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9960022 야다북스
권수경의 룻기, 더불어 사는 공동체
(저자) 권수경
야다북스 · 2026-09-21 145*215 · 264p
야다북스 · 2026-09-21 145*215 ·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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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먹고사니즘에 지친 각자도생의 시대,
더불어 사는 길을 룻기에서 찾다!
베들레헴의 너른 들판에서 꽃핀 사랑,
그곳에서 일구어낸 공생의 하나님 나라!
떠난 사람, 남은 사람, 돌아온 사람, 그리고 환대하는 사람
― 룻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 속 모두의 이야기다.
룻기를 다시 읽는 오늘, 우리의 새로운 이야기도 다시 시작한다.
같이 읽고, 함께 회개하고, 서로 존중하고, 너나없이 대접하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다시, 새롭게 세우기 위해…
[책소개]
이 책은 각자 스스로 살기를 꾀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공생을 위한 삶의 성찰을 촉구하며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살고 있는가? 공동체를 떠나는 사람인가, 돌아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사람인가? 탐욕과 분열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과 구원의 결말, 곧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살고 있는가?
룻기 이야기는 흉년에서 시작해 한 아이의 탄생으로 끝나지만, 그 사이에는 떠남과 귀환, 죽음과 회복, 이방인과 유대인, 환대와 공동체, 인간의 선택과 하나님의 섭리가 겹겹이 포개져 있다. 한 가정의 몰락이 어떻게 공동체의 회복으로 이어지고, 그 회복이 어떻게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향하는 구원의 길이 되는지를 잔잔한 목소리로, 그러나 선명하게 들려준다.
이 책은 먼저 룻기를 내러티브로 읽는다. 이야기는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인물과 사건, 배경과 반복되는 표현이 서로 연결되며 하나의 플롯을 이룬다. 그러므로 룻기의 한 장면을 따로 떼어 개인의 교훈으로 소비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룻기를 새롭게 읽는 저자의 핵심은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관점에 있다. 엘리멜렉 집안의 모압 이주를 단순히 기근을 피한 생존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부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외면한 사건으로 해석한다. 반대로 보아스의 재산과 종들은 그가 흉년 동안 공동체를 돌보며 살아온 삶의 열매로 바라본다.
룻기의 주인공은 표면적으로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다. 룻기는 사사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다윗 왕국의 길을 여는 이야기이며, 다윗의 계보를 통해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한다. 베들레헴 공동체가 일구어낸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관한 이야기는 마침내 생명의 떡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한다.
이 책은 룻기를 해설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룻기를 통해 오늘의 교회와 사회를 성찰하고, 다시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보게 한다. 네 장의 짧은 이야기를 천천히 읽고 나면, 독자는 룻기만 새롭게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그 모든 장면 뒤에서 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보게 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권수경
서울대학교에서 철학(BA, 1984)을 전공한 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M. Div., 1990)을 공부하였다. 1991년 도미하여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철학신학 전공으로 신학석사(STM, 1993) 학위를, 예일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Ph. D., 2007)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F. W. J. Schelling)이 다룬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를 사상사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학위 과정 중 전임목회도 병행하여 코네티컷 한인교회에서 4년, 그리니치 한인교회에서 17년을 담임목사로 일했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변증학, 기독교 윤리학, 포스트모더니즘, 자연과학과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와 인문학 등의 과목을 가르쳤고, 현재는 일원동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일반상식과 성경의 차이점을 해설한 『질그릇에 담은 보배』(복있는사람, 2017), 한국교회의 재물 숭배를 비판한 『번영복음의 속임수』(SFC, 2019), 현대 사상 및 세계관을 근거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진단한 『변하는 세상 영원한 복음』(SFC, 2020),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파스칼의 성찰과 삶을 살핀 『파스칼 평전』(깃드는숲, 2024), 황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류의 공유 자산인 ‘황금률’로 돌아가는 길을 탐색한 『황금률』(야다북스, 2025),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거함’이라는 주제를 풀어낸 『요한서신』(생명의양식, 2026) 등이 있고, 『벌코프 조직신학』(루이스 벌코프 저, CH북스, 2017),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저, SFC), 2003)를 번역하였다. 공저로는 『AI 시대, 교회교육을 답하다!』(생명의양식, 2025), 『정치에 빠진 교회』,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이상 야다북스, 2025)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BA, 1984)을 전공한 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신학(M. Div., 1990)을 공부하였다. 1991년 도미하여 예일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철학신학 전공으로 신학석사(STM, 1993) 학위를, 예일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종교철학 전공으로 박사(Ph. D., 2007)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은 독일 관념론 철학자 프리드리히 셸링(F. W. J. Schelling)이 다룬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관계를 사상사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다. 학위 과정 중 전임목회도 병행하여 코네티컷 한인교회에서 4년, 그리니치 한인교회에서 17년을 담임목사로 일했다.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초빙교수로 변증학, 기독교 윤리학, 포스트모더니즘, 자연과학과 기독교 세계관, 기독교와 인문학 등의 과목을 가르쳤고, 현재는 일원동교회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저서로는 일반상식과 성경의 차이점을 해설한 『질그릇에 담은 보배』(복있는사람, 2017), 한국교회의 재물 숭배를 비판한 『번영복음의 속임수』(SFC, 2019), 현대 사상 및 세계관을 근거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진단한 『변하는 세상 영원한 복음』(SFC, 2020),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 파스칼의 성찰과 삶을 살핀 『파스칼 평전』(깃드는숲, 2024), 황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류의 공유 자산인 ‘황금률’로 돌아가는 길을 탐색한 『황금률』(야다북스, 2025),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에 거함’이라는 주제를 풀어낸 『요한서신』(생명의양식, 2026) 등이 있고, 『벌코프 조직신학』(루이스 벌코프 저, CH북스, 2017),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시드니 그레이다누스 저, SFC), 2003)를 번역하였다. 공저로는 『AI 시대, 교회교육을 답하다!』(생명의양식, 2025), 『정치에 빠진 교회』, 『한국교회, 어디로 가나?』(이상 야다북스, 2025) 등이 있다.
목차
추천의 글 _4
들어가는 글: 룻기를 제대로 읽어야 할 이유
룻기 다시 읽기 _15 새롭게 읽는 룻기 _18
감사의 말씀 _21
1부 룻기를 읽기 전에
1. 내러티브: 룻기의 장르
내러티브 읽기 _27 성경 내러티브 _32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구원 역사인 룻기 _38 더불어 사는 공동체 _41
3. 룻기에 대하여
룻기의 구성 _44 룻기의 특징 _48
2부 룻기,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1. 사사시대에 든 기근(1:1a)
사사시대에 _57 기근이 닥쳤다 _64 부자의 사명 _69
이야기 2. 모압으로 간 가정(1:1b-5)
고향을 떠난 가정 _79 모압에서 일어난 일들 _84 나오미의 역사 해석 _90
나오미가 떠난 진짜 이유 _95 나오미가 믿은 하나님 _101
이야기 3. 돌아오는 나오미와 룻(1:6-22)
고향 소식 _109 거룩한 기회주의 _116 새로워진 나오미 _120
룻의 결단 _128 부끄러움을 나누고 _134
이야기 4. 보아스가 룻을 만나다(2:1-23)
우연의 옷을 입은 섭리 _141 룻을 환대한 보아스 _148
보아스가 한 적은 일 _160 보아스가 할 많은 일 _168
이야기 5. 보아스와 룻의 하룻밤(3:1-18)
나오미가 세운 계획 _177 보아스가 보인 반응 _186 원숙한 신앙인 보아스 _192
이야기 6. 메시아의 길을 열다(4:1-22)
위대한 보아스 _205 고엘이 된 보아스 _211 특별한 축복 _219
베들레헴 인심 _228 메시아의 길 _235
나가는 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_243
주(註) _251
참고도서 _261
들어가는 글: 룻기를 제대로 읽어야 할 이유
룻기 다시 읽기 _15 새롭게 읽는 룻기 _18
감사의 말씀 _21
1부 룻기를 읽기 전에
1. 내러티브: 룻기의 장르
내러티브 읽기 _27 성경 내러티브 _32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구원 역사인 룻기 _38 더불어 사는 공동체 _41
3. 룻기에 대하여
룻기의 구성 _44 룻기의 특징 _48
2부 룻기, 이야기 속으로
이야기 1. 사사시대에 든 기근(1:1a)
사사시대에 _57 기근이 닥쳤다 _64 부자의 사명 _69
이야기 2. 모압으로 간 가정(1:1b-5)
고향을 떠난 가정 _79 모압에서 일어난 일들 _84 나오미의 역사 해석 _90
나오미가 떠난 진짜 이유 _95 나오미가 믿은 하나님 _101
이야기 3. 돌아오는 나오미와 룻(1:6-22)
고향 소식 _109 거룩한 기회주의 _116 새로워진 나오미 _120
룻의 결단 _128 부끄러움을 나누고 _134
이야기 4. 보아스가 룻을 만나다(2:1-23)
우연의 옷을 입은 섭리 _141 룻을 환대한 보아스 _148
보아스가 한 적은 일 _160 보아스가 할 많은 일 _168
이야기 5. 보아스와 룻의 하룻밤(3:1-18)
나오미가 세운 계획 _177 보아스가 보인 반응 _186 원숙한 신앙인 보아스 _192
이야기 6. 메시아의 길을 열다(4:1-22)
위대한 보아스 _205 고엘이 된 보아스 _211 특별한 축복 _219
베들레헴 인심 _228 메시아의 길 _235
나가는 글: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며 _243
주(註) _251
참고도서 _261
책 속으로
p. 41
베들레헴 주민들이 이룩한 공동체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당신과 닮은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다(창1:26-28).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사랑으로 한 하나님이시듯 우리 인간도 남자와 여자, 다양한 인종, 사회적 차이 등이 있음에도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다.
p. 43
룻기의 사람들은 서로 아낀다. 서로 돌본다. 서로를 존중한다. 작은 행동 하나에 큰 뜻을 담으며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맛본다. 사사시대에 이런 공동체가 가능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한 사람 보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p. 69
흉년에 이스라엘은 이중고를 겪었다. 몸은 먹지 못해 괴로웠고, 마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가책으로 무거웠다. 하나님이 그들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신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 돌아와 계명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참된 쉼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근은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엄한 회초리였다(히12:6-10).
p. 94
엘리멜렉 집안은 부자였다. 흉년에 먹을 양식을 비축해 둔 집이었다. 흉년이 온 것이 사실은 이런 부자들의 탐욕 때문이었을 수 있다. 나오미 자신이 흉년의 원인 제공자였다는 말이다. 또 흉년이 오면 부자는 책임이 커진다. 창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먹일, 말하자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여 흉년을 얼른 끝낼 막중한 책임이다. 그런데 막상 흉년이 닥치자 나오미 일가는 부자의 책임을 외면하고 비축해 둔 양식을 모두 갖고 타국으로 떠나 버렸다.
p. 106
공동체를 떠난다는 말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불행이 맞다. 하지만 몸이 떠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가진 원리와 규칙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흉년에 부자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거부한 것이 그런 떠남이다. 만약 베들레헴에 머물러 살면서 창고 문을 굳게 닫아 두었다면, 몸은 거기 남아 있다 해도 영적으로는 이미 공동체를 떠난 것이다. 나오미 집안의 경우는 재산을 챙겨 떠나는 행위가 영적으로 떠나는 행위와 일치했을 뿐이다.
p. 115
나오미 한 사람의 변화는 곧 이야기 전체의 변화다. 한 사람의 변화가 역사의 변곡점을 이룬 일이 많다. 아우구스티누스 한 사람의 회개가 교회를 든든히 세웠고, 루터 한 사람의 깨달음이 교회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오미 한 사람의 회개로 사사시대, 곧 모두가 제멋대로 하던 시대가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로 돌이키는 새 시대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쩌면 사사시대와 닮은 오늘의 교회도 그런 나오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p. 138-139
베들레헴 공동체가 참 놀랍다. 나오미가 십 년 전 재산을 다 챙겨 떠났으니, 베들레헴 주민들은 초라하게 돌아온 나오미를 탕자의 형처럼 맞이할 수도 있었다. 탕자의 형은 아들의 비리를 다 알면서도 눈감아 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자기가 한 수고를 몰라 준 건 더더욱 야속했다. 베들레헴 주민들은 자기들을 버리고 간 나오미 가정, 자기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다 챙겨간 그 사람이 얼마나 미웠겠는가. 보아스가 탕자의 형이었다면 자기가 한 수고를 얼마든지 과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베들레헴 주민들은 배신자를 받아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들이 먼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p. 158
보아스가 룻에게 축복하고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은 평범한 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룻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부터는 개인적인 친근함이 시작된다. 초대만 한 것이 아니라 푸짐한 음식을 안겨줌으로써 눈에 띄는 우대를 했다. 물론 아직 보아스 곁에 앉지는 않고 추수하는 일꾼들과 함께 앉았다. 하지만 풍성한 음식은 그 정겨운 분위기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식탁을 미리 보여준다. 보아스가 여기서 혹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을까?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p. 186
룻이 지금 얻으려 하는 안식은 어느 것인가? 보아스와 동침한다면 나오미가 의도한 그 안식을 얻는다. 그런데 룻은 그 안식을 자기희생을 통해 얻으려 한다. 믿음의 순종이다. 그리고 그 안식은 나중에 아들을 낳아 다윗의 길을 열게 되고, 그 길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님은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이다(마11:28; 히4:8-9). 룻으로서는 천 년 이후의 일을 알 도리가 없었겠으나, 룻의 순종은 자신에게 안식을 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안식으로 인도하게 될 멋진 순종이었다.
p. 206
보아스는 룻기 시작부터 훌륭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이야기의 정황과 배경에도 그를 칭송하는 쪽지가 가득 꽂혀 있다. 그가 충성해 온 적은 일들이다. 그러다가 기업 무르는 책임을 수행하는 단계에 와서는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아스가 맡아 잘 수행한 이 많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로 손색이 없다.
p. 221
보아스를 무슨 신적인 존재로 오해하지는 말자. 보아스도 사람이다. 젊은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마음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은 자처럼 된 한 집안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은 것이 귀하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 아들을 낳아 그 아들에게 자기가 산 그 땅을 다 물려주겠다고 모두의 앞에서 선언했다. 형제 엘리멜렉 집안을 다시 세우는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재산을 다 드리겠다는 바보 선언이다.
p. 226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는 자리는 환대로 충만하다. 이스라엘 가운데 참여한 이방 여인 룻이 공동체의 주역으로 수용되는 순간이다. 그런 환대에 또 다른 이방 여인 다말도 포함된다. 모압의 조상인 롯의 딸은 왜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로 벽을 무너뜨리시자 모압도, 암몬도, 애굽도, 헬라인도, 로마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된다(롬10:12; 갈3:28; 골3:11). 그리고 수천 년 뒤 룻기를 읽는 우리도 포함된다. 읽기의 힘이다. 하나님 이야기의 진짜 힘이다.
p. 233
잊지 말 것은 아이의 이름을 마을 여인들이 함께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주권의 상징이다. 보아스는 자신의 권리를 온 마을 여인이 함께 사용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의 탄생에 온 마을이 한마음으로 참여했음을 널리 알렸다. 오벳이라는 아이의 탄생을 위해 룻과 보아스뿐 아니라 베들레헴 공동체가 함께 수고했다는 뜻이다. 특히 처음엔 나오미의 귀환에 대해 약간의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이 나오미의 회개를 그대로 수용하였고,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다. 그게 죄가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믿은 사람의 삶 아니겠는가.
p. 248-249
그렇다면 지금은 흉년 아닌가? 그래, 하나님을 떠난 교회가 바닥을 쳤다. 맞다,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다. 한국교회 140년은 룻기 첫 다섯 절일 뿐이다. 고향의 풍년가가 사해 너머로 이제 막 들려왔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음성이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된다.
베들레헴 주민들이 이룩한 공동체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당신과 닮은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다(창1:26-28).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사랑으로 한 하나님이시듯 우리 인간도 남자와 여자, 다양한 인종, 사회적 차이 등이 있음에도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다.
p. 43
룻기의 사람들은 서로 아낀다. 서로 돌본다. 서로를 존중한다. 작은 행동 하나에 큰 뜻을 담으며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맛본다. 사사시대에 이런 공동체가 가능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한 사람 보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p. 69
흉년에 이스라엘은 이중고를 겪었다. 몸은 먹지 못해 괴로웠고, 마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다는 가책으로 무거웠다. 하나님이 그들의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신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께 돌아와 계명을 순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몸과 마음이 참된 쉼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기근은 자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엄한 회초리였다(히12:6-10).
p. 94
엘리멜렉 집안은 부자였다. 흉년에 먹을 양식을 비축해 둔 집이었다. 흉년이 온 것이 사실은 이런 부자들의 탐욕 때문이었을 수 있다. 나오미 자신이 흉년의 원인 제공자였다는 말이다. 또 흉년이 오면 부자는 책임이 커진다. 창고 문을 열어 사람들을 먹일, 말하자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여 흉년을 얼른 끝낼 막중한 책임이다. 그런데 막상 흉년이 닥치자 나오미 일가는 부자의 책임을 외면하고 비축해 둔 양식을 모두 갖고 타국으로 떠나 버렸다.
p. 106
공동체를 떠난다는 말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공동체를 떠나는 것은 불행이 맞다. 하지만 몸이 떠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가진 원리와 규칙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흉년에 부자에게 요구되는 의무를 거부한 것이 그런 떠남이다. 만약 베들레헴에 머물러 살면서 창고 문을 굳게 닫아 두었다면, 몸은 거기 남아 있다 해도 영적으로는 이미 공동체를 떠난 것이다. 나오미 집안의 경우는 재산을 챙겨 떠나는 행위가 영적으로 떠나는 행위와 일치했을 뿐이다.
p. 115
나오미 한 사람의 변화는 곧 이야기 전체의 변화다. 한 사람의 변화가 역사의 변곡점을 이룬 일이 많다. 아우구스티누스 한 사람의 회개가 교회를 든든히 세웠고, 루터 한 사람의 깨달음이 교회를 새롭게 만들었다. 나오미 한 사람의 회개로 사사시대, 곧 모두가 제멋대로 하던 시대가 이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로 돌이키는 새 시대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어쩌면 사사시대와 닮은 오늘의 교회도 그런 나오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p. 138-139
베들레헴 공동체가 참 놀랍다. 나오미가 십 년 전 재산을 다 챙겨 떠났으니, 베들레헴 주민들은 초라하게 돌아온 나오미를 탕자의 형처럼 맞이할 수도 있었다. 탕자의 형은 아들의 비리를 다 알면서도 눈감아 준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자기가 한 수고를 몰라 준 건 더더욱 야속했다. 베들레헴 주민들은 자기들을 버리고 간 나오미 가정, 자기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다 챙겨간 그 사람이 얼마나 미웠겠는가. 보아스가 탕자의 형이었다면 자기가 한 수고를 얼마든지 과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베들레헴 주민들은 배신자를 받아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들이 먼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p. 158
보아스가 룻에게 축복하고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은 평범한 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룻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부터는 개인적인 친근함이 시작된다. 초대만 한 것이 아니라 푸짐한 음식을 안겨줌으로써 눈에 띄는 우대를 했다. 물론 아직 보아스 곁에 앉지는 않고 추수하는 일꾼들과 함께 앉았다. 하지만 풍성한 음식은 그 정겨운 분위기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식탁을 미리 보여준다. 보아스가 여기서 혹 로맨틱한 감정을 느꼈을까? 충분히 그랬을 수 있다.
p. 186
룻이 지금 얻으려 하는 안식은 어느 것인가? 보아스와 동침한다면 나오미가 의도한 그 안식을 얻는다. 그런데 룻은 그 안식을 자기희생을 통해 얻으려 한다. 믿음의 순종이다. 그리고 그 안식은 나중에 아들을 낳아 다윗의 길을 열게 되고, 그 길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님은 참 안식을 주시는 분이다(마11:28; 히4:8-9). 룻으로서는 천 년 이후의 일을 알 도리가 없었겠으나, 룻의 순종은 자신에게 안식을 줄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안식으로 인도하게 될 멋진 순종이었다.
p. 206
보아스는 룻기 시작부터 훌륭한 사람으로 등장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뿐 아니라 이야기의 정황과 배경에도 그를 칭송하는 쪽지가 가득 꽂혀 있다. 그가 충성해 온 적은 일들이다. 그러다가 기업 무르는 책임을 수행하는 단계에 와서는 참으로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보아스가 맡아 잘 수행한 이 많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로 손색이 없다.
p. 221
보아스를 무슨 신적인 존재로 오해하지는 말자. 보아스도 사람이다. 젊은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그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다만 그 마음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께 벌을 받아 죽은 자처럼 된 한 집안을 되살리는 기회로 삼은 것이 귀하다. 보아스는 룻과 결혼해 아들을 낳아 그 아들에게 자기가 산 그 땅을 다 물려주겠다고 모두의 앞에서 선언했다. 형제 엘리멜렉 집안을 다시 세우는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의 몸과 재산을 다 드리겠다는 바보 선언이다.
p. 226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는 자리는 환대로 충만하다. 이스라엘 가운데 참여한 이방 여인 룻이 공동체의 주역으로 수용되는 순간이다. 그런 환대에 또 다른 이방 여인 다말도 포함된다. 모압의 조상인 롯의 딸은 왜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로 벽을 무너뜨리시자 모압도, 암몬도, 애굽도, 헬라인도, 로마인도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가 된다(롬10:12; 갈3:28; 골3:11). 그리고 수천 년 뒤 룻기를 읽는 우리도 포함된다. 읽기의 힘이다. 하나님 이야기의 진짜 힘이다.
p. 233
잊지 말 것은 아이의 이름을 마을 여인들이 함께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름을 짓는 것은 주권의 상징이다. 보아스는 자신의 권리를 온 마을 여인이 함께 사용하게 함으로써 이 아이의 탄생에 온 마을이 한마음으로 참여했음을 널리 알렸다. 오벳이라는 아이의 탄생을 위해 룻과 보아스뿐 아니라 베들레헴 공동체가 함께 수고했다는 뜻이다. 특히 처음엔 나오미의 귀환에 대해 약간의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이 나오미의 회개를 그대로 수용하였고,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다. 그게 죄가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믿은 사람의 삶 아니겠는가.
p. 248-249
그렇다면 지금은 흉년 아닌가? 그래, 하나님을 떠난 교회가 바닥을 쳤다. 맞다, 하나님의 긍휼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경고다. 한국교회 140년은 룻기 첫 다섯 절일 뿐이다. 고향의 풍년가가 사해 너머로 이제 막 들려왔다.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는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애절한 음성이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몸을 일으키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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