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291003 홀리투어
[무박]강화도 홀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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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기독교인들이 남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잊혀져가는 역사적인 신앙의 유적지 순례!!!
- 각 선교회 모임, 교회기관 수양회,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수련회, 효도 관광, 소그룹 영성훈련은
이제 신앙의 선배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국내 성지순례로!
최소 구성인원 10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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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 강화읍교회
어느 독일인이 한국에 와서 특색 있는 교회를 보기 원했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인도하여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소망 교회 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독일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교회가 없느냐고 묻는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강화읍 성공회 성당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교회를
보자마자 “Wunderbar(wonderful), Wunderbar"를 연발한다. 이와 같이 감탄할 정도로 이 교회는 아주 아름답고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려 지은 건물로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잘 보존되어 왔고 현재도
교회당으로 사용하며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이다.
이 성당 건축을 총 지휘하였던 트롤로프 신부는 경복궁 중수 때 참여했던 권위 있는 대목을 도편수로
고용하는 한편 성당 내부와 세례대, 그리고 축대의 중요부분과 벽돌 공사를 위해 인천에 직접 가서
중국인 석공을 고용하였고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의 뚝섬 목재상에 갔지만 20년 전 경복궁을 재건 할 때
한강 유역의 쓸만한 목재는 모두 벌채 되었으므로 신의주까지 가서 백두산 원시림에서 벌채한 적송을 구하여
강화도까지 뗏목으로 운반하는 열성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다.
교회 내부는 남북 고간이 4간, 동서 도리간이 10간인 총 40간 규모의 건물로서 한 열에 9개의 고주를 세우고
동서 두 곳 끝에는 중간에 한 개씩 세워 20개의 고주가 건물 중간 16간을 중층이 되도록 하고 나머지 24간은
1층이 되도록 한 익공식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회중석이 있고 회중석 뒤쪽에는 성수대(세례대)가 있고
앞 쪽에는 지성소, 제대가, 제일 앞 쪽에는 성막(소제대)이 설치되 있다. 부속 건물로는 외삼문과 내삼문,
그리고 주교관이 모두 한국 전통 고유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외부 담장은 10꾀를 흙 반죽으로 쌓아올린 다음
백회 반죽을 바른 수 돌 모양이 드러나게 백회 반죽을 도려내는 방식으로 5m나 높은 축대를 막돌로 쌓아 올렸다.
이 방식은 강화지방에서 오래전부터 활용했던 방식으로 이 지방에서 익힌 솜씨로 쌓은 것 같다.
그 밖에 많은 정원수 중 눈에 띄는 것은 6월에 꽃이 만발하면 사방에서 꿀벌이 모여들고 꽃향기가 그윽한
보리수 두 그루가 있다. 이 보리수는 영국 선교사 한 분이 본국에 휴가 갔다 오던 길에 10년생 묘목을 가져와서
이 곳에 심었다고 한다.
▶ 강화 교산교회 (최초 세운 교회)
강화도 서사(현 양사면) 출신으로 제물포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이승환이 선교사 존스로부터 복음을 받고
인천내리교회에 출석하다가 세례를 받으라는 권고에 ‘나는 세례를 받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고
거절하였다.
첫째는 연로하신 어머님 보다 먼저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막집을 경영하기 때문이란다.
몇 달 지난 후 존스 목사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이승환 모친께 세례를 베풀기 위해 배를 타고 강화에
도착하였으나 그 곳 토박이 전통 양반 가문 출신으로 유학자인 김상임을 필두로 기독교를 미워하는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배에서 내려 강화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환은 모친을 등에 업고 배로 올라가 선상세례를 받게 하고 자기도 곧이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선상세례를 받은 이승환은 강화 선교의 하나의 겨자씨가 되었다.
이어 존스 목사는 전도인 이명숙을 파송하여 이승환의 집을 거점으로 4~5 인이 모임으로 강화에
첫 감리교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강화 교산 교회이다.
후에 김상임은 존스 선교사의 사려 깊은 행동을 보고 그를 만나 하나님을 영접하고 개종하게 되고
그의 개종은 부녀자와 천민들이나 믿는 종교로 여기고 천시하던 주민들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어 가신과 신당을 불사르고 믿음과 말씀공부에만 전념하여 교인 수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양반과 지식층의 합세로 시루미 공동체는 서민층과 어우러져 균형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강화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연이어 개종해와 시루미 공동체에서 강화 전역으로 복음을 확장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후에 김상임은 신학을 마치고 목사 후보생이 되었으나 목사안수 한 달을 앞두고 열병환자를 심방한 후
감염되어 55세를 일기로 소천 하였다.
교산 교회는 강화의 다른 지역 섬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그 흐름은 크게 세 줄기로,
첫 줄기는 홍의(홍의교회)를 거쳐 강화 읍으로 해서 남쪽으로, 둘째 줄기는 고부(고부교회)를 거쳐 중서부로,
셋째 줄기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섬인 교동으로 연결되어졌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흐름을 통해 강화는
선교 개시 10년 안에 강화전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는 150 여개의 감리교회가 있는 섬이 되었다
- 각 선교회 모임, 교회기관 수양회,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수련회, 효도 관광, 소그룹 영성훈련은
이제 신앙의 선배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국내 성지순례로!
최소 구성인원 10명입니다.
10명 이상 단체신청만 받으며, 단체신청시 날짜 지정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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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 | 도 시 | 교 통 | 시 간 | 상 세 일 정 | 식 사 |
| 1일 | 강화 | 전용차량 | 9시 12시 6시 |
출발 강화 성공회 교회 점심식사 후 창후리로 이동 페리 탑승 교동도 도착후 상룡리 이동- 교동교회와 마라의 쓴물 읍내리로 이동-연산군적거지와 우물,교동읍성터 창후리로 이동, 귀가 도착 / 해산 |
조: 중:한식 석: |
| 상기 일정은 교통여건(항공,선박 등) 및 현지사정으로 인해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
| 여행조건 | 1. 회비에는 차량, 식사(중식), 가이드, 보험, 선박요금 등이 포함됩니다. 2. 조식, 석식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3. 위금액은 단체인원 적용 금액이며, 예약 인원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
▶ 성공회 강화읍교회
어느 독일인이 한국에 와서 특색 있는 교회를 보기 원했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인도하여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소망 교회 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독일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교회가 없느냐고 묻는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강화읍 성공회 성당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교회를
보자마자 “Wunderbar(wonderful), Wunderbar"를 연발한다. 이와 같이 감탄할 정도로 이 교회는 아주 아름답고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려 지은 건물로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잘 보존되어 왔고 현재도
교회당으로 사용하며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이다.
이 성당 건축을 총 지휘하였던 트롤로프 신부는 경복궁 중수 때 참여했던 권위 있는 대목을 도편수로
고용하는 한편 성당 내부와 세례대, 그리고 축대의 중요부분과 벽돌 공사를 위해 인천에 직접 가서
중국인 석공을 고용하였고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의 뚝섬 목재상에 갔지만 20년 전 경복궁을 재건 할 때
한강 유역의 쓸만한 목재는 모두 벌채 되었으므로 신의주까지 가서 백두산 원시림에서 벌채한 적송을 구하여
강화도까지 뗏목으로 운반하는 열성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다.
교회 내부는 남북 고간이 4간, 동서 도리간이 10간인 총 40간 규모의 건물로서 한 열에 9개의 고주를 세우고
동서 두 곳 끝에는 중간에 한 개씩 세워 20개의 고주가 건물 중간 16간을 중층이 되도록 하고 나머지 24간은
1층이 되도록 한 익공식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회중석이 있고 회중석 뒤쪽에는 성수대(세례대)가 있고
앞 쪽에는 지성소, 제대가, 제일 앞 쪽에는 성막(소제대)이 설치되 있다. 부속 건물로는 외삼문과 내삼문,
그리고 주교관이 모두 한국 전통 고유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외부 담장은 10꾀를 흙 반죽으로 쌓아올린 다음
백회 반죽을 바른 수 돌 모양이 드러나게 백회 반죽을 도려내는 방식으로 5m나 높은 축대를 막돌로 쌓아 올렸다.
이 방식은 강화지방에서 오래전부터 활용했던 방식으로 이 지방에서 익힌 솜씨로 쌓은 것 같다.
그 밖에 많은 정원수 중 눈에 띄는 것은 6월에 꽃이 만발하면 사방에서 꿀벌이 모여들고 꽃향기가 그윽한
보리수 두 그루가 있다. 이 보리수는 영국 선교사 한 분이 본국에 휴가 갔다 오던 길에 10년생 묘목을 가져와서
이 곳에 심었다고 한다.
▶ 강화 교산교회 (최초 세운 교회)
강화도 서사(현 양사면) 출신으로 제물포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이승환이 선교사 존스로부터 복음을 받고
인천내리교회에 출석하다가 세례를 받으라는 권고에 ‘나는 세례를 받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고
거절하였다.
첫째는 연로하신 어머님 보다 먼저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막집을 경영하기 때문이란다.
몇 달 지난 후 존스 목사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이승환 모친께 세례를 베풀기 위해 배를 타고 강화에
도착하였으나 그 곳 토박이 전통 양반 가문 출신으로 유학자인 김상임을 필두로 기독교를 미워하는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배에서 내려 강화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환은 모친을 등에 업고 배로 올라가 선상세례를 받게 하고 자기도 곧이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선상세례를 받은 이승환은 강화 선교의 하나의 겨자씨가 되었다.
이어 존스 목사는 전도인 이명숙을 파송하여 이승환의 집을 거점으로 4~5 인이 모임으로 강화에
첫 감리교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강화 교산 교회이다.
후에 김상임은 존스 선교사의 사려 깊은 행동을 보고 그를 만나 하나님을 영접하고 개종하게 되고
그의 개종은 부녀자와 천민들이나 믿는 종교로 여기고 천시하던 주민들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어 가신과 신당을 불사르고 믿음과 말씀공부에만 전념하여 교인 수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양반과 지식층의 합세로 시루미 공동체는 서민층과 어우러져 균형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강화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연이어 개종해와 시루미 공동체에서 강화 전역으로 복음을 확장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후에 김상임은 신학을 마치고 목사 후보생이 되었으나 목사안수 한 달을 앞두고 열병환자를 심방한 후
감염되어 55세를 일기로 소천 하였다.
교산 교회는 강화의 다른 지역 섬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그 흐름은 크게 세 줄기로,
첫 줄기는 홍의(홍의교회)를 거쳐 강화 읍으로 해서 남쪽으로, 둘째 줄기는 고부(고부교회)를 거쳐 중서부로,
셋째 줄기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섬인 교동으로 연결되어졌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흐름을 통해 강화는
선교 개시 10년 안에 강화전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는 150 여개의 감리교회가 있는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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