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91199912960 훈훈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발견한 육아와 복음의 기쁨)
(저자) 김은진
훈훈 · 2026-08-01 140*205 · 328p
훈훈 · 2026-08-01 140*205 ·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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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발견한
육아와 복음의 기쁨
[책 소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발견한
육아와 복음의 기쁨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내며,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싶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생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요한복음과 단이를 통해서 ‘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고, 아내를 보고, 윤이를 보고, 단이를 보면, 왜곡된 평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중에 단이가 커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단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가 단이를 이만큼 사랑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고 있다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중.
엄마들은 아이들을 뱃속에 품는 순간부터 엄마가 되어간다. 아빠들은 조금 다르다. 아빠들은 아이를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아빠가 되어간다. 저자 김은진은 첫째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마음과 밀려온 신앙적 통찰을 담아 2023년 4월, <성경 대신 젖병을>이란 제목의 도서를 출간했다. 도서의 부제는 “전업육아에 겁 없이 뛰어든 초보아빠 김은진 목사가 나누는 육아의 신비와 은혜”였다. 당시 저자 김은진은 초보아빠가 느낀 다양한 희로애락을 포근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목회자로 살아가는 저자로서, ‘육아라는 행복한 노동에서 밀려온 신앙적인 통찰’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었다.
그로부터 약 3년 4개월의 시간이 흘러 저자 김은진이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그 사이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고, 새로운 존재를 양육하며 느끼고 마음에 새겨진 새로운 은혜의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 김은진은 육아에 최선을 다하지만 육아에 함몰되지 않은 채, 육아가 남긴 마음의 흔적을 성실히 기록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완벽한 육아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라 ‘때론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신앙 일기’에 가깝다.
‘육아’라는 특별한 시기는 자칫하면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 독자들은 저자 김은진의 꼼꼼하고 성실한 기록을 통해, 나의 육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소중함을 다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 분께서 주신 선물과도 같은 시간임을 알려주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
다시 발견한
육아와 복음의 기쁨
[책 소개]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
다시 발견한
육아와 복음의 기쁨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내며,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싶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생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요한복음과 단이를 통해서 ‘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고, 아내를 보고, 윤이를 보고, 단이를 보면, 왜곡된 평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중에 단이가 커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단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가 단이를 이만큼 사랑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고 있다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중.
엄마들은 아이들을 뱃속에 품는 순간부터 엄마가 되어간다. 아빠들은 조금 다르다. 아빠들은 아이를 실제로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아빠가 되어간다. 저자 김은진은 첫째 아이를 키우며 느꼈던 마음과 밀려온 신앙적 통찰을 담아 2023년 4월, <성경 대신 젖병을>이란 제목의 도서를 출간했다. 도서의 부제는 “전업육아에 겁 없이 뛰어든 초보아빠 김은진 목사가 나누는 육아의 신비와 은혜”였다. 당시 저자 김은진은 초보아빠가 느낀 다양한 희로애락을 포근하고 진솔하게 풀어냈다. 그리고 목회자로 살아가는 저자로서, ‘육아라는 행복한 노동에서 밀려온 신앙적인 통찰’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었다.
그로부터 약 3년 4개월의 시간이 흘러 저자 김은진이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냈다. 그 사이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고, 새로운 존재를 양육하며 느끼고 마음에 새겨진 새로운 은혜의 흔적들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 김은진은 육아에 최선을 다하지만 육아에 함몰되지 않은 채, 육아가 남긴 마음의 흔적을 성실히 기록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완벽한 육아에 대한 지침서’가 아니라 ‘때론 어설프지만, 그럼에도 빛나고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신앙 일기’에 가깝다.
‘육아’라는 특별한 시기는 자칫하면 그냥 흘러가버릴 수도 있다. 독자들은 저자 김은진의 꼼꼼하고 성실한 기록을 통해, 나의 육아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소중함을 다시 새길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 분께서 주신 선물과도 같은 시간임을 알려주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이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 김은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대한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공군 군종목사로 만 4년 동안 군인교회를 섬겼다.
2022년 4월, 첫째 윤이가 태어났을 때, 사역을 멈추고 전업육아에 뛰어들었다. 그때의 은혜를 담은 책이 바로 <성경 대신 젖병을: 전업육아에 겁 없이 뛰어든 초보아빠 김은진 목사가 나누는 육아의 신비와 은혜>였다.
그는 진로, 직업, 일, 리더십을 다루는 전문가가 되어 청년들을 섬기는 날을 꿈꾸며 준비 중이다. 그날을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중엔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주말에는 <나들목꿈꾸는교회>에서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기독교 대한감리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대한민국공군 군종목사로 만 4년 동안 군인교회를 섬겼다.
2022년 4월, 첫째 윤이가 태어났을 때, 사역을 멈추고 전업육아에 뛰어들었다. 그때의 은혜를 담은 책이 바로 <성경 대신 젖병을: 전업육아에 겁 없이 뛰어든 초보아빠 김은진 목사가 나누는 육아의 신비와 은혜>였다.
그는 진로, 직업, 일, 리더십을 다루는 전문가가 되어 청년들을 섬기는 날을 꿈꾸며 준비 중이다. 그날을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공부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중엔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주말에는 <나들목꿈꾸는교회>에서 청소년부를 섬기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챕터 1. 창조의 온도를 느끼는 삶!
1. 새 생명의 탄생, 새로운 시작
2. 창조의 온도를 느끼는 삶!
3. 욕심의 방향을 바꾸는 지혜
4. 빛에 집중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권
5. 사랑은 곧 관심이 아닐까요?
6. 나는 아니오!
7. 나의 일을 할 뿐입니다
챕터 2. 거래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8.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9. 미리 내다보는 사랑의 선포, 사랑의 결단
10. 변화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태도
11. 일단 하고 나서, 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들
12. 결국 사랑이 힘이 됩니다.
13. 해석하는 시야가 달라집니다
14. 거래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챕터 3. 우리는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15. 기억과 경험이 연결되어서, 성장하게 됩니다
16.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17. 스스로 극복하는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존재
18.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9. 당당하게 울 수 있는 아이
20.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1. 낯설고 다른 공간으로 발걸음을 향하십니다. 말을 건네십니다
22.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르십니다
23. 우리는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챕터 4. N지선다의 어려운 퀴즈들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24. 기쁜 마음으로 수고로움을 감당했고, 또 풍성한 환대를 누리고 왔습니다
25.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기대감이 필요합니다
26. N지선다의 어려운 퀴즈들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27. 너그럽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곁으로
28. 누군가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주는 역할
29. 생명 본연의 흐름대로
30. 지금의 소중함을 증언해 주는 사람
31.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 기다리기보다 찾아가는 삶
챕터 5. 삶을 향한 찬사
32. 삶을 향한 찬사
33. 인간의 ‘천천히’에 맞춰 주시는 사랑
34.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35. 있는 그대로 품으시는 사랑 안에서, 최선을 다하길
36. 슬기롭고 순진하게, 영원을 추구하는 삶
37. 자유롭게 사랑의 관계를 선택하길
38. ‘하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39. 기초를 든든히 세우고, 기적을 맛보며 살아가기
챕터 6. 아이들에게만큼은 ‘아빠’로 불리고 싶습니다!
40. 날마다 이리저리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
41. 진리가 눈앞에 있어도 잘 모르는 우리
42. 몰라서 두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43.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던 날
44.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닌, 더 섬세히 봐주는 시선
45. 서로 섬기고, 존중하며,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46. 아이들에게만큼은 ‘아빠’로 불리고 싶습니다!
챕터 7. 부르시는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47.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48. 억압의 틀이 아닌, 사랑의 보호막
49. 아프지 않고 말을 잘 들어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50. 애매하게 아는 것에 집착하느라 진리를 놓쳐버리고 있습니다
51. 든든히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으로 진리를 살아내는
52. 부르시는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53. 눈앞에 보이는 행동과 말과 움직임을 모든 판단의 1순위로 삼아야
54. 사랑하는 친구에게 “내가 너 믿는다!”라고 말할 때의 믿음
<에필로그>
챕터 1. 창조의 온도를 느끼는 삶!
1. 새 생명의 탄생, 새로운 시작
2. 창조의 온도를 느끼는 삶!
3. 욕심의 방향을 바꾸는 지혜
4. 빛에 집중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권
5. 사랑은 곧 관심이 아닐까요?
6. 나는 아니오!
7. 나의 일을 할 뿐입니다
챕터 2. 거래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8.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9. 미리 내다보는 사랑의 선포, 사랑의 결단
10. 변화를 받아들이는 부모의 태도
11. 일단 하고 나서, 지나고 나서 알 수 있는 것들
12. 결국 사랑이 힘이 됩니다.
13. 해석하는 시야가 달라집니다
14. 거래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챕터 3. 우리는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15. 기억과 경험이 연결되어서, 성장하게 됩니다
16.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17. 스스로 극복하는 인간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존재
18.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19. 당당하게 울 수 있는 아이
20.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1. 낯설고 다른 공간으로 발걸음을 향하십니다. 말을 건네십니다
22.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부르십니다
23. 우리는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고 있습니다!
챕터 4. N지선다의 어려운 퀴즈들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24. 기쁜 마음으로 수고로움을 감당했고, 또 풍성한 환대를 누리고 왔습니다
25.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새로운 기대감이 필요합니다
26. N지선다의 어려운 퀴즈들을 풀어가고 있습니다
27. 너그럽게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곁으로
28. 누군가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주는 역할
29. 생명 본연의 흐름대로
30. 지금의 소중함을 증언해 주는 사람
31. 끊임없이 움직이는 삶, 기다리기보다 찾아가는 삶
챕터 5. 삶을 향한 찬사
32. 삶을 향한 찬사
33. 인간의 ‘천천히’에 맞춰 주시는 사랑
34.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35. 있는 그대로 품으시는 사랑 안에서, 최선을 다하길
36. 슬기롭고 순진하게, 영원을 추구하는 삶
37. 자유롭게 사랑의 관계를 선택하길
38. ‘하루’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39. 기초를 든든히 세우고, 기적을 맛보며 살아가기
챕터 6. 아이들에게만큼은 ‘아빠’로 불리고 싶습니다!
40. 날마다 이리저리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
41. 진리가 눈앞에 있어도 잘 모르는 우리
42. 몰라서 두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43. 처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던 날
44.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닌, 더 섬세히 봐주는 시선
45. 서로 섬기고, 존중하며, 함께 식사를 나누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아이
46. 아이들에게만큼은 ‘아빠’로 불리고 싶습니다!
챕터 7. 부르시는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47. 나를 보내신 분이 나와 함께 하신다
48. 억압의 틀이 아닌, 사랑의 보호막
49. 아프지 않고 말을 잘 들어야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50. 애매하게 아는 것에 집착하느라 진리를 놓쳐버리고 있습니다
51. 든든히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으로 진리를 살아내는
52. 부르시는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53. 눈앞에 보이는 행동과 말과 움직임을 모든 판단의 1순위로 삼아야
54. 사랑하는 친구에게 “내가 너 믿는다!”라고 말할 때의 믿음
<에필로그>
책 속으로
#1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내며,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싶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생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요한복음과 단이를 통해서 ‘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고, 아내를 보고, 윤이를 보고, 단이를 보면, 왜곡된 평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중에 단이가 커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단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가 단이를 이만큼 사랑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고 있다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6p 중.
#2
우리 삶의 많은 어려움은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특히나 ‘내’가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그 욕심이 아주 무섭습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하루 동안 열심히 운전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기뻤다”라고 썼지만, 정말 솔직한 마음은 동시에 그렇게 노력한 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번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그 욕심이란 녀석은 우리 해석의 틀을 장악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불평해야 할 이유를 찾고, 서운한 포인트들을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내가 억울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리화시킵니다. 그 과정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본문의 요한은 조금 달랐습니다. 요한도 제법 거룩한 사역들을 해냈던 사람입니다.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고, 세례를 주기도 하고, 당당하게 하나의 신앙적 흐름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은 빛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빛을 따르게 되길 원했습니다. 그에게도 ‘욕심’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욕심들은 대부분 그 방향이 ‘나’를 향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욕심은 ‘빛이신 분’을 향한 욕심이었습니다!
이 태도에 믿음 생활의 힌트가 있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25p 중.
#3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할 때마다, 세상에 속한 누군가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럼 너 아무것도 아닌데 왜 살아?”라고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왜 인생에 의미를 찾느냐는, 네가 맡은 역할을 어차피 제대로 해낼 수도 없으니 다 내던져버리라고 유혹하는 목소리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요즘 육아하는 부모님들이 몸의 피로에 마음까지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잘못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 아닐까요? 다양한 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에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난다, 되돌릴 수 없다, 이걸 못해주면 좋은 부모가 아니다”와 같은 메시지들이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연결된 알고리즘에서도 그런 영상들이 자주 나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그러한 메시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나는 아니오”라는 겸손한 태도와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주며 회개를 외치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던 세례요한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난다고? 알게 된 이상, 놓치지 않아 보려고 노력은 할 거야. 하지만, 놓친다고 아이가 망가지는 건 아니야. 내가 무가치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 이 아이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아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아이이기 때문이야. 난 나의 일을 할 뿐이야!”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47p 중.
#4
우리는 평소에 ‘나’라는 작은 틀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마치 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는 것처럼, 일이 잘 풀리면 세상 나만큼 대단한 사람 없다며 자만하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비운의 주인공처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것처럼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나’에게만 심취해 있을 때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변화들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모두가 비슷한 성정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임을 기억할 때, 조금 더 여유롭게 사건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인문학적으로는 “인류애”라는 틀로 설명하곤 합니다.
아내가 보여준 맘카페의 글들을 보며 왜 제 마음이 놓였던 것일까요? 지금 겪고 있는 갑작스러운 사건, 단이가 평소와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의 원인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까지, 이 상황들을 선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2개월 예방접종이 좀 세구나! 윤이 때는 그냥 넘어가서 몰랐는데, 이런 반응이 있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길어도 2,3일 정도면 회복되고 평상시로 돌아오는구나”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셨다고 하는 것이,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내밀한 속 마음을 아셨다는 뜻일까요? 아마 예수께서는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지, 동시에 그 죄 많은 인간들이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예수님의 주변에 따라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까지도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단이를 키우지만, 만약 제가 이 세상에서 오직 단이만 예쁘고 소중한 아이라는 생각에 빠져 다른 아이들은 단이만큼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인간 이해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겠죠. ‘나’에게만, ‘내 것’에만, 더 나아가 “내 편, 우리 편”에 집착하느라, 사실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망각하지 않길 소원합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104p 중.
#5
예수님을 향해서 몰려드는 큰 무리들, 그 무리들을 지켜보고 있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제자인 ‘나’. 솔직히 저는 그 무리들이 귀찮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갈릴리 지방과 예루살렘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적을 베푸시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나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귀찮게 하는 욕망 덩어리 군중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 생명을 다루는 행동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같은 무리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욕망 덩어리라고 손가락질할 것이고, 누군가는 공허한 것에 삶을 내던지는 그들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윤이와 단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가끔은 ‘단이가 아직 5개월 밖에 안됐으니, 단이를 핑계로 집에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스쳐가는 생각으로 흘려보내는 중입니다. 좋은 목사,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과 삶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계산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말과 삶을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냉소적인 태도가 아주 날카롭고 멋진 태도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시니컬하게 교회와 목사님들을 비판하고, 정치인, 연예인 등의 세상 일들을 평가하는 것이 고차원적이고 멋진 태도라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삶에서 가장 무가치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냉소적인 태도는 곧 교만함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삶을 향한 찬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저는 단이를 키우면서 날마다 감탄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하루하루 자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낍니다. 그렇게 소중한 단이를 데리고, 조금 고생하더라도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교회도 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풍성하게 ‘함께함’의 의미를 깨우치게 됩니다. 감사하고, 감탄하고,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197p 중.
#6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3절).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을 만들어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들은 “이 여자가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4-5절)”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면, “예수는 비정한 사람이다!”라고, 반대로 예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면, “율법을 어기는 자다!”라고 몰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6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간음한 여인’은 단순히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이 와닿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이나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를 궁지에 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세상에 한 명뿐인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무시한 채, 그냥 ‘도구’로 바라본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단이가 잠과 관련해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주어서, 몸은 좀 힘들긴 합니다. 그래도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제가 이제야 단이를 독특한 아이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대충 ‘잘 자는 아이’라고 규정지어 보는 게 아니라, 더 세심하게 이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단이가 잠을 잘 못 자는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 하면 좋겠다며 그저 아이가 짜증내는 시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고 특별한 시기로 보고 싶습니다. 미운 시기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봐주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260p 중.
#7
말씀 속에서 두 가지 포인트가 감동이 됩니다. 첫째는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보내신 대로 행동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왜 굳이 눈에 진흙을 바르시죠? 왜 굳이 실로암에 보내시나요, 다른 연못은 안 되나요? 그냥 말씀으로 고쳐 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시는 그대로 행동했더니, 눈을 뜨게 됩니다. 둘째는 호칭의 변화입니다. 앞에서는 ‘눈먼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눈을 뜨게 된 사람(12)’으로 호칭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빛을 만났더니,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 자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단이가 어제 보여준 모습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단이는 쿼카가 뭔지, 인형이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손가락으로 안내해 준 방향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방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서고, 얻어냅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 전까지 그냥 바닥에 잔뜩 굴러다니던 여러 장난감 중의 하나였던 무언가가, 단이의 손에 잡혀서 소중한 인형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완전히 다 이해돼서 계획을 세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그저 보내셨기 때문에,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속는 셈 치고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런 태도로 접근하신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인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다니! 강요하지 않으시고,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신다니!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우리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눈 뜬 사람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흔하디 흔한 하루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이, 정해진 루틴만 반복하다가 끝나는 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기쁘게 되는 일들이 생길 줄 믿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305p 중.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를 펴내며,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싶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생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요한복음과 단이를 통해서 ‘나’의 기준으로 ‘나’ 자신을 보고, 아내를 보고, 윤이를 보고, 단이를 보면, 왜곡된 평가를 하게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나중에 단이가 커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됐을 때, 단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가 단이를 이만큼 사랑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그보다 더 큰 사랑을 하나님께 받고 있다고.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6p 중.
#2
우리 삶의 많은 어려움은 ‘욕심’에서 기인합니다. 특히나 ‘내’가 인정받아야만 한다는 그 욕심이 아주 무섭습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하루 동안 열심히 운전하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한 것이 기뻤다”라고 썼지만, 정말 솔직한 마음은 동시에 그렇게 노력한 것을 알아주고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번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그 욕심이란 녀석은 우리 해석의 틀을 장악해 버립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불평해야 할 이유를 찾고, 서운한 포인트들을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내가 억울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합리화시킵니다. 그 과정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본문의 요한은 조금 달랐습니다. 요한도 제법 거룩한 사역들을 해냈던 사람입니다. 제자들을 거느리고,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고, 세례를 주기도 하고, 당당하게 하나의 신앙적 흐름을 만들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은 빛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빛을 따르게 되길 원했습니다. 그에게도 ‘욕심’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의 방향이 달랐습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욕심들은 대부분 그 방향이 ‘나’를 향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욕심은 ‘빛이신 분’을 향한 욕심이었습니다!
이 태도에 믿음 생활의 힌트가 있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25p 중.
#3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할 때마다, 세상에 속한 누군가는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럼 너 아무것도 아닌데 왜 살아?”라고 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왜 인생에 의미를 찾느냐는, 네가 맡은 역할을 어차피 제대로 해낼 수도 없으니 다 내던져버리라고 유혹하는 목소리가 우리를 찾아옵니다.
요즘 육아하는 부모님들이 몸의 피로에 마음까지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잘못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 아닐까요? 다양한 SNS를 비롯한 여러 매체들에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난다, 되돌릴 수 없다, 이걸 못해주면 좋은 부모가 아니다”와 같은 메시지들이 넘쳐나는 것 같습니다. 저와 연결된 알고리즘에서도 그런 영상들이 자주 나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그러한 메시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리에게는 “나는 아니오”라는 겸손한 태도와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주며 회개를 외치는 사역을 멈추지 않았던 세례요한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혼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난다고? 알게 된 이상, 놓치지 않아 보려고 노력은 할 거야. 하지만, 놓친다고 아이가 망가지는 건 아니야. 내가 무가치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 이 아이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아이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아이이기 때문이야. 난 나의 일을 할 뿐이야!”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47p 중.
#4
우리는 평소에 ‘나’라는 작은 틀에 갇혀서 살아갑니다. 마치 이 세상에 오직 ‘나’밖에 없는 것처럼, 일이 잘 풀리면 세상 나만큼 대단한 사람 없다며 자만하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비운의 주인공처럼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것처럼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나’에게만 심취해 있을 때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과 변화들이 엄청나게 큰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 모두가 비슷한 성정을 가진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임을 기억할 때, 조금 더 여유롭게 사건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기독교 신앙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고백하는 것이고, 인문학적으로는 “인류애”라는 틀로 설명하곤 합니다.
아내가 보여준 맘카페의 글들을 보며 왜 제 마음이 놓였던 것일까요? 지금 겪고 있는 갑작스러운 사건, 단이가 평소와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의 원인과 앞으로 어떻게 될지까지, 이 상황들을 선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2개월 예방접종이 좀 세구나! 윤이 때는 그냥 넘어가서 몰랐는데, 이런 반응이 있기도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길어도 2,3일 정도면 회복되고 평상시로 돌아오는구나”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셨다고 하는 것이, 마술적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내밀한 속 마음을 아셨다는 뜻일까요? 아마 예수께서는 ‘인간’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죄 많은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하는지, 동시에 그 죄 많은 인간들이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예수님의 주변에 따라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까지도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단이를 키우지만, 만약 제가 이 세상에서 오직 단이만 예쁘고 소중한 아이라는 생각에 빠져 다른 아이들은 단이만큼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인간 이해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이겠죠. ‘나’에게만, ‘내 것’에만, 더 나아가 “내 편, 우리 편”에 집착하느라, 사실은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안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망각하지 않길 소원합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104p 중.
#5
예수님을 향해서 몰려드는 큰 무리들, 그 무리들을 지켜보고 있는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제자인 ‘나’. 솔직히 저는 그 무리들이 귀찮게 느껴졌을 것 같습니다. 지금 갈릴리 지방과 예루살렘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기적을 베푸시고,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나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귀찮게 하는 욕망 덩어리 군중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 생명을 다루는 행동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같은 무리를 보더라도, 누군가는 욕망 덩어리라고 손가락질할 것이고, 누군가는 공허한 것에 삶을 내던지는 그들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윤이와 단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며, 가끔은 ‘단이가 아직 5개월 밖에 안됐으니, 단이를 핑계로 집에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그저 스쳐가는 생각으로 흘려보내는 중입니다. 좋은 목사,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생과 삶과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 같습니다. 계산적인 방식으로 타인의 말과 삶을 평가하고 점수를 주는 태도를 갖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과거에, 냉소적인 태도가 아주 날카롭고 멋진 태도라고 생각하던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시니컬하게 교회와 목사님들을 비판하고, 정치인, 연예인 등의 세상 일들을 평가하는 것이 고차원적이고 멋진 태도라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태도가 삶에서 가장 무가치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냉소적인 태도는 곧 교만함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삶을 향한 찬사가 터져 나오게 됩니다. 저는 단이를 키우면서 날마다 감탄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이 하루하루 자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느낍니다. 그렇게 소중한 단이를 데리고, 조금 고생하더라도 여러가지 행사에 참여하고, 교회도 가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더욱 풍성하게 ‘함께함’의 의미를 깨우치게 됩니다. 감사하고, 감탄하고,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삶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원합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197p 중.
#6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간음하다가 잡힌 여자를 끌고 왔습니다(3절).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을 만들어서,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들은 “이 여자가 간음 하다가, 현장에서 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4-5절)”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면, “예수는 비정한 사람이다!”라고, 반대로 예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면, “율법을 어기는 자다!”라고 몰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를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는 속셈이었다(6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간음한 여인’은 단순히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이 와닿았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이나 그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지에 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예수를 궁지에 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 것입니다. 그 여인이 세상에 한 명뿐인 고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무시한 채, 그냥 ‘도구’로 바라본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단이가 잠과 관련해서 다양한 이슈를 만들어주어서, 몸은 좀 힘들긴 합니다. 그래도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제가 이제야 단이를 독특한 아이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대충 ‘잘 자는 아이’라고 규정지어 보는 게 아니라, 더 세심하게 이 아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됐습니다. 단이가 잠을 잘 못 자는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가기만 하면 좋겠다며 그저 아이가 짜증내는 시기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독특하고 특별한 시기로 보고 싶습니다. 미운 시기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으로 봐주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260p 중.
#7
말씀 속에서 두 가지 포인트가 감동이 됩니다. 첫째는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보내신 대로 행동했더니 기적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왜 굳이 눈에 진흙을 바르시죠? 왜 굳이 실로암에 보내시나요, 다른 연못은 안 되나요? 그냥 말씀으로 고쳐 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보내시는 그대로 행동했더니, 눈을 뜨게 됩니다. 둘째는 호칭의 변화입니다. 앞에서는 ‘눈먼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눈을 뜨게 된 사람(12)’으로 호칭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빛을 만났더니, 그 사람을 부르는 호칭 자체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입니다.
단이가 어제 보여준 모습이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단이는 쿼카가 뭔지, 인형이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손가락으로 안내해 준 방향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방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서고, 얻어냅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 전까지 그냥 바닥에 잔뜩 굴러다니던 여러 장난감 중의 하나였던 무언가가, 단이의 손에 잡혀서 소중한 인형이 됩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완전히 다 이해돼서 계획을 세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그저 보내셨기 때문에, 인도해 주셨기 때문에, 속는 셈 치고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런 태도로 접근하신다는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인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다니! 강요하지 않으시고,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신다니! 우리는 ‘우연’이라고 부르는 과정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우리는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 눈 뜬 사람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흔하디 흔한 하루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슈가 없이, 정해진 루틴만 반복하다가 끝나는 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따라가 보면, 그 속에서 눈을 뜨게 되고 감사하게 되고 기쁘게 되는 일들이 생길 줄 믿습니다.
-김은진, <성경 대신 젖병을> 두 번째 이야기 305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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