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96989813 꽃자리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
(저자) 김기석
꽃자리 · 2013-04-20 153*228 · 336p
꽃자리 · 2013-04-20 153*228 · 3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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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그 광대무변한 세계에 잠기다
시는 우리 삶에 유용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를 읽는다. 특히 쓸쓸한 시간에는 더더욱 찾게 된다. 시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고 엎드렸던 모세처럼 우리도 시적으로 변용된 현실 앞에서 새로운 삶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시는 우리를 분주함 가운데 잊고 있던 본래적 실존에 대한 물음 앞에 세우고, 성찰을 위한 여백을 열어준다. 일상의 언어를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의미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시의 마법이 놀랍다.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기석 목사의 시편 묵상집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는 시편에서 가려 뽑은 시를 더불어 읽음으로써,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의미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시에 익숙한 이들이다. 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이미 시의 리듬 속에 깊이 잠겨 있다. 예배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승된 시편은 교회 안에서도 역시 즐겨 낭송되고 있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찬양, 기도, 부르짖음이 담겨 있다.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댕돌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율법을 찬미하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고난에 처한 이가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는 가슴 절절한 기도도 있고, 제도화된 불의에 의해 짓눌린 이들이 보복을 바라는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요청도 있다.
“의로운 사람이 악인이 당하는 보복을 목격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시58:10).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시137:8-9)
시편은 지금도 여전히 낭송되면서 시인들이 노정했던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우리 속에도 오롯이 전해준다. 결국 시편은 하나님 앞에서 굳이 우리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시편은 그런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기 내면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 그림자는 외면하는 순간 강화되게 마련이다. 강화된 그림자는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굴레가 된다. 시편은 부끄럽고도 세속적인 감정들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함으로써 숭고함을 향한 순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 개인의 삶에서 여전히 묵상되고 있는 시편은 또한 예배 공동체 속에서 낭독되어야 한다. 시편이 개인에 의해 작시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전승해 온 것은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그 시를 전승해 온 까닭은 그것이 예배 공동체의 삶 혹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때 그 시는 공동체의 시가 된다. 그런 시편을 함께 낭독하면서 공동체는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
개신교 영성이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동 기도문’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마다, 교회력의 주기마다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감화에 의해 바치는 자발적 기도도 꼭 필요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도 꼭 필요하다. 그것은 세파에 떠밀리기 쉬운 우리 마음을 비끌어매주는 든든한 끈이 된다. 신앙의 선배들이 정성껏 바쳤던 ‘그 기도’를 지금 여기서 바치면서 우리는 성도의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게 된다. 시편만큼 좋은 공동의 기도가 또 있을까?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는 김기석 목사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선포된 시편 설교를 모은 것이다. 시의 행간에 서려 있는 선인들의 기쁨과 슬픔, 경탄과 탄식, 절망과 희망을 읽어내려 노력했던 기록이 이 책에 오롯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시편을 묵상하는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던 혼돈과 고통과 번민의 어둠이 스러지곤 했다”는 김기석 목사의 고백은 시편의 울림이 주는 놀라운 파급력을 에둘러 보여준다. 신앙공동체와 함께 써온 “우리만의 시편”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써나가기를 기대한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시는 우리 삶에 유용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를 읽는다. 특히 쓸쓸한 시간에는 더더욱 찾게 된다. 시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불붙은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고 엎드렸던 모세처럼 우리도 시적으로 변용된 현실 앞에서 새로운 삶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시는 우리를 분주함 가운데 잊고 있던 본래적 실존에 대한 물음 앞에 세우고, 성찰을 위한 여백을 열어준다. 일상의 언어를 재배치하는 것만으로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의미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시의 마법이 놀랍다.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기석 목사의 시편 묵상집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는 시편에서 가려 뽑은 시를 더불어 읽음으로써, 무료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의미 충만한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사실 기독교인들은 시에 익숙한 이들이다. 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이미 시의 리듬 속에 깊이 잠겨 있다. 예배 공동체에 의해 만들어지고 전승된 시편은 교회 안에서도 역시 즐겨 낭송되고 있다. 시편에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찬양, 기도, 부르짖음이 담겨 있다.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댕돌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율법을 찬미하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고난에 처한 이가 하나님의 개입을 바라는 가슴 절절한 기도도 있고, 제도화된 불의에 의해 짓눌린 이들이 보복을 바라는 거칠기 이를 데 없는 요청도 있다.
“의로운 사람이 악인이 당하는 보복을 목격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악인의 피로 그 발을 씻게 해주십시오”(시58:10).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시137:8-9)
시편은 지금도 여전히 낭송되면서 시인들이 노정했던 희노애락애오욕의 감정을 우리 속에도 오롯이 전해준다. 결국 시편은 하나님 앞에서 굳이 우리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시편은 그런 감정들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할 수 있도록 해준다. 자기 내면에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다. 그 그림자는 외면하는 순간 강화되게 마련이다. 강화된 그림자는 우리를 부자유하게 하는 굴레가 된다. 시편은 부끄럽고도 세속적인 감정들을 정직하게 대면하게 함으로써 숭고함을 향한 순례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한 개인의 삶에서 여전히 묵상되고 있는 시편은 또한 예배 공동체 속에서 낭독되어야 한다. 시편이 개인에 의해 작시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전승해 온 것은 공동체이다. 공동체가 그 시를 전승해 온 까닭은 그것이 예배 공동체의 삶 혹은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적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보편적 공감으로 확장될 때 그 시는 공동체의 시가 된다. 그런 시편을 함께 낭독하면서 공동체는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
개신교 영성이 깊어지지 않는 이유는 ‘공동 기도문’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다양한 순간마다, 교회력의 주기마다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감화에 의해 바치는 자발적 기도도 꼭 필요하지만, 공동체가 함께 드리는 기도도 꼭 필요하다. 그것은 세파에 떠밀리기 쉬운 우리 마음을 비끌어매주는 든든한 끈이 된다. 신앙의 선배들이 정성껏 바쳤던 ‘그 기도’를 지금 여기서 바치면서 우리는 성도의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게 된다. 시편만큼 좋은 공동의 기도가 또 있을까?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는 김기석 목사가 신앙공동체 안에서 선포된 시편 설교를 모은 것이다. 시의 행간에 서려 있는 선인들의 기쁨과 슬픔, 경탄과 탄식, 절망과 희망을 읽어내려 노력했던 기록이 이 책에 오롯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시편을 묵상하는 동안 나를 사로잡고 있던 혼돈과 고통과 번민의 어둠이 스러지곤 했다”는 김기석 목사의 고백은 시편의 울림이 주는 놀라운 파급력을 에둘러 보여준다. 신앙공동체와 함께 써온 “우리만의 시편”을, 이제 독자들과 함께 써나가기를 기대한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김기석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 시, 문학,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진지한 글쓰기와 빼어난 문장력으로 신앙의 새로운 층을 열었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질펀한 삶의 현실에 단단하게 발 딛고 서 있는 그의 글은 ‘한 시대의 온도계’라 할 수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의 표면이 아닌 이면, 그 너머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번득인다. 낮은 자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쓴 산상수훈 강해에 이어, 십계명과 주기도문, 그리고 사도신경을 통해 또 한 번 비움과 나눔, 온전함과 하나 됨, 앎과 삶의 일치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고백 없는 실천은 건조하고, 실천 없는 고백은 공허하다” 말한 그는 이 책을 통해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의 삶의 자리를 짚어보는 동시에, 이 세 가지는 우리 삶에서 드러나야만 완성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입으로는 외되 삶에선 느껴지지 않았던 ‘교회가 잃어버린 이정표’를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되살려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파교회 전도사, 이화여고 교목, 청파교회 부목사를 거쳐 1997년부터 청파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삶이 메시지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예수 새로 보기》, 《자비를 구하는 외침》 등이 있다.
문학적 깊이와 삶의 열정을 겸비한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 시, 문학, 동서고전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진지한 글쓰기와 빼어난 문장력으로 신앙의 새로운 층을 열었다. 화려한 문학적 수사에 머물지 않고 질펀한 삶의 현실에 단단하게 발 딛고 서 있는 그의 글은 ‘한 시대의 온도계’라 할 수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따듯한 시선과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세계의 표면이 아닌 이면, 그 너머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번득인다. 낮은 자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쓴 산상수훈 강해에 이어, 십계명과 주기도문, 그리고 사도신경을 통해 또 한 번 비움과 나눔, 온전함과 하나 됨, 앎과 삶의 일치라는 화두를 꺼내 들었다. “고백 없는 실천은 건조하고, 실천 없는 고백은 공허하다” 말한 그는 이 책을 통해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의 삶의 자리를 짚어보는 동시에, 이 세 가지는 우리 삶에서 드러나야만 완성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입으로는 외되 삶에선 느껴지지 않았던 ‘교회가 잃어버린 이정표’를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로 되살려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파교회 전도사, 이화여고 교목, 청파교회 부목사를 거쳐 1997년부터 청파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삶이 메시지다》, 《기자와 목사, 두 바보 이야기》, 《길은 사람에게로 향한다》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아씨시의 프란체스코》, 《예수 새로 보기》, 《자비를 구하는 외침》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 시편의 세계에 잠기다
1장 영혼의 발신음
주님의 환한 얼굴
고통, 생의 동반자
우리의 피난처
하나님은 늘 이기신다
갈 길 멀고, 밤 깊어도
명랑하게 싸워 이기기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어찌하여 침묵하십니까?
이제 일어나소서
2장 영혼의 파열름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깊이 생각하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나는 기적이다
하나님은 내가 받을 몫의 전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단 하나의 소원
마땅히 가야 할 길
3장 영혼의 발돋움
내 님의 사랑은
하늘에 닿은 사랑
아침을 기다리며
구원의 잔을 들고
늘 푸른 나무처럼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래
소원의 항구
4장 영혼의 디딤돌
젖 뗀 아이처럼
평화가 깃들기를!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기름과 이슬
괜찮습니다
평화의 집에 머물라
5장 영혼의 새로봄
봄빛으로 오는 말씀
말씀 등불 밝히고
말씀을 길로 삼아
말씀에 맛들이라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1장 영혼의 발신음
주님의 환한 얼굴
고통, 생의 동반자
우리의 피난처
하나님은 늘 이기신다
갈 길 멀고, 밤 깊어도
명랑하게 싸워 이기기
죽음의 잠에 빠지지 않게
어찌하여 침묵하십니까?
이제 일어나소서
2장 영혼의 파열름
좋은 날 보기를 원하면
깊이 생각하라
사람이 무엇이기에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소서
나는 기적이다
하나님은 내가 받을 몫의 전부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단 하나의 소원
마땅히 가야 할 길
3장 영혼의 발돋움
내 님의 사랑은
하늘에 닿은 사랑
아침을 기다리며
구원의 잔을 들고
늘 푸른 나무처럼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행복하십니까? 아니오,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래
소원의 항구
4장 영혼의 디딤돌
젖 뗀 아이처럼
평화가 깃들기를!
우리를 회복시켜 주소서
기름과 이슬
괜찮습니다
평화의 집에 머물라
5장 영혼의 새로봄
봄빛으로 오는 말씀
말씀 등불 밝히고
말씀을 길로 삼아
말씀에 맛들이라
땅의 모습을 새롭게 하소서
그 명을 땅에 보내시니
책 속으로
거센 풍랑을 뚫고 물 위를 걷던 베드로도 어느 순간 물속에 빠져 들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 그의 마음을 맡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물 위를 걷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순간 그는 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주님께 마음을 맡길 때 그는 가벼웠지만, 자기를 의식할 때 무거워졌다. 차이는 ‘마음’이다. 마음이란 참 신비하다. 마음으로 천국을 빚기도 하지만 지옥을 빚기도 한다. 삶의 실상을 꿰뚫어 본 원효대사는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빚어지는 것(一切唯心造)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는 우리들이다. 요즘 마음공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시인은 우리에게 격려가 되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 37:23-24).
- 영혼의 발신음 중에서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시 27:3).
하나님의 은총에 자기를 온전히 맡긴 사람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부력을 경험해 본 사람의 고백이다. 길들인 독수리와 함께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날개를 편 채 유영하는 독수리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똑같은 바람을 타고 날았다. 그 모습이 경이로웠다. 신앙인이란 어쩌면 하나님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일을 도외시하고 산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바람은 때로는 지친 나그네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일 때도 있지만, 앞에 있는 장애물을 다 날려버리는 회오리바람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일깨우는 봄바람일 때도 있지만, 불의한 세상과 권력을 날려버리는 태풍일 때도 있다. 가깝게 느끼는 몇 분의 목사님들은 평소에는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하고 겸손하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를 질타할 때는 사자로 변한다. 두 모습 다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다.
- 영혼의 파열음 중에서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시 136:1-3, 23-26).
시편 136편을 읽을 때마다 거의 즉각적으로 ‘강강술래’나 ‘쾌지나칭칭나네’를 떠올리게 된다. 이 시는 선창자가 두 장단 길이의 앞소리를 메기면 회중들이 뒷소리로 받아주는 전형적인 선후창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선창자가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하면 회중들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고 받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인자하심은 ‘언약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우리 마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고백을 반복하는 것이다. 성경 번역자들이 시의 압운(rhyme)을 살려 리듬감을 부여했더라면 더 신명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미처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이 시는 26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뒤는 우리가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 이 단순한 리듬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일상의 속박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새기게 되고, 함께 부르는 노래를 통해 깊은 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 영혼의 발돋움 중에서
진실한 믿음은 안식의 세계이다.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차지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내 거라고 생각하던 것을 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빌립보서 3:7)고 했다. 시편 131편의 시인은 하나님께로 돌아간 영혼의 평안함을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2절) 하고 노래한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젖을 먹는 아기를 생각해 보라. 아기의 눈은 엄마의 눈을 응시한다. 엄마도 호수같이 맑은 아기의 눈을 사랑스레 바라본다. 젖을 먹이면서도 텔레비전만 바라보는 철없는 엄마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 무언의 교감이 일어난다. 아기는 한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어느 결에 살포시 잠에 빠진다. 염려도 근심도 시름도 없다. 참 맛있는 잠일 것이다.
- 영혼의 디딤돌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다. 존재 전체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씀 한 마디라도 붙잡고 철저히 궁구하다 보면 삶의 중추가 보이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입장이 생긴다. 그걸 붙잡아야 삶이 요동치지 않는다. 시인은 그걸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 1:3).
- 영혼의 새로봄 중에서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는다(시 37:23-24).
- 영혼의 발신음 중에서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시 27:3).
하나님의 은총에 자기를 온전히 맡긴 사람의 고백이다. 하나님의 부력을 경험해 본 사람의 고백이다. 길들인 독수리와 함께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날개를 편 채 유영하는 독수리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똑같은 바람을 타고 날았다. 그 모습이 경이로웠다. 신앙인이란 어쩌면 하나님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여 세상일을 도외시하고 산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바람은 때로는 지친 나그네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산들바람일 때도 있지만, 앞에 있는 장애물을 다 날려버리는 회오리바람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영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로운 희망의 싹을 일깨우는 봄바람일 때도 있지만, 불의한 세상과 권력을 날려버리는 태풍일 때도 있다. 가깝게 느끼는 몇 분의 목사님들은 평소에는 너무나 부드럽고 따뜻하고 겸손하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를 질타할 때는 사자로 변한다. 두 모습 다 하나님의 사람다운 모습이다.
- 영혼의 파열음 중에서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모든 주 가운데 가장 크신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우리가 낮아졌을 때에, 우리를 기억하여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우리를 우리의 원수들에게서 건져 주신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시는 분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시 136:1-3, 23-26).
시편 136편을 읽을 때마다 거의 즉각적으로 ‘강강술래’나 ‘쾌지나칭칭나네’를 떠올리게 된다. 이 시는 선창자가 두 장단 길이의 앞소리를 메기면 회중들이 뒷소리로 받아주는 전형적인 선후창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선창자가 “모든 신들 가운데 가장 크신 하나님께 감사하여라” 하면 회중들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고 받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영원한 인자하심은 ‘언약에 바탕을 둔 사랑’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는 우리 마음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고백을 반복하는 것이다. 성경 번역자들이 시의 압운(rhyme)을 살려 리듬감을 부여했더라면 더 신명나게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미처 거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 같다. 이 시는 26절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뒤는 우리가 얼마든지 이어갈 수 있다. 이 단순한 리듬을 반복하는 동안 사람들은 일상의 속박에서 풀려나 하나님의 은총을 깊이 새기게 되고, 함께 부르는 노래를 통해 깊은 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 영혼의 발돋움 중에서
진실한 믿음은 안식의 세계이다.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이 나를 차지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내 거라고 생각하던 것을 버리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빌립보서 3:7)고 했다. 시편 131편의 시인은 하나님께로 돌아간 영혼의 평안함을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듯이 내 영혼도 젖 뗀 아이와 같습니다”(2절) 하고 노래한다.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젖을 먹는 아기를 생각해 보라. 아기의 눈은 엄마의 눈을 응시한다. 엄마도 호수같이 맑은 아기의 눈을 사랑스레 바라본다. 젖을 먹이면서도 텔레비전만 바라보는 철없는 엄마가 없지는 않지만 말이다. 아기와 엄마 사이에 무언의 교감이 일어난다. 아기는 한없이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어느 결에 살포시 잠에 빠진다. 염려도 근심도 시름도 없다. 참 맛있는 잠일 것이다.
- 영혼의 디딤돌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읽는 것이 아니다. 존재 전체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씀 한 마디라도 붙잡고 철저히 궁구하다 보면 삶의 중추가 보이게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입장이 생긴다. 그걸 붙잡아야 삶이 요동치지 않는다. 시인은 그걸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시 1:3).
- 영혼의 새로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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