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96026426 꿈꾸는 터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 49가지의 짧은 이야기로 만나는 일상의 하나님
(저자) 구미정
꿈꾸는 터 · 2008-11-01 150*212 · 256p
꿈꾸는 터 · 2008-11-01 150*212 · 2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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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일상의 샘물에서 하나님 생각을 퍼올리다”
이 책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픈 모든 이들을 위한 책으로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만남 속에서 문득 하나님 생각이 솟아나올 때, 그 생각의 길을 따라가는 한편 한편의 글이 실렸다. 이른바 일상(日常)의 신학화.
우리에게 일상은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聖所)다. 법궤 안에만 계시고, 지성소에만 계시고, 교회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닌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이야기다. 신학자의 주업무는 일상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거기에 신의 지문(指紋)을 새기는 것. 구미정 교수는 여성, 장애인 등 사회 약자들과 병들어 가는 우리네 세상의 틈에서 49가지의 신의 지문을 남겼다. ‘격동’의 삼십대를 미친 듯이 살아내면서,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세상을 끌어올린 그의 생명 이야기다.
하나님은 생명이다. 생명을 얻기위해 예수를 찾아온 야이로는, 원숭이를 만난다. 우리네 인생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다 얻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러 간 그 자리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원숭이가 나타난다.
이 책은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픈 모든 이들을 위한 책으로 일상의 소소한 경험과 만남 속에서 문득 하나님 생각이 솟아나올 때, 그 생각의 길을 따라가는 한편 한편의 글이 실렸다. 이른바 일상(日常)의 신학화.
우리에게 일상은 하나님을 만나는 성소(聖所)다. 법궤 안에만 계시고, 지성소에만 계시고, 교회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닌 우리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하나님 이야기다. 신학자의 주업무는 일상의 빈틈을 헤집고 들어가 거기에 신의 지문(指紋)을 새기는 것. 구미정 교수는 여성, 장애인 등 사회 약자들과 병들어 가는 우리네 세상의 틈에서 49가지의 신의 지문을 남겼다. ‘격동’의 삼십대를 미친 듯이 살아내면서, 그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세상을 끌어올린 그의 생명 이야기다.
하나님은 생명이다. 생명을 얻기위해 예수를 찾아온 야이로는, 원숭이를 만난다. 우리네 인생도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다 얻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하나님을 만나러 간 그 자리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원숭이가 나타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구미정
강원도 봄내(春川) 출신이다. 말만 또랑또랑하지 속은 어벙한 게 감자바위라는 말도 듣는다.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생태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참신한 논문으로 우리 나이로 서른셋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글자로 신학하기>가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 <생명의 해방> 등이 있다. 계명대학교, 대구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지금은 서울복음교회 교육목사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나는 모든 글쓰기가 치유글쓰기라고 믿는다. 하다못해 지루하고 딱딱한 논문을 쓰더라도, 문장이 조악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도록 집중해서 사고를 단련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구 시간강사로 ‘보따리 장사’를 하는 고달픈 생활 중에도 아직(?)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치유글쓰기의 힘이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헤매고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깨지는 삶의 길 위에 있지만, 나는 아직(!)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고 나와 함께 고민하며 적나라한 생명의 춤을 함께 추는 글벗들이 있는 한, 나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련다.”
강원도 봄내(春川) 출신이다. 말만 또랑또랑하지 속은 어벙한 게 감자바위라는 말도 듣는다. 이화여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생태여성주의에 바탕을 두고 신학과 윤리를 재구성하는 참신한 논문으로 우리 나이로 서른셋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있다. 저서로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글자로 신학하기>가 있으며, 역서로 <교회 다시 살리기>, <생명의 해방> 등이 있다. 계명대학교, 대구대학교, 영남신학대학교 등에서 강의했으며, 지금은 서울복음교회 교육목사와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로 있다.
“나는 모든 글쓰기가 치유글쓰기라고 믿는다. 하다못해 지루하고 딱딱한 논문을 쓰더라도, 문장이 조악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이 매끄럽도록 집중해서 사고를 단련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영혼이 정화되는 것 같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국구 시간강사로 ‘보따리 장사’를 하는 고달픈 생활 중에도 아직(?)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치유글쓰기의 힘이다.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헤매고 여전히 넘어지고 여전히 깨지는 삶의 길 위에 있지만, 나는 아직(!)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내 글을 읽어주고 나와 함께 고민하며 적나라한 생명의 춤을 함께 추는 글벗들이 있는 한, 나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하련다.”
추천의 글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우를 편들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음모를 파헤치고, 거대 맘몬세력에 의한 인간 신체의 상품화를 고발하는 글에서도, 그의 신학언어는 발랄한 움직씨로 팔팔하게 살아 있고 창조적 젊음의 생동하는 숨결을 잃지 않는다.”
구미정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이야기꾼의 신학일 수밖에 없다. ‘중력(重力)의 영’(니체)에라도 사로잡힌 듯 매사에 심각하고 진지하고 경직된 신학 풍토에서 그의 신학은 ‘춤추는 신’에 들린 듯 가볍고 경쾌하고 신명이 실려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우를 편들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음모를 파헤치고, 거대 맘몬세력에 의한 인간 신체의 상품화를 고발하는 글에서도, 그의 신학언어는 발랄한 움직씨로 팔팔하게 살아 있고 창조적 젊음의 생동하는 숨결을 잃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에 터한 그의 영성과 윤리감각이 자아, 교리, 교권 같은 것들에 갇혀 있지 않고, 하늘, 사람,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신학이 시와 소설, 그림, 음악, 영화 등 동시대의 문화예술과 깊이 교감하며 사유의 진폭을 끊임없이 확장해가기 때문일 것이다.
‘너야말로 예수’라고 그가 말한 필리핀의 장애우 진정한 거인 ‘막달레나 타노’처럼 조용한 반란(!)를 꾀하는 구미정, 자폐증에 빠진 한국 신학과 교회에 진정 건강하고 예수의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엽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 화이팅!
(시인, 고진하 목사)
구미정은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이야기꾼의 신학일 수밖에 없다. ‘중력(重力)의 영’(니체)에라도 사로잡힌 듯 매사에 심각하고 진지하고 경직된 신학 풍토에서 그의 신학은 ‘춤추는 신’에 들린 듯 가볍고 경쾌하고 신명이 실려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 장애우를 편들고, 가부장적 자본주의 음모를 파헤치고, 거대 맘몬세력에 의한 인간 신체의 상품화를 고발하는 글에서도, 그의 신학언어는 발랄한 움직씨로 팔팔하게 살아 있고 창조적 젊음의 생동하는 숨결을 잃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에 터한 그의 영성과 윤리감각이 자아, 교리, 교권 같은 것들에 갇혀 있지 않고, 하늘, 사람, 세계를 향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의 신학이 시와 소설, 그림, 음악, 영화 등 동시대의 문화예술과 깊이 교감하며 사유의 진폭을 끊임없이 확장해가기 때문일 것이다.
‘너야말로 예수’라고 그가 말한 필리핀의 장애우 진정한 거인 ‘막달레나 타노’처럼 조용한 반란(!)를 꾀하는 구미정, 자폐증에 빠진 한국 신학과 교회에 진정 건강하고 예수의 부활신앙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엽기’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엽기적인 그녀, 화이팅!
(시인, 고진하 목사)
목차
1부. 혈루병 여인, 예수를 만나다(여성, 장애우 등 사회 약자들을 위한 이야기)
엽기적인(?) 그녀
‘오아시스’는 없다
하인스 워드 유감
뚱뚱한 개그우먼과 가난한 미술교사
노레보와 비아그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모성을 보호한다고?
‘물 좋은 생선’으로부터의 자유
‘여인천하’ 다시보기
마리아의 크리스마스
‘마르다’의 추석
투명인간 살리기
연변개그 - ‘수지 김’ 버전
‘다모폐인’이 남긴 것
꽃미남 권하는 사회
‘지름신’의 강림을 경계함
2부. 예수, 야이로를 만나다(병들어 가는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이야기)
피가족과 물가족
<곰 세 마리>에 딴지를 거는 이유
‘가정의 달’ 뒤집어 보기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섹스, 마약,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나는 네가 지난 세월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못 다 핀 꽃 두 송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자선냄비 혹은 양심지수에 대하여
‘대박’ 권하는 사회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길수가족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통일을 잉태하는 여성들
골방예찬
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우리주변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만지면 변한다
탱고 한 번 추실래요?
황사 그리고 부활
청녹색 7월에는
등명사와 휴가문화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위험한 밥상, GMO
세상의 모든 아기는 거룩하다
얘들아, 노올자!
평화감수성
함께 밥을 먹고 싶어
오태양씨의 ‘발칙한’ 꿈
고래사냥
몸살의 영성
틈새예찬
나무, 단풍 들다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엽기적인(?) 그녀
‘오아시스’는 없다
하인스 워드 유감
뚱뚱한 개그우먼과 가난한 미술교사
노레보와 비아그라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모성을 보호한다고?
‘물 좋은 생선’으로부터의 자유
‘여인천하’ 다시보기
마리아의 크리스마스
‘마르다’의 추석
투명인간 살리기
연변개그 - ‘수지 김’ 버전
‘다모폐인’이 남긴 것
꽃미남 권하는 사회
‘지름신’의 강림을 경계함
2부. 예수, 야이로를 만나다(병들어 가는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이야기)
피가족과 물가족
<곰 세 마리>에 딴지를 거는 이유
‘가정의 달’ 뒤집어 보기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섹스, 마약,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나는 네가 지난 세월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못 다 핀 꽃 두 송이
결혼은 미친 짓이다?
자선냄비 혹은 양심지수에 대하여
‘대박’ 권하는 사회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
길수가족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통일을 잉태하는 여성들
골방예찬
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우리주변 생명을 살리는 이야기)
만지면 변한다
탱고 한 번 추실래요?
황사 그리고 부활
청녹색 7월에는
등명사와 휴가문화
그래도 사람만이 희망이다
위험한 밥상, GMO
세상의 모든 아기는 거룩하다
얘들아, 노올자!
평화감수성
함께 밥을 먹고 싶어
오태양씨의 ‘발칙한’ 꿈
고래사냥
몸살의 영성
틈새예찬
나무, 단풍 들다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책 속으로
“어느덧 우리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사회 양극화에 대한 하나님 마음을 끌어 올린다. 혈루병 여인처럼 우리 사회의 변두리로 전락해버린 우리 이웃들을 예수의 마음으로 안는다.”
… 그런데 최근의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뜬금없이 투명인간이 떠오른다. 이랜드 기업인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데모하는 아줌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찍순이’라 부르는 그들, 여섯 시간 동안 꼼짝 없이 서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바코드만 찍어대는 날이 수두룩한 그들, 그렇게 일해서 번 돈 80만원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살림에 보태고 아이들 학원 보내고…, 0개월 계약이니 비정규직 보호법이니 그런 거 몰라도 좋으니까 제발 일자리만 빼앗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하는 그들, 그들이야말로 투명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생글생글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붙박이처럼 제 자리를 지키며 서 있었다. 거의가 40대를 전후한 중년 여성으로, 중고등학생 자녀를 한 둘쯤 두고 있는 그들. 집에 가면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아내요 존경받는 어머니로서 어엿한 대접을 받고 있을 터였다.
… 아이러니하게도 투명인간의 구원은 그가 사람들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 여기,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눈물로 호소한 아줌마들의 절규가 하늘에 닿기를 빌어본다. 이 땅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아줌마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그들의 고단한 삶과 소박한 꿈에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다.
아, 그보다는, 제발 기독교라는 이름이 더 이상 진흙탕 속으로 추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들, 바로 우리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파업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1부. ‘혈루병 여인, 예수를 만나다’ 中. 「투명인간 살리기」)
“가짜 사랑이 판치는 세상, 예수의 진짜 사랑을 통해 생명의 넘실거림을 본다. 그 사랑으로 복잡하고도 지독하게 엉켜있는 이 사회가 한올 한올 풀어진다.”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간청한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에 연민이 끓어오른다.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예수도 하나님처럼 말씀의 능력이 있어, 말 한마디면 능히 그의 병을 고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도 예수는 굳이 그의 몸에 손을 대신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말이 아님을, 단순한 병 고침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그리 하신다. 이 나병 환자의 원초적 소망은 온전한 인격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아, 얼마나 그리웠던가? 사람다운 대접!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삶’에서 나온 것이니,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살아있으되 죽은 듯이 취급된다는 뜻이리라.
예수의 손길이 그의 몸에 닿는다. 나병을 앓는 몸이다. 사람마다 옮을까봐 피하고, 더럽다고 욕하는 몸이다. 우리 시대의 에이즈(AIDS)처럼 병 자체의 고통에 더하여 악성 루머와 저주로 채색된 몸이다. 그런 몸에 예수가 손을 댄 것이다. 예수의 사랑은 그런 식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랑,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랑, 그야말로 ‘올인’이다. 이런 사랑이라야 생명력이 있다. 죽음의 세력에 유폐당해 있던 나병 환자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나병이 그에게 붙어있을 수가 없다. 어둠이 아주 작은 빛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마침내 깨끗하게 되었다. 빛의 승리요, 생명의 축제다.
(제2부. ‘예수, 야이로를 만나다’ 中. 「골방예찬」)
“한 개인이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둔감하였다는 점에서, 그 공동체에 속한 동시대인 모두는 간접적인 의미의 자살 방조자 내지는 공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 처음 압력솥에 밥 짓는 법을 배울 때 엄마는 덜렁대는 나를 붙잡고 단단히 경고했었다.
“압력추에서 김이 다 빠지기 전에는 절대 뚜껑을 열면 안돼, 만약 그랬다가는 폭발해, 그러니 제발 조심해!”
삶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면 언제나 압력솥이 생각난다. 그리고 엄마의 간절한 당부도 함께 메아리친다.
… 인생이란 탱고를 추는 것이다. 음악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가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생명을 낳고 돌보고 거두어들이는 하나님의 우주적 춤이 계속되는 한, 우리도 그 춤의 일부가 되어 열심히, 신나게 스텝을 밟을 일이다.
자살의 유혹과 충동이 아무리 커도, 일단 한 번 김이 빠지면 그것은 오히려 건강한 삶을 위한 자양분으로 승화될 수 있다. 다시 느린 호흡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김을 빼줄 압력추가 의외로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삶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제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中. 「탱고 한 번 추실래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일상에서 그를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예측불허의 우리 삶, 굽이굽이마다 스며있는 예수의 생명의 춤사위에 손을 맞잡는다.”
살다보면, 야이로 같은 경우를 참 많이 당한다. 한 고비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용케 원숭이가 나타나 공을 엉뚱한 데 떨어뜨려 놓고 도망간다. 그때마다 원숭이를 미워하고, 또 그 원숭이를 만든 하나님을 원망한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원숭이를 끌어안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이 될 게다.
예측불허의 세상을 건너가는 법,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듯 발걸음을 내딛는 것. 발이 좀 엉키면 어떤가? 예수님과 함께 추는 춤인데. 두려움이야말로 믿음의 적이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는 것이 주 업무였던 회당장 야이로와 그런 종교적 잣대에 의해 부정한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혈루병 여인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열두 해나 자궁에서 피가 흘러 고통받았던 한 여인과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하려고 하는 열두 살 소녀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아버지와 딸이, 스승과 제자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새로운 생명의 춤사위를 시작할 자리다.
(제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中.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 그런데 최근의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뜬금없이 투명인간이 떠오른다. 이랜드 기업인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데모하는 아줌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신을 ‘찍순이’라 부르는 그들, 여섯 시간 동안 꼼짝 없이 서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바코드만 찍어대는 날이 수두룩한 그들, 그렇게 일해서 번 돈 80만원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살림에 보태고 아이들 학원 보내고…, 0개월 계약이니 비정규직 보호법이니 그런 거 몰라도 좋으니까 제발 일자리만 빼앗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하는 그들, 그들이야말로 투명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생글생글 나긋나긋한 몸짓으로 붙박이처럼 제 자리를 지키며 서 있었다. 거의가 40대를 전후한 중년 여성으로, 중고등학생 자녀를 한 둘쯤 두고 있는 그들. 집에 가면 그들도 누군가의 사랑스런 아내요 존경받는 어머니로서 어엿한 대접을 받고 있을 터였다.
… 아이러니하게도 투명인간의 구원은 그가 사람들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이루어진다는 사실! 여기, 우리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눈물로 호소한 아줌마들의 절규가 하늘에 닿기를 빌어본다. 이 땅의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아줌마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부디 그들의 고단한 삶과 소박한 꿈에 날개가 달렸으면 좋겠다.
아, 그보다는, 제발 기독교라는 이름이 더 이상 진흙탕 속으로 추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이름을 망녕되이 부르는 자들, 바로 우리 자신으로 인해 하나님의 파업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1부. ‘혈루병 여인, 예수를 만나다’ 中. 「투명인간 살리기」)
“가짜 사랑이 판치는 세상, 예수의 진짜 사랑을 통해 생명의 넘실거림을 본다. 그 사랑으로 복잡하고도 지독하게 엉켜있는 이 사회가 한올 한올 풀어진다.”
나병 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로 와서 간청한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의 마음에 연민이 끓어오른다.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예수도 하나님처럼 말씀의 능력이 있어, 말 한마디면 능히 그의 병을 고칠 수 있었을 게다. 그런데도 예수는 굳이 그의 몸에 손을 대신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말이 아님을, 단순한 병 고침이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그리 하신다. 이 나병 환자의 원초적 소망은 온전한 인격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아, 얼마나 그리웠던가? 사람다운 대접! 사람이라는 말 자체가 ‘삶’에서 나온 것이니,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은 살아있으되 죽은 듯이 취급된다는 뜻이리라.
예수의 손길이 그의 몸에 닿는다. 나병을 앓는 몸이다. 사람마다 옮을까봐 피하고, 더럽다고 욕하는 몸이다. 우리 시대의 에이즈(AIDS)처럼 병 자체의 고통에 더하여 악성 루머와 저주로 채색된 몸이다. 그런 몸에 예수가 손을 댄 것이다. 예수의 사랑은 그런 식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랑,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랑, 그야말로 ‘올인’이다. 이런 사랑이라야 생명력이 있다. 죽음의 세력에 유폐당해 있던 나병 환자의 몸에서 생명의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나병이 그에게 붙어있을 수가 없다. 어둠이 아주 작은 빛도 이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마침내 깨끗하게 되었다. 빛의 승리요, 생명의 축제다.
(제2부. ‘예수, 야이로를 만나다’ 中. 「골방예찬」)
“한 개인이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둔감하였다는 점에서, 그 공동체에 속한 동시대인 모두는 간접적인 의미의 자살 방조자 내지는 공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 처음 압력솥에 밥 짓는 법을 배울 때 엄마는 덜렁대는 나를 붙잡고 단단히 경고했었다.
“압력추에서 김이 다 빠지기 전에는 절대 뚜껑을 열면 안돼, 만약 그랬다가는 폭발해, 그러니 제발 조심해!”
삶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대할 때면 언제나 압력솥이 생각난다. 그리고 엄마의 간절한 당부도 함께 메아리친다.
… 인생이란 탱고를 추는 것이다. 음악이 언제 시작되고 끝나는가는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 생명을 낳고 돌보고 거두어들이는 하나님의 우주적 춤이 계속되는 한, 우리도 그 춤의 일부가 되어 열심히, 신나게 스텝을 밟을 일이다.
자살의 유혹과 충동이 아무리 커도, 일단 한 번 김이 빠지면 그것은 오히려 건강한 삶을 위한 자양분으로 승화될 수 있다. 다시 느린 호흡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김을 빼줄 압력추가 의외로 숨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삶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
(제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中. 「탱고 한 번 추실래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일상에서 그를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이다. 예측불허의 우리 삶, 굽이굽이마다 스며있는 예수의 생명의 춤사위에 손을 맞잡는다.”
살다보면, 야이로 같은 경우를 참 많이 당한다. 한 고비 잘 넘어가나 싶었는데, 용케 원숭이가 나타나 공을 엉뚱한 데 떨어뜨려 놓고 도망간다. 그때마다 원숭이를 미워하고, 또 그 원숭이를 만든 하나님을 원망한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원숭이를 끌어안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이 될 게다.
예측불허의 세상을 건너가는 법, 의외로 아주 단순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춤추듯 발걸음을 내딛는 것. 발이 좀 엉키면 어떤가? 예수님과 함께 추는 춤인데. 두려움이야말로 믿음의 적이다.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는 것이 주 업무였던 회당장 야이로와 그런 종교적 잣대에 의해 부정한 죄인으로 낙인찍혔던 혈루병 여인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열두 해나 자궁에서 피가 흘러 고통받았던 한 여인과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하려고 하는 열두 살 소녀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춘다. 아버지와 딸이, 스승과 제자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춤을 춘다.
원숭이가 공을 떨어뜨린 자리, 바로 그 자리가 새로운 생명의 춤사위를 시작할 자리다.
(제3부.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中. 「야이로, 원숭이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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