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9098350 훈훈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신앙안내서)
(저자) 곽호|진영채|황성재
훈훈 · 2026-02-18   210*297 ·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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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발달장애인 성도에게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다져줄
체계적인 신앙안내서



여러분은 발달장애인을 아시나요? 어쩌면 우리는 아주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머릿속 상상만으로 발달장애인이라는 존재를 (마음대로) 그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교회에 출석하는 발달장애인 성도들에 대해서, 교회를 다니는 비장애인 성도들은 머릿속 상상만으로 그들의 ‘영적 갈망’을 단순하게 재단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의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발달장애는 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 이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해 도움을 주는 자로 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천천히 걷다 보면 연약한 자를 통해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발달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제자의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발달장애인은 연약한 점이 많지만 존재 자체로 공동체의 중심에 설 수 있으며, 복음을 전하기에 손색이 없으며,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끌어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중.

대한민국에서 3년마다 실시되는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적장애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포함한 발달장애인은 2023년을 기준으로 약 27만 명에 이릅니다. 결코 적지 않으며, 교회가 외면해도 될 규모는 더더욱 아닌 것이죠. 사회는 이미 발달장애인의 삶을 위해 교육과 돌봄, 지원체계를 하나씩 구축해 나가고 있지만, 정작 교회 안에서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발달 단계를 고려한 신앙 교육은 여전히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이 간극 앞에서 교회는 다시 묻게 됩니다. 과연 교회는, 정말로 모든 이에게 차별 없이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할 수 있는 이들에게만 익숙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의 저자인 세 명의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발달장애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마다 마음의 한켠 늘 풀리지 않는 부채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매주 공과 공부의 시간이 돌아오지만, 발달장애인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춘 체계적인 교재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죠. 적절한 커리큘럼이 없어 영유아 유치부나 다른 부서의 자료를 편집하여 사용하거나, 난해한 신앙 용어를 풀어 설명하느라 매시간 진땀을 흘려야 했습니다. 발달장애인 사역이 한국교회 안에서 오랜 시간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뒷받침할 교육적 토대는 여전히 충분히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걸 매주일 절박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현장의 갈증을 누구보다 깊이 알고 있는 세 명의 목회자가 뜻을 모아 ‘발달장애인과 함께하는 신앙안내서’를 집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렵고 딱딱한 신앙 용어를 어떻게 하면 더 쉽고, 더 직관적으로 전할 수 있을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편중된 교회 교육 환경 속에서 생겨난 신앙 정보의 격차를 줄이고, 발달장애인 성도들 역시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고백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탄생한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는 발달장애인의 신앙적 권리를 실제로 구현한 구체적인 결실입니다.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의 모든 문장은 당사자의 이해를 최우선에 두고 세심하게 다듬어졌으며 텍스트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명료하고 직관적인 그림을 함께 배치하여, 내용을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시각적 전달력을 강화했습니다.

더 깊은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들이 직접 출연한 가이드 영상을 QR코드로 연결해 두었습니다. 책을 읽고 영상을 함께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신앙의 메시지가 한층 분명하게 다가오고, 결국 자신의 고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입니다.

본 도서를 통해 발달장애인 성도들이 품고 있는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라는 열망이 응답받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그들이 교회 안에서 소외되지 않고, 교회의 온전한 일원이자 예수님의 제자이자 하나님의 백성임을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곽 호
신학을 공부하며 공동체와 섬김의 가치를 품어왔다. 장애인 사역의 경험을 통해 ‘함께함’의 의미를 새기며, 누구도 신앙에서 소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준비했다. 천천히, 반복해서, 끝까지 함께 걷는 목사됨을 꿈꾼다
이메일: jkwdm1219@gmail.com

지은이 진영채
산소망 선교회 담임목사. 시소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가 인생의 한계를 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삶과 사역으로 전하고 있다. 늘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궁리하며 산다.
이메일: haveyoureyes@naver.com

지은이 황성재
발달장애인 자녀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는 목사이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통합예배를 드리는 <주신교회>와, 이를 위한 선교적 거점인 <아임히얼발달심리센터>를 섬기고 있다.
이메일: sabra0691@naver.com

목차

프롤로그
추천사
책의 활용법

1월: 천지창조1
2월: 천지창조2
3월: 사순 · 부활절
4월: 교회
5월: 예배
6월: 성경
7월: 기도
8월: 헌금
9월: 전도
10월: 교회력
11월: 추수감사절
12월: 대림 · 성탄절

<부록>

교회 용어 사전 1
교회 용어 사전 2
장례
성찬
세례
AAC 세례문답

<감사의 글>

책 속으로

#1

‘정상성’이라는 말은 사실 그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정상’이라는 단어를 다르게 해석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정확히 어떤 것이 ‘정상’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정상을 평균이라고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다수가 하는 행동이나 모습이라고 여기기도 합니다. 또는 사회가 정해놓은 어떤 기준을 따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 셋 중 어떤 것도 ‘정상’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설명해주지는 못합니다. 결국 ‘정상성’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모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상성’이라는 단어 자체와, ‘정상화된 사회’라는 개념을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정상화된 사회는 모두가 똑같이 살아야 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생각,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통합사회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이 때때로 이런 다양성을 억누르거나,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상’이라는 말이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그 말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2

히브리어 ‘카탄’은 다윗을 가리킬 때 사용된 ‘막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곧 가장 연약한 자를 의미합니다. 사무엘이 기름부음을 주고자 이새의 아들들을 만났을 때, 다윗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막내였고 양을 치는 자였기에 아버지가 다윗만 빼고 부른 것입니다. 육신의 아버지 눈에는 연약한 막내가 주목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그 연약한 막내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만, 그럼에도 오신 이유는 연약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돌아보면, 예루살렘에서 상위 1%의 사람들을 변화시켜 세상을 바꾸려 하신 것이 아니라, 나사렛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장애인, 고아와 과부, 병자들과 함께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셨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낮은 곳을 향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그분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이끌어가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편리주의, 실용주의, 생산성 중심의 자본주의, 경쟁주의, 외모지상주의, 이러한 사상들이 대세를 이루며 결국 사람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연약한 자들이 설 곳이 없는 사각지대가 더 많이 생겨날 수 있을 것 같아 우려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함께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3

자폐 친구들의 뇌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의 뇌는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 사람들이 하는 말, 표정, 냄새, 그리고 촉감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요. 그런데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친구들의 뇌는 이 신호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달라요. 어떤 친구는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 약간의 불빛도 밝게 느끼기도 해요. 그래서 갑자기 귀를 막거나, 눈을 찡그리고 “싫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건 예민하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에요. 뇌가 지금 힘들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예요.

어떤 친구는 사람들의 말이나 표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해요. 선생님이 웃으며 “괜찮아~”라고 말해도, 그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헷갈릴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 같은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말보다는 그림이나 손짓으로 마음을 전하는 걸 더 편하게 느끼기도 해요. 눈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서 부끄러워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뇌가 그렇게 반응하는 거예요. 그리고 계획된 일이 바뀌면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놀이터에 가기로 했는데 갑자기 못 가게 되면, 마음속에서 “왜?”라는 혼란이 생기는 거죠. 이럴 때 어떤 친구는 같은 말을 계속하거나, 손을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해요. 이건 뇌가 “괜찮아, 괜찮아” 하고 스스로를 진정시키는 방법이에요. 이런 모습을 우리는 처음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알고 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놀라지 않고 잠시 기다려주고, 마음을 나누면 함께할 수 있어요.

자폐 스펙트럼 친구들은 소리, 숫자, 그림, 음악 등 한 가지에 깊이 집중하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비장애인보다 더 섬세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해요. 겉으로 보기엔 조금 다르게 느껴지고 행동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특별하고 소중한 선물이 숨어 있어요.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4

요한복음 9장에 그려진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예수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시력 회복의 기적을 뛰어넘어, 예수님을 만난 한 영혼이 진정한 제자로 거듭나는 놀라운 여정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이 단지 ‘한 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되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삶의 주인으로 따르는 신앙의 과정까지 포함된다는 것’을 상세히 알려주지요.

이 이야기 속에서 ‘본다’는 의미는 점차 깊어집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게 된 이후에 예수님에 관하여 “예수라 하는 사람”(11절)이라 칭하며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선지자”(17절)로, 나중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33절)으로 깊이 인식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여, 내가 믿나이다”(38절)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구원자이자 주인으로 받아들이게 되지요. 예수님께서 그를 실로암 연못으로 보내신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이는 그가 단순히 시력을 회복한 것을 넘어 세상에 ‘보냄 받은 제자’로서 사명을 가지고 파송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경의 깊은 가르침은 오늘날 장애인 공동체를 섬기는 교사나 동역자들에게도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줍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연민이나 동정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대신, 그 사람 안에 담긴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과 특별한 사명을 발견하고자 하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장애인을 섬기는 교사는 단순히 돌봄을 제공하는 역할을 넘어, 시각장애인이 ‘보냄 받은 제자’로 살아가듯, 학생들 또한 하나님의 귀한 제자로 자라도록 돕는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자리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요한복음 9장의 이야기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예수님을 만난 한 영혼이 참된 제자로 거듭나는 여정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걸어야 할 길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교사들도 예수님의 ‘보냄 받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장애인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함께 해나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5


성찬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초대해주신 식탁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은 이해가 어렵다는 이유로 성찬에서 제외되곤 합니다. 하지만 성찬은 머리로 교리를 완전히 알고 있어야만 참여할 수 있는 예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에,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를 식탁으로 부르십니다. 교사는 학생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하면서, 떡을 손에 쥐고 포도주를 마시는 간단한 행동만으로도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환대를 경험할 수 있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떡과 잔을 나누는 경험은 학생이 성찬의 의미를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성찬은 단순히 예수님을 기억하는 의식이 아니라, 함께 모여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신앙 공동체의 잔치입니다. 발달장애인이 성찬에 참여할 때, 그곳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교회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공동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성도들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게 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공동체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참여하는 학생은 자신이 공동체의 소중한 일원임을 깨닫고, 함께 나누는 은혜 속에서 소속감과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 역시 구멍 난 손과 옆구리를 그대로 지니고 계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연약함이나 부족함이 결코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상처 난 몸 자체가 온전함을 나타내며, 발달장애인이나 연약한 몸을 가진 사람도 이해가 부족하거나 완벽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초대하신 성찬의 식탁에 당당히 앉을 수 있습니다. 성찬은 완전함을 요구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모두가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연약함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통로가 되며,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연결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늘 같은 식탁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기쁨으로 성찬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6

제가 섬겼던 성인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는 저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다운중후군 이용인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시설에서 생활할 때, 함께 시설을 이용하는 다른 이용인 분들에게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데 끼어들면 안 되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른은 누구일까요? 저를 포함한 사회복지사들입니다. 물리적 나이로 본인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어른이라니요. 이해가 되시나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보호받아야 하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 미성숙하고 어린 사람으로 교육받았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를 지켜주는 사회복지사들이 어른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겠죠.

장애인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장애인입니다. 장애인을 장애인이라 말하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장애인은 지역사회 내에서 기피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서 참여가 배제되어 왔죠. 특수학교 졸업 이후 갈 곳은 두세 곳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보호 작업장 같은 직업재활시설이나 주간보호센터 같은 보호시설입니다. 명칭도 다르고 내부 프로그램도 다르지만 ‘돌봄’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돌봄’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매우 쉽습니다. 통제하면 됩니다. 엄격한 규율을 통해 ‘안 돼!’라고 하거나 ‘이거 해!’라고 하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주면 됩니다. 가장 쉬운 돌봄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런 방식이 안전한 돌봄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이 보이는 개별 행동의 이유를 특정한 상황과 맥락 안에서 이해하지 않고 문제로만 인식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감시와 통제 그리고 엄격한 규율만 남은 곳에 ‘안 돼’, ‘그만 해!’와 같은 기계적인 문장만 허공에 맴돌 뿐입니다. 인간 사이의 최소한의 교감은 고사하고, 개인은 통제하는 자와 통제받는 자로 나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발달장애인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 개성은 무시되기 쉽고, 장애인은 ‘나’란 개인이 아닌 ‘장애인’이란 집단으로 집단화되죠.

이런 상황에 그들의 꿈과 비전은 허무맹랑한 꿈일 뿐입니다. 그림의 떡, 사치스러운 욕심이 될 뿐이죠. 하지만, 최소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모든 인간이 그 목적에 맞게 창조되었다고 믿습니다. 그 목적에 발달장애인이라고 제외되었을 리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내 주위의 발달장애인에게 “네 꿈이 뭐니?”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개성, 고민과 형편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질문과 대답이 서로 간에 공유될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통제하는 자와 통제받는 자의 관계를 넘어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지 않고 ‘너’라는 존재, 하나님이 지극히 사랑하시는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7

모든 부모의 가슴속에는 자녀를 향한 무한한 기대와 소망이 깃들어 있습니다. 9살 된 딸아이가 있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가 돌잡이에서 무엇을 잡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보듯, 부모는 자녀의 삶에 자신의 꿈과 이상이 투영되기를 바랍니다. 이 간절한 염원 때문에 자녀 양육을 ‘재생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내 자녀가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길 원하고, 형통이란 복을 누리길 바라죠.

하지만,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현실은 이 소망과 거리가 멉니다. 자립을 개인의 역량이라 정의하는 사회에서 발달장애 자녀를 통한 재생산은 먼 나라 이야기와 같습니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 부모는 해결되지 않는 깊은 상실을 경험하고, 끝없는 돌봄의 무게 앞에서 소망 없는 상태에 직면합니다. 김홍덕 목사님의 저서 「교회여! 발달장애인에게 성례를 베풀라」 서문에 담긴 부모의 절규는 이 냉혹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성례전을 시행하지 않는 교회를 향해 ‘내 자녀를 떼놓고 혼자 천국 가려 애쓰는 못된 부모 같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의 외침은 소망 없이 눈물 흘리는 이들의 마음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장애인 사역은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사명이 돼야 합니다. 교회는 소망 없는 이들에게 소망을 주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는 장애인 사역을 주저합니다. 좀 더 생경한 발달장애인 사역은 더욱 그러하죠. 이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회의 사역이 성찬과 세례, 곧 성례전입니다. 인지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어떻게 성례전을 베풀 수 있냐는 반복된 질문은 장애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를 드러냅니다. 이 질문의 저변에는 마치 비장애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교만한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나는 결핍과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라고 말하는 오만함이죠.

종종 “발달장애인에게 성례를 어떤 방식으로 진행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방식을 기대하지만, 사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성례은 본래 시각적, 감각적 방식으로 하나님의 신비를 드러내는 예전이기에, 오히려 발달장애인에게 그 의미가 더욱 온전히 전달될 수 있습니다. 비장애인인 우리조차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를 발달장애인에게만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일 뿐입니다.

최대열 목사님은 「장애조직신학」에서 성육신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장애 입으심’, ‘장애화’라고 표현합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제한하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사건이야말로 장애를 가장 잘 표현하며,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결핍과 고통을 친히 감당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도 없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고, 할 수 있는 것조차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는 지극히 제한적인 존재이죠. 우리는 본질적으로 결핍과 제한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발달장애인 사역은 단순한 복지나 봉사를 넘어,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따르는 신앙의 본질적 행위가 돼야 합니다. 이는 소망 없는 자에게 참된 소망을 주는 일이며, 자녀의 장애를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특별한 통로로 이해하게 해주는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곽 호, 진영채, 황성재 <하나님, 저도 알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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