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89887476 예영커뮤니케이션
하나님을 위한 변명 (신학을 전공한 정신과 의사의 성경인물 이야기)
(저자) 최관호
예영커뮤니케이션 · 2022-01-05 152*225 · 5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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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하나님을 위한 변명으로 바뀐
기막힌 이야기가 펼쳐지다
저자는 한국누가회(CMF)에서 사역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 젊은 세대가 성경을 정말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성경을 읽히고 싶었기에 캠퍼스에서 3년 동안 ‘성경인물 설교’를 했다. 이렇듯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 삼아 설교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가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성경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했는데,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해주는 것’ 그리고 ‘그 인물들의 살아 있는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익숙한 친구가 있는 모임에는 발길이 가는 법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임하시는지 보여줄 수 있고, 또한 힘든 시기에는 혼자서 떠나온 나그네 길처럼 여겨지는 인생길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 함께하시는 그분의 온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경인물 설교에는 저자와 자신의 ‘엄마’(저자는 이렇게 부른다.)와의 관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의 삶을 알게 된 뒤에 우리 엄마와는 상황이 다를지라도, 성경에 나오는 연약한 처지의 여인들의 삶이 남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다. 비록 삼 형제 중 둘째로 자라났지만, 성경에 나오는 가련한 처지의 여인들이 내 엄마로 내 누이들로 느껴졌다. 그 여인들이 겪어내야 했을 삶의 세밀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삶이 내 가슴으로 느껴질수록 나를 압도하는 깊고도 묵직한 그리고 먹먹하고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하나님 당신이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안식년 전 CMF 캠퍼스에서 설교했던 성경인물에 대한 이야기 중, 저자는 설교문 작성 당시 ‘엄마’를 떠올리며 썼던 내용 몇 개를 잇고, 필요한 경우 새로 쓰거나 다듬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저자가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우리 한국 교회 방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후배들을 향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와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이 책이 이 땅의 상당수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흐름 가운데 그리고 COVID-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통받는 가운데 죽어가는 바로 단 한 사람, 영혼의 회복이 필요한 누군가 그 단 한 사람(어쩌면 이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신학을 전공한 ‘정신과 전문의’다. 한국누가회(CMF) 학원사역부 간사가 된 이후 전국에서 쇄도하는 상담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간사님, 사실은 있잖아요, 간사님, 사실은 있잖아요, 우리 집이요.…” 상담자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참 야속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우리에게 맞추어주셔도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많이 서운했다. 이러한 마음은 나를 통해 선포된 성경인물 설교 가운데 진하게 배어 나왔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쓴 설교문을 읽다가 깨닫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하나님을 위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편 37:25)
기막힌 이야기가 펼쳐지다
저자는 한국누가회(CMF)에서 사역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우리 젊은 세대가 성경을 정말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성경을 읽히고 싶었기에 캠퍼스에서 3년 동안 ‘성경인물 설교’를 했다. 이렇듯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 삼아 설교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젊은 세대가 성경을 읽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성경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어줘야 했는데, 저자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소개해주는 것’ 그리고 ‘그 인물들의 살아 있는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익숙한 친구가 있는 모임에는 발길이 가는 법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임하시는지 보여줄 수 있고, 또한 힘든 시기에는 혼자서 떠나온 나그네 길처럼 여겨지는 인생길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 함께하시는 그분의 온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성경인물 설교에는 저자와 자신의 ‘엄마’(저자는 이렇게 부른다.)와의 관계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의 삶을 알게 된 뒤에 우리 엄마와는 상황이 다를지라도, 성경에 나오는 연약한 처지의 여인들의 삶이 남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았다. 비록 삼 형제 중 둘째로 자라났지만, 성경에 나오는 가련한 처지의 여인들이 내 엄마로 내 누이들로 느껴졌다. 그 여인들이 겪어내야 했을 삶의 세밀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삶이 내 가슴으로 느껴질수록 나를 압도하는 깊고도 묵직한 그리고 먹먹하고 따뜻한 손길이 있었다. 하나님 당신이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안식년 전 CMF 캠퍼스에서 설교했던 성경인물에 대한 이야기 중, 저자는 설교문 작성 당시 ‘엄마’를 떠올리며 썼던 내용 몇 개를 잇고, 필요한 경우 새로 쓰거나 다듬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해서 출간한 이 책을 통해, 이제는 저자가 목숨 걸고 지키고 싶은 우리 한국 교회 방황하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후배들을 향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와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이 책이 이 땅의 상당수 사람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흐름 가운데 그리고 COVID-19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통받는 가운데 죽어가는 바로 단 한 사람, 영혼의 회복이 필요한 누군가 그 단 한 사람(어쩌면 이 책을 읽는 바로 당신)을 위한 책이 되기를 기도한다.
나는 신학을 전공한 ‘정신과 전문의’다. 한국누가회(CMF) 학원사역부 간사가 된 이후 전국에서 쇄도하는 상담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의 시작은 이것이었다. “간사님, 사실은 있잖아요, 간사님, 사실은 있잖아요, 우리 집이요.…” 상담자로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참 야속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우리에게 맞추어주셔도 하나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데 문제가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하나님께 많이 서운했다. 이러한 마음은 나를 통해 선포된 성경인물 설교 가운데 진하게 배어 나왔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내가 쓴 설교문을 읽다가 깨닫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하나님을 위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편 37:25)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최관호 M.Div., M.D.
최관호
M.DIV., M.D.
정신과 전문의
한국누가회(CMF) 학사학원사역부 전임간사
전주열린문교회 파송 학원선교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
여한 없이 사랑하고 여한 없이 사랑받다가 이 땅을 떠나고 싶은 사역자. 폭풍우 같던 방황 가운데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바로 이어 입대한 30개월의 군 생활 초반, 1991년에 있었던 1차 걸프전에 참전했다. 3개월 가까운 파병 기간, 사막 한가운데 위치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알루아리아 대한민국 비둘기부대 전투 진지에서 생애 첫 신구약 완독을 했다. 의학과 신학이 만나는 곳에서 사역을 하겠노라는 신병 시절의 서원대로, 제대 후 4개월 동안 입시공부를 하고 치른 수능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의사가 된 뒤, 예수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을 마쳤다. 2005년 정신과 전문의가 된 바로 다음 날부터, 예수님을 믿는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간호사들의 선교단체인 ‘한국누가회’(CMF)에서 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간사 5, 6, 7년 차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의사가 된 뒤에 신학을 한, 정신과 전문의인 동시에 신학을 전공한 사역자인지라, 당연히 평생 상담자로 살아오면서 쌓인 세월이 자연스럽게 성경인물들의 구체적인 형편과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해 주었다.
최관호
M.DIV., M.D.
정신과 전문의
한국누가회(CMF) 학사학원사역부 전임간사
전주열린문교회 파송 학원선교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
여한 없이 사랑하고 여한 없이 사랑받다가 이 땅을 떠나고 싶은 사역자. 폭풍우 같던 방황 가운데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0년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바로 이어 입대한 30개월의 군 생활 초반, 1991년에 있었던 1차 걸프전에 참전했다. 3개월 가까운 파병 기간, 사막 한가운데 위치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알루아리아 대한민국 비둘기부대 전투 진지에서 생애 첫 신구약 완독을 했다. 의학과 신학이 만나는 곳에서 사역을 하겠노라는 신병 시절의 서원대로, 제대 후 4개월 동안 입시공부를 하고 치른 수능으로 의대에 입학했다. 의사가 된 뒤, 예수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인턴과 레지던트 수련의 생활을 마쳤다. 2005년 정신과 전문의가 된 바로 다음 날부터, 예수님을 믿는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ㆍ간호사들의 선교단체인 ‘한국누가회’(CMF)에서 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간사 5, 6, 7년 차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에서 신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의사가 된 뒤에 신학을 한, 정신과 전문의인 동시에 신학을 전공한 사역자인지라, 당연히 평생 상담자로 살아오면서 쌓인 세월이 자연스럽게 성경인물들의 구체적인 형편과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게 해 주었다.
목차
추천사4
서문26
1부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서문_안쓰러운 하나님34
하갈_나를 살피시는 하나님40
사라를 위한 변명_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103
아브라함 1_믿음의 조상: 하나님을 위한 변명159
아브라함 2_아브라함을 위한 변명: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215
이어주는 이야기
하박국_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응답받은 기도276
2부 |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서문_하나님의 마음326
라합 1_‘당신의 딸’라합의 마음 속‘부르짖음, 체아카’를 들으시는 하나님334
라합 2_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390
보아스와 룻 1_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440
보아스와 룻 2_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 소서471
맺는말552
서문26
1부 |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서문_안쓰러운 하나님34
하갈_나를 살피시는 하나님40
사라를 위한 변명_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103
아브라함 1_믿음의 조상: 하나님을 위한 변명159
아브라함 2_아브라함을 위한 변명: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215
이어주는 이야기
하박국_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응답받은 기도276
2부 |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서문_하나님의 마음326
라합 1_‘당신의 딸’라합의 마음 속‘부르짖음, 체아카’를 들으시는 하나님334
라합 2_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390
보아스와 룻 1_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440
보아스와 룻 2_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 소서471
맺는말552
책 속으로
그 순간이었다. 전능자의 난감한(?) 표정이 나를 압도했다. 내 마음 가득했던 서러움과도 차원이 다른 색깔의 감정이 하나님의 표정에 가득해 보였다. ‘미안함?’, 아니, 분명히 그 감정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그건 아니다. ‘아쉬움?’, 아니, 그 정도로 표현될 표정이 아니었다. 그 크기와 깊이와 넓이를 측량할 길 없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는 하나님의 표정을 어떻게 감히 ‘유한한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때의 하나님의 표정을 설명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표정에 압도당하던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 하나님께 느끼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피조물인 우리 입장에서는 최선일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표현이 안쓰러움?… 비슷한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날 이후,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감정(?), 이게 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분명히 그날 이후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분명히 깊어졌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이 안쓰러웠다. 그때 그 순간 내 입을 통해 내 허파에 남아 있던 작은 양의 공기가 한꺼번에 배출되면서 나온 나의 고백은 이러했다. “하나님, 괜찮으세요?”
_p.39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는 곳’이지,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양식이 있는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CMF에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해왔다. “천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악동(惡童)들이 가는 곳이다.
예를 들어보자. 간사님의 아들이 평소에 아빠 말도 잘 듣지 않고 아빠가 집에 들어가면 게임을 하느라 아빠한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심부름도 안 하는 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옆집에 사는 간사님의 아들과 동년배의 아이는 정말 인사성도 바르고 시키지 않아도 모든 것을 성실히 하는 아이라고 해보자. 이 경우, 나중에 간사님이 죽은 뒤 간사님의 집은 누가 상속받는 것이 정의일까?” 만에 하나 옆집에 있는 내 아들과 동년배인 아이가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아이는 좀 돌봐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옆집 아이에게 내 아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만약 옆집 어른들의 부재(不在)중에 옆집 아이에게 어려움이 닥치는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잠시 우리 집에서 쉬어가며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상식이고 이것이 제대로 된 시민의식이다. 이것이 이 책의 첫 인물로 하갈을 다룬 첫 번째 이유이다.
_p.96~97
하나님은 사라의 삶에 무엇을 담으셨을까? 사라의 고생에 무엇을 담으셨을까? 성경에 기록된 사라의 삶을 살펴볼 때, 사라가 그녀의 일생을 통해 ‘능동적으로 한 일’은 딱 세 번밖에 없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동침하라고 한 일, 두 번째는 너무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욱해서 하갈을 학대한 일, 세 번째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이삭의 안전을 위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한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능동적인 일 외에 사라는 평생 무엇을 했을까?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지독한 외로움과 불안감 그리고 고립감에 덜덜덜 떨었다. 물론 이삭이 태어난 뒤 삼십칠 년 동안 이삭을 양육하는 기간에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덜덜덜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십오 년간 덜덜덜 떨었던 ‘하나님의 사람인 사라의 인생’에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의 씨앗’을 담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라의 인생을 통해 언약 백성이 이루어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된다.
_p.155-156
“복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구원의 근거가 우리에게 없음을 의미한다. 모든 구원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제1원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그 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별명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쪽에서의 ‘은혜(恩惠)와 호의(好意)’에 기반한다. 우리의 구원은 태초 전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근거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인격적 존재의 반응’을 통해서 그가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간접적으로야 가늠할 수는 있지만 피조물인 우리가 그 사실을 확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참람한 일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복음이란 구원의 원인이 우리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 있으며 그 시작과 완성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의미다.
_p.173
‘성경인물 설교’를 들은 CMF 지체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간사님, 왜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는 평탄한 삶이 없나요?” 이 책에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내 생각은 이러하다. ‘성경 기자’는 정말 ‘동화작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동화는 이러저러한 모험이 끝난 뒤 “그렇게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이 난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동화책에 나오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 또한 비슷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 가운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기간이 몇 년이었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고생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구원역사’와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당신의 사람들의 성숙’에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고난과 환란’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마저도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_p.273-274
성경은 그러한 명문가 출신의 아간을 이방의 이름 없는 한 여인과 대비하고 있다. 당시는 여인과 어린아이는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여인의 신분은 ‘기생’이었다.
물론 지금은 성도들 대부분이 아는 이름이지만 이름 없는 그 여인은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여인의 혈통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다. 반면 바로 이어지는 명문가 출신의 상속자, 아간은 이방인처럼 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 그의 시체와 그가 살았을 때 그에게 속했던 모든 것들 위에는 돌무더기가 쌓인다. 그가 묻힌 자리는 지금도 사망과 죽음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아골 골짜기’라 불린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름 없는 이방인이었다가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된 여인과 그녀에게 속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이어 언약 백성의 명문가의 상속자이었다가 이방인처럼 죽임을 당하고 언약 백성에서 제외된 한 사내와 그 사내에게 속한 집안 전체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 두 이야기가 나란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일까?
두 인물의 이야기 가운데 공통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두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을 다루고 있다. 한쪽은 ‘인간의 탐욕의 희생양’이 된 여인의 이야기인 반면 다른 한쪽은 탐욕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인물이 저지른 ‘은밀한 탐욕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아간의 탐욕이 어떻게 수십 명의 동료들과 자신 그리고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두 이야기는 ‘인간 탐욕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다.
_p.339~340
그때의 하나님의 표정을 설명하기보다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표정에 압도당하던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 하나님께 느끼는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피조물인 우리 입장에서는 최선일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표현이 안쓰러움?… 비슷한가?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날 이후, 하나님에 대한 나의 태도(?), 나의 감정(?), 이게 맞는 표현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분명히 그날 이후로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아니, 분명히 깊어졌다. 그렇다. 나는 하나님이 안쓰러웠다. 그때 그 순간 내 입을 통해 내 허파에 남아 있던 작은 양의 공기가 한꺼번에 배출되면서 나온 나의 고백은 이러했다. “하나님, 괜찮으세요?”
_p.39
물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다. 당연한 이야기다. 천국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는 곳’이지,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양식이 있는 착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다. 나는 CMF에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설명해왔다. “천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악동(惡童)들이 가는 곳이다.
예를 들어보자. 간사님의 아들이 평소에 아빠 말도 잘 듣지 않고 아빠가 집에 들어가면 게임을 하느라 아빠한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심부름도 안 하는 아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옆집에 사는 간사님의 아들과 동년배의 아이는 정말 인사성도 바르고 시키지 않아도 모든 것을 성실히 하는 아이라고 해보자. 이 경우, 나중에 간사님이 죽은 뒤 간사님의 집은 누가 상속받는 것이 정의일까?” 만에 하나 옆집에 있는 내 아들과 동년배인 아이가 권리를 주장한다면, 그 아이는 좀 돌봐줄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옆집 아이에게 내 아들이 무례하게 굴어도 된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만약 옆집 어른들의 부재(不在)중에 옆집 아이에게 어려움이 닥치는 경우,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아이는 잠시 우리 집에서 쉬어가며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상식이고 이것이 제대로 된 시민의식이다. 이것이 이 책의 첫 인물로 하갈을 다룬 첫 번째 이유이다.
_p.96~97
하나님은 사라의 삶에 무엇을 담으셨을까? 사라의 고생에 무엇을 담으셨을까? 성경에 기록된 사라의 삶을 살펴볼 때, 사라가 그녀의 일생을 통해 ‘능동적으로 한 일’은 딱 세 번밖에 없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동침하라고 한 일, 두 번째는 너무 코너에 몰린 상태에서 욱해서 하갈을 학대한 일, 세 번째는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이삭의 안전을 위해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한 일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의 능동적인 일 외에 사라는 평생 무엇을 했을까?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지독한 외로움과 불안감 그리고 고립감에 덜덜덜 떨었다. 물론 이삭이 태어난 뒤 삼십칠 년 동안 이삭을 양육하는 기간에는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덜덜덜 떨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십오 년간 덜덜덜 떨었던 ‘하나님의 사람인 사라의 인생’에 하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의 씨앗’을 담으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라의 인생을 통해 언약 백성이 이루어지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된다.
_p.155-156
“복음이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구원의 근거가 우리에게 없음을 의미한다. 모든 구원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적으로 하나님을 ‘제1원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그 구원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별명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구원의 근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이다. 우리의 구원의 근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 쪽에서의 ‘은혜(恩惠)와 호의(好意)’에 기반한다. 우리의 구원은 태초 전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근거한다. 구원은 전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이다. 그런 점에서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인격적 존재의 반응’을 통해서 그가 구원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간접적으로야 가늠할 수는 있지만 피조물인 우리가 그 사실을 확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참람한 일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복음이란 구원의 원인이 우리 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쪽에 있으며 그 시작과 완성 모두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의미다.
_p.173
‘성경인물 설교’를 들은 CMF 지체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간사님, 왜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는 평탄한 삶이 없나요?” 이 책에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언급하지만 내 생각은 이러하다. ‘성경 기자’는 정말 ‘동화작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동화는 이러저러한 모험이 끝난 뒤 “그렇게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이 난다. 그런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동화책에 나오지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 또한 비슷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인생 가운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의 기간이 몇 년이었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긴다.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고생하게 하는 것이 본심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구원역사’와 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 당신의 사람들의 성숙’에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고난과 환란’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과정마저도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_p.273-274
성경은 그러한 명문가 출신의 아간을 이방의 이름 없는 한 여인과 대비하고 있다. 당시는 여인과 어린아이는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여인의 신분은 ‘기생’이었다.
물론 지금은 성도들 대부분이 아는 이름이지만 이름 없는 그 여인은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여인의 혈통을 통하여 이 땅에 오신다. 반면 바로 이어지는 명문가 출신의 상속자, 아간은 이방인처럼 돌로 쳐 죽임을 당한다. 그의 시체와 그가 살았을 때 그에게 속했던 모든 것들 위에는 돌무더기가 쌓인다. 그가 묻힌 자리는 지금도 사망과 죽음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아골 골짜기’라 불린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름 없는 이방인이었다가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된 여인과 그녀에게 속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바로 이어 언약 백성의 명문가의 상속자이었다가 이방인처럼 죽임을 당하고 언약 백성에서 제외된 한 사내와 그 사내에게 속한 집안 전체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 두 이야기가 나란히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 것일까?
두 인물의 이야기 가운데 공통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두 이야기는 ‘인간의 탐욕’을 다루고 있다. 한쪽은 ‘인간의 탐욕의 희생양’이 된 여인의 이야기인 반면 다른 한쪽은 탐욕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인물이 저지른 ‘은밀한 탐욕의 결과’를 다루고 있다. 아간의 탐욕이 어떻게 수십 명의 동료들과 자신 그리고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두 이야기는 ‘인간 탐욕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다.
_p.33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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