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9912908 훈훈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시각장애인 목회자들과 함께한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
(저자) AL 미니스트리
훈훈 · 2026-05-27   150*210 · 2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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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목회자들과 떠난
국내 최초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
10박11일간의 뜨거운 순례 여정을 담다


[책 소개]


시각장애인 목회자들과 떠난
국내 최초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
10박11일간의 뜨거운 순례 여정을 담다


AL미니스트리를 통해 하나님은 시각장애인 성도 및 목회자들을 위한 복음의 길을 열어오셨다. 그렇게 탄생한 소중한 결과물이 바로 ‘촉각 성경 지도’였다. 시각장애인 성도들도 자신의 촉각을 통해서 성경의 지리를 입체적으로 익혀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지도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도의 탄생에 이어서, 도전적으로 기획된 성지순례가 바로 ‘시각장애인 목회자들과 함께한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이다.

본 도서 「길 위에서 바울을 만나다」는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마흔두 명이 어우러져 함께 떠났던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 여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23명의 순례기와 350여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본 도서는,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성지순례를 경험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리스-튀르키예에 담긴 바울의 전도 흔적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함께 순례 공동체를 이뤄갔을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구체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다.

본 도서 「길 위에서 바울을 만나다」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걸었던 생생한 발걸음에 대한 기록이며, 단순히 보이는 것을 설명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감각을 따라 한 사람의 순례에 안착한 감격이 또 다른 사람의 순례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익히고 배우는 책이라기보다는, 머물고 느끼는 여정에 가깝다. 독자에게 단순히 지식을 주는 책이 아니라, 바울의 길 위에 독자를 세우는 책에 가깝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된 책인 것이다.

본 도서 「길 위에서 바울을 만나다」를 기획한 AL미니스트리(정민교 목사)는 고백한다.

“앞으로 펼쳐질 ‘촉각 순례’에 대한 저의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촉각순례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보지 못하는 이들도 ‘말씀의 현장’을 손으로 확인하고, 교회가 함께 걸으며 복음의 지형을 다시 배우는 ‘영적 여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순례가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시각장애인과 함께 복음을 새롭게 읽는 통로가 되고,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사역의 길이 되기를 꿈꿉니다.

더불어 저는 촉각 순례가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교회가 복음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우리가 눈으로만 읽어 왔던 성경을 손으로 다시 읽는 순간,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공간이 되고, 길이 되고, 체험이 됩니다.

손끝으로 더듬는 지형 하나, 도시의 위치 하나, 믿음의 선배들이 건너간 바다의 윤곽 하나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 도서 「길 위에서 바울을 만나다」는 ‘나 중심의 복음’ ‘내 공동체만의 복음’에 갇혀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의 지형을 새롭게 그려주는 값진 통로 역할을 할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AL 미니스트리
2009년도부터 25만 시각장애인의 복음화와 시각장애가 있는 다음세대, 장년, 목회자를 섬기기 위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사역을 해오고 있다.
AL 미니스트리는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그리스도인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시각장애인 복음화를 위하여 연령에 맞는 신앙교육과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사역을 지원한다. 이를 위하여 성경 지리 및 역사적 배경 세미나, 말씀사경회, 촉각으로 이루어지는 국내·외 성지순례, 전시회, 성경 지도 등 다양한 촉각 자료 제작 및 보급, 시각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자료 제작 및 보급 등 여러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부설기관으로 국내 최초 기독교 전자-데이지 도서관인 AL-소리도서관을 설립하여 다양한 기독교 도서를 제작 중이며 시각장애인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고 있다.
AL 미니스트리는 시각장애인 목회자와 성도의 목회와 양육을 지원하고, 시각장애인이 비시각장애인과 함께 다양한 기독교 콘텐츠를 누리게 하며, 믿지 않는 시각장애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AL-소리도서관_ https://alsori.org
e-mail : alministry23@gmail.com
도서관 연락처 : 010-8363-6136

엮은이 소재웅
작가이자 목사.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에 작가이자 도서 제작자로 참여하여 순례자들의 순례기를 편집하고 엮는 역할을 했다. ‘글쓰기로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다’라는 테마가 그가 하는 모든 사역과 활동의 목적이다.

e-mail: toolor@hanmail.net

목차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자 명단

그리스-튀르키예 촉각성지순례 동선 지도

추천사 1
이계윤 목사(전 장애인복지선교협의회 회장)

추천사 2
박혜원(AL-소리도서관 녹음봉사자)

추천사 3
진영채 목사(산소망 중도실명자 선교회)

프롤로그

“보이지 않는 길을 여신 하나님”
(촉각성지순례의 ‘시작’을 돌아보다)
*정민교 목사

“우리가 돕겠습니다”
(AL미니스트리와의 만남, 촉각성지순례 동역이 시작되다)
*강신덕 목사


1부 낯선 길 앞에서

시작: 출발의 떨림, 길 위에 오르다
“순례 공동체로 빚어지기 시작한, 42가지 서로 다른 표정들”


2부 바울의 길에 서다

1장: 고린도- 아테네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더듬어 하나님을 찾다”

2장: 메테오라 수도원
하늘에 가까운 침묵
“바위 위에 세워진 기도의 자리, 하나님만을 향해 오르다”

3장: 빌립보
복음은 한 사람으로부터 뻗어간다
“루디아의 순종에서 빌립보의 교회까지”

4장: 드로아- 앗소- 밀레도
길이 끊긴 자리에서, 길이 열리다
“보이지 않아도 이어지는 은혜의 길”

5장: 에베소- 파묵칼레(히에라볼리)
아데미와 십자가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복음”

6장: 라오디게아-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미지근한 도시에서, 뜨거운 복음을 배우다
“라오디게아의 아침을 건너 루스드라에서 밤을 맞다”

7장: 다소- 옛 로마길
의문의 10년, 숨겨진 은혜
“다소에서 나를 만나 옛 로마길에서 우리를 보다”

8장: 갑바도기아 데린구유 지하도시
어둠 속에서 지켜낸 빛
“데린구유 지하도시에서 만난 믿음의 순결함”

9장: 이스탄불
마지막 도시, 새로운 시작
“성지는 끝났지만, 순례는 계속된다.”


앞으로의 기대(정민교 목사)
“촉각 순례, 복음의 지형을 다시 그려가고 싶다”

감사의 말(AL미니스트리)

책 속으로

#1

보이지 않아서일까요? 목사님들은 거침이 없으셨습니다. 오히려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더 작은 것들에 감탄하고 계셨습니다. 조금도 불평하지 않으셨습니다. 미소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머리를 부딪치거나 다리를 삐끗하실 때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하다면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면 그만이었습니다. 손이 닿을 때까지, 온전히 느껴지기까지 말입니다. 안타깝거나 괴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함께 그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찬찬히 순례자들을 지켜보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때로는 멀리서 그렇게 했습니다.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이 순례자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그 아름다운 순간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시선을 고정하고 그분들의 감정과 걸음에 함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순례에 저를 부르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순례자들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순례길과 여러 유적을 보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한 사람, 그 ‘한 영혼을 만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50p 중.


#2

이어진 겐그레아 순례. 바울이 전도자로서의 역할을 하다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찾은 겐그레아. 그가 이곳에서 로마서를 쓰며 성서학자의 역할도 감당하였음을 현장에서 다시금 볼 수 있었다. 바울은 이곳에서 서원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복음의 열정을 다짐하면서 머리를 깎았다. 나는 이를 통해 인간 바울을 느낄 수 있었다. 바울도 인간인지라 점검과 다짐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수님도 그랬듯이 바울도 영적인 능력에 힘입어 주님의 일을 하였지만 사역에 대한 인간적인 부담이 왜 없었으랴.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베뢰아와 아덴, 그리고 고린도로 이어지는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에서 동족 유대인들의 거칠고 폭력적인 훼방은 바울을 지치고 질리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3절을 통해 고백하기도 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나에게도 가끔씩 거세게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런데 나와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던 바울도 그 가운데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구나. 그 발자취의 떨림을 볼 때 오히려 나는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 목회는 그렇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면서 하는 거야!
나에게 주어진 목회 현장도 감사함으로 감당하리라!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62p 중.


#3

겉으로 보기엔 실패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열매를 맺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몇 사람의 회심자를 두셨다는 것은 분명 소중한 열매다.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시는 예수님처럼 바울 역시 그 몇 사람의 회심자들로 인해 감격하고 감사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좌절했던 그의 마음은 부활의 예수님을 보며 다시 생명으로 가득했을 것이고, 바울은 결국 푯대를 향하여 전진하는 삶을 이루었을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69p 중.


#4

튀르키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베소 유적지의 긴 돌길,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 버스의 높은 계단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작은 전쟁이었다. 호텔 조식 뷔페에서도 줄이 복잡하게 엉킬 때면, 한 손으로 접시를 들고 한 손으로 딸을 이끌며, 음식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해 줘야 했다. 때로는 딸을 앉혀두고 접시에 음식을 담을 때면 촉박한 식사 시간에 맞춰서 분주하게 음식을 접시에 담아서 딸에게 가져다주는 모든 과정이 매우 힘들었다.

그 작은 일상들 속에서, 시각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보호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안내자로 간 나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은혜와 감동을 느끼는 시간이었기보다 고행으로 다가왔던 바울의 길이였다. 때때로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기도 했고 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눈으로 성지를 보고 싶어 하던 딸의 심정이 느껴질 때면 안타까움과 슬픔이…

‘딸도 나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바울의 길 성지순례는 그 어느 여행보다도 깊은 의미와 은혜를 안겨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딸은 손끝과 발끝, 그리고 마음으로 성지를 보고 느끼고 있었다. 드로아 항구 모래사장에 섰을 때 딸이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여기 파도 소리랑 냄새가 겐그레아 항구랑 달라요. 뭔가 가슴이 두근거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딸도, 자신의 방식으로 이 땅을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목이 메었다. 성지 곳곳에서 강신덕 목사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 딸의 귀에 더 가까이 입을 대고 중요한 구절을 다시 들려주곤 했다.

“여기, 바로 이 자리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했대.”
“이 길을 바울과 실라가 함께 걸었대.”

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지금 아이의 눈이자, 귀이자, 길잡이’라는 책임감과 감사함을 함께 느꼈다. 또한, 그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바울의 선교 여정을 알 수 있었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89p 중.


#5

메테오라로 가는데 버스가 한참을 달려 굽이굽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아! 많이 높은가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 하고 환호성이 터지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환호성이 계속 이어지는데 나도 가슴이 뛰며 설레기 시작했다.

보통 우린(시각장애인) 풍경을 눈으로만 보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눈으로 보는 게 크다 보니 그렇게 느낄 뿐, 거대한 자연 앞에서 눈을 감고 한 번 느껴보면 아시리라 싶다. 공기만 하더라도 차가움, 뜨거움, 가벼움, 무거움, 산뜻함, 답답함, 깨끗함, 광활함 등 많은 정보를 주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수많은 정보가 있다. 거기에 실려 오는 다양한 향기까지 더한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충분히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옆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감흥을 더해준다. 비시각장애인이 보면서 그 감동을 표현할 때 시각장애인도 그만큼 같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시각장애인의 감흥과 비시각장애인의 감흥은 메테오라 수도원에서 공명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 26-27)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93p 중.


#6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을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이 촉각 성지순례는 단순히 ‘특별한 순례’가 아니라, 순례를 넘어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여정이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돕고, 누군가는 그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모든 관계 속에 사랑과 존중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이번 순례가 내게 진정한 의미에서 거룩을 알게 해준 순례길이었던 것이다.

서로를 낮추는 겸손한 섬김과 그 섬김을 감사히 여기는 분들의 마음이 어우러져 하나님의 나라를 모두 만지고 느끼고 있었다. 성경에 기록된 지역을 밟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그 모든 공간이 바로 거룩한 곳이었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이 사랑, 감사, 섬김, 낮아짐, 즐거움, 기쁨, 나눔이 넘치는 천국이었다.

이번 촉각 성지순례는 눈으로 보는 성지가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고 겸손으로 낮아지며 서로를 배려하는 가운데 거룩을 배우는 순례였다. 우리가 함께 머물렀던 모든 자리, 함께 웃고 수고하며 나누었던 그 순간들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고 거룩한 땅이었다. 이 순례를 통해 깨닫게 하신 거룩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며, 앞으로의 삶 속에서도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순례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촉각 순례는 끝났지만, 거룩을 향한 나의 순례는 이제 시작된 것 같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125p 중.


#7

선명히 보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나름대로 보이는 풍경들을 설명해 주었지만 ‘얼마큼 감동이 전해질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남편은 흐릿한 시각으로 내가 전해주는 말과 가이드님의 친절한 해설을 더해 성경 속 그 길을 순례했다. 그렇게 남편은 두 눈 대신 음성으로 손끝으로 발걸음으로 성경을 읽어 나갔다.

사도 바울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성경에 기록된 지명과 익숙한 이름들이 언급될 때마다 얼마나 반갑던지 성경 당시 이야기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걸 느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천 년 전 그 하늘 아래 함께 서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살아 움직이는 감동이었다.

켜켜이 돌이 쌓인 길 하나에도 수천 년의 시간이 깃들어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했다. 특히 사도 바울이 홀로 걸었던 드로아-앗소 길, 옛 로마길을 걸으며 남편과 사명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목회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는지?
이 길을 걸으면서 어떤 사명감을 갖게 되었는지?

남편은 바울의 길 위에서 그 해답을 얻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정확히 못 찾고 있다고… 늘 신중하고 깊은 묵상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답게 말했다. 감성적인 나는 눈물로 사명을 고백하는 사람이기에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로 기도했다.

타우르스 산맥을 넘어 복음을 전했던 바울처럼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여 있어도 사명의 길을 동행자로서 두 손 맞잡고 걸어가겠노라고 고백했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138p 중.


#8

순례길 안내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시간에 늦는 것이다. 이번 바울의 길 촉각 순례에서는 그 실수가 두 번 있었다. 첫 실수는 바울이 에베소 장로를 만난 밀레도에서였고, 두 번째는 바울이 디모데를 만난 루스드라에서였다. 순례자들은 안내자의 시간 배정 경험 부족으로 밀레도에서 아름다운 석양을 놓쳤고, 루스드라에서는 멋진 병풍 같은 바위들의 풍광을 놓쳤다.

“괜찮아요… 어차피 안 보이는데… ”

밀레도에서 순례길에 동행하신 시각장애인 목사님 한 분이 말씀하신다. 그래도 늦은 시간에 순례지에 도착했다는 미안함은 감출 수 없었다. 부지런히 이야기를 들려줄 곳으로 들어가서 현장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사이 이미 해는 졌고 주변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시각을 가지신 분들은 부지런히 핸드폰을 꺼내 주변을 비추었다. 그렇게라도 밀레도를 돌아보자 했다. 여기 그렇게 유명한 극장이 있다던데,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저기 투정 섞인 소리도 들렸고, 어디가 항구이며 어디가 도시인지 묻는 소리도 들렸다. 보이는 것이 없으니 나도 할 말은 없었다.

사실 나는 대답할 틈이 없었다. 그날은 주일이었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아직 못다 한 예배가 남았기 때문이다. 버스 안에서 주일예배를 드려야 할지, 아니면 어디서 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로컬 가이드 인지(Inci)가 말했다. 밀레도 유적지 옆에 작은 노천카페가 있는데 거기를 빌려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 했다. 우리는 바로 달려갔다. 그리고 너그러워 보이는 카페 사장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카페 사장님은 차 한 잔씩 돌리도록 허락하면 장소를
허락하겠다 했다. 그렇게 못할 이유는 없었다. 차 한 잔에 1달러면 충분하니 말이다.

그렇게 순례자들의 주일예배가 시작되었다. 예배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주변에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튀르키예에서는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시각장애인 목사님들의 예배 인도와 기도와 축가와 그리고 설교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밤은 더욱 깊어졌다. 불빛은 필요 없었다. 예배에는 소리만 있으면 되었다. 어둠 가운데 서민택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깊고 깊은 어둠만이 가득했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캄캄했고 만물
은 고요했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쏟아졌다. 옆에 있던 독실한 기독교인 로컬 가이드 인지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은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밀레도의 한켠, 별빛이 은혜로 쏟아졌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은혜는 보인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141p 중.


#9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풍경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느라 정작 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노을이 지던 파묵칼레에서
한 목사님 부부의 대화는 내 마음을 더욱 깊게 흔들었다.

사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노을을 같이 보면 얼마나 좋을까요?”
목사님께서 오히려 사모님을 다독이듯 웃으며 대답하셨다.
“난 괜찮아요. 내 몫까지 당신이 보면 되지요.”
“1억이 들어도… 당신 눈을 뜨게 해주고 싶어요.”
“1억을 들여 눈을 떴다가 다시 잃으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 말에 사모님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하루만이라도… 하루만 볼 수 있어도 난 그렇게 해주고 싶어
요.”

그 대화를 들으며 나는 깨달았다.
그분들은 이미 충분히 보고 계셨다는 것을.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사랑으로 보고 있었고,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은 잠시 머물다 사라졌지만,
그날 내가 본 가장 선명한 풍경은 자연의 색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함께 동행하며 걷는 모습이었다.

성지순례는 끝났지만,
이 순간을 통해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되새기고 있다.

노을은 잠시였지만 목사님과 사모님의 대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나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살아가고 있는가?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177p 중.


#10

버스에서 내려서 몇 분 정도 걸어가니 바울의 생가와 바울이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이 보였다. 바울의 생가 앞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시원한 우물물을 마시면서 성장했을 어린이 바울과 인간 바울을 만날 수 있었다. 흔히 우리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회심하여 곧장 사도로 선교여행을 떠나 주님의 위대한 종으로 쓰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실제로 바울은 회심 후 즉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지만 바울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이 있어 고향인 다소로 내려오게 되었고 10여 년간 다소에 머물러야 했다.

초야에 묻혀버린 10년의 세월, 모세의 40년 목동 생활처럼 바울도 광야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고향에 머무르는 동안 바울은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 여러 추측들 중 바울이 언젠가 바나바가 자신을 불러줄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먼 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을 거란 추측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 예상으론, 바울이 무기력하게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나의 신앙의 여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바울의 10년과 같은 시간이 있었다. 나에게는 절망이었고 끝없는 고통이었고 괴로움이었고 슬픔이었다. 다윗의 고백처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원망했던가!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느냐고 왜 나에게만 침묵하시냐고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절망하며 남모를 눈물을 삼켰던 고통의 영적 전쟁 10년의 시간이 떠올랐다.

당시 나의 신앙은 갓난아이었고 신체적인 나이도 어렸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던 시간들. 그때 당시엔 몰랐다. 주님은 그저 무심하고 잔혹하신 분이라고 여겼다. 나의 10년은 철부지 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미숙하고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바울의 길 앞에서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바울이 다소에서 보낸 10년도 주님께서 괜히 허락하신 시간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10년도 결코 무의미한 허송세월이 아닌 것이다. 그 10년에 담긴 주님의 계획은 흠 많은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놀라운 깊이가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AL미니스트리 <길 위에서 바울을 보다> 220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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