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3931318 도서출판 학영
오늘의 원어 공부
(저자) 김한원
도서출판 학영 · 2026-04-25 140*206 · 256p
도서출판 학영 · 2026-04-25 140*206 ·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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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익숙하게 읽어온 성경, 혹시 눈으로만 읽고 그냥 지나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의 원어 공부』는 성경 원어 곧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결을 따라가며,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말씀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준다. 단어의 의미 하나가 바뀌는 순간,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식과 신앙의 방향 또한 달라진다. 이 책은 어렵게만 느껴졌던 원어를 누구나 따라갈 수 있도록 풀어내면서도, 삶과 신앙을 뒤흔드는 통찰을 전달한다.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 더 깊이 말씀을 알고 싶은 신학생과 성도 모두에게 꼭 필요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특징]
- 성경 원어 전문가, 김한원 목사가 전하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이야기!
- 성경 원어가 오늘날 우리의 신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실제적인 적용점을 보여준다.
- 각 장의 끝마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정리해준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김한원
하늘샘교회 담임목사이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다. 성경 원어와 성경 프로그램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신학교와 교회 등에서 강의해 왔으며, 로고스와 어코던스 개발에도 참여했다. 캐논스터디 대표 강사이며, 저서로는 <바이블웍스 길라잡이>(세움북스, 2014), <로고스 완전 정복>(세움북스, 2019), <올댓보카 헬라어>(감은사, 2020), <올댓보카 히브리어>(감은사, 2025)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신약성서 그리스어 사전>(새물결플러스, 2017), <월리스 중급 헬라어 문법>(IVP, 2018) 등이 있다.
하늘샘교회 담임목사이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다. 성경 원어와 성경 프로그램 전문가로서 오랫동안 신학교와 교회 등에서 강의해 왔으며, 로고스와 어코던스 개발에도 참여했다. 캐논스터디 대표 강사이며, 저서로는 <바이블웍스 길라잡이>(세움북스, 2014), <로고스 완전 정복>(세움북스, 2019), <올댓보카 헬라어>(감은사, 2020), <올댓보카 히브리어>(감은사, 2025)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신약성서 그리스어 사전>(새물결플러스, 2017), <월리스 중급 헬라어 문법>(IVP, 2018) 등이 있다.
추천의 글
교회와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성경 원어를 강의한 전문가가 드디어 귀한 선물을 내놓았다. 저자는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의미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본문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전달한다. 거기에 잔잔한 감동은 덤이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성경 원어가 어떻게 본문의 의미를 이끌어 가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자칫 어려울 수 있는 학문적인 내용을 쉽게 전달하여 읽는 맛을 느끼게 한다. 원어 전문가의 손과 마음이 빚어낸 보석 같은 글들은 우리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 것이다.
_강대훈 교수 | 총신대학교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저 익숙한 번역어를 스쳐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 속에 묻ᄏ혀 있던 단어의 결을 하나씩 꺼내어, 번역이 다 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을 복원한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하나를 원어로 되돌려놓는 것. 그러나 그 도착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원어를 통해 단어의 뜻이 바뀌는 순간,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고,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의 원어 공부』가 가진 힘은 원어를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존의 원어 해설서들이 사전적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단어 하나를 꺼내 들어 그것이 우리의 삶과 신앙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가령 저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라는 익숙한 번역 뒤에서, 에흐예가 ‘존재하다’가 아니라 ‘되어가다’라는 미완료형 동사임을 밝히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펄펄 살아 움직이는 동사 말입니다”. 바로 이 한 문장 앞에서 ‘고독한 독존자’로 박제되어 있던 하나님이 ‘치열한 동반자’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해설교자로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원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원어의 뜻을 알았을 뿐, 원어의 심장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카보드가 ‘무겁다’라는 뜻인 줄은 알았지만,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곧 영광이라는 역설 앞에서는 제대로 멈춰 선 적이 없었다. 포이에마가 ‘만드신 바’라는 뜻인 줄은 알았지만, 그 단어에 거친 망치질과 뜨거운 풀무질의 소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매주 성경 본문 앞에 앉지만 번역 너머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답답한 설교자, 원어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신학생과 평신도 사역자,그리고 성경을 오래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씀이 심장이 아닌 머리에만 머물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그 막힌 통로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지금 이 책을 펼쳐 읽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성경 본문 앞에서 다시 한번 멈춰 서기를 바란다. 그러면 분명히 들릴 것이다. 번역이 미처 옮기지 못한 하나님의 숨결이.
_김관성 목사 | 낮은담침례교회
성경을 읽다 보면 한글 번역이 아쉬울 때가 적지 않다. 설교가로서 말씀을 연구할 때마다 원어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원어의 결을 따라가 보면 번역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의미의 지층이 열리는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문제는 원어 연구라는 것이 대부분의 성도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신학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바로 그 장벽을 허무는 책이다. 이 책은 원어 학습서이면서 동시에 묵상서이고, 학문적 깊이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일상의 언어로 말하는 책이다. 전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친절한 안내가 돋보인다. 『오늘의 원어 공부』의 진가는 원어를 통해 번역이 가려버린 본래의 의미를 복원해 내는 데 있다. 가령,우리가 “현숙한 여인”으로 익숙하게 읽어온 잠언 장의 에쉐트 하일은 사실 ‘힘의 여인’, ‘용맹한 여인’에 더 가까운 단어다. 히브리어 하일이 본래 군대의 용맹과 능력을 뜻하는 강력한 단어임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적 필터와 유교적 번역 관습을 거치면서 “현숙”이라는 소극적 이미지로 축소되었다는 저자의 추적은 설득력 있고 흥미롭다. 또한 빌립보서 장 절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에서 휘페레코가 단순한 비교 우위가 아니라 ‘압도하고 지배하는’ 역동적 힘을 뜻한다는 분석도 인상적이다. ‘생각보다 조금 나은 위로’ 정도로 읽히던 구절이, 모든 불안과 혼란을 장악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평강으로 다시 읽히는 순간, 신앙의 무게중심 자체가 달라진다. 원어는 성경의 심장 소리를 듣는 ‘청진기’와 같다. 이 책은 그 ‘청진기’를 목회자의 서재에서 꺼내어 모든 성도들의 손에 쥐어 준다.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모든 분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_김다위 목사 | 선한목자교회
하나의 언어는 그 언어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사람들의 집단 지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언어의 기원과 원의를 찾다 보면, 놀라운 지혜와 통찰을 얻기도 하고, 뜻밖의 역사와 만나기도 한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 배후에 있는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는 뜻이고, 거기에 담겨 있는 사상과 통찰을 배운다는 뜻이다.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는 배우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통해 전해진 특별한 계시를 담아낸 그릇이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두 언어를 연구해 온 저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넘나들며 중요한 단어들의 어원과 그 쓰임새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인도한다. 책의 제목은 『오늘의 원어 공부』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신앙 공부’요 ‘인생 공부’다. 한 꼭지를 읽고 나면 다음 꼭지가 기대되는 흥미진진함이 있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 만드는 공감력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원문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고, 원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_김영봉 목사 | 와싱톤사귐의교회
요즘 성경 원어와 친숙해질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서 기쁘다. 특히나 성경 원어 연구에 진심인 저자의 책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의 헬라어를 넘나들며 오랜 시간 연구한 저자의 노력이 응축된 결실이다. 특히 열정적으로 원어 연구에 매달려 온 저자의 집요한 탐구가 이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를 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전어라는 이유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던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저자는 성경 본문과 함께 풀어내며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 .이 책은 복잡한 문법 체계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가 지닌 본래의 의미와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내어,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왔던 성경 본문이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게 만든다. 번역된 문장 뒤에 가려져 있던 의미들이 드러날 때, 독자는 비로소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 ‘듣는 경험’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말씀과 씨름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써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은혜를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그렇기에 『오늘의 원어 공부』는 차가운 연구서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뜨겁고도 진솔한 고백이다. 또한 이 책은 원어 연구의 결실이자, 동시에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따뜻한 초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사랑하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_전원희 목사 | 오후다섯시교회
저자가 평소 곳곳에서 풀어내던 성경 본문에 관한 통찰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반갑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과 목회자들에게 성경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가르칠 때부터 보여주었던 그 신실함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원어에 대해 공부해 본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원어 공부와 궤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영광’을 말할 때 번쩍이는 조명이 아니라 존재가 주는 묵직한 ‘무게감’(카보드)으로 설명한다. C. 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를 읽으며 감탄했던 해석이었는데, 덕분에 그 근원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박제된 명사가 아니라,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살아있는 동사’로 풀어낸 것 역시 탁월했다. 한번도 그렇게 해석해 본 적이 없지만 이 새로운 해석이 주는 힘 덕분에 그 역동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흔히 “현숙한 여인”이라 부르던 단어가 사실은 능동적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힘의 여인’(에쉐트 하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틀 안에 말씀을 가두어 왔는지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홍해 앞에서 “가만히 서 있으라”(야차브)던 명령이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내는 지독한 ‘버팀’의 믿음이었다는 대목도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내 연약한 믿음보다 훨씬 더 견고한 하나님의 “미쁘심”(피스토스), 즉 그분의 거룩한 고집에 기대어 다시 앞으로 한 걸음을 떼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아는 데 필요한 해석의 열쇠가 되는 원어들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아탑에 갇혀 범접하기 어려운 학자가 아니라, 교회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동료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원어의 힘을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 성경 말씀의 본래 의도가 궁금한 성도라면, 이 책이 보여주는 생생한 원어의 숲을 꼭 한번 거닐어 보길 권한다. 정직한 묵상의 흔적이 가득한 이 책이 성경을 사랑하며 원래의 뜻ᄋ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손에 꼭 쥐어지기를 소망한다.
_조영민 목사 | 나눔교회
평소 SNS를 통해 저자의 글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익숙함 때문에 이미 굳어버린 우리의 성경 읽기를 조용히 깨뜨려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설은 낡은 번역에 가려져 있던 성경 속 사건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묵직한 힘이 있다. 잠언의 “현숙한 여인”이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본래의 의미를 잃었는지 추적하는 대목이나, 종교개혁 정신의 원동력이었던 로마서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을 원어 해설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대목은 단연 압권이다. 저자는 화석화된 텍스트에 숨결을 불어넣어 오늘날 우리의 생생한 언어로 말씀을 복원해 낸다. 그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던 통찰력 있는 글들과 미처 나누지 못했던 미공개 원고들이 정갈하게 다듬어져, 마침내 단단한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성도들에게 높은 산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원어의 세계가 이토록 다정한 문장으로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의 원어 공부』가 성도들에게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지 한 명의 열렬한 독자로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익숙함이라는 낡은 껍질을 벗고, 말씀에 담긴 날 것 그대로의 경이로움을 맛보는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말씀을 더 깊게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_최주훈 목사 | 중앙루터교회
_강대훈 교수 | 총신대학교
우리는 성경을 “읽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저 익숙한 번역어를 스쳐지나가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 속에 묻ᄏ혀 있던 단어의 결을 하나씩 꺼내어, 번역이 다 담지 못한 하나님의 음성을 복원한다. 출발점은 단순하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 하나하나를 원어로 되돌려놓는 것. 그러나 그 도착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원어를 통해 단어의 뜻이 바뀌는 순간,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달라지고, 우리의 시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의 원어 공부』가 가진 힘은 원어를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가두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존의 원어 해설서들이 사전적 정보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단어 하나를 꺼내 들어 그것이 우리의 삶과 신앙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끝까지 추적한다. 가령 저자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 라는 익숙한 번역 뒤에서, 에흐예가 ‘존재하다’가 아니라 ‘되어가다’라는 미완료형 동사임을 밝히며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더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펄펄 살아 움직이는 동사 말입니다”. 바로 이 한 문장 앞에서 ‘고독한 독존자’로 박제되어 있던 하나님이 ‘치열한 동반자’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해설교자로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원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나는 원어의 뜻을 알았을 뿐, 원어의 심장을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카보드가 ‘무겁다’라는 뜻인 줄은 알았지만, 내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곧 영광이라는 역설 앞에서는 제대로 멈춰 선 적이 없었다. 포이에마가 ‘만드신 바’라는 뜻인 줄은 알았지만, 그 단어에 거친 망치질과 뜨거운 풀무질의 소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 책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매주 성경 본문 앞에 앉지만 번역 너머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 답답한 설교자, 원어의 중요성은 알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신학생과 평신도 사역자,그리고 성경을 오래 읽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씀이 심장이 아닌 머리에만 머물고 있다고 느끼는 모든 그리스도인이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그 막힌 통로를 시원하게 뚫어준다. 지금 이 책을 펼쳐 읽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성경 본문 앞에서 다시 한번 멈춰 서기를 바란다. 그러면 분명히 들릴 것이다. 번역이 미처 옮기지 못한 하나님의 숨결이.
_김관성 목사 | 낮은담침례교회
성경을 읽다 보면 한글 번역이 아쉬울 때가 적지 않다. 설교가로서 말씀을 연구할 때마다 원어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는데, 원어의 결을 따라가 보면 번역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의미의 지층이 열리는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문제는 원어 연구라는 것이 대부분의 성도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신학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바로 그 장벽을 허무는 책이다. 이 책은 원어 학습서이면서 동시에 묵상서이고, 학문적 깊이를 갖추면서도 동시에 일상의 언어로 말하는 책이다. 전문 신학 교육을 받지 않은 평신도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친절한 안내가 돋보인다. 『오늘의 원어 공부』의 진가는 원어를 통해 번역이 가려버린 본래의 의미를 복원해 내는 데 있다. 가령,우리가 “현숙한 여인”으로 익숙하게 읽어온 잠언 장의 에쉐트 하일은 사실 ‘힘의 여인’, ‘용맹한 여인’에 더 가까운 단어다. 히브리어 하일이 본래 군대의 용맹과 능력을 뜻하는 강력한 단어임에도,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적 필터와 유교적 번역 관습을 거치면서 “현숙”이라는 소극적 이미지로 축소되었다는 저자의 추적은 설득력 있고 흥미롭다. 또한 빌립보서 장 절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에서 휘페레코가 단순한 비교 우위가 아니라 ‘압도하고 지배하는’ 역동적 힘을 뜻한다는 분석도 인상적이다. ‘생각보다 조금 나은 위로’ 정도로 읽히던 구절이, 모든 불안과 혼란을 장악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평강으로 다시 읽히는 순간, 신앙의 무게중심 자체가 달라진다. 원어는 성경의 심장 소리를 듣는 ‘청진기’와 같다. 이 책은 그 ‘청진기’를 목회자의 서재에서 꺼내어 모든 성도들의 손에 쥐어 준다. 말씀을 더 깊이 알고 싶은 모든 분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_김다위 목사 | 선한목자교회
하나의 언어는 그 언어를 만들어내고 사용한 사람들의 집단 지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언어의 기원과 원의를 찾다 보면, 놀라운 지혜와 통찰을 얻기도 하고, 뜻밖의 역사와 만나기도 한다.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 배후에 있는 역사와 문화를 배운다는 뜻이고, 거기에 담겨 있는 사상과 통찰을 배운다는 뜻이다. 모든 언어가 그렇지만,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의 언어인 헬라어는 배우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통해 전해진 특별한 계시를 담아낸 그릇이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두 언어를 연구해 온 저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넘나들며 중요한 단어들의 어원과 그 쓰임새를 설명하면서, 하나님과 믿음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인도한다. 책의 제목은 『오늘의 원어 공부』라고 되어 있지만, 실은 ‘신앙 공부’요 ‘인생 공부’다. 한 꼭지를 읽고 나면 다음 꼭지가 기대되는 흥미진진함이 있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 만드는 공감력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원문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고, 원어 공부에 대한 열망이 솟아오를 것이다.
_김영봉 목사 | 와싱톤사귐의교회
요즘 성경 원어와 친숙해질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나와서 기쁘다. 특히나 성경 원어 연구에 진심인 저자의 책은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구약성경의 히브리어와 신약성경의 헬라어를 넘나들며 오랜 시간 연구한 저자의 노력이 응축된 결실이다. 특히 열정적으로 원어 연구에 매달려 온 저자의 집요한 탐구가 이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를 준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는 단순히 학문적 성취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전어라는 이유로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던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저자는 성경 본문과 함께 풀어내며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 .이 책은 복잡한 문법 체계를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단어 하나하나가 지닌 본래의 의미와 뉘앙스를 섬세하게 살려내어, 우리가 익숙하게 읽어왔던 성경 본문이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게 만든다. 번역된 문장 뒤에 가려져 있던 의미들이 드러날 때, 독자는 비로소 말씀을 ‘읽는 것’을 넘어 ‘듣는 경험’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에 머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오랜 시간 말씀과 씨름하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써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경험한 은혜를 독자와 나누고자 한다. 그렇기에 『오늘의 원어 공부』는 차가운 연구서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뜨겁고도 진솔한 고백이다. 또한 이 책은 원어 연구의 결실이자, 동시에 말씀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따뜻한 초대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사랑하는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이 책을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_전원희 목사 | 오후다섯시교회
저자가 평소 곳곳에서 풀어내던 성경 본문에 관한 통찰들을 이렇게 책으로 만나니 반갑다.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과 목회자들에게 성경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가르칠 때부터 보여주었던 그 신실함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의 원어 공부』는 원어에 대해 공부해 본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원어 공부와 궤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영광’을 말할 때 번쩍이는 조명이 아니라 존재가 주는 묵직한 ‘무게감’(카보드)으로 설명한다. C. S. 루이스의 『영광의 무게』를 읽으며 감탄했던 해석이었는데, 덕분에 그 근원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다. 또한 하나님을 ‘스스로 있는 자’라는 박제된 명사가 아니라,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살아있는 동사’로 풀어낸 것 역시 탁월했다. 한번도 그렇게 해석해 본 적이 없지만 이 새로운 해석이 주는 힘 덕분에 그 역동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졌다. 흔히 “현숙한 여인”이라 부르던 단어가 사실은 능동적으로 미래를 개척하는 ‘힘의 여인’(에쉐트 하일)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그동안 내가 얼마나 좁은 틀 안에 말씀을 가두어 왔는지 죄스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홍해 앞에서 “가만히 서 있으라”(야차브)던 명령이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자리를 지켜내는 지독한 ‘버팀’의 믿음이었다는 대목도 참 좋았다. 무엇보다도 내 연약한 믿음보다 훨씬 더 견고한 하나님의 “미쁘심”(피스토스), 즉 그분의 거룩한 고집에 기대어 다시 앞으로 한 걸음을 떼게 만드는 힘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아는 데 필요한 해석의 열쇠가 되는 원어들을 탁월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아탑에 갇혀 범접하기 어려운 학자가 아니라, 교회 현장에서 함께 고민하는 동료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원어의 힘을 알게 해주어 감사하다. 성경 말씀의 본래 의도가 궁금한 성도라면, 이 책이 보여주는 생생한 원어의 숲을 꼭 한번 거닐어 보길 권한다. 정직한 묵상의 흔적이 가득한 이 책이 성경을 사랑하며 원래의 뜻ᄋ을 알고자 하는 이들의 손에 꼭 쥐어지기를 소망한다.
_조영민 목사 | 나눔교회
평소 SNS를 통해 저자의 글을 즐겨 읽는 편이다 .익숙함 때문에 이미 굳어버린 우리의 성경 읽기를 조용히 깨뜨려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해설은 낡은 번역에 가려져 있던 성경 속 사건들을 다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묵직한 힘이 있다. 잠언의 “현숙한 여인”이 시대를 거치며 어떻게 본래의 의미를 잃었는지 추적하는 대목이나, 종교개혁 정신의 원동력이었던 로마서의 수수께끼 같은 말씀들을 원어 해설로 명쾌하게 풀어내는 대목은 단연 압권이다. 저자는 화석화된 텍스트에 숨결을 불어넣어 오늘날 우리의 생생한 언어로 말씀을 복원해 낸다. 그렇게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던 통찰력 있는 글들과 미처 나누지 못했던 미공개 원고들이 정갈하게 다듬어져, 마침내 단단한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성도들에게 높은 산처럼 멀게만 느껴지던 원어의 세계가 이토록 다정한 문장으로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의 원어 공부』가 성도들에게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을지 한 명의 열렬한 독자로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익숙함이라는 낡은 껍질을 벗고, 말씀에 담긴 날 것 그대로의 경이로움을 맛보는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말씀을 더 깊게 사랑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기쁜 마음으로 이 책을 권한다.
_최주훈 목사 | 중앙루터교회
목차
들어가는 말 13
1부 원어로 하나님 읽기 17
1장 하나님의 영광 21
2장 나보다 믿음이 좋으신 하나님 25
3장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33
4장 응답하라 38
5장 눈동자처럼 43
6장 투박한 손길 47
7장 증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52
8장 하나님의 이름, 명사에서 동사로의 탈출 55
9장 아무것도 안 하는 믿음 63
10장 설계도와 금송아지 68
11장 거울아 거울아 72
2부 원어로 예수님 읽기 77
12장 갓 지은 밥을 먹이시는 분 85
13장 뜻밖의 행복 90
14장 천국의 최연소 입주자들 99
15장 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104
16장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109
17장 얘들아, 너희 뭐 먹을 것도 없지? 113
18장 간사함, 그 달콤한 미끼 117
19장 그가 이름 부르실 때 122
20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127
21장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133
22장 만 달란트의 비밀 139
23장 아니 쉬라면서요? 147
24장 참 수고 많았다 152
25장 조건과 결론 157
26장 내가 누구라고?162
3부 원어로 바울 읽기 167
27장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을까? 173
28장 어휴 냄새 177
29장 눈싸움 183
30장 통달과 살핌 188
31장 하나의 열매 아홉 가지 빛깔 192
32장 스포츠 정신 200
33장 망치면 망한다 206
34장 잊혀진 이를 다시 찾아서 210
35장 낮아짐의 영광 214
36장 화려한 꽹과리 소리 219
37장 네가 좀 가볼래? 223
4부 원어로 오역 읽기 229
38장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233
39장 말이 짧아지는 다윗과 정신나간 백부장 238
40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44
41장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249
42장 현숙한 여인 252
1부 원어로 하나님 읽기 17
1장 하나님의 영광 21
2장 나보다 믿음이 좋으신 하나님 25
3장 하나님이 내게 이르시되 33
4장 응답하라 38
5장 눈동자처럼 43
6장 투박한 손길 47
7장 증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52
8장 하나님의 이름, 명사에서 동사로의 탈출 55
9장 아무것도 안 하는 믿음 63
10장 설계도와 금송아지 68
11장 거울아 거울아 72
2부 원어로 예수님 읽기 77
12장 갓 지은 밥을 먹이시는 분 85
13장 뜻밖의 행복 90
14장 천국의 최연소 입주자들 99
15장 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 104
16장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109
17장 얘들아, 너희 뭐 먹을 것도 없지? 113
18장 간사함, 그 달콤한 미끼 117
19장 그가 이름 부르실 때 122
20장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127
21장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133
22장 만 달란트의 비밀 139
23장 아니 쉬라면서요? 147
24장 참 수고 많았다 152
25장 조건과 결론 157
26장 내가 누구라고?162
3부 원어로 바울 읽기 167
27장 환난을 즐거워할 수 있을까? 173
28장 어휴 냄새 177
29장 눈싸움 183
30장 통달과 살핌 188
31장 하나의 열매 아홉 가지 빛깔 192
32장 스포츠 정신 200
33장 망치면 망한다 206
34장 잊혀진 이를 다시 찾아서 210
35장 낮아짐의 영광 214
36장 화려한 꽹과리 소리 219
37장 네가 좀 가볼래? 223
4부 원어로 오역 읽기 229
38장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233
39장 말이 짧아지는 다윗과 정신나간 백부장 238
40장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44
41장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249
42장 현숙한 여인 252
책 속으로
솔직히 말해 봅시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표현이 멋지기는 하지만 어딘지 좀 차갑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여기에는 사실 억울한 사연이 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역동적인 하나님이 그리스 철학 동네로 이사 가면서 생긴 일입니다. 과거에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의 영향권 아래서 “신”이란 모름지기 변하지 않아야 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며, 영원히 고고하게 존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히브리어 에흐예를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 호 온(ἐγώ εἰμι ὁ ὤν, “나는 존재하는 자다”)으로 번역했습니다. 그 결과 히브리어 성경 속 하나님이 졸지에 철학책에나 나오는 ‘움직이지 않는 원인’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중세 신학자들은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순수 존재 그 자체’라고 정의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억압받아 신음하는 이스라엘 노예들에게 “나는 철학적으로 완벽하게 홀로 존재하는 실체다”라는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마치 배고픈 사람에게 미적분 공식을 알려주는 격 아닙니까? 56
1 데나리온(δηνάριον)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건설 현장 일당이나 최저 시급을 고려해서 대략 10만 원 정도로 쳐봅시다. 그러면 1 달란트는 6억 원 가량 됩니다. 산업 혁명 이전, 잉여 자본이 거의 없던 고대 경제 체제를 감안하면 이 돈의 체감 가치는 지금의 6억보다 훨씬 더 무겁습니다. 5만 원으로 아주 낮게 잡아도 3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빚진 종의 부채 규모는 무려 “1만 달란트”(뮈리온 탈란톤[μυρίων ταλάντων])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6,000만 데나리온. 일당 1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6조 원입니다. 노동자가 한 푼도 안 쓰고 무려 16만 4천 년을 일하고 꼬박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해 “어떤 종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라고 운을 떼시는 순간, 청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헉” 하는 숨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숫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옆집 김 씨가 6조 원 빚을 졌대”라는 말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황당하게 들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40-141
이 결정은 이후 아시아 기독교 전체의 어휘에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중국어 성경에 “올리브 산”은 “감람산”(橄欖山)으로, “올리브유”는 “감람유”(橄欖油)로 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한국어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의 표준 텍스트였던 중국어 성경을 참조(혹은 답습)했습니다. 그 결과, 橄欖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음차한 “감람”이 자이트와 엘라이아의 공식 번역어가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감람산”이라는 번역어가 탄생했습니다. 결국 “감람”은 올리브의 본명이 아니라, 번역이 만든 별명이었던 셈입니다. 오리지널 감람(카나리움 앨범) 입장에서는 자기 이름을 엉뚱한 식물에게 강탈당한 셈이니 억울할 만도 합니다. 이 수백 년 묵은 오해는 생각보다 굳건합니다. 지금 와서 “감람산은 사실 올리브 산의 오역입니다!”라고 외쳐봤자, “그래서 뭐? 발음이 더 멋있으면 됐지”라는 시니컬한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언어는 이미 그렇게 굳어졌고, 감람산은 그 자체로 이미 상징성을 획득했습니다. 234-235
다윗이 형들의 도시락을 배달하던 소년일 때, 요나단은 이미 한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자 왕세자였으니까요. 친구라기보단 삼촌이나 멘토에 가까운 나이 차이였습니다. 게다가 신분의 차이도 있었고요. 실제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다윗의 태도는 비굴할 정도로 깍듯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향해 집요하게 에트 아브데카, 즉 “당신의 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 (삼상 20:8). 왕세자에게 “친구야, 밥 먹었니?”라고 하는 건 우정이 아니라 파국이지요. “왕자님, 소인이 감히 말씀드립니다”라고 납작 엎드려야, 요나단이 “아닐세, 친구여”라고 일으켜 세워주는 맛이 사는 법입니다. 친한 것과 말을 놓는 건 별개니까요. 239
1 데나리온(δηνάριον)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요즘 건설 현장 일당이나 최저 시급을 고려해서 대략 10만 원 정도로 쳐봅시다. 그러면 1 달란트는 6억 원 가량 됩니다. 산업 혁명 이전, 잉여 자본이 거의 없던 고대 경제 체제를 감안하면 이 돈의 체감 가치는 지금의 6억보다 훨씬 더 무겁습니다. 5만 원으로 아주 낮게 잡아도 3억 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빚진 종의 부채 규모는 무려 “1만 달란트”(뮈리온 탈란톤[μυρίων ταλάντων])입니다. 단순 계산으로 6,000만 데나리온. 일당 1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6조 원입니다. 노동자가 한 푼도 안 쓰고 무려 16만 4천 년을 일하고 꼬박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향해 “어떤 종이 왕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라고 운을 떼시는 순간, 청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헉” 하는 숨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 숫자는 오늘날 우리에게 “옆집 김 씨가 6조 원 빚을 졌대”라는 말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고 황당하게 들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40-141
이 결정은 이후 아시아 기독교 전체의 어휘에 거대한 나비효과를 일으켰습니다. 중국어 성경에 “올리브 산”은 “감람산”(橄欖山)으로, “올리브유”는 “감람유”(橄欖油)로 고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초기 한국어 성경 번역자들은 히브리어 원문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의 표준 텍스트였던 중국어 성경을 참조(혹은 답습)했습니다. 그 결과, 橄欖이라는 한자를 우리말로 음차한 “감람”이 자이트와 엘라이아의 공식 번역어가 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게 “감람산”이라는 번역어가 탄생했습니다. 결국 “감람”은 올리브의 본명이 아니라, 번역이 만든 별명이었던 셈입니다. 오리지널 감람(카나리움 앨범) 입장에서는 자기 이름을 엉뚱한 식물에게 강탈당한 셈이니 억울할 만도 합니다. 이 수백 년 묵은 오해는 생각보다 굳건합니다. 지금 와서 “감람산은 사실 올리브 산의 오역입니다!”라고 외쳐봤자, “그래서 뭐? 발음이 더 멋있으면 됐지”라는 시니컬한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입니다. 언어는 이미 그렇게 굳어졌고, 감람산은 그 자체로 이미 상징성을 획득했습니다. 234-235
다윗이 형들의 도시락을 배달하던 소년일 때, 요나단은 이미 한 부대를 이끄는 사령관이자 왕세자였으니까요. 친구라기보단 삼촌이나 멘토에 가까운 나이 차이였습니다. 게다가 신분의 차이도 있었고요. 실제로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다윗의 태도는 비굴할 정도로 깍듯합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향해 집요하게 에트 아브데카, 즉 “당신의 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런즉 바라건대 네 종에게 인자하게 행하라 네가 네 종에게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하게 하였음이니라 …” (삼상 20:8). 왕세자에게 “친구야, 밥 먹었니?”라고 하는 건 우정이 아니라 파국이지요. “왕자님, 소인이 감히 말씀드립니다”라고 납작 엎드려야, 요나단이 “아닐세, 친구여”라고 일으켜 세워주는 맛이 사는 법입니다. 친한 것과 말을 놓는 건 별개니까요.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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