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53153608 두란노
실종된 메시아 (우리가 믿는 예수는 성경에 없다)
[원제] The Missing Messiah
(저자) 카일 아이들먼 | 마크 무어 / 윤종석
두란노 · 2026-08-26 135*205 · 272p
(저자) 카일 아이들먼 | 마크 무어 / 윤종석
두란노 · 2026-08-26 135*205 · 2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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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오늘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해석과 역사적 사건, 문화 변혁의 산물이다. 그 예수는 성경이 증언한 메시아에서 멀어진 경우가 많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취향과 신념에 따라 자신만의 예수를 만들어 왔다. 인생의 성공을 돕는 조력자, 불안을 달래 주는 치료자, 정치적 동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 같은 존재로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만든 틀에 갇히지 않으신다. 그분은 온 세상을 뒤집어 놓으시고 우리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실 뿐 아니라 우리를 경이로운 세계로 인도하신다.
《실종된 메시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메시아 개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반면에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실제로 어떤 분인지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다른지를 확인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메시아 예수님을 되찾아 그분을 왕으로 섬기라고 도전한다.
[출판사 서평]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아니라
문화의 산물인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개인의 욕망과 세속 문화가 만든 가짜 예수에 속아
인생과 세상의 주권자이신 메시아를 외면하는 시대
‘영생’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 지금 이곳에서부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왜 지금 천국을 누리지 못하는 걸까? 예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요 17:3). 예수님을 개인의 구원자로만 알고 주권자이신 메시아로는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새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시는 왕 메시아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구주 예수님을 분리했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메시아’가 그리스어 ‘그리스도’로 바뀌는 과정에서, 한편으로는 문화적 상황이 달라지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메시아’ 개념이 달라졌다.
2천여 년이 지나는 동안 예수님의 정체성 위에 더 많은 문화적 요소가 더해졌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우리의 성공을 돕는 인생 코치, 불안을 달래 주는 치료자, 정치적 의견을 지지해 주는 동지,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으로 여길 뿐이다.
인류 역사상 예수보다 위대한 분은 없다
우리의 모든 예상과 기대를 초월하시는 메시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신 만왕의 왕
《실종된 메시아》는 역사적으로 메시아 개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성경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어떤 분인지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를 확인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필요와 취향대로 만들어 낸다면, 우리가 소망하는 대상은 참된 메시아가 아니라 거짓 메시아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메시아에게 둔 소망은 결국 거짓된 소망이기에, 삶의 압박과 시련 앞에서 버티지 못한다. 그런 믿음은 편안할 수는 있어도 결코 견고하지 않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잃어버렸던 메시아 예수님을 되찾고 그분을 왕으로 섬기라고 도전하고 격려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카일 아이들먼 Kyle Idleman
미국 켄터키주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로, 주일마다 열다섯 군데 캠퍼스 교회에 3만여 명 성도가 모인다. 카일 아이들먼은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Ozark Christian College)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섬기다가 2019년부터 담임목사직을 맡았다.
저서로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 《나의 끝, 예수의 시작》, 《한 번에 한 사람》, 《삶이 뜻대로 안 될 때》 등이 있다. 특히 첫 책 《팬인가, 제자인가》는 예수님의 팬으로만 안주하던 수많은 신자를 일깨워 제자로 헌신하게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1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www.kyleidleman.com
지은이 ┃ 마크 무어 Mark E. Moore
미국 애리조나주 밸리 크라이스트 교회(Christ’s Church of the Valley) 교육 목사이자 신약학 교수. 밸리 크라이스트 교회는 피닉스 대도시권 전역에 여러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매주 4만여 명이 예배에 참석한다. 마크 무어는 20여 년간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 교수로 신약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하우스 에델바이스(Haus Edelweiss)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도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www.markmoore.org
옮긴이 ┃ 윤종석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 《팀 켈러, 죄를 말하다》, 《하나님의 침묵》, 《기도의 자리로》, 《하나님의 임재 연습》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골든 게이트 침례신학교에서 교육학(M.A.)을,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상담학(M.A.)을 전공했다.
미국 켄터키주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Southeast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형 교회로, 주일마다 열다섯 군데 캠퍼스 교회에 3만여 명 성도가 모인다. 카일 아이들먼은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Ozark Christian College)를 졸업하고, 2003년부터 사우스이스트 크리스천 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섬기다가 2019년부터 담임목사직을 맡았다.
저서로 《그리스도인의 생각 사용법》, 《나의 끝, 예수의 시작》, 《한 번에 한 사람》, 《삶이 뜻대로 안 될 때》 등이 있다. 특히 첫 책 《팬인가, 제자인가》는 예수님의 팬으로만 안주하던 수많은 신자를 일깨워 제자로 헌신하게 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1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www.kyleidleman.com
지은이 ┃ 마크 무어 Mark E. Moore
미국 애리조나주 밸리 크라이스트 교회(Christ’s Church of the Valley) 교육 목사이자 신약학 교수. 밸리 크라이스트 교회는 피닉스 대도시권 전역에 여러 캠퍼스를 두고 있으며 매주 4만여 명이 예배에 참석한다. 마크 무어는 20여 년간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 교수로 신약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오자크 크리스천 칼리지와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하우스 에델바이스(Haus Edelweiss)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가르칠 뿐 아니라 학생들이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도전하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www.markmoore.org
옮긴이 ┃ 윤종석
《모두가 자신의 믿음 없음과 싸우고 있다》, 《팀 켈러, 죄를 말하다》, 《하나님의 침묵》, 《기도의 자리로》, 《하나님의 임재 연습》 등 다수의 책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다.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골든 게이트 침례신학교에서 교육학(M.A.)을,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상담학(M.A.)을 전공했다.
목차
프롤로그: 지금 예수님과 마주친다면 알아볼 수 있을까
Movement 1.
1세기 성도가 믿었던 메시아는 실종됐다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2.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姓)이 아니다
3. 메시아에 대한 오해: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4. 메시아 개념의 변화: 전통과 문화의 필터를 거치며 달라진 메시아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자, AI(인공지능) 예수
Movement 2.
잃어버렸던 왕 메시아를 발견하다
6.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
7. 상상을 초월하는 메시아: 독보적인 영웅, 구약의 예표를 성취하신 분
8. 기대를 벗어난 메시아: 인간으로 오셔서 고난받으신 하나님
9. 부활하신 메시아: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을 다스리는 왕
Movement 3.
우리의 전부를 걸 만한 분,
진정한 메시아 예수
10.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
11.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다
에필로그: 메시아는 실종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을 외면했을 뿐
부록
주
Movement 1.
1세기 성도가 믿었던 메시아는 실종됐다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2.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姓)이 아니다
3. 메시아에 대한 오해: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4. 메시아 개념의 변화: 전통과 문화의 필터를 거치며 달라진 메시아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개인 맞춤형 서비스 제공자, AI(인공지능) 예수
Movement 2.
잃어버렸던 왕 메시아를 발견하다
6.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아들
7. 상상을 초월하는 메시아: 독보적인 영웅, 구약의 예표를 성취하신 분
8. 기대를 벗어난 메시아: 인간으로 오셔서 고난받으신 하나님
9. 부활하신 메시아: 모든 공간, 모든 시간을 다스리는 왕
Movement 3.
우리의 전부를 걸 만한 분,
진정한 메시아 예수
10.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
11.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다
에필로그: 메시아는 실종되지 않았다, 우리가 그분을 외면했을 뿐
부록
주
책 속으로
‘빌드 어 예수님’ 사고방식에 내가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목회 3년 차 때 깨달았다. 나는 산상수훈으로 연속 설교를 하고 있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예수님의 극단적 명령을 어떻게든 무디게 만들려 하고 있었다. ‘설마 우리를 해치는 이들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겠
지. 당연히 예외 조항, 전제 조건, 상식적인 제한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날 밤 성경 본문과 씨름하던 내게 불편한 자각이 밀려왔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분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그분의 실제 가르침은 너무 버겁고 내 안락한 세계관을 마구 뒤흔들고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내 중상류층 삶을 뒤집어 놓으실 예수님이 아니라 내 삶에 깔끔히 들어맞는 예수님을 원했던 것이다. _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예수님 당시에 히브리어 단어 ‘메시아’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에는 위험한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이 말은 막연한 영적 의미의 ‘구주’가 아니라 약속된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실 구원자를 지칭했다. 메시아를 자처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만큼 그 호칭에는 정치적 의미가 물씬 배어 있었고, 물론 예수님은 바로 그 이유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혁명적 호칭을 길들였다. 내 생각에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나라에서 그분이 지니신 권위를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성(姓)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때도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시는) 임금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구주 예수님을 따로 떼어 냈다. _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이론상으로만 보면 (로마인이 황제를 지칭한 표현인) ‘신의 아들’과 (유대인이 왕을 지칭한 표현인) ‘메시아’는 둘 다 가장 높은 인물이고 각자의 세계에서 최고 주권자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동일한 직무를 가리킨다는 이유만으로 두 호칭의 이력까지 같지는 않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신의 아들’이라는 말에서 숭배 대상을 떠올렸지만, 유대인은 ‘메시아’라는 말에서 모든 경배를 여호와께 돌리는 인물을 떠올렸다. 황제는 규율을 직접 만들 수 있지만, 메시아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시행한다. 황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지배하지만, 메시아는 그들을 회복시킨다.
지위는 같은데 행동 지침이 완전히 다르다. 마가의 말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메시아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교회에 대한 유대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그리스도를 문화의 렌즈로 새롭게 정의하기가 더 쉬워졌다. 많은 예언이 메시아를 통해 성취됐다는 인식이 초대 교회에서 옅어지면서, 예수님의 왕권 개념을 간과하기도 더 쉬워졌다. _ <2.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姓)이 아니다> 중에서
기독교는 그리스와 로마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점차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조직 구조를 차용했다. 이런 그리스화 과정의 여파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리스 철학의 여러 개념이 예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분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로 자리 잡았다. 요한이 복음
서 서두에 쓴 ‘로고스’(말씀)와 같은 단어들은 유대교 지혜 전통과도 통하면서 그리스 철학 사상과도 공명을 일으켰다. 솜씨 좋게 문화적 다리를 놓은 사례였다.
2세기 무렵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같은 그리스도인 사상가들은 교육받은 이방인에게 기독교를 설명할 때 그리스 철학의 여러 개념을 명시적으로 응용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신 신적 로고스(이성)라고 논증했다. 그리스 교육만 받아 유대교 메시아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청중도 이 개념에는 공감했다. _ <4. 메시아 개념의 변화>
로버트 퍼트넘은 저서 《나 홀로 볼링》에서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인의 공동체 생활이 어떻게 꾸준히 쇠퇴했는지를 추적했다. 우리는 볼링 동호회 가입에서 혼자 치는 볼링으로, 공동체 참여에서 개인 소비로, 공유된 경험에서 개인 맞춤형 오락물 피드로 넘어왔다. 서구 기독교도 그 흐름을 따라 공동체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바뀌었다. 어법에도 그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개인 구원’, ‘주님과 나의 동행’, ‘개인 경건’,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예수님’을 말한다. 성경도 ‘조용한 시간’에 혼자 읽는다. 우리가 새로 생각해 낸 신앙은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주로 개인의 여정이다. _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맞춤형 문화의 가장 좋은 예는 넷플릭스일 것이다. 넷플릭스에 로그인하면 사람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르게 나온다. 나만의 취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개인 맞춤형 오락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맞춤형 계정은 이 플랫폼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처음 고른 작품을 기준으로 복잡한 알고리즘이 형성되기 시작해, 갈수록 전체 스트리밍이 개인의 선호에 맞춰진다.
개인화 정도는 대다수 시청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묘하다. 똑같은 영화의 섬네일도 시청자마다 다르게 제시된다. 〈굿 윌 헌팅〉의 경우 어떤 사용자에게는 로맨틱하게 포옹한 맷 데이먼과 미니 드라이버를 보여 주지만, 다른 사용자에게는 극적 장면의 로빈 윌리엄스를 보여 준다. 장르 자체도 알고리즘으로 생성된다.
넷플릭스 현상은 오락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피드와 음악 서비스, 쇼핑 사이트, 검색 엔진 할 것 없이 디지털 생태계가 끊임없이 부추기는 신념이 있는데, 모든 것이 우리의 취향에 맞춰져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제공되어야 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차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마저 이런 렌즈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일상화된 맞춤형 교류에 길들여진 우리는 세상이 내 취향에 맞춰 주기를 바란다. 모든 콘텐츠와 경험이 당연히 내 기존 입맛과 프로필에 딱 맞게 재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이 점차 달라진다. 마치 그분이 넷플릭스 알고리즘이라도 된다는 듯, 그분의 가르침 가운데서 내 기존 취향에 맞는 부분만 강조하고 껄끄러운 부분은 걸러 내는 것이다. 이렇게 그분의 이미지를 이미 자신이 선호한다고 밝힌 콘텐츠에 맞춰 다시 만든다. _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그리스도)가 혼용된다. 한 문장 안에 두 용어를 함께 쓴 것만도 열한 번이나 되는데, 1세기 유대인 독자였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메시아 예언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명시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둘을 연결함으로써 초대 기독교 신학은 중대한 발전을 한다. 전통적으로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기대와 이스라엘의 국운 회복이 암시돼 있다. 신약 저자들은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연계해 메시아 개념을 넓게 재정의했다. 전통적 기대를 넘어 신의 아들이라는 신분까지 아우른 것이다. _ <6.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
개인주의 성향은 평소 복음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가도록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우주적 사건이 개인적 혜택으로 축소된다. 창조 세계 전체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왕권 선포가 개인의 내세 보장으로 축소된다. 심지어 부활절을 기념하는 방식마저 개인주의에 물들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를 통해 창조 세계를 속량하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인데, 그런 메시지를 들어야 할 그날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갈” 것과 “부활의 승리를 주장할”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왕으로 즉위하신 사건인 부활을 개인이 누릴 영적 능력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다.
치료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부활을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이 새로워지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새 출발을 하러 나선다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_ <8. 기대를 벗어난 메시아>
예수님은 우리의 맞춤형 영성이나 사적인 믿음에 깔끔히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부활하여 왕위에 앉으신 메시아로서 전폭적 충성을 요구하신다. 오해하지는 말라. 이 왕은 인격적으로 우리를 친밀하게 대하시기에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아시며 그분과의 개인적 관계로 초대하신다.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시고 일상생활에서 부활의 능력을 누리게 하신다. 애도에 잠긴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시며 위로하시고, 고통이 최종 승자가 아니라는 약속으로 우리의 고난에 의미를 부여하신다.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가?”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왕의 권세에 복종하겠는가?”이다. 당면한 문제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가?”만이 아니라 “지금 천국의 통치를 받으며 살겠는가?”이다. _ <9. 부활하신 메시아>
그래서 예수님을 랍비로 모시면 편안했던 기독교가 위태로워진다. 랍비는 당신 삶의 영적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뜯어고치신다. 돈을 생각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일에 접근하는 법, 갈등을 처리하는 법, 오락물을 시청하는 법,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침실부터 회의실까지 그분의 가르침과 권세에서 벗어난 금지 구역은 없다.
예수님을 따로 떼어 놓으면 안심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로나 인도나 용서가 필요할 때만 예수님 서랍을 열고, 그분의 가르침이 부담스러울 때는 닫는다. 반면 랍비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험한 이유는 삶 전체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라고 기도하고 어떻게 예배하고 무엇을 믿는지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떻게 일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변화시키기 원하신다. _ <10.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
내가 예수님을 치유자로 더 깊이 알게 된 이유는 의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의 간호사와 의사들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공급자로 아는 이유는 누가 실직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힘을 모아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우리 공동체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도전자로 아는 이유는 내가 그분이 제시하신 기준 이하에 안주할 때 성도들이 내 잘못을 지적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위로자로 아는 이유는 슬퍼하는 사람을 안아 주는 성도들을 보며 그분의 임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_ <11.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다>
지. 당연히 예외 조항, 전제 조건, 상식적인 제한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날 밤 성경 본문과 씨름하던 내게 불편한 자각이 밀려왔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분을 길들이려 하고 있다는 자각이었다. 그분의 실제 가르침은 너무 버겁고 내 안락한 세계관을 마구 뒤흔들고 사람들이 듣기에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었다. 내 중상류층 삶을 뒤집어 놓으실 예수님이 아니라 내 삶에 깔끔히 들어맞는 예수님을 원했던 것이다. _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예수님 당시에 히브리어 단어 ‘메시아’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에는 위험한 기대감이 실려 있었다. 이 말은 막연한 영적 의미의 ‘구주’가 아니라 약속된 왕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실 구원자를 지칭했다. 메시아를 자처하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을 만큼 그 호칭에는 정치적 의미가 물씬 배어 있었고, 물론 예수님은 바로 그 이유로 죽임을 당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이 혁명적 호칭을 길들였다. 내 생각에 오늘날 대다수 사람이 생각하는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나라에서 그분이 지니신 권위를 선포하는 말이 아니라 그분의 성(姓)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할 때도 그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충성을 요구하시는) 임금 예수님으로부터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시는) 구주 예수님을 따로 떼어 냈다. _ <1. 내 취향과 필요대로 만든 DIY 예수>
이론상으로만 보면 (로마인이 황제를 지칭한 표현인) ‘신의 아들’과 (유대인이 왕을 지칭한 표현인) ‘메시아’는 둘 다 가장 높은 인물이고 각자의 세계에서 최고 주권자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동일한 직무를 가리킨다는 이유만으로 두 호칭의 이력까지 같지는 않다.
그리스인과 로마인은 ‘신의 아들’이라는 말에서 숭배 대상을 떠올렸지만, 유대인은 ‘메시아’라는 말에서 모든 경배를 여호와께 돌리는 인물을 떠올렸다. 황제는 규율을 직접 만들 수 있지만, 메시아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시행한다. 황제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지배하지만, 메시아는 그들을 회복시킨다.
지위는 같은데 행동 지침이 완전히 다르다. 마가의 말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메시아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교회에 대한 유대인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그리스도를 문화의 렌즈로 새롭게 정의하기가 더 쉬워졌다. 많은 예언이 메시아를 통해 성취됐다는 인식이 초대 교회에서 옅어지면서, 예수님의 왕권 개념을 간과하기도 더 쉬워졌다. _ <2. ‘그리스도’는 예수의 성(姓)이 아니다> 중에서
기독교는 그리스와 로마 세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점차 그리스 철학과 로마의 조직 구조를 차용했다. 이런 그리스화 과정의 여파로 예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그리스 철학의 여러 개념이 예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그분과 하나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로 자리 잡았다. 요한이 복음
서 서두에 쓴 ‘로고스’(말씀)와 같은 단어들은 유대교 지혜 전통과도 통하면서 그리스 철학 사상과도 공명을 일으켰다. 솜씨 좋게 문화적 다리를 놓은 사례였다.
2세기 무렵 유스티누스(Justin Martyr) 같은 그리스도인 사상가들은 교육받은 이방인에게 기독교를 설명할 때 그리스 철학의 여러 개념을 명시적으로 응용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오신 신적 로고스(이성)라고 논증했다. 그리스 교육만 받아 유대교 메시아 사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청중도 이 개념에는 공감했다. _ <4. 메시아 개념의 변화>
로버트 퍼트넘은 저서 《나 홀로 볼링》에서 20세기 중반부터 미국인의 공동체 생활이 어떻게 꾸준히 쇠퇴했는지를 추적했다. 우리는 볼링 동호회 가입에서 혼자 치는 볼링으로, 공동체 참여에서 개인 소비로, 공유된 경험에서 개인 맞춤형 오락물 피드로 넘어왔다. 서구 기독교도 그 흐름을 따라 공동체에서 개인 맞춤형으로 바뀌었다. 어법에도 그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는 ‘개인 구원’, ‘주님과 나의 동행’, ‘개인 경건’,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예수님’을 말한다. 성경도 ‘조용한 시간’에 혼자 읽는다. 우리가 새로 생각해 낸 신앙은 하나님 나라의 혁명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주로 개인의 여정이다. _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맞춤형 문화의 가장 좋은 예는 넷플릭스일 것이다. 넷플릭스에 로그인하면 사람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다르게 나온다. 나만의 취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개인 맞춤형 오락 세계에 들어선 것이다. 맞춤형 계정은 이 플랫폼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처음 고른 작품을 기준으로 복잡한 알고리즘이 형성되기 시작해, 갈수록 전체 스트리밍이 개인의 선호에 맞춰진다.
개인화 정도는 대다수 시청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묘하다. 똑같은 영화의 섬네일도 시청자마다 다르게 제시된다. 〈굿 윌 헌팅〉의 경우 어떤 사용자에게는 로맨틱하게 포옹한 맷 데이먼과 미니 드라이버를 보여 주지만, 다른 사용자에게는 극적 장면의 로빈 윌리엄스를 보여 준다. 장르 자체도 알고리즘으로 생성된다.
넷플릭스 현상은 오락에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피드와 음악 서비스, 쇼핑 사이트, 검색 엔진 할 것 없이 디지털 생태계가 끊임없이 부추기는 신념이 있는데, 모든 것이 우리의 취향에 맞춰져 우리가 좋아하는 것만 제공되어야 하고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차단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마저 이런 렌즈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일상화된 맞춤형 교류에 길들여진 우리는 세상이 내 취향에 맞춰 주기를 바란다. 모든 콘텐츠와 경험이 당연히 내 기존 입맛과 프로필에 딱 맞게 재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예수님을 대하는 방식이 점차 달라진다. 마치 그분이 넷플릭스 알고리즘이라도 된다는 듯, 그분의 가르침 가운데서 내 기존 취향에 맞는 부분만 강조하고 껄끄러운 부분은 걸러 내는 것이다. 이렇게 그분의 이미지를 이미 자신이 선호한다고 밝힌 콘텐츠에 맞춰 다시 만든다. _ <5. 현대 사회가 만든 이상한(WEIRD) 예수>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그리스도)가 혼용된다. 한 문장 안에 두 용어를 함께 쓴 것만도 열한 번이나 되는데, 1세기 유대인 독자였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메시아 예언에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명시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둘을 연결함으로써 초대 기독교 신학은 중대한 발전을 한다. 전통적으로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기대와 이스라엘의 국운 회복이 암시돼 있다. 신약 저자들은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연계해 메시아 개념을 넓게 재정의했다. 전통적 기대를 넘어 신의 아들이라는 신분까지 아우른 것이다. _ <6.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
개인주의 성향은 평소 복음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당신이 죽으면 천국에 가도록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말하면 우주적 사건이 개인적 혜택으로 축소된다. 창조 세계 전체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의 왕권 선포가 개인의 내세 보장으로 축소된다. 심지어 부활절을 기념하는 방식마저 개인주의에 물들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를 통해 창조 세계를 속량하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인데, 그런 메시지를 들어야 할 그날 우리는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갈” 것과 “부활의 승리를 주장할”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 왕으로 즉위하신 사건인 부활을 개인이 누릴 영적 능력의 관점에서만 보는 것이다.
치료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는 부활을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개인이 새로워지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새 출발을 하러 나선다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_ <8. 기대를 벗어난 메시아>
예수님은 우리의 맞춤형 영성이나 사적인 믿음에 깔끔히 들어맞지 않는다. 오히려 부활하여 왕위에 앉으신 메시아로서 전폭적 충성을 요구하신다. 오해하지는 말라. 이 왕은 인격적으로 우리를 친밀하게 대하시기에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아시며 그분과의 개인적 관계로 초대하신다.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시고 일상생활에서 부활의 능력을 누리게 하신다. 애도에 잠긴 우리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확신을 주시며 위로하시고, 고통이 최종 승자가 아니라는 약속으로 우리의 고난에 의미를 부여하신다.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가?”만이 아니라 “부활하신 왕의 권세에 복종하겠는가?”이다. 당면한 문제는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가?”만이 아니라 “지금 천국의 통치를 받으며 살겠는가?”이다. _ <9. 부활하신 메시아>
그래서 예수님을 랍비로 모시면 편안했던 기독교가 위태로워진다. 랍비는 당신 삶의 영적 부분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삶 전체를 뜯어고치신다. 돈을 생각하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 일에 접근하는 법, 갈등을 처리하는 법, 오락물을 시청하는 법, 정치에 참여하는 법을 가르치신다. 침실부터 회의실까지 그분의 가르침과 권세에서 벗어난 금지 구역은 없다.
예수님을 따로 떼어 놓으면 안심되는 이유는 우리가 그분을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로나 인도나 용서가 필요할 때만 예수님 서랍을 열고, 그분의 가르침이 부담스러울 때는 닫는다. 반면 랍비 예수님이 우리에게 위험한 이유는 삶 전체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뭐라고 기도하고 어떻게 예배하고 무엇을 믿는지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어디에 돈을 쓰고 어떻게 일하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사는지도 변화시키기 원하신다. _ <10.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
내가 예수님을 치유자로 더 깊이 알게 된 이유는 의료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의 간호사와 의사들을 통해 일하시는 예수님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공급자로 아는 이유는 누가 실직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힘을 모아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는 우리 공동체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도전자로 아는 이유는 내가 그분이 제시하신 기준 이하에 안주할 때 성도들이 내 잘못을 지적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을 위로자로 아는 이유는 슬퍼하는 사람을 안아 주는 성도들을 보며 그분의 임재를 느꼈기 때문이다. _ <11. 함께 배우고 성장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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