일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들은 이해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_p.61
아모스가 당시 성소의 제사장들을 향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오늘날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하는 소리로 들리지 않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들도 올바른 복음을 전하기보다 교회의 양적 발전을 위해 성도들의 머릿수와 헌금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수천 년 전 이스라엘에 퍼붓던 아모스의 독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실 교회는 처음 온 사람들에게 이것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당신은 교인이 되었으니 이웃을 사랑하세요. 남을 용서하고 남을 위하여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렇게 가르친다면, 그 사람이 혹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더라도 교회란 사랑하는 곳, 용서하는 곳 그리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곳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_p.79-80
교회에서 행하는 종교적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회의 정의와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요한일서의 말씀과 상통하는 말씀입니다. …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교회에 열심히 들락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와 그 이웃이 다 같이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사회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올바른 행동양식인 것입니다. 아모스의 말처럼 거칠지는 않지만,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최고의 신앙적 가치를 찾는 말을 했습니다. _p.100-101
가나안의 첫 번째 유혹은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두 번째 유혹은 매우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바알을 섬기면 비가 올 뿐 아니라 성적인 쾌락도 누릴 수 있습니다. 앞장에서 살펴본 대로 가나안의 종교적 제의는 성적인 행위도 포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마도 성전에 매춘 행위를 하는 이들, 소위 성전 창기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지만요. 고대 사회는 자손 번성이 곧 부의 번성을 의미했기 때문에 성행위는 곧 ‘다산’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적 제의 속에 다산을 비는 종교적 성행위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당시 이스라엘 남자들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소위 예배드리러 가서 여자들과 마음껏 즐길 수 있으니 말입니다. _p.122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가나안 땅에 이주하여 살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의 생활 방식과 풍습은 너무나 큰 유혹이었습니다. 그들처럼 바알을 섬겨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더불어 큰 쾌락도 뒤따랐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경은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환경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은 너무나 달콤합니다. 가나안의 유혹이 이렇게 거부하기 어려울 만큼 강하고 달콤하였기에 하나님은 그토록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결국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해 배교와 음란을 일삼던 북이스라엘은 아모스와 호세아의 예언처럼 기원전 8세기 말경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_p.124-125
한마디로 이사야서는 이사야 한 개인이 한때에 저작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예언집이라는 것입니다. 8세기 말에 활동하던 이사야의 예언이 기록된 부분도 있지만, 그의 사후에 제자나 그의 학파가 새롭게 해석하여 첨부된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이론은 대체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는 매우 싫어합니다. 이사야서는 반드시 이사야 단독으로 씌어져야 하나님의 영감 어린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사야가 이사야서 전체를 혼자서 기록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은 시대적인 배경이 서로 다른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즉 1-39장은 이사야가 살던 8세기를 배경으로 한 예언이고, 40-55장은 포로기를 배경으로 하며, 56-66장은 포로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누구든 이사야서를 읽을 때 이 시대적 구분만큼은 반드시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_p.141
하나님은 더 나아가 예레미야에게 기이한 행동을 요구하십니다. 소들이 메는 멍에를 어깨에 메고 있으라는 겁니다. 가뜩이나 밉보인 예레미야가 그러고 다니니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멍에를 지고 다니느냐고 물으면 그는 말하길, ‘우리가 다 포로로 잡혀 이렇게 바벨론의 멍에를 멜 것이다’(렘 27장)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니 한 대 맞을 것도 두 대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_p.169
예레미야는 자신의 예언이 그저 폭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시는 말씀이라고 못 박은 후, 종교 행위를 하러 성전에 온 이들에게 ‘길과 행위’를 고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교회만 열심히 다니지 말고 똑바로 살라는 거지요. 교회에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 정말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살라는 겁니다. _p.176
하나님의 계시는 하늘에서 번개 떨어지듯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런 일은 성경에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 예는 모세에게 내린 십계명 정도에서 찾을 수 있지요. 대개는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삶과 일생 속에서 배우고 깨닫고 겪은 바가 예언으로 드러납니다. _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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