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3729090 세우미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 (포효하시는 하나님)
(저자) 조기호
세우미 · 2026-01-31   148*210 · 6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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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는 아모스서를 통해 오늘의 교회와 강단이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깨우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을 “무도한 사회”로 진단하며, 신앙이 개인의 위안이나 종교적 습관으로 축소되는 순간을 경계한다.
책이 붙드는 중심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예배당 안의 열정이 아니라, 정의와 공의가 삶의 전 영역으로 “흐르는” 예배다. 애통 역시 감정적 동정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주체성과 존엄을 인정하며 함께 아파하는 책임 있는 태도다.
이 책은 예언자의 언어를 통해 불의를 외면한 공동체의 자기기만을 드러내고, 기도마저 욕망의 언어로 변질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변화하는 기도의 자리로 독자를 이끈다.
마지막은 파괴가 아니라 돌이키심이다.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이 동시에 다시 일으키고 세우시는 하나님임을 붙들게 하며, 설교자와 신학생에게 “지금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어떤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를 묻는다.


[출판사 서평]

강단을 향한 아모스의 질문을 “지금”의 언어로 되살리다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는 아모스서를 고대 문서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책의 첫 걸음부터 독자를 현재로 데려온다. 상식이 비상식이 되고, 관계가 유익 중심으로 재편되며, 약자의 고통이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현실을 “무도한 사회”라는 진단으로 정직하게 마주한다. 그리고 곧바로 묻는다. 이 시대의 교회와 강단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무엇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가. 이 질문이 책 전체를 끌고 간다.

“예언자적 말하기”를 회복하려는 설교자에게 주는 압박과 은혜
저자는 돌려 말하지 않는다. 아모스의 말투 자체가 그렇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언자를 ‘불편한 말을 하는 사람’ 정도로 축소하지 않는다. 예언자는 권력의 눈치를 보며 화법을 다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공동체의 죄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죄가 만들어낸 사회적 결과를 끝까지 직시하게 한다. 그래서 책 곳곳에서 “불편하지 않은 설교”에 대한 경계가 반복된다. 강단이 사람을 달래는 기술로만 남을 때, 말씀은 예리함을 잃고 공동체는 자가 면역을 잃는다. 목회자와 신학생에게 이 대목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강단의 윤리를 다시 세우는 촉구로 읽힌다.

애통은 감정이 아니라, 존엄을 인정하는 목회의 자세
제목의 핵심어인 ‘애통’은 이 책에서 감상적 단어가 아니다. 저자는 애통을 “불쌍히 여김” 수준으로 낮추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의 주체성과 존엄을 인정하며 함께 아파하는 태도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곧 목회 현장으로 이어진다. 교회가 약자를 ‘돕는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순간, 애통은 시혜가 되고 복음은 우월감의 장식이 된다. 반대로 애통이 존엄의 인정에서 출발할 때, 목회는 ‘위로의 말’만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동행이 된다. 책은 애통을 본연의 의미로 되돌린다.

예배를 예배답게 만드는 기준: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가”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가 강단 독자에게 특히 날카로운 이유는, 예배를 감정의 열정이나 종교적 성취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모스 5:24를 중심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의 표지를 “정의와 공의의 흐름”으로 제시한다. 물이 땅의 구석구석을 적시듯 정의는 예배당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모든 영역으로 번져야 한다. 이 흐름이 끊긴 예배는 아무리 화려해도 본질을 잃는다.
이 부분에서 책은 독자를 편하게 두지 않는다. 교회가 예배를 ‘루틴’으로 만들고, 신앙을 ‘마음의 안정’으로 축소해버리는 순간, 아모스의 칼날은 강단을 향한다. 설교자는 자연스럽게 질문 앞에 선다. 우리의 예배는 누구를 살리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은 약자를 향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기도: 하나님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변화하는 사람
후반부에서 책은 기도를 다루는 방식으로 또 한 번 설교자의 습관을 흔든다. 기도가 욕망을 종교 언어로 포장해 “더 많이 얻기”로 흐를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아모스의 간구를 통해 기도가 결국 자기 성찰과 방향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꾸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이 드러나고, 그 자리에서 공동체를 위해 애통하며 결단하는 과정이라면-기도는 곧 설교의 뿌리가 된다. 목회자와 신학생에게 이 대목은 기도회를 조직하는 방법이 아니라, 기도가 목회자의 존재를 어떻게 새롭게 만드는지를 묻는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다섯 환상과 마지막 회복: 심판을 소비하지 않고, 회복을 값싸게 만들지 않는다
아모스서의 환상 장면들은 자극적으로 소비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은 환상을 공포 마케팅의 재료로 쓰지 않는다. 오히려 환상을 통해 공동체의 죄를 ‘측정’하고(다림줄), 곪은 현실을 ‘드러내며’(여름 과일),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변명할 수 없는 지점으로 데려간다. 그럼에도 마지막은 파괴가 아니라 “돌이키심”이다. 하나님이 무너뜨리기만 하는 분이 아니라 다시 일으키고 세우고 심으시는 분이라는 결론은, 강단이 심판과 회복을 함께 말해야 한다는 균형을 세워 준다. 회복은 현실을 모른 척하며 긍정으로 덮는 낙관이 아니라, 애통과 진단을 통과한 뒤에만 주어지는 복음이라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목사와 신학생에게 실제로 “쓸모 있는” 책
이 책은 지식을 늘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설교자에게 언어의 윤리(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예배의 기준(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목회의 태도(애통은 무엇인가), 기도의 방향(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를 하나로 엮어 묻는다. 그래서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는 “아모스서를 해석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강단의 감각을 되살리는 책”이다. 아모스를 통해 결국 독자에게 남는 질문은 하나다. 하나님의 정의가 오늘 내 목회와 설교, 교회의 삶에서 실제로 흐르고 있는가.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조기호
조기호 목사는 총신대학교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영국 싸우스햄튼 한인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몬트레이 소망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했으며, 현재 버지니아 소명교회에서 목회 중이다.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는 권력과 결탁하지 않은, 그리고 준비된 사람 아모스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다가 아닌 북 이스라엘에 가서 온갖 수모와 모욕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예언을 선포하는 아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는 아모스는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다.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 시대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된다. 그의 설교나 저술은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도전을 주고 하나님과 자신에 대해 묵상하게 한다.
그의 저서로는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다니엘』과 『환상을 보고 해석하는 다니엘』, 『어두운 시대의 사사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길 위에서 만난 예수』가 있다.

목차

저자 서문 4
01. 예언자 아모스와 그의 시대 10
02. 아모스가 대언한 하나님의 부르짖음 32
03. 열국에 대한 심판[1] 다메섹에 대한 심판 50
04. 열국에 대한 심판[2] 가사와 두로에 대한 심판 78
05. 열방에 대한 심판[3] 에돔과 암몬에 대한 심판 98
06. 열국에 대한 심판[4] 모압과 유다에 대한 심판 122
07. 열국에 대한 심판[5]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145
08. 자손들아, 이 말씀을 들으라! 186
09. 소명 받은 자의 숙명과 사마리아의 심판 선언 221
10.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 아모스와 이스라엘 255
11. 선을 구하고 정의를 세워라! 304
12.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라 354
13. 예언자의 선포 이웃을 위한 존재로 부름받음 389
14. 아모스가 본 환상, 심판과 기도 421
15. 예언자 아모스의 길 453
16. 아모스의 네 번째 환상 487
17. 애통하는 예언자 아모스 509
18. 예언자가 본 것과 그의 마음 543
19. 일으키고 세우시고 돌이키고 심으시는 하나님 580

미주 및 참고문헌 612

책 속으로

우리는 아모스서 저변에 흐르는 예언자의 애통하는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은 단순한 동정이 아닙니다. 그들과 함께 아파하며 그들의 주체성과 존엄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p.6.

우리는 지금 ‘무도한 사회’(an immoral society)에 살고 있는 듯합니다.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은 종종 비상식으로 여겨지고, 오히려 비상식적인 것이 독창적인 것처럼 평가받습니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상대방과 정중하게 나누는 대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태도가 자리 잡아 가고 있습니다. 인격을 존중하며 예의를 지키기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관계 또한 자발적이고 아름답게 이어가기보다 강제적으로 맺어지곤 합니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기보다 자기 마음대로 대하며,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관계를 유지하지만, 유익과 무관하면 가차 없이 끊어 버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결국 무모함과 강제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p.10-11.

예배라는 ‘리추얼’(Ritual, 의례, 예전, 예식, 축제)이 단순히 반복적이고 습관적인 형식에 머문다면, 그것은 마음의 안식을 얻고 생활에 활력을 주는 개인적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예배는 단순히 위안을 얻거나 이웃과 교제를 위한 모임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예배는 우리의 내면을 성찰하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롭게 열어 줍니다. 사람과 사물을 존귀하게 대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등불과 같은 예식입니다. p.11-12.

그러나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오히려 성도의 마음에 불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자아가 해체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예배의 리추얼’에 집중하여, 삶에서는 온유한 성도로서 주님의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p.14.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북이스라엘과 지진의 영향권 안에 포함된 주변 국가들에게 주어진 단순한 과거 기록이 아닙니다. 아모스의 예언의 말씀은 지금도 사회와 교회를 향해 날카롭게 다가오는 ‘말씀의 검’입니다. p.25.

아모스는 자기에게 닥친 모순된 상황을 경험하면서 비록 삶에 대한 자기의 계획이 어그러지고 자기의 인식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점점 명확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p.29.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실재’(reality)가 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과 삶은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p.33.

이렇게 자비하시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심판하시는 비정한 하나님은 상반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상반된 말씀과 행위에 대해 가르쳐 주는 예언서가 바로 ‘호세아서’와 ‘아모스서’입니다. p.34.

교회 공동체는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여 자기 꿈을 실현하는 장소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아멘’이 되어 살아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태어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p.51.

최초의 문서 예언자인 아모스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권력자들의 부당한 권력 사용에 대해 정의롭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고, 그 내용을 문서로 남기셨습니다. 이것이 아모스서입니다. p.100.

그러므로 유다 민족은 기록된 신명기적 율법의 말씀과(참조, 왕상 3:14; 8:58; 9:4 등), 참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버리고 거짓 것을 “선택”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 결과, 유다 민족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으로 나의 백성 삼으신” 사랑의 증표를 의도적으로 ‘싫어하고’, 예언자들의 말씀을 ‘거절하고’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율법과 율례를 ‘배제한’ 것입니다. p.134.

주전 8세기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발가벗겨진 채 심판받을 처지였다면, 21세기의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앙 현실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결국, 지금 이 시대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이자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p.189.

이스라엘은 “자신을 스스로 규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지식체계, 감정의 활동, 그리고 의지의 실현”에서 완전히 돌이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엄숙한 초청에 응답하여야 합니다. p.320.

정의는 단순한 처벌이나 제도 개선이 아닙니다. 정의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을 회복하는 일이며, 절차적 정당성을 지키며, 훼손된 사람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p.341.

예언자 아모스의 외침은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의 강단에서는 사회적 책임보다 개인의 위로와 심리적 안정이 강조됩니다. 신자들은 “은혜받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그 은혜를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마치 북이스라엘의 기득권자들처럼, 자신의 배를 불리고 남은 것을 조금 나누어주는 것으로 교인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삽니다. p.364.

정의와 공의를 물과 강처럼 흐르게 하라는 것은, 물이 메마른 땅 구석구석까지 스며들듯이, 하나님의 정의도 사회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흘러가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강이 마르지 않으려면, 그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가야 합니다. p.375.

하나님의 정의는 바로 이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수동적 반응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와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 정의의 출발점입니다. p.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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