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53116627 두란노
[10%할인+5%적립] 따뜻한 선택
(저자) 남창우
두란노 · 2011-10-26 160*214 · 264p
두란노 · 2011-10-26 160*214 · 2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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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선택을 하길 원합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보다 남이 더 행복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선택을 하길 원합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보다 남이 더 행복하길 원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와 누구를 만나느냐로 크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장충교회 남창우 목사는 어릴 적 엄마와 형제를 잃고, 아버지마저 병환으로 요양을 떠나 할머니 손에 자라는 파란 많은 시절을 보냈다.
충분히 상처 많은 인생을 살만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셔서 뜨거운 사랑으로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의 인생을 이끌어 주셨다. 그 덕분에, 저자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고,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탐하여 가시를 세우며 덤벼들지 않았고, 신앙 양심을 속여 가며 거짓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 매번 손해 볼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늘 그의 편을 들어주셨고, 그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
이 책에는 저자가 하나님 안에서 따뜻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 따뜻한 목회를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림처럼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곧추세웠던 가시를 접고, 손해 보는 행복 주님 편에 서는 행복을 충분히 느끼길 바라며,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얻길 바란다.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선택을 하길 원합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보다 남이 더 행복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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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와 누구를 만나느냐로 크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장충교회 남창우 목사는 어릴 적 엄마와 형제를 잃고, 아버지마저 병환으로 요양을 떠나 할머니 손에 자라는 파란 많은 시절을 보냈다.
충분히 상처 많은 인생을 살만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셔서 뜨거운 사랑으로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의 인생을 이끌어 주셨다. 그 덕분에, 저자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고,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는 선택을 하려고 노력해 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탐하여 가시를 세우며 덤벼들지 않았고, 신앙 양심을 속여 가며 거짓 유익을 구하지 않았다. 매번 손해 볼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늘 그의 편을 들어주셨고, 그의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다.
이 책에는 저자가 하나님 안에서 따뜻한 선택을 하면서 살아온 이야기, 따뜻한 목회를 하고 있는 이야기가 그림처럼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이들이 곧추세웠던 가시를 접고, 손해 보는 행복 주님 편에 서는 행복을 충분히 느끼길 바라며,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얻길 바란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남창우
그에게는 늘 온기가 있다. 숯불이 오른 화롯가에 모여서 온정어린 대화로 언 마음을 녹이듯, 남창우 목사에게는 시린 영혼을 달래는 따뜻함이 있다.
그는 누구보다 추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삶의 고비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온기로 독한 상처 없이 늘 따뜻한 마음을 품고 따뜻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시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그는 특유의 성품에 맞게 장충교회를 따뜻하게 목회하고 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세운 교회였기에 전통이 강했고, 도심에 있어 더 이상 부흥하기 어려워 보였던 장충교회는 전통과 현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청년들의 찬양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활기차고 멋진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둥글게 지은 교회의 모습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이웃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남창우 목사는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세상’이라는 장충교회의 슬로건에 걸맞게 교회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참된 쉼터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교회로 인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해져서 더불어 따뜻한 좋은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서울대학교 음대(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미국 리폼드신학교(Th. M.)와 풀러신학교(D. Min.)에서 공부했다.
현재, 장충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국제제자훈련원 서울지역 팀장과 교회갱신목회자협의회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는 늘 온기가 있다. 숯불이 오른 화롯가에 모여서 온정어린 대화로 언 마음을 녹이듯, 남창우 목사에게는 시린 영혼을 달래는 따뜻함이 있다.
그는 누구보다 추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삶의 고비마다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품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온기로 독한 상처 없이 늘 따뜻한 마음을 품고 따뜻한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을 보면 “하나님은 참으로 따뜻한 분이시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온다.
그는 특유의 성품에 맞게 장충교회를 따뜻하게 목회하고 있다. 이북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피땀 흘려 세운 교회였기에 전통이 강했고, 도심에 있어 더 이상 부흥하기 어려워 보였던 장충교회는 전통과 현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청년들의 찬양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는 활기차고 멋진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이웃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으로 둥글게 지은 교회의 모습처럼 둥글둥글 모나지 않게 이웃을 섬기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남창우 목사는 ‘더 좋은 교회 더 좋은 세상’이라는 장충교회의 슬로건에 걸맞게 교회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의 참된 쉼터가 되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길 바란다. 더 나아가 교회로 인해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충만해져서 더불어 따뜻한 좋은 세상이 되길 기도한다.
서울대학교 음대(B. 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을 졸업하고, 미국 리폼드신학교(Th. M.)와 풀러신학교(D. Min.)에서 공부했다.
현재, 장충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국제제자훈련원 서울지역 팀장과 교회갱신목회자협의회 지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Part 01 하나님의 따뜻함을 경험하다
Chapter 01 나를 부르신 하나님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_12/ 부르심의 시작, 아내와의 만남_20/ 결혼의 조건, “목사가 되어라!”_25/ TBC PD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으로_30/ 종횡무진 승무원 생활기_34/ 비행기는 전도를 싣고_40
Chapter 02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고단했던 어린 시절_45/ ‘노래’로 외로움을 달래고_51/ 교회는 어머니다!_55/ 예수 귀신 물러가라!_59/ 덕수상고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다_63/ 나는야, 서울대 성악과 71학번 남창우_68/ 유치장에서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_72/ 다 하나님의 은혜다!_75
Part 02 따뜻한 선택, 하겠습니다
Chapter 01 따뜻한 선택
목사는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다!_82/ 눈물을 머금고 거절한 ‘장학금’_88/ “주는 나의 방패시요”_95/ “담임목사, 전 못합니다!”_101/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_108/ “나, 옥한흠 목사요”_110
Chapter 02 만남, 그리고 아름다운 깨달음
사랑의교회에서 장충교회로_115/ 주는 대로 먹어라!_121/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께 배운 교훈_123/ ‘자가용’으로 만난 하나님의 지혜_128/ 목회란 서비스다!_133
Chapter 03 따뜻한 목회 1: ‘제자훈련’으로 하나되기
“남 목사, 가라! 가서 제자훈련해!”_141/ 60대 장로님들의 ‘제자 되기’ 프로젝트_145/ 제자훈련은 하나님이 하신다_152/ 10리터 ‘물통 전도’_154/ 대화다운 대화가 필요해_158/ 부부 사이가 좋아졌어요!_160/ 부부는 일심동체_163
Chapter 04 따뜻한 목회 2: 갈등 없이 변화하기
속도 조절하기: ‘스텝 바이 스텝’_166/ 타협하기: ‘함께 갑시다!’_176/ 관심 갖기: ‘어제 이사하셨죠?’_181/ 서로 존중하기: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있습니다’_185/ 마음 헤아리기: 사랑의교회 수양관 둘러본 날_190
Chapter 05 따뜻한 목회 3: 감싸 안아 주기
한밤의 주차장 ‘생일파티’_193/ 무릎 꿇는 목사_201/ 장로는 마누라다!_206/ 오직 하나님 편 되겠습니다!_209
Part 03 따뜻함이 살아 숨쉬는 교회
꺼져가는 교회에 다시 살아난 불씨_220/ 건축은 축복이다_224/ 교회 건축 ‘둥글게 둥글게’_227/ “서운합니다, 목사님”_231/ 하나님 나라의 살림 법칙_235/ 사람이 죽다!_238/ 아름다운 분쟁_245/ 주민들과 손에 손 잡고_250/ 몸 안에 새긴 십자가_255/ 교회는 사람이다!_258
Chapter 01 나를 부르신 하나님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다!_12/ 부르심의 시작, 아내와의 만남_20/ 결혼의 조건, “목사가 되어라!”_25/ TBC PD에서 대한항공 승무원으로_30/ 종횡무진 승무원 생활기_34/ 비행기는 전도를 싣고_40
Chapter 02 나를 지으신 하나님
고단했던 어린 시절_45/ ‘노래’로 외로움을 달래고_51/ 교회는 어머니다!_55/ 예수 귀신 물러가라!_59/ 덕수상고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다_63/ 나는야, 서울대 성악과 71학번 남창우_68/ 유치장에서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_72/ 다 하나님의 은혜다!_75
Part 02 따뜻한 선택, 하겠습니다
Chapter 01 따뜻한 선택
목사는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다!_82/ 눈물을 머금고 거절한 ‘장학금’_88/ “주는 나의 방패시요”_95/ “담임목사, 전 못합니다!”_101/ “오직 주님밖에 없습니다!”_108/ “나, 옥한흠 목사요”_110
Chapter 02 만남, 그리고 아름다운 깨달음
사랑의교회에서 장충교회로_115/ 주는 대로 먹어라!_121/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님께 배운 교훈_123/ ‘자가용’으로 만난 하나님의 지혜_128/ 목회란 서비스다!_133
Chapter 03 따뜻한 목회 1: ‘제자훈련’으로 하나되기
“남 목사, 가라! 가서 제자훈련해!”_141/ 60대 장로님들의 ‘제자 되기’ 프로젝트_145/ 제자훈련은 하나님이 하신다_152/ 10리터 ‘물통 전도’_154/ 대화다운 대화가 필요해_158/ 부부 사이가 좋아졌어요!_160/ 부부는 일심동체_163
Chapter 04 따뜻한 목회 2: 갈등 없이 변화하기
속도 조절하기: ‘스텝 바이 스텝’_166/ 타협하기: ‘함께 갑시다!’_176/ 관심 갖기: ‘어제 이사하셨죠?’_181/ 서로 존중하기: ‘당신이 있어서 우리가 있습니다’_185/ 마음 헤아리기: 사랑의교회 수양관 둘러본 날_190
Chapter 05 따뜻한 목회 3: 감싸 안아 주기
한밤의 주차장 ‘생일파티’_193/ 무릎 꿇는 목사_201/ 장로는 마누라다!_206/ 오직 하나님 편 되겠습니다!_209
Part 03 따뜻함이 살아 숨쉬는 교회
꺼져가는 교회에 다시 살아난 불씨_220/ 건축은 축복이다_224/ 교회 건축 ‘둥글게 둥글게’_227/ “서운합니다, 목사님”_231/ 하나님 나라의 살림 법칙_235/ 사람이 죽다!_238/ 아름다운 분쟁_245/ 주민들과 손에 손 잡고_250/ 몸 안에 새긴 십자가_255/ 교회는 사람이다!_258
책 속으로
‘두근두근.’
나는 이 말이 글로 써진 것만 보았지 귀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내게 생전 처음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낭랑하게 울려 펴졌다.
‘두근두근.’
너무나 긴장된 순간이었다. 결혼 허락을 받는 순간이 이렇게 떨릴 줄 몰랐다. 더군다나 장인어른 되실 분이 ‘충현교회’ 수석부목사님이시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으로 섬기는 분 앞에 사윗감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꼭 하나님 앞에서 시험 보는 것처럼 떨렸다.
장인어른 되실 목사님이 잠시 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다른 조건 다 필요 없고 딱 하나 내 부탁을 들어주게. 그러면 내 딸과 결혼을 허락하겠네.”
“따님과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런가? 그렇담 목사가 되어 주게나. 난 목사 사위 아니면 볼 생각이 없네.”
당황스런 조건이었다. 장인어른 되실 분은 내 직업이나 상황이 못 미더우셨던 것 같다. 방송국 PD라는 직업이 화려한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것이니 이도 못 마땅하셨을 것이고, 더구나 믿는 집안도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딸을 내주기가 걱정스러우셨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목사가 된다?’
단 한 번도,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 아니면 안 되었다. 꼭 결혼하고 싶었다.
“네! 목사 하겠습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목사가 되겠노라’고 덜컥 약속해 버렸다. 그런 약속을 하고 난 후, 1978년에 결혼했다. 이 결혼은 내게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더부살이인 내게 하나님은 ‘가족’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믿음의 가정으로.
처갓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어도 마음만은 늘 여유가 있었다. 삶이 고단해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현실의 벽을 넘을 힘이 늘 충만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꼈으며 따뜻함이 넘쳤다.
-25~28P
사무엘상에 그려진 다윗은 어떤 모습인가? 들에 나가 양을 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자신이 정한 목표물에 물맷돌을 던진 건 어쩌면 자기 처지에 대한 외로움과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이 외로운 어린 소년은 수금을 타면서 자기 안에 있는 상처를 달랬다.
나 역시 외로운 소년이었다. 친구들과 사촌 동생들이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난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지게 지고 산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줍고, 또 어느 날은 소나 돼지를 치면서 일했다. 그럴
때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서 해맑게 노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근심 걱정 없이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나는 어린데도 외로움이란 감정을 정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다윗처럼 달랬다. 물맷돌을 던지던 다윗처럼 돌멩이로 개구리를 명중시키며 내 외로움을 분출했다. 수금을 타던 다윗처럼 노래로 외로움을 떨쳐냈다.
‘노래’는 내게 유일한 위로요, 낙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노래’는 어미의 따뜻한 품을 잃은 병아리가 부모를 찾는 애절한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내 영혼의 텅 빈 공간을 향한 끝없는 메아리. 나는 그렇게 노래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향하여, 지금 내 곁에 없는 그분을 향하여,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 부재의 현실을 향해 호소하며 고함치듯 노래했던 것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온갖 노래를 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났는지 지치지도 않고 3~4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그때만큼은 힘듦도 없었다. 외로움도 없었다. 노여움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새 가슴속에 행복이 가득 차오르곤 했다. 혼자 산에 버려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버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노래로 상처받은 어린 소년을 위로하고 계셨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날 지켜보고 계셨다.
‘창우야, 힘내라, 힘!’
내가 단단해질 때까지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몇 시간씩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나를 단련시키고 계셨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노래’는 내게 축복의 통로였다.
-51~53P
사랑의교회 수석부목사로 있다 보니 여기저기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오라는 제의를 꽤 많이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 장로님이 찾아오시기는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다.
장충교회는 원로목사님이 그만두신 후, 담임목사가 없는 채로 2년을 지내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 2년 동안 교인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남아 있는 성도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었다. 게다가 장충동이라는 지역은 주거지가 아니고 주차장 사정도 넉넉지 않아서 더 이상 부흥될 방법이 딱히 없었다. 결국 몇 십 년째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 교회를 지키며 함께 세월을 보내고 계신 곳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되니 도리어 선뜻 장충교회로 가겠단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다 헤쳐 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나에게는 오라고 손짓하던 교회가 많았다. 그런 교회들은 대부분 장충교회보다 성도수도 많고, 재정도 안정적이며, 눈으로 보기에도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많은 교회들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교회들을 다 제쳐놓고 굳이 장충교회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곳으로 간다는 건 섶을 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두고 다른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사랑의교회가 내겐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목사님,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 좀 해주세요.”
다음 주일에도 그 장로님은 먼저 내 방에 와 계셨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장로님들이 함께 와 계셨다. 왜 이러시나 싶었지만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바로 이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목사로서 마
음이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장로님 한 분이 울음을 터트리시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연세 많으신 장로님께서 펑펑 눈물을 쏟으시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자 다른 장로님들도 덩달아 우셨다. 그렇게 진땀나는 시간이 마무리되고 장로님들이 돌아가셨다.
일주일이 흘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일예배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장충교회 장로님들이 또 앉아 계시는 게 아닌가. 분명히 어느 교회에도 가지 않고 사랑의교회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도 듣지 않으셨다. 장로님들은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다. 한 달 동안 주일마다 찾아오셔서 울고 가셨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난 아직 담임목사로서 한 교회를 책임지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충교회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분들이 자꾸 내 앞에서 우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 분들의 울고 있는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줘야 하나?’
수많은 생각의 실타래들이 머릿속에서 씨줄과 날줄이 돼서 쉬지 않고 엮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온 신경을 쓰다 보니 몸도 마음도 다 피로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 한켠에서는 ‘사랑의교회를 떠나서 장충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란 답을 쓰고 있었다.
“너 지금 뭘 계산하느냐?”
가슴을 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간 깜짝 놀랐다. 다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가 신학교 다닐 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라는 찬송을 얼마나 많이 불렀느냐?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뭘 계산하는 것이냐?”
“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저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들이 모이나, 몇 명이 모이나, 어디에 모이나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고 교회 갈 거냐?”
하나님은 날 추궁하고 계셨다.
-116~119P
‘하나님은 왜 내게 직장 생활을 하게 한 후 돌고 돌아 목사가 되게 하셨을까?’
‘대개의 다른 목사님들처럼 신학대를 가고 신학대학원을 거쳐 전도사, 목사 이런 순서를 밟았다면 난 지금 어땠을까?’
가끔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전자의 경험이 목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 하는 남자 형제들과 심방하
고, 사역하고, 상담하면서 교제를 나눌 때 특히 그렇다. 조직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하 관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는 스트레스, 향락 문화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직장 생활을 하는 형제들의 고충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설사 깊은 속내까지 싹싹 긁어서 말하지 않아도 대충 느낄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세상 속에서 경쟁하며 산다는 게 어떤 심정일지,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몸부림을 치는지 알기에 저절로 긍휼한 마음이 생긴다.
또 하나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술, 담배, 돈, 향락과 같은 타락의 유혹들이 얼마나 난무하는지, 그래서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슴 절절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게 직장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요, 복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볼 일을 보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좀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누가 싸우나? 왜 저렇게 소란스럽지?”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떤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어휴, 여보.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좀 걸어보라고요. 힘들어 죽겠어요.”
“우하하하하… 내가,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건데 꺽….”
남편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다. 사람이 술을 먹은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은 것 같았다. 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등록한 새신자 부부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 인사에 그 아내 되는 성도가 깜짝 놀랐다.
“어머, 목사님! 저기… 여보, 정신 좀 차려 봐요! 목사님이란 말예요!”
여자 성도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색이 목사를 만났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자기 아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비틀대면서 남편 성도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인사했다.
“어이! 이게, 누구십, 니까? 우리, 목사님, 아니 십니까, 꺽! 아이구,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 습니다. 꺽!”
주유소 풍선 인형이 따로 없었다. 앞으로 뒤로, 양옆으로 쉬지 않고 비틀거렸다. 그 아내 성도는 너무나 창피해서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하…, 이렇게 술을 드신 거 보니까 오늘 뭐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오늘 우리 집사람, 생일이, 라서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꺽, 쬐끔 마셨습니다. 하하….”
남편 성도는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울로 올라와 온갖 고생 다 하면서 번 돈을 아끼고 모아 이제는 제법 생활이 넉넉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아내를 고생만 시켰는데 그날은 선물다운 선물을 해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아내에게 새 차를 뽑아준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하하…, 그럼 생일 케이크는 자르셨어요?”
“꺽, 그건 아직, 못했습니다.”
“아이고, 생일인데 축하 파티는 해야죠. 자, 다들 손잡으세요. 생일 축하 노래부터 해야죠.”
나와 아내, 성도 부부, 네 명이 손을 잡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지하주차장이 떠내려가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 부부를 잡고 아주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한밤의 주차장 파티가 끝이 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바로 그 다음 주부터 갑자기 남편 성도가 새벽기도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 주차장 파티에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날이야 워낙 술에 취해서 잘 몰랐지만 술이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목사가 술 마신 성도를 책망하지 않고 기도해 준 것이 고마웠단다.
어느 날 그 성도 부부가 밤늦게 집으로 찾아왔다.
“내일 새벽기도 가려면 일찍 주무셔야지요. 하하하.”
“목사님, 제가 내일이 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몰라서 이렇게 당장 찾아뵀습니다.”
건축헌금을 내놓는 것이었다. 힘들게 번 돈 그동안은 은행에 쌓아 놓았지만 이제는 기꺼이 교회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감사했고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새 신자가 그래서 더 감사했다. 얼마 후엔 술도 끊었고 지금은 집사 직분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교회 다니면 절대 술 먹으면 안 돼!”
이렇게 율법적으로 묶는다고 변화되는 게 아니다. 그가 왜 술을 마셔야 했는지, 그가 왜 그런 유혹에 넘어갔는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내 안의 박탈감, 상실감, 아쉬움… 이런 것들을 술로 채우려고 한다. 속상하고, 힘들고, 어렵고, 불안하고, 초조한 고통을 술로 채우려고 한다. 영혼의 빈자리에 주님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다른 걸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나도 방황하면서, 직장 생활하면서 술을 마셔봐서 이 심정을 안다.
나중에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세상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어?’라고 몰아붙이고 책망하기 전에 먼저 성도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해야 한다. 성도들을 틀에다가 꽉 묶어 놓으면 숨만 막힐 뿐 변화되지 않는다. ‘여백의 미’가 그림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목회에도 있어야 한다. 품어 줄 수 있는 여
유와 받아 줄 수 있는 이해가 우선이다.
- 193~200P
눈물나도록 감격스러웠다. 2010년 12월, 드디어 그 길고 긴 건축을 끝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교인들이 설레어 했다. 이제 ‘입당예배’만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성도들 모두 너무나 고생했고 고마웠다. 이렇게 새집 짓는 데 끝까지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입당예배에 앞서 2010년 12월 31일 처음으로 새 예배당에 들어가 감사와 축하 잔치를 벌이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모두를 격려하는 의미로 축하연을 가졌다. 유명한 아카펠라 중창팀을 비롯해서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갖가지 공연들로 그 시간을 꽉 채웠다. 성도들을 위한 위안의 잔치였고 하나님을 위한 감사의 자리였다. 앞으로 새집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 잘해 보자고 결의하는 자리였다.
이에 못지않게 주민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날 낮에 떡과 함께 편지를 담아 주민들에게 돌렸다. 공연이 끝난 밤 10시부터 송구영신 예배를 하기 전까지 전 교인은 주민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전 교인, 남녀노소 모두가 촛불을 들고 빌라를 쭉 둘러싸고 서서 축복송을 불렀다. 그날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서 있는 한 시간 동안 살갗을 칼로 에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교인들의 모습에서 고통스러움은 찾을 수 없었다. 따뜻한 눈빛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교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위한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우리의 노랫소리를 듣고 편지를 받은 주민들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 추운 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서 노래 부르는 우리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빌라 주민들이 장로님들과 교역자들을 초대했다.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초청에 응했다. 그들은 근사하게 뷔페를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 우리도 그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사실 교회가 있어서 불편했고 그러다보니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동안 장충교회가 저희한테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곳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주민들은 꽤 많은 돈을 모아서 장충교회에 헌금했다. 그리고 새 건물에 잘 어울리는 멋지고 큰 거울을 기증해 주었다. 그중에는 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한 주민도 나왔다. 무엇보다 입당예배를 드리던 날 주민들이 참석해 우리를 축하해 주어 감사했다. 다툼과 분쟁의 시간을 지나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교회란 교회 식구끼리만 복닥거리며 사는 곳이 아니다. 이웃과 화해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곳이 교회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먼저 주고 낮은 자세로 겸손히 다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다.
새 예배당 건축을 통해 하나님은 장충교회 모든 성도에게 이 사명을 알려 주셨다.
- 250~254P
나는 이 말이 글로 써진 것만 보았지 귀로 듣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내게 생전 처음 나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낭랑하게 울려 펴졌다.
‘두근두근.’
너무나 긴장된 순간이었다. 결혼 허락을 받는 순간이 이렇게 떨릴 줄 몰랐다. 더군다나 장인어른 되실 분이 ‘충현교회’ 수석부목사님이시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회에서 목사님으로 섬기는 분 앞에 사윗감으로 앉아 있다는 사실이 꼭 하나님 앞에서 시험 보는 것처럼 떨렸다.
장인어른 되실 목사님이 잠시 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처음으로 입을 여셨다.
“다른 조건 다 필요 없고 딱 하나 내 부탁을 들어주게. 그러면 내 딸과 결혼을 허락하겠네.”
“따님과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그런가? 그렇담 목사가 되어 주게나. 난 목사 사위 아니면 볼 생각이 없네.”
당황스런 조건이었다. 장인어른 되실 분은 내 직업이나 상황이 못 미더우셨던 것 같다. 방송국 PD라는 직업이 화려한 연예인들과 어울리는 것이니 이도 못 마땅하셨을 것이고, 더구나 믿는 집안도 아니었으니 여러모로 딸을 내주기가 걱정스러우셨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내가 목사가 된다?’
단 한 번도, 꿈에서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여자 아니면 안 되었다. 꼭 결혼하고 싶었다.
“네! 목사 하겠습니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목사가 되겠노라’고 덜컥 약속해 버렸다. 그런 약속을 하고 난 후, 1978년에 결혼했다. 이 결혼은 내게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더부살이인 내게 하나님은 ‘가족’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도 믿음의 가정으로.
처갓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어도 마음만은 늘 여유가 있었다. 삶이 고단해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고, 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현실의 벽을 넘을 힘이 늘 충만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고 아꼈으며 따뜻함이 넘쳤다.
-25~28P
사무엘상에 그려진 다윗은 어떤 모습인가? 들에 나가 양을 치는 외로운 소년이었다. 자신이 정한 목표물에 물맷돌을 던진 건 어쩌면 자기 처지에 대한 외로움과 분노의 표출이 아니었을까. 이 외로운 어린 소년은 수금을 타면서 자기 안에 있는 상처를 달랬다.
나 역시 외로운 소년이었다. 친구들과 사촌 동생들이 동네에서 놀고 있을 때에도 난 늘 일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지게 지고 산으로 가서 나뭇가지를 줍고, 또 어느 날은 소나 돼지를 치면서 일했다. 그럴
때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서 해맑게 노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근심 걱정 없이 깔깔거리며 웃는 아이들을 보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꼈다.
나는 어린데도 외로움이란 감정을 정확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다윗처럼 달랬다. 물맷돌을 던지던 다윗처럼 돌멩이로 개구리를 명중시키며 내 외로움을 분출했다. 수금을 타던 다윗처럼 노래로 외로움을 떨쳐냈다.
‘노래’는 내게 유일한 위로요, 낙이었다. 어쩌면 나에게 ‘노래’는 어미의 따뜻한 품을 잃은 병아리가 부모를 찾는 애절한 절규였는지도 모른다. 내 영혼의 텅 빈 공간을 향한 끝없는 메아리. 나는 그렇게 노래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향하여, 지금 내 곁에 없는 그분을 향하여,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서 부재의 현실을 향해 호소하며 고함치듯 노래했던 것이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온갖 노래를 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솟아났는지 지치지도 않고 3~4시간씩 노래를 불렀다. 그때만큼은 힘듦도 없었다. 외로움도 없었다. 노여움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 새 가슴속에 행복이 가득 차오르곤 했다. 혼자 산에 버려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버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노래로 상처받은 어린 소년을 위로하고 계셨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날 지켜보고 계셨다.
‘창우야, 힘내라, 힘!’
내가 단단해질 때까지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몇 시간씩 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나를 단련시키고 계셨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노래’는 내게 축복의 통로였다.
-51~53P
사랑의교회 수석부목사로 있다 보니 여기저기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오라는 제의를 꽤 많이 받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직접 장로님이 찾아오시기는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다.
장충교회는 원로목사님이 그만두신 후, 담임목사가 없는 채로 2년을 지내면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그 2년 동안 교인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남아 있는 성도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었다. 게다가 장충동이라는 지역은 주거지가 아니고 주차장 사정도 넉넉지 않아서 더 이상 부흥될 방법이 딱히 없었다. 결국 몇 십 년째 교회를 다녔던 분들이 교회를 지키며 함께 세월을 보내고 계신 곳이었다.
이런 상황들을 알게 되니 도리어 선뜻 장충교회로 가겠단 결심을 할 수가 없었다.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다 헤쳐 나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나에게는 오라고 손짓하던 교회가 많았다. 그런 교회들은 대부분 장충교회보다 성도수도 많고, 재정도 안정적이며, 눈으로 보기에도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많은 교회들이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교회들을 다 제쳐놓고 굳이 장충교회로 갈 이유가 없었다. 그곳으로 간다는 건 섶을 들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로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을 두고 다른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사랑의교회가 내겐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목사님, 저희 교회를 위해서 기도 좀 해주세요.”
다음 주일에도 그 장로님은 먼저 내 방에 와 계셨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장로님들이 함께 와 계셨다. 왜 이러시나 싶었지만 길 잃은 어린 양들이 바로 이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목사로서 마
음이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장로님 한 분이 울음을 터트리시는 게 아닌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연세 많으신 장로님께서 펑펑 눈물을 쏟으시니 더더욱 그랬다. 그러자 다른 장로님들도 덩달아 우셨다. 그렇게 진땀나는 시간이 마무리되고 장로님들이 돌아가셨다.
일주일이 흘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일예배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장충교회 장로님들이 또 앉아 계시는 게 아닌가. 분명히 어느 교회에도 가지 않고 사랑의교회에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도 듣지 않으셨다. 장로님들은 거기서 끝내지 않으셨다. 한 달 동안 주일마다 찾아오셔서 울고 가셨다. 참으로 난처한 일이었다. 난 아직 담임목사로서 한 교회를 책임지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충교회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분들이 자꾸 내 앞에서 우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저 분들의 울고 있는 마음을 누가 위로해 줘야 하나?’
수많은 생각의 실타래들이 머릿속에서 씨줄과 날줄이 돼서 쉬지 않고 엮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온 신경을 쓰다 보니 몸도 마음도 다 피로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러면서도 내 가슴 한켠에서는 ‘사랑의교회를 떠나서 장충교회에 가고 싶지 않다’란 답을 쓰고 있었다.
“너 지금 뭘 계산하느냐?”
가슴을 치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간 깜짝 놀랐다. 다시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가 신학교 다닐 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라는 찬송을 얼마나 많이 불렀느냐?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뭘 계산하는 것이냐?”
“저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저들이 불쌍하지 않느냐? 어떤 사람들이 모이나, 몇 명이 모이나, 어디에 모이나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져 보고 교회 갈 거냐?”
하나님은 날 추궁하고 계셨다.
-116~119P
‘하나님은 왜 내게 직장 생활을 하게 한 후 돌고 돌아 목사가 되게 하셨을까?’
‘대개의 다른 목사님들처럼 신학대를 가고 신학대학원을 거쳐 전도사, 목사 이런 순서를 밟았다면 난 지금 어땠을까?’
가끔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후자의 경우는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건 전자의 경험이 목회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 하는 남자 형제들과 심방하
고, 사역하고, 상담하면서 교제를 나눌 때 특히 그렇다. 조직 사회에서 벌어지는 상하 관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겪는 스트레스, 향락 문화 등등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자로 일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보니 직장 생활을 하는 형제들의 고충을 충분히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설사 깊은 속내까지 싹싹 긁어서 말하지 않아도 대충 느낄 수 있다. 말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아도 세상 속에서 경쟁하며 산다는 게 어떤 심정일지, 그들이 얼마나 치열한 몸부림을 치는지 알기에 저절로 긍휼한 마음이 생긴다.
또 하나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술, 담배, 돈, 향락과 같은 타락의 유혹들이 얼마나 난무하는지, 그래서 때로는 그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가슴 절절히 이해할 수 있다. 이게 직장 생활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요, 복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볼 일을 보고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좀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누가 싸우나? 왜 저렇게 소란스럽지?”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어떤 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어휴, 여보.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좀 걸어보라고요. 힘들어 죽겠어요.”
“우하하하하… 내가, 기분 좋아서, 그러는 건데 꺽….”
남편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었다. 사람이 술을 먹은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은 것 같았다. 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는 사람이었다. 바로 얼마 전 우리 교회에 등록한 새신자 부부로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 인사에 그 아내 되는 성도가 깜짝 놀랐다.
“어머, 목사님! 저기… 여보, 정신 좀 차려 봐요! 목사님이란 말예요!”
여자 성도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명색이 목사를 만났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몸도 못 가눌 정도로 술에 취해 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자기 아내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비틀대면서 남편 성도는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인사했다.
“어이! 이게, 누구십, 니까? 우리, 목사님, 아니 십니까, 꺽! 아이구, 여기서, 보니까 더, 반갑, 습니다. 꺽!”
주유소 풍선 인형이 따로 없었다. 앞으로 뒤로, 양옆으로 쉬지 않고 비틀거렸다. 그 아내 성도는 너무나 창피해서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하…, 이렇게 술을 드신 거 보니까 오늘 뭐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오늘 우리 집사람, 생일이, 라서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꺽, 쬐끔 마셨습니다. 하하….”
남편 성도는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서울로 올라와 온갖 고생 다 하면서 번 돈을 아끼고 모아 이제는 제법 생활이 넉넉해졌다고 했다. 그동안 아내를 고생만 시켰는데 그날은 선물다운 선물을 해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했다. 아내에게 새 차를 뽑아준 것이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하하…, 그럼 생일 케이크는 자르셨어요?”
“꺽, 그건 아직, 못했습니다.”
“아이고, 생일인데 축하 파티는 해야죠. 자, 다들 손잡으세요. 생일 축하 노래부터 해야죠.”
나와 아내, 성도 부부, 네 명이 손을 잡았다. “생일 축하합니다~”, 지하주차장이 떠내려가라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나서 그 부부를 잡고 아주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그렇게 한밤의 주차장 파티가 끝이 났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바로 그 다음 주부터 갑자기 남편 성도가 새벽기도에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매일. 주차장 파티에서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날이야 워낙 술에 취해서 잘 몰랐지만 술이 깨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목사가 술 마신 성도를 책망하지 않고 기도해 준 것이 고마웠단다.
어느 날 그 성도 부부가 밤늦게 집으로 찾아왔다.
“내일 새벽기도 가려면 일찍 주무셔야지요. 하하하.”
“목사님, 제가 내일이 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몰라서 이렇게 당장 찾아뵀습니다.”
건축헌금을 내놓는 것이었다. 힘들게 번 돈 그동안은 은행에 쌓아 놓았지만 이제는 기꺼이 교회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마음이 감사했고 교회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새 신자가 그래서 더 감사했다. 얼마 후엔 술도 끊었고 지금은 집사 직분을 받아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다.
“교회 다니면 절대 술 먹으면 안 돼!”
이렇게 율법적으로 묶는다고 변화되는 게 아니다. 그가 왜 술을 마셔야 했는지, 그가 왜 그런 유혹에 넘어갔는지를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내 안의 박탈감, 상실감, 아쉬움… 이런 것들을 술로 채우려고 한다. 속상하고, 힘들고, 어렵고, 불안하고, 초조한 고통을 술로 채우려고 한다. 영혼의 빈자리에 주님이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다른 걸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나도 방황하면서, 직장 생활하면서 술을 마셔봐서 이 심정을 안다.
나중에 진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세상 것들에서 멀어질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어?’라고 몰아붙이고 책망하기 전에 먼저 성도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해야 한다. 성도들을 틀에다가 꽉 묶어 놓으면 숨만 막힐 뿐 변화되지 않는다. ‘여백의 미’가 그림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목회에도 있어야 한다. 품어 줄 수 있는 여
유와 받아 줄 수 있는 이해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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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나도록 감격스러웠다. 2010년 12월, 드디어 그 길고 긴 건축을 끝냈다. 나를 비롯한 모든 교인들이 설레어 했다. 이제 ‘입당예배’만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 성도들 모두 너무나 고생했고 고마웠다. 이렇게 새집 짓는 데 끝까지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입당예배에 앞서 2010년 12월 31일 처음으로 새 예배당에 들어가 감사와 축하 잔치를 벌이고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모두를 격려하는 의미로 축하연을 가졌다. 유명한 아카펠라 중창팀을 비롯해서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갖가지 공연들로 그 시간을 꽉 채웠다. 성도들을 위한 위안의 잔치였고 하나님을 위한 감사의 자리였다. 앞으로 새집에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더 잘해 보자고 결의하는 자리였다.
이에 못지않게 주민들에게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주민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날 낮에 떡과 함께 편지를 담아 주민들에게 돌렸다. 공연이 끝난 밤 10시부터 송구영신 예배를 하기 전까지 전 교인은 주민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마련했다.
♬ 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전 교인, 남녀노소 모두가 촛불을 들고 빌라를 쭉 둘러싸고 서서 축복송을 불렀다. 그날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서 있는 한 시간 동안 살갗을 칼로 에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교인들의 모습에서 고통스러움은 찾을 수 없었다. 따뜻한 눈빛과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교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위한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몸으로 깨닫고 있었다.
우리의 노랫소리를 듣고 편지를 받은 주민들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 추운 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서 노래 부르는 우리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습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 후 며칠이 지나 빌라 주민들이 장로님들과 교역자들을 초대했다.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초청에 응했다. 그들은 근사하게 뷔페를 차려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 우리도 그날 너무 감동받았습니다. 사실 교회가 있어서 불편했고 그러다보니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동안 장충교회가 저희한테 하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교회’라는 곳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주민들은 꽤 많은 돈을 모아서 장충교회에 헌금했다. 그리고 새 건물에 잘 어울리는 멋지고 큰 거울을 기증해 주었다. 그중에는 교회에 새신자로 등록한 주민도 나왔다. 무엇보다 입당예배를 드리던 날 주민들이 참석해 우리를 축하해 주어 감사했다. 다툼과 분쟁의 시간을 지나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교회란 교회 식구끼리만 복닥거리며 사는 곳이 아니다. 이웃과 화해하고 하나님을 전하는 곳이 교회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먼저 주고 낮은 자세로 겸손히 다가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곳이 바로 교회다.
새 예배당 건축을 통해 하나님은 장충교회 모든 성도에게 이 사명을 알려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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