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34929963 김영사
예일대 명물교수 - 함토벤
(저자) 함신익
김영사 · 2008-07-28 149*210
김영사 · 2008-07-28 149*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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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오늘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되도록 하라!
'지휘봉을 든 혁명가' '세계 음악계의 엔도르핀' 함신익
그가 들려주는 열정과 파격의 인생 경영법
‘지휘봉을 든 혁명가’ ‘음악계의 엔도르핀’ 함신익이 펼치는 삶과 일과 자기경영 이야기
미국의 예일대 음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있다. 자기 수업을 들으려면 키가 150센티인 사람도 180센티인 사람도 무조건 2미터가 되어야 하고, 그런 마음자세로 가슴과 허리를 쭉쭉 펴고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캠퍼스 어디에서 마주치건 만약 자기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면 낙제 점수를 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그는 바로 지휘과의 함신익 교수다. 지휘의 기본은 바른 자세라는 가르침과, 지휘를 통해 내 안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치로 발산하기를 바라는 그의 교육철학이 담긴 에피소드다. 그래서 예일대에서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저만치서 함 교수가 걸어오면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의 키를 쭉쭉 늘리며 걷곤 한다고 한다.
그는 때로 지휘법 시간에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로미오와 줄리엣 역할을 맡기며 연극 연기를 하라는 미션을 내리기도 한다. 피아노나 비올라 등 악기를 연주할 때는 다양한 감정표현을 보여주다가도 지휘대 앞에만 서면 목석같이 되어버리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 조치다. 지휘자는 연주단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특히 중요하므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멕시코 국립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러 가서 하이든의 교향곡 <미뉴에트와 트리오> 연주 연습을 할 때는, 자신이 바라는 발랄한 춤곡 분위기가 나오지 않자 한 여성단원과 왈츠를 추면서 춤곡 분위기를 유도해내기도 했다.
베이징의 차이나 필하모닉 객원 지휘를 할 때는, 중국 제일의 오케스트라라는 자부심과 한국인 지휘자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은 고집이 은연중에 감지되는 긴장된 분위기를, 단원들과 함께 섞여 도시락을 나눠먹고 함께 운동장을 달리며 축구경기를 하면서 단숨에 화기애애하게 바꿔놓았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기발한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예일대의 명물교수,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하는 연주스타일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는 스타 지휘자 함신익이 자신의 삶과 일과 자기경영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단돈 200달러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언어와 인종, 학벌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교수가 되기까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함신익은 삼양동 달동네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린 그의 눈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집이 가난한 것도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가장 큰 소원은 아버지의 직업란에 ‘목사’라고 쓰지 않는 거였다. 목사만 아니라면 어떤 직업도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끼니 잇는 것도 만만치 않은 살림에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막내아들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동기는 아주 소박했다. 교회에서 아름답게 성가 반주를 하는 아들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그는 곧 피아노가 새롭게 열어준 세계에 푹 빠졌다. 특히 사춘기 시절의 그에게 피아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해방시켜주고 환상 속에 머물게 해주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순간만은 가난도 다른 고민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가 왕이었다.
건국대 음악과에 수석 입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연세대 총장기 쟁탈 합창경연대회에 자신이 지휘하던 삼양교회 합창단을 이끌고 참가, 1등상을 받으면서 지휘자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지휘봉을 잡을 기회만 생기면 놓치지 않았다.
한국의 음악대학에 지휘 전공이 없던 시절,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휘를 전공한다는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절에 ‘지휘자’를 인생의 목표로 잡은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하기 위해 1984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주머니에는 단돈 200달러가 들어있었다.
미국에서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생활비는 식당웨이터와 냉동트럭 운전기사, 지압사 등을 해가며 벌었다. 라이스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명문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스트만 재학 당시 지휘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깁스 오케스트라’를 창단, 2년 만에 미국 로체스터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으며 이스트만 음대는 그의 뛰어난 기획력과 음악성, 기업가적인 벤처정신을 높이 평가해 지휘자를 위한 ‘월터 하겐’상을 새로 제정해가면서까지 그에게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버그 국제지휘대회에 입상하며 프로지휘자로 세계무대에 본격 데뷔한 그는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기발한 기획과 운영방식으로 ‘오케스트라 부흥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경기 침체로 시내 상가와 비즈니스 등 모든 것이 죽어가던 미국 텍사스의 애벌린 시는 함신익이라는 동양인 지휘자가 애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되어 다양한 연주회로 후원기업을 끌어들이고 사람을 불러 모아 도시를 되살렸다며 감사의 표시로 ‘함신익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ABC방송의 앵커 피터 제닝스는 <월드 뉴스 투나잇> 쇼를 통해 지휘자 함신익이 어떻게 애벌린 필하모닉을 가장 짧은 시간 동안에 가장 큰 성장을 거두도록 변혁시켰는지, 여느 벤처기업 성공스토리 못지않게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렸다. 그는 또한 그린베이 교향악단, 투스칼로사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도 일하며 그 지역의 명물로 키워내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휘자 5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 그는 1995년에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예일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결핍과 열망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싫었던 가난이 오히려 그의 음악적 성취를 자극하고 삶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냈다고 하니, 인생은 역설이고 아이러니다.
흥하는 기업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라! 세상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CEO의 경영과 리더십
지휘자는 음악적인 리더일 뿐만 아니라 조직을 이끌어가는 관리자 즉, 기업의 CEO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개개 연주단원을 잘 통솔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뤄 조화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 능력, 오케스트라의 혁신과 체질개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능력, 신선한 기획과 다양한 마케팅 솔루션으로 흥하는 기업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오늘날의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오케스트라 부흥사’ 함신익은 음악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전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도 활동한 그는 연주복을 벗어버리고 단원들과 함께 축구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힙합에 빠진 청소년을 클래식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악기들의 올림픽’ ‘청바지연주회’ ‘다락방의 베토벤’ 등 다양한 공연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직장인 등 청중을 직접 찾아가는 소규모음악회로 연주회장의 문턱을 확 낮추어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단원들과의 개별면담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욕구를 읽으려 노력하고, 대전 충청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 프로그램 등을 자주 기획하여 단원들의 기량과 자신감 향상에 골몰했으며,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단원들의 숙원사업인 해외 순회 연주를 추진, 뉴욕의 카네기홀 연주무대 등에 서는 개가를 이루기도 했다. 창단 20년이 넘도록 서울 무대조차 단독으로 서본 적이 없던 대전 시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이 책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통솔하고,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해내며, 함께 생산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탐색이 담겨있다.
또한 가난한 유학생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자신에게 대가 없는 사랑과 호의를 베풀어준 어느 이웃에 대한 추억과 그 이웃이 해준 “다른 사람에게 갚으세요(Pass it on)”라는 말을 통해 배운 사랑의 새로운 정의(152쪽),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지휘자의 덕목과 철학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균형 있는 삶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에 대한 기억(165쪽), 그리고 이제 자신이 예일대학교에서 청출어람 하는 제자를 길러내면서 얻는 기쁨과 희열 등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한국의 건국대학을 졸업한 미국 예일대 교수 함신익. 그는 학벌은 인생의 자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곳에 가든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가가 중요하며, 학교가 나에게 필요한 양분을 주고 내가 그 안에서 양껏 자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에게는 최고의 일류학교고, 반면 남들이 아무리 일류학교로 꼽아도 내가 그 안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3류, 4류가 되는 거라고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사회가 학벌이 아닌 실력을 묻는 사회, 대학 간판 하나로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접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지휘봉을 든 혁명가' '세계 음악계의 엔도르핀' 함신익
그가 들려주는 열정과 파격의 인생 경영법
‘지휘봉을 든 혁명가’ ‘음악계의 엔도르핀’ 함신익이 펼치는 삶과 일과 자기경영 이야기
미국의 예일대 음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있다. 자기 수업을 들으려면 키가 150센티인 사람도 180센티인 사람도 무조건 2미터가 되어야 하고, 그런 마음자세로 가슴과 허리를 쭉쭉 펴고 걸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강의실뿐만 아니라 캠퍼스 어디에서 마주치건 만약 자기 앞에서 구부정한 자세를 보이면 낙제 점수를 줄 거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는 그는 바로 지휘과의 함신익 교수다. 지휘의 기본은 바른 자세라는 가르침과, 지휘를 통해 내 안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대치로 발산하기를 바라는 그의 교육철학이 담긴 에피소드다. 그래서 예일대에서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저만치서 함 교수가 걸어오면 자세를 가다듬고 자신의 키를 쭉쭉 늘리며 걷곤 한다고 한다.
그는 때로 지휘법 시간에 학생들에게 느닷없이 로미오와 줄리엣 역할을 맡기며 연극 연기를 하라는 미션을 내리기도 한다. 피아노나 비올라 등 악기를 연주할 때는 다양한 감정표현을 보여주다가도 지휘대 앞에만 서면 목석같이 되어버리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 조치다. 지휘자는 연주단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특히 중요하므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라도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멕시코 국립오케스트라를 객원 지휘하러 가서 하이든의 교향곡 <미뉴에트와 트리오> 연주 연습을 할 때는, 자신이 바라는 발랄한 춤곡 분위기가 나오지 않자 한 여성단원과 왈츠를 추면서 춤곡 분위기를 유도해내기도 했다.
베이징의 차이나 필하모닉 객원 지휘를 할 때는, 중국 제일의 오케스트라라는 자부심과 한국인 지휘자에게 끌려가고 싶지 않은 고집이 은연중에 감지되는 긴장된 분위기를, 단원들과 함께 섞여 도시락을 나눠먹고 함께 운동장을 달리며 축구경기를 하면서 단숨에 화기애애하게 바꿔놓았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기발한 행동으로 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예일대의 명물교수,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하는 연주스타일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 모으는 스타 지휘자 함신익이 자신의 삶과 일과 자기경영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단돈 200달러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언어와 인종, 학벌의 장벽을 극복하고 한국인 최초로 예일대 교수가 되기까지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함신익은 삼양동 달동네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어린 그의 눈에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집이 가난한 것도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가장 큰 소원은 아버지의 직업란에 ‘목사’라고 쓰지 않는 거였다. 목사만 아니라면 어떤 직업도 용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끼니 잇는 것도 만만치 않은 살림에서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막내아들에게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동기는 아주 소박했다. 교회에서 아름답게 성가 반주를 하는 아들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 그는 곧 피아노가 새롭게 열어준 세계에 푹 빠졌다. 특히 사춘기 시절의 그에게 피아노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서 해방시켜주고 환상 속에 머물게 해주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순간만은 가난도 다른 고민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가 왕이었다.
건국대 음악과에 수석 입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 대학을 다니던 그는 연세대 총장기 쟁탈 합창경연대회에 자신이 지휘하던 삼양교회 합창단을 이끌고 참가, 1등상을 받으면서 지휘자로서의 재능과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지휘봉을 잡을 기회만 생기면 놓치지 않았다.
한국의 음악대학에 지휘 전공이 없던 시절, 보통 사람들에게는 지휘를 전공한다는 개념조차 희박하던 시절에 ‘지휘자’를 인생의 목표로 잡은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하기 위해 1984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주머니에는 단돈 200달러가 들어있었다.
미국에서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하고 생활비는 식당웨이터와 냉동트럭 운전기사, 지압사 등을 해가며 벌었다. 라이스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명문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지휘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스트만 재학 당시 지휘경험을 쌓기 위해 직접 ‘깁스 오케스트라’를 창단, 2년 만에 미국 로체스터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로 성장시켰으며 이스트만 음대는 그의 뛰어난 기획력과 음악성, 기업가적인 벤처정신을 높이 평가해 지휘자를 위한 ‘월터 하겐’상을 새로 제정해가면서까지 그에게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버그 국제지휘대회에 입상하며 프로지휘자로 세계무대에 본격 데뷔한 그는 고정관념과 형식을 파괴한 기발한 기획과 운영방식으로 ‘오케스트라 부흥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경기 침체로 시내 상가와 비즈니스 등 모든 것이 죽어가던 미국 텍사스의 애벌린 시는 함신익이라는 동양인 지휘자가 애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가 되어 다양한 연주회로 후원기업을 끌어들이고 사람을 불러 모아 도시를 되살렸다며 감사의 표시로 ‘함신익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ABC방송의 앵커 피터 제닝스는 <월드 뉴스 투나잇> 쇼를 통해 지휘자 함신익이 어떻게 애벌린 필하모닉을 가장 짧은 시간 동안에 가장 큰 성장을 거두도록 변혁시켰는지, 여느 벤처기업 성공스토리 못지않게 미국 전역에 널리 알렸다. 그는 또한 그린베이 교향악단, 투스칼로사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로도 일하며 그 지역의 명물로 키워내는 능력을 발휘하였다.
‘미국의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갈 차세대 지휘자 5인’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도 한 그는 1995년에 1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예일대 교수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결핍과 열망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그토록 싫었던 가난이 오히려 그의 음악적 성취를 자극하고 삶에 대한 열망을 이끌어냈다고 하니, 인생은 역설이고 아이러니다.
흥하는 기업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라! 세상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CEO의 경영과 리더십
지휘자는 음악적인 리더일 뿐만 아니라 조직을 이끌어가는 관리자 즉, 기업의 CEO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개개 연주단원을 잘 통솔하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이뤄 조화로운 조직을 만들어내는 능력, 오케스트라의 혁신과 체질개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능력, 신선한 기획과 다양한 마케팅 솔루션으로 흥하는 기업 같은 오케스트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오늘날의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오케스트라 부흥사’ 함신익은 음악과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지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전 시립교향악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도 활동한 그는 연주복을 벗어버리고 단원들과 함께 축구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가 하면 힙합에 빠진 청소년을 클래식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악기들의 올림픽’ ‘청바지연주회’ ‘다락방의 베토벤’ 등 다양한 공연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직장인 등 청중을 직접 찾아가는 소규모음악회로 연주회장의 문턱을 확 낮추어 한국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단원들과의 개별면담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욕구를 읽으려 노력하고, 대전 충청 지역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음향시설을 갖춘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 프로그램 등을 자주 기획하여 단원들의 기량과 자신감 향상에 골몰했으며,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단원들의 숙원사업인 해외 순회 연주를 추진, 뉴욕의 카네기홀 연주무대 등에 서는 개가를 이루기도 했다. 창단 20년이 넘도록 서울 무대조차 단독으로 서본 적이 없던 대전 시향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
이 책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그가 어떻게 사람들을 통솔하고,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방안을 도출해내며, 함께 생산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탐색이 담겨있다.
또한 가난한 유학생으로 고생하던 시절에 자신에게 대가 없는 사랑과 호의를 베풀어준 어느 이웃에 대한 추억과 그 이웃이 해준 “다른 사람에게 갚으세요(Pass it on)”라는 말을 통해 배운 사랑의 새로운 정의(152쪽), 자신의 잠재력을 키워주고 지휘자의 덕목과 철학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균형 있는 삶에 대해서도 중요한 가르침을 주었던 스승에 대한 기억(165쪽), 그리고 이제 자신이 예일대학교에서 청출어람 하는 제자를 길러내면서 얻는 기쁨과 희열 등에 대해서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한국의 건국대학을 졸업한 미국 예일대 교수 함신익. 그는 학벌은 인생의 자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곳에 가든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가가 중요하며, 학교가 나에게 필요한 양분을 주고 내가 그 안에서 양껏 자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자신에게는 최고의 일류학교고, 반면 남들이 아무리 일류학교로 꼽아도 내가 그 안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3류, 4류가 되는 거라고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사회가 학벌이 아닌 실력을 묻는 사회, 대학 간판 하나로 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접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저자 및 역자 소개
함신익
1958년 생. 건국대 음대 졸업 후 1984년 도미, 라이스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지휘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버그 국제지휘대회에 입상하며 프로지휘자로 데뷔했고, 1995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예일대 교수가 되었다. 현재 예일 음악대학원 지휘과 정교수로 있다.
미국 애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그린베이 교향악단․투스칼루사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한국 대전 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예일 심포니 지휘자로 활동했고 현재 예일 필하모니아 지휘감독으로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 각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로부터 객원지휘자로 초청받고 있다.
1958년 생. 건국대 음대 졸업 후 1984년 도미, 라이스 대학에서 석사를 마치고 이스트만 음악학교에서 지휘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1년 폴란드의 피텔버그 국제지휘대회에 입상하며 프로지휘자로 데뷔했고, 1995년에 한국인 최초로 미국 예일대 교수가 되었다. 현재 예일 음악대학원 지휘과 정교수로 있다.
미국 애벌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그린베이 교향악단․투스칼루사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한국 대전 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예일 심포니 지휘자로 활동했고 현재 예일 필하모니아 지휘감독으로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 각국의 메이저 오케스트라로부터 객원지휘자로 초청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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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장 삼양동 달동네 소년, 예일대 교수 되다
너의 키는 2미터
피아노가 나를 울렸다
운명을 바꾼 지휘봉
단돈2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라이스 대학의 억척 청강생
견인차 속의 리사이틀
꿈의 이스트만 음악 학교
지휘 공부를 위해 만든 깁스 오케스트라
이스트만 명물
예일대 교수가 되던 날
2장 세상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 CEO
오케스트라 부흥사
흰머리 연주회, 청바지 연주회
축구와 오케스트라
대전 시향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음악계의 붉은 악마, 높은음자리표
중국에서 통한 함신익표 리더쉽
맹장이냐 덕장이냐
3장 희망 한곡조, 두둥!
다른사람에게 갚으세요(Pass it on)
나의 스승, 나의 제자
함신익배 쟁탈 국제 지휘 경연대회
시각장애인 트럼펫 연주자, 캐시
그래도 음악은 버릴 수 없다
이름이 정말 함토벤이오?
문제를 지적하는 방법
커피숍에서 프로코피에프 완전정복하기
4장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다
노래하는 지휘자
콘서트 리허설 구경하러 오세요
나의 무대 인사법
한밤중에 나이아가라로 달려가는 남자
화두를 던져라
필이 통해야 옷이 나옵니다
지휘자의 음악 만들기
나의 달 멜로디
학벌 그게 뭔가요
너의 키는 2미터
피아노가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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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이냐 덕장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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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 리허설 구경하러 오세요
나의 무대 인사법
한밤중에 나이아가라로 달려가는 남자
화두를 던져라
필이 통해야 옷이 나옵니다
지휘자의 음악 만들기
나의 달 멜로디
학벌 그게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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