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9912953 훈훈
[개정판] 슬픔은 발효중 (자살유가족으로 살아온 애도 상담가가 전하는 상실 이후, 애도의 길)
(저자) 박경임
훈훈 · 2026-06-10 140*205 · 2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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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유가족으로 살아온
애도 상담가가 전하는
상실 이후, 애도의 길
“<슬픔은 발효 중>은 자살 유가족에게 교과서와 같다. 섬세한 표현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고, 40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한 권의 책으로 잘 엮어 내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유가족들은 40년이 아니라 10년으로, 아니 1년으로 그 아픔의 시간을 단축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남은 가족이 어떤 아픔을 겪는지를 헤아려보고 그 생각을 멈추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모든 사람이 읽고 유가족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모두가 함께 살아내자”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성돈 Life Hope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본 도서는 2023년 12월에 출간되었던 <슬픔은 발효 중> 초판을 보강한 개정판이다. <슬픔은 발효 중> 초판은 그 부제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상실한 자살 유가족이 써 내려가고 있는 치유와 성장의 여정”에서 드러나듯, 한 명의 자살 유가족이 엄마와 오빠를 상실한 후 통과해야 했던 거칠고 고된 시간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었다. 당시 독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자살 유가족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슬픔은 발효중>을 통해 접하며 다양한 반응을 보내왔다. 그중 대표적인 반응은 ‘상실 후 애도의 길’을 진솔하게 표현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들이었다.
본 도서의 저자 박경임 소장 역시 <슬픔은 발효중> 초판과 함께 애도 상담가로서의 길을 더욱 깊게 닦아왔다. 박경임 소장은 <슬픔은 발효중> 초판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이번 개정판에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한다.
“초판 당시, 심리학적 애도이론과 상실 유형에 따른 애도의 깊이와 특성을 충분히 담아내고자 했으나,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오랜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기존의 부모·형제자매 상실에 더해, 차마 꺼내기조차 힘겨운 자녀 상실과 배우자 상실의 슬픔까지 보듬어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애도 이론과 더불어 스스로 마음의 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마음을 잇는 질문’을 새롭게 수록하여 실천적인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 책이 상실 이후 무너진 삶의 자리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에서 밝혔듯, 이번 개정판은 본 도서에 담긴 모든 에세이에 관련된 심리학적 애도이론을 추가하여 상실을 경험한 독자들이 더욱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애도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또한 모든 에세이에 ‘마음을 잇는 질문’을 넣음으로써,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애도를 위한 커뮤니티에서 ‘나눔을 위한 질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좀 더 다양한 사별 유형별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도 이번 개정판의 달라진 점이다. 초판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자녀를 상실한 유가족의 이야기’와 ‘배우자를 상실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추가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자살 유가족들이 본 도서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었다.
대한민국의 자살율이 OECD국가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새롭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위기의 증거일 수 있다. 자살 예방과 더불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살 유가족’의 삶일 것이다.
여전히 국가적인 과제에서 후순위에 밀려있는 ‘자살 유가족’의 삶을 위하여, <슬픔은 발효중> 개정판은 따뜻하면서도 정확한 길을 제시할 것이다. 상실 후 애도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슬픔은 발효 중> 개정판을 적극 추천한다.
애도 상담가가 전하는
상실 이후, 애도의 길
“<슬픔은 발효 중>은 자살 유가족에게 교과서와 같다. 섬세한 표현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고, 40년의 세월을 관통하여 한 권의 책으로 잘 엮어 내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유가족들은 40년이 아니라 10년으로, 아니 1년으로 그 아픔의 시간을 단축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남은 가족이 어떤 아픔을 겪는지를 헤아려보고 그 생각을 멈추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모든 사람이 읽고 유가족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모두가 함께 살아내자”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성돈 Life Hope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본 도서는 2023년 12월에 출간되었던 <슬픔은 발효 중> 초판을 보강한 개정판이다. <슬픔은 발효 중> 초판은 그 부제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상실한 자살 유가족이 써 내려가고 있는 치유와 성장의 여정”에서 드러나듯, 한 명의 자살 유가족이 엄마와 오빠를 상실한 후 통과해야 했던 거칠고 고된 시간들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집이었다. 당시 독자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자살 유가족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슬픔은 발효중>을 통해 접하며 다양한 반응을 보내왔다. 그중 대표적인 반응은 ‘상실 후 애도의 길’을 진솔하게 표현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들이었다.
본 도서의 저자 박경임 소장 역시 <슬픔은 발효중> 초판과 함께 애도 상담가로서의 길을 더욱 깊게 닦아왔다. 박경임 소장은 <슬픔은 발효중> 초판에 미처 다 담지 못한 내용들을 이번 개정판에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한다.
“초판 당시, 심리학적 애도이론과 상실 유형에 따른 애도의 깊이와 특성을 충분히 담아내고자 했으나, 미처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 오랜 아쉬움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기존의 부모·형제자매 상실에 더해, 차마 꺼내기조차 힘겨운 자녀 상실과 배우자 상실의 슬픔까지 보듬어 그 영역을 넓혔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애도 이론과 더불어 스스로 마음의 결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마음을 잇는 질문’을 새롭게 수록하여 실천적인 깊이를 더했습니다. 이 책이 상실 이후 무너진 삶의 자리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보다 구체적인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위에서 밝혔듯, 이번 개정판은 본 도서에 담긴 모든 에세이에 관련된 심리학적 애도이론을 추가하여 상실을 경험한 독자들이 더욱더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으로 애도의 시간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또한 모든 에세이에 ‘마음을 잇는 질문’을 넣음으로써,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도록, 더 나아가 애도를 위한 커뮤니티에서 ‘나눔을 위한 질문’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좀 더 다양한 사별 유형별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도 이번 개정판의 달라진 점이다. 초판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던 ‘자녀를 상실한 유가족의 이야기’와 ‘배우자를 상실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추가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자살 유가족들이 본 도서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내었다.
대한민국의 자살율이 OECD국가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는 건 이제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새롭지 않다는 것이야말로 위기의 증거일 수 있다. 자살 예방과 더불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자살 유가족’의 삶일 것이다.
여전히 국가적인 과제에서 후순위에 밀려있는 ‘자살 유가족’의 삶을 위하여, <슬픔은 발효중> 개정판은 따뜻하면서도 정확한 길을 제시할 것이다. 상실 후 애도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슬픔은 발효 중> 개정판을 적극 추천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박경임
1975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경험은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 상실의 아픔은 소명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애도상담가의 길로 이어졌다. Saint Louis University에서 심리상담 석사를, 그리고 De La Salle University에서 심리상담 박사를 수료한 그는 상실의 아픔으로 고립된 이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무너진 일상 속에서 회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한국자살예방협회 애도지원위원장을 맡아 6주 과정의 ‘애도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곁을 지키며 ‘애도의 동반자’로 함께 걷고 있다. 또한 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으며, CBS 〈새롭게 하소서〉, CTS 〈내가 매일 기쁘게〉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특히 한국일보와 진행한 ‘애도 시리즈’ 인터뷰는 상실 이후의 삶과 애도의 참된 의미를 우리 사회에 깊이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박경임 애도상담연구소 소장으로서 개인 및 집단 상담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배우자를 상실한 30~40대 여성들과 함께하는 <연결의 자리>, 자살 유가족들이 글쓰기를 통해 슬픔을 꽃피우는 <글피움터>를 운영 중이며, ‘자살 유가족을 위한 예배’ <마음, 자리>도 준비 중에 있다.
Email_ griefisfermenting@gmail.com
Instagram_ @grief_is_fermenting
Blog_ https://m.blog.naver.com/griefcounseling
1975년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잃은 경험은 삶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그 상실의 아픔은 소명의 에너지로 전환되어 애도상담가의 길로 이어졌다. Saint Louis University에서 심리상담 석사를, 그리고 De La Salle University에서 심리상담 박사를 수료한 그는 상실의 아픔으로 고립된 이들이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무너진 일상 속에서 회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그는 한국자살예방협회 애도지원위원장을 맡아 6주 과정의 ‘애도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곁을 지키며 ‘애도의 동반자’로 함께 걷고 있다. 또한 대학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상실과 애도’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으며, CBS 〈새롭게 하소서〉, CTS 〈내가 매일 기쁘게〉 등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특히 한국일보와 진행한 ‘애도 시리즈’ 인터뷰는 상실 이후의 삶과 애도의 참된 의미를 우리 사회에 깊이 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박경임 애도상담연구소 소장으로서 개인 및 집단 상담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배우자를 상실한 30~40대 여성들과 함께하는 <연결의 자리>, 자살 유가족들이 글쓰기를 통해 슬픔을 꽃피우는 <글피움터>를 운영 중이며, ‘자살 유가족을 위한 예배’ <마음, 자리>도 준비 중에 있다.
Email_ griefisfermenting@gmail.com
Instagram_ @grief_is_fermenting
Blog_ https://m.blog.naver.com/griefcounseling
목차
추천사
개정판 프롤로그
초판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슬픔에도 저마다 다른 표정이 있다
엄마가 사라졌다
나를 살린 비밀 친구
자살유가족, 죄인입니까?
도깨비 할아버지
슬픔은 발효 중
오빠가 내게 남겨준 선물
네 잘못이 아니야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1)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자녀를 상실한 아버지A의 기록
상실한 사람 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언어의 온도
두 번째 이야기,
슬픔의 터널을 통과해내는 중입니다
내 마음속의 선생님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옷, 결혼
이렇게 좋은 사랑
내 앞에선 아이여도 돼
다행이다, 언니가 있어서
슬퍼할 권리
자살 생존자로 산다는 것은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2)
<나는 남편을 애도할 공간이 없었다>
배우자를 상실한 아내C의 기록
세 번째 이야기,
슬픔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아버지의 안부
서른셋에 시간이 멈춘 나의 엄마, 신숙자
낙인을 넘어, 환대로
조현병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
Umma! You are my home
애도의 동반자
자살 유가족을 이렇게 도와주세요
특별 기고: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후
아직 1년이 흐르지 않은 유족분들에게
심소영(자살유가족협회 이사)
자살유족 권리장전
에필로그
자살 유가족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참고문헌
개정판 프롤로그
초판 프롤로그
첫 번째 이야기,
슬픔에도 저마다 다른 표정이 있다
엄마가 사라졌다
나를 살린 비밀 친구
자살유가족, 죄인입니까?
도깨비 할아버지
슬픔은 발효 중
오빠가 내게 남겨준 선물
네 잘못이 아니야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1)
<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자녀를 상실한 아버지A의 기록
상실한 사람 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언어의 온도
두 번째 이야기,
슬픔의 터널을 통과해내는 중입니다
내 마음속의 선생님
내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옷, 결혼
이렇게 좋은 사랑
내 앞에선 아이여도 돼
다행이다, 언니가 있어서
슬퍼할 권리
자살 생존자로 산다는 것은
자살 유가족과 자살 유가족이 만나다(2)
<나는 남편을 애도할 공간이 없었다>
배우자를 상실한 아내C의 기록
세 번째 이야기,
슬픔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아버지의 안부
서른셋에 시간이 멈춘 나의 엄마, 신숙자
낙인을 넘어, 환대로
조현병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그녀
Umma! You are my home
애도의 동반자
자살 유가족을 이렇게 도와주세요
특별 기고: 사랑하는 가족을 자살로 떠나보낸 후
아직 1년이 흐르지 않은 유족분들에게
심소영(자살유가족협회 이사)
자살유족 권리장전
에필로그
자살 유가족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참고문헌
책 속으로
#1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았다. 아침이 되면 늦잠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온 세상을 잃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홀로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린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내 사랑을 배신하고 떠난 엄마가 미웠다. 도대체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지탱해주던 삶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린 느낌이었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날엔 바지에 소변을 지렸다. 울음을 터트려도 내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엄마의 얼굴이 어떤 날은 더 또렷하게, 어떤 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지금은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냄새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이나 유품은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그리움,’ 오직 그리움뿐이다. 그때 엄마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두었다면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날이 조금은 적었을까?
엄마의 죽음은,
내 인생의 항로를 거친 바다로 바꿔 놓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36p 중.
#2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 죽음에 대한 날카로운 정죄로 비수를 꽂는 세상이 얄궂기만 했다.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를 헤아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엄마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내게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다.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움이 세포와 혈관을 타고 내 몸의 일부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자살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격을 침해당하는 언어 폭력에 노출되고, 비난과 낙인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는가? 넓게 보아 우리나라 인구의 10%를 자살 유가족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생명 존중시민회의에서 발표한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에 보면 “나는 내 독자적인 인격을 유지하고 자살로 인한 죽음에 의해 판단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말, 말, 말’ 말들….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들에게 “고인이 지옥 갔다”며 고통을 가중시키는 말보다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판단 받지 않을 권리’는,
‘판단하지 않을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53p 중.
#3
세월이 흘러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오빠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깊은 고부 갈등에 대해 어린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가족관계를 지켜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떠난 후, 달라진 가족관계 속에서 살아내느라 오빠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불안에 내몰려 있었을 것이다. 새어머니가 오신 후로는 얼마나 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오빠가 우리 중에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다. 누구보다 탁월했던 오빠는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했을 때 힘을 잃었다. 그는 가장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정죄로 인해 오빠는 정서적으로 더 깊은 상처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떠난 지 23년이 지났다. 세월이 흘렀어도 상실의 아픔에서 온전히 자유해지진 않았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경험하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모두 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상실을 경험할 뿐, 피해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살아왔다. 그저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슬픔이 찾아오는 날조차 밀어내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은 내 슬픔은 현재도 발효 중이다. 발효는 인간에게 좋은 면을 주는 미생물 작용이므로 비슷한 과정을 겪는 부패와는 구분된다. 산소 부족이라는 결핍을 통해 젖산이 발효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위로받지 못했던 슬픔이 이로운 효소로 발효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김치나 된장처럼, 내 슬픔이 깊이 숙성되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69p 중.
#4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 안의 죄책감이었다. 오빠가 떠난 뒤에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위로였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말을 던지며 살아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오빠를 잃었다면 나는 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적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때문에 오빠가 떠났어.”
그 순간, 오래도록 하지 못했던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오빠가 떠난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반복하며 목놓아 울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나를 가장 많이 비난해 온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죄책감의 먹구름 사이로 ‘자기용서(Self Forgiveness)’라는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밧줄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였다. 나 자신과 화해한 후에야 나는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실패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슬프고 우울해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반짝반짝 빛나는 내가 아니라 흔들리고 불안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자기 자비(Self-Compassion)는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내 삶에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몸과 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었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이 전보다 자유로워지고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한 번의 결심으로 쉽게 되었을 리 없다. 오랫동안 관성처럼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매 순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했다. 모두가 나를 떠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을 나 자신에게 가혹한 친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91p 중.
#5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그녀를 기다리면 다시 볼 줄 알았던 내 유년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작고 여린 아이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그제서야 나는 엄마 마음이 헤아려졌다. 엄마는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벼랑끝처럼 여겨지는 삶의 낭떠러지에 외롭게 홀로 서있다 쓸쓸히 떠나간 엄마의 아픔이 전해져 아이를 안고 한없이 울었다. 풀리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눈물 젖은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며 내가 받아 보고 싶었던 엄마 몫의 사랑까지 아이에게 부어 주리라 다짐하며 나직이 혼자 속삭였다.
“아이야! 내게 선물처럼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거든 뒤를 돌아봐. 엄마가 거기 서 있을 게. 잊지 마. 엄마가 늘 네 등 뒤에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아이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오히려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누구보다 더 깊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엄마 없이 자라온 내 상처가 치유되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이년 반 만에 잠시 내 곁으로 왔다. 오랜만에 집 밥 먹는 아들을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다.
이렇게 좋은 사랑이, 또 있을까.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35p 중.
#6
“네가 엄마를 닮았다면 너의 엄마는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셨을 거야”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엄마처럼 죽게 될까 봐 두려웠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비로소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이 선물한 마법의 언어는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었는지 기억나게 해 주었다.
조금 더 일찍 내 삶의 아픔을 꺼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혼자 아파하는 시간이 짧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치를 강요당하는 사회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살아온 시간들 동안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말할 수 있는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기를 갈망한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것은 수치가 아니라 함께 울어야 하는 아픔이다”라는 슬로건이 보편적 이해로 인식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수치에 내몰려 고립된 채로 외롭게 살아가는 자살 유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열망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마음껏 울며 상실을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 난 그런 세상을 꿈꾼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가족이 추모와 애도보다 자책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생인가.
상실,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인데 애도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겨버린 슬픔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고, 그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58p 중.
#7
오빠를 잃고 난 뒤에야 그의 고통을 뒤늦게 이해했다. 자살한 모든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살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자살 유가족이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을 더 높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비해 자살할 가능성을 더 높이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빠를 잃은 이후, 나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그들을 돌보며 그들의 애도를 지원하는 일이 곧 또 다른 죽음을 막는 자살 예방의 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어떤 종교적 언어는 자살을 ‘벌 받을 죄’로 단정하며 고인을 죄인으로 만든다. 그 순간, 남겨진 사람도 함께 죄인이 된다. 가족을 잃은 뒤, 외부에서의 비난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원망할 때, 고통은 가중된다. 나는 내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아빠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아빠를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엄마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아빠를, 오빠가 무너질 때 투명인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빠를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아내와 아들을 가슴에 묻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 살아가는 것 자체를 죄스럽게 여기며 세월을 건너온 사람. 자식들의 원망과 사회의 손가락질을 견디며 살아온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살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가족 체계 전체를 재편하는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각자의 고통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렇듯, 자살 생존자들은 위로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가족의 죽음을 설명해야 하고, 숨겨야 하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경청이다. 슬픔을 고치려는 손길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품이 절실하다.
고립과 고독을 친구 삼아 살아가고 있는 자살 생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낙인과 정죄의 시선이 아니라
‘환대’의 마음으로
자살 생존자들의 삶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67p 중.
#8
한밤중에 자다가 일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엄마가 떠난 이유를 나 역시 아빠로부터 찾으려 했다.
아빠가 좀더 능력 있는 남자였다면 엄마가 고생을 덜 하지는 않았을까,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낼 때 “나만 믿으라”며 엄마에게 좀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면 엄마가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오죽하면, 오죽했으면 엄마가 떠났을까 아빠를 비난하고 원망만 했지,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의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보지 못했다. 아내를 죽인 남편이라는 오명을 쓰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이 넷을 키워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것이 죄스러웠을 아버지의 마음을, 그 마음을 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기막힌 슬픔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아빠는 엄마가 떠나신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매년 음력 사월이 되면 시름시름 앓으신다. 가족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가족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아내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세상과 자식들의 비난을 한몸에 다 받아내며 그 삶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오신 아버지. 그 마음이 헤아려지자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무능력한 아빠”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모진 삶의 무게를 버티고 살아 주신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몫을 다한 것은 아닐런지!
아버지는 이제 팔십이 훌쩍 넘으셨다. 나이 드실수록 자식이 그리운 모양이다. 가끔 전화를 드리면 “전화 줘서 고마워. 밥은 먹었어? 아픈 데는 없어?” 하고 물으신다. 유년 시절에 그토록 듣고 싶었던 나의 안부를 물으시는 아버지의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의 사랑에 비스듬히 기대어 속삭여 본다.
“아버지,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 모진 삶을 견디고
살아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살아오시느라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99p 중.
#9
엄마가 떠난 후에 사람들은 엄마를 비난하며 “몹쓸 년”이라고 제 앞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어요. 엄마의 마지막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엄마’라는 사람의 인생은 평가절하되었지요. 그 세상의 정죄 속에 떠밀려 ‘엄마’를 입 밖에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아이 생일날 43년의 침묵을 깨뜨렸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나의 사랑하는 엄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화산처럼 잠자고 있던 슬픔이 터져 나와 목놓아 울었어요. 지금까지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죠. 엄마와 오빠를 먼저 떠나보내고 제 마음속 불안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하며 살아왔어요. 여리고 눈물 많은 제가 강한 여전사의 가면을 쓰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가면을 벗고 오롯이 ‘나’로 살아가고 싶어요. 경직되어 있는 몸의 힘을 빼고 유연한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말이에요. 가면을 벗은 저는 이전보다 더 자유해졌어요. 제가 자유롭게 살아가길 엄마는 누구보다 더 간절히 원하셨을 테지요.
엄마가 떠난 후에 저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제가 어릴 때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된 저를 보면 깜짝 놀라
실 거예요.
제가 이렇게 자라올 수 있었던 건 불안이 빛을 발한 걸까요. 아니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고통의 신비 때문일까요. 엄마가 오늘을 살고 있는 저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한다
는 말, 보고 싶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이리 긴 편지를 썼어요.
사랑해요,
엄마!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209p 중.
#10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 속에서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미영(가명) 씨는 상담 도중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겨우 고개를 든 그녀가 눈물이 그렁한 채
내게 나직이 물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지요?”
말문이 막혀 끝내 다 뱉지 못한 그 망설임 속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는지 헤아려졌기에, 나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대답했다.
“네, 미영 씨.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건지, 그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져요”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이 판단 받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옅은 안도감이 번졌다. 상실을 몸소 경험하고 그 거친 애도의 여정을 지나온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이해와 공감이 전해질 때마다, 그녀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온기를 느끼며 안도했다. 그 아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를 조금은 덜 외롭게 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AI와 상담하는 사람들도 많다. ChatGPT와의 상담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AI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제 몸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내담자를 향한 사랑과 애정을 품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에 근거한 공감의 언어를 AI가 흉내 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담자를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사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온몸으로 상실의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건네는 공감은 AI가 끝내 닿을 수 없는 자리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내게 찾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담자들과 동행하는 시간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나 역시 더 깊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간다.
상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 슬픔의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한참을 울다가도, 어떤 날은 환하게 웃는다. 상실의 아픔은 극복되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아픔의 결이 조금씩 옅어질 뿐이다. 상실의 아픔으로 쓰린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 곁에서 나는 오늘도 ‘애도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걷는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247p 중.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기다리면 엄마가 돌아올 줄 알았다. 아침이 되면 늦잠 자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엄마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온 세상을 잃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를 홀로 남겨둔 채 사라져 버린 것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내 사랑을 배신하고 떠난 엄마가 미웠다. 도대체 왜 나를 버리고 떠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지탱해주던 삶의 뿌리가 통째로 뽑혀버린 느낌이었다.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날엔 바지에 소변을 지렸다. 울음을 터트려도 내 어리광을 받아줄 사람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엄마의 얼굴이 어떤 날은 더 또렷하게, 어떤 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지금은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냄새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를 기억할 수 있는 흔적이나 유품은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내게 남은 건 ‘그리움,’ 오직 그리움뿐이다. 그때 엄마 사진 한 장이라도 남겨두었다면 그리움으로 사무치는 날이 조금은 적었을까?
엄마의 죽음은,
내 인생의 항로를 거친 바다로 바꿔 놓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36p 중.
#2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 죽음에 대한 날카로운 정죄로 비수를 꽂는 세상이 얄궂기만 했다. 남겨진 자가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를 헤아렸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엄마 없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내게 사람들은 그들의 언어로 내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다. 수치를 가리기 위해서라도, 엄마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비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움이 세포와 혈관을 타고 내 몸의 일부처럼 흐르는 것 같았다.
자살 유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격을 침해당하는 언어 폭력에 노출되고, 비난과 낙인으로 얼룩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는가? 넓게 보아 우리나라 인구의 10%를 자살 유가족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생명 존중시민회의에서 발표한 <자살 유가족 권리장전>에 보면 “나는 내 독자적인 인격을 유지하고 자살로 인한 죽음에 의해 판단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실의 아픔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는 ‘말, 말, 말’ 말들…. 가족을 자살로 잃은 사람들에게 “고인이 지옥 갔다”며 고통을 가중시키는 말보다 따뜻한 공감과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판단 받지 않을 권리’는,
‘판단하지 않을 의무’를 포함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53p 중.
#3
세월이 흘러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 오빠가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았다.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깊은 고부 갈등에 대해 어린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가족관계를 지켜보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떠난 후, 달라진 가족관계 속에서 살아내느라 오빠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불안에 내몰려 있었을 것이다. 새어머니가 오신 후로는 얼마나 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외로웠을까.
오빠가 우리 중에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당시엔 미처 알지 못했다. 누구보다 탁월했던 오빠는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했을 때 힘을 잃었다. 그는 가장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엄마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정죄로 인해 오빠는 정서적으로 더 깊은 상처에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떠난 지 23년이 지났다. 세월이 흘렀어도 상실의 아픔에서 온전히 자유해지진 않았다.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을 경험하며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는 모두 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상실을 경험할 뿐, 피해가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슬픔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토닥이며 살아왔다. 그저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슬픔이 찾아오는 날조차 밀어내지 않고 환대해 주었다.
엄마와 오빠를 자살로 잃은 내 슬픔은 현재도 발효 중이다. 발효는 인간에게 좋은 면을 주는 미생물 작용이므로 비슷한 과정을 겪는 부패와는 구분된다. 산소 부족이라는 결핍을 통해 젖산이 발효되는 것처럼 누구에게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위로받지 못했던 슬픔이 이로운 효소로 발효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깊은 맛을 내는 김치나 된장처럼, 내 슬픔이 깊이 숙성되어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그것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69p 중.
#4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은 내 안의 죄책감이었다. 오빠가 떠난 뒤에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위로였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잔인한 말을 던지며 살아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오빠를 잃었다면 나는 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해주고 싶을까. 적어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 때문에 오빠가 떠났어.”
그 순간, 오래도록 하지 못했던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오빠가 떠난 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
처음 그 말을 꺼냈을 때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나는 그 말을 반복하며 목놓아 울었다. 그때 비로소 알았다. 나를 가장 많이 비난해 온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죄책감의 먹구름 사이로 ‘자기용서(Self Forgiveness)’라는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나를 옭아매고 있던 밧줄을 풀어줄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였다. 나 자신과 화해한 후에야 나는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실패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안아주기 시작했다. 슬프고 우울해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반짝반짝 빛나는 내가 아니라 흔들리고 불안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자기 자비(Self-Compassion)는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내 삶에 건강한 경계를 세우고 몸과 마음을 지키도록 도와주었다.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몸과 마음이 전보다 자유로워지고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이 한 번의 결심으로 쉽게 되었을 리 없다. 오랫동안 관성처럼 나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매 순간 의지적으로 선택해야 했다. 모두가 나를 떠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있을 나 자신에게 가혹한 친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91p 중.
#5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그녀를 기다리면 다시 볼 줄 알았던 내 유년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작고 여린 아이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 그제서야 나는 엄마 마음이 헤아려졌다. 엄마는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니라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었음을. 벼랑끝처럼 여겨지는 삶의 낭떠러지에 외롭게 홀로 서있다 쓸쓸히 떠나간 엄마의 아픔이 전해져 아이를 안고 한없이 울었다. 풀리지 않았던 엄마에 대한 오해가 이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눈물 젖은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비비며 내가 받아 보고 싶었던 엄마 몫의 사랑까지 아이에게 부어 주리라 다짐하며 나직이 혼자 속삭였다.
“아이야! 내게 선물처럼 와주어서 정말 고마워.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거든 뒤를 돌아봐. 엄마가 거기 서 있을 게. 잊지 마. 엄마가 늘 네 등 뒤에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아이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든든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는 내가 얼마나 연약한 사람인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오히려 나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누구보다 더 깊이 나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엄마 없이 자라온 내 상처가 치유되는 은총을 경험할 수 있었다.
어느새 대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이년 반 만에 잠시 내 곁으로 왔다. 오랜만에 집 밥 먹는 아들을 바라만 보아도 흐뭇하다.
이렇게 좋은 사랑이, 또 있을까.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35p 중.
#6
“네가 엄마를 닮았다면 너의 엄마는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셨을 거야”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통해 엄마처럼 죽게 될까 봐 두려웠던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비로소 엄마를 마음껏 그리워할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이 선물한 마법의 언어는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었는지 기억나게 해 주었다.
조금 더 일찍 내 삶의 아픔을 꺼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혼자 아파하는 시간이 짧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치를 강요당하는 사회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살아온 시간들 동안 내게 필요한 건 어쩌면 말할 수 있는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되기를 갈망한다. “자살로 가족을 잃은 것은 수치가 아니라 함께 울어야 하는 아픔이다”라는 슬로건이 보편적 이해로 인식될 수 있기를 갈망한다. 수치에 내몰려 고립된 채로 외롭게 살아가는 자살 유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열망한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마음껏 울며 상실을 위로받을 수 있는 세상. 난 그런 세상을 꿈꾼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가족이 추모와 애도보다 자책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인생인가.
상실,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인데 애도할 수 있는 권리마저 빼앗겨버린 슬픔은 얼마나 깊을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슬퍼할 권리를 박탈하지 말고, 그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58p 중.
#7
오빠를 잃고 난 뒤에야 그의 고통을 뒤늦게 이해했다. 자살한 모든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았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살을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려 한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은 자살 유가족이 우울증에 노출될 가능성을 더 높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 비해 자살할 가능성을 더 높이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빠를 잃은 이후, 나는 자살 유가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그들을 돌보며 그들의 애도를 지원하는 일이 곧 또 다른 죽음을 막는 자살 예방의 길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어떤 종교적 언어는 자살을 ‘벌 받을 죄’로 단정하며 고인을 죄인으로 만든다. 그 순간, 남겨진 사람도 함께 죄인이 된다. 가족을 잃은 뒤, 외부에서의 비난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 안에서
서로를 비난하고 원망할 때, 고통은 가중된다. 나는 내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아빠의 고통을 보지 못하고 아빠를 마음속으로 비난했다. 엄마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한 아빠를, 오빠가 무너질 때 투명인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아빠를 오랫동안 원망했었다. 아내와 아들을 가슴에 묻고도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 살아가는 것 자체를 죄스럽게 여기며 세월을 건너온 사람. 자식들의 원망과 사회의 손가락질을 견디며 살아온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살은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가족 체계 전체를 재편하는 사건이다. 그 사건 이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각자의 고통 속으로 숨어버렸다. 이렇듯, 자살 생존자들은 위로의 사각지대에 서 있다. 가족의 죽음을 설명해야 하고, 숨겨야 하고,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조언이 아니라 경청이다. 슬픔을 고치려는 손길이 아니라,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의 품이 절실하다.
고립과 고독을 친구 삼아 살아가고 있는 자살 생존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들의 아픔을 공감해 주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낙인과 정죄의 시선이 아니라
‘환대’의 마음으로
자살 생존자들의 삶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67p 중.
#8
한밤중에 자다가 일어나 처음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더듬어 보았다. 엄마가 떠난 이유를 나 역시 아빠로부터 찾으려 했다.
아빠가 좀더 능력 있는 남자였다면 엄마가 고생을 덜 하지는 않았을까, 고부간의 갈등으로 힘겨운 시절을 보낼 때 “나만 믿으라”며 엄마에게 좀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면 엄마가 지금까지 우리 곁에 남아 있지는 않았을까.
오죽하면, 오죽했으면 엄마가 떠났을까 아빠를 비난하고 원망만 했지, 아내를 잃은 남편으로서의 아버지 마음을 헤아려 보지 못했다. 아내를 죽인 남편이라는 오명을 쓰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아이 넷을 키워야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것이 죄스러웠을 아버지의 마음을, 그 마음을 말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아버지의 기막힌 슬픔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아빠는 엄마가 떠나신 지 40년이 넘었는데도 매년 음력 사월이 되면 시름시름 앓으신다. 가족의 자살을 막지 못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가족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아내와 아들을 가슴에 묻은 채 세상과 자식들의 비난을 한몸에 다 받아내며 그 삶을 버티고 견디며 살아오신 아버지. 그 마음이 헤아려지자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무능력한 아빠”라고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모진 삶의 무게를 버티고 살아 주신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몫을 다한 것은 아닐런지!
아버지는 이제 팔십이 훌쩍 넘으셨다. 나이 드실수록 자식이 그리운 모양이다. 가끔 전화를 드리면 “전화 줘서 고마워. 밥은 먹었어? 아픈 데는 없어?” 하고 물으신다. 유년 시절에 그토록 듣고 싶었던 나의 안부를 물으시는 아버지의 질문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의 사랑에 비스듬히 기대어 속삭여 본다.
“아버지, 우리를 버리지 않고
그 모진 삶을 견디고
살아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살아오시느라 정말 많이 애쓰셨습니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199p 중.
#9
엄마가 떠난 후에 사람들은 엄마를 비난하며 “몹쓸 년”이라고 제 앞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했어요. 엄마의 마지막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엄마’라는 사람의 인생은 평가절하되었지요. 그 세상의 정죄 속에 떠밀려 ‘엄마’를 입 밖에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어요. 아이 생일날 43년의 침묵을 깨뜨렸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 나의 사랑하는 엄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순간, 화산처럼 잠자고 있던 슬픔이 터져 나와 목놓아 울었어요. 지금까지 많이 흔들리며 살아왔죠. 엄마와 오빠를 먼저 떠나보내고 제 마음속 불안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하며 살아왔어요. 여리고 눈물 많은 제가 강한 여전사의 가면을 쓰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가면을 벗고 오롯이 ‘나’로 살아가고 싶어요. 경직되어 있는 몸의 힘을 빼고 유연한 갈대처럼 흔들리면서 말이에요. 가면을 벗은 저는 이전보다 더 자유해졌어요. 제가 자유롭게 살아가길 엄마는 누구보다 더 간절히 원하셨을 테지요.
엄마가 떠난 후에 저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의 저는 제가 어릴 때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꽤 괜찮은 어른이 되었어요. 이제 중년의 여인이 된 저를 보면 깜짝 놀라
실 거예요.
제가 이렇게 자라올 수 있었던 건 불안이 빛을 발한 걸까요. 아니면 슬프도록 아름다운 고통의 신비 때문일까요. 엄마가 오늘을 살고 있는 저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랑한다
는 말, 보고 싶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이리 긴 편지를 썼어요.
사랑해요,
엄마!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209p 중.
#10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 속에서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한 미영(가명) 씨는 상담 도중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겨우 고개를 든 그녀가 눈물이 그렁한 채
내게 나직이 물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시지요?”
말문이 막혀 끝내 다 뱉지 못한 그 망설임 속에서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는지 헤아려졌기에, 나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따뜻하게 감싸며 대답했다.
“네, 미영 씨.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던 건지, 그 마음이 제게 고스란히 전해져요”
자신의 상처 입은 마음이 판단 받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옅은 안도감이 번졌다. 상실을 몸소 경험하고 그 거친 애도의 여정을 지나온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이해와 공감이 전해질 때마다, 그녀는 허허벌판에 홀로 서있는 것 같은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온기를 느끼며 안도했다. 그 아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녀를 조금은 덜 외롭게 했을 것이다.
요즘에는 AI와 상담하는 사람들도 많다. ChatGPT와의 상담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나 AI는 인간이 겪는 고통을 제 몸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내담자를 향한 사랑과 애정을 품지 못한다. 지식과 정보에 근거한 공감의 언어를 AI가 흉내 낼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담자를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사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온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온몸으로 상실의 고통을 지나온 사람이 건네는 공감은 AI가 끝내 닿을 수 없는 자리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내게 찾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인다. 나에게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담자들과 동행하는 시간을 통해, 역설적이게도 나 역시 더 깊이 치유되고 회복되어 간다.
상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 슬픔의 미궁 속으로 미끄러져 한참을 울다가도, 어떤 날은 환하게 웃는다. 상실의 아픔은 극복되거나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며 그 아픔의 결이 조금씩 옅어질 뿐이다. 상실의 아픔으로 쓰린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 곁에서 나는 오늘도 ‘애도의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걷는다.
박경임, <슬픔은 발효 중> 247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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