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별 할인 ( 15개 이상부터 추가 2%↓ )
할인율 적용
관련분류
상품설명
초대 기독교인들이 남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잊혀져가는 역사적인 신앙의 유적지 순례!!!
- 각 선교회 모임, 교회기관 수양회,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수련회, 효도 관광, 소그룹 영성훈련은
이제 신앙의 선배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국내 성지순례로!
10명 이상 단체신청만 받으며, 단체신청시 날짜 지정 가능합니다..
주문서 작성시 요청사항에 가시기 원하시는 날짜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주문후 담당자가 확인전화드립니다.
| 일자 | 도 시 | 교 통 | 시 간 | 상 세 일 정 | 식 사 |
| 1일 | 경기도 |
전용차량 | 9:00 12:00 6:00 |
모임 출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지 제암리 3.1운동순국기념관 점심식사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소래교회 저녁식사 *숙소 : 서울 또는 경기지역 관광호텔 |
조: 중:한식 석:한식 |
| 2일 | 강화도 서울 |
전용차량 | 8:00 12:00 6:00 |
아침식사 강화성공회교회 강화교산교회 점심식사 상룡리 이동- 교동교회와 마라의 쓴물 읍내리로 이동-연산군적거지와 우물,교동읍성터 도착 해산 |
조:한식 중:한식 석: |
| 상기 일정은 교통여건(항공,선박 등) 및 현지사정으로 인해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
| 여행조건 | 1. 회비에는 차량, 식사(중식), 가이드, 보험, 선박요금 등이 포함됩니다. 2. 조식, 석식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3. 위금액은 단체인원 적용 금액이며, 예약 인원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
▶ 양화진 선교기념관, 선교사묘지
“그들은 무엇이 아쉬워 이억 만 리 한국 땅, 잡초로 으슥한 허허 벌판에 누워있을까?”
이 땅이 땅 끝인 줄 알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고국을 떠나
아비와 친척을 멀리하고 복음을 들고 찾아온 아름다운 발들이 묻힌 곳이다.
기독교 100년을 감사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상징으로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 사업회가
황폐화된 5천여 명의 외국 선교사 묘역을 공원화 하고 그곳에 한국기독교 선교기념관을 세우고
선교기념관 3층에는 예배 처소를 옮겨 다니면서 예배를 드려야 했던 수도권 거주 외국인들에게
연합교회당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선교의 조상들이 잠든 묘지공원 기슭에는 엄마, 아빠를 따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 이곳에 왔다가
의료시설 결핍으로 애처롭게 숨져간 꼬마들의 묘지도 있어 길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고 있다.
이 공원묘지는 몇몇 뜻있는 기독실업인들의 헌금 7억원으로 선교기념관과 함께 세워졌다.
▶ 발안 제암리교회
3·1운동 당시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독립만세운동 때, 일본헌병은 제암리 마을 남자들을 교회당에 모이게 한 후, 교회당을 불 질러 21명을 학살하고, 마을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하여 살해하며 초가 32채를 불태워 마을 전체를 폐허로 만든 비인간적인 일제의 포악의 바람이 할퀴고 간 현장이다.
▶ 한국 기독교 순교자 기념관
한국 기독교순교자기념관은 개신교가 이 땅에 뿌리내린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조성됐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회가 한국교회의 중지를 모아서 한국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된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게 하고자 용인시 추계리 10만여 평의 임야 위에 1989년 11월 11일에 건립했다.
1884년 이 땅에 기독교 씨앗이 처음 뿌려진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도하다 숨진 순교자수는 2,6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초기에는 ‘혹세무민’한다고, 일제치하에서는 독립운동의 중심세력이라며, 6.25때에는 반공, 반동이라는 이유로 희생되었다.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성경 돌비와 순교자 기념시비가 올라가는 길에 쭉 이어진다. 기념관의 건물은 약3백 66평의 3층 건물 구조이고 전체로는 직사각형에 가운데 원통형 모양을 넣어 아름답게 설계된 건물이다. 1991년 건축가협회로부터 ‘대한민국건축가협회상’을 받기도 하였다.
기념관 건물의 입구에 들어서면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 토마스 목사의 처형장면을 만나게 된다. 이 그림은 혜촌 김학수 장로가 기증한 40점의 역사화들 중 하나다. 혜촌의 그림은 건물 곳곳에 배치되었는데 순교, 고문, 남북의 초기교회들, 교육기관들의 모습을 담고 있어 개신교 100년사를 그림으로 감상할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에 가면 예배실이 있고 예배실의 벽면에는 1930년대 이전 개화기 교회들과 우리 사회 모습을 담은 사진 120점이 전시되어 있다. 3층으로 오르면 좌, 우 전시실이 연결되어 있고 주기철 목사와 조만식 장로 등 202명 순교자의 사진과 간단한 약력들과 성경, 편지 등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초상화 대신에 ‘당신도 순교자가 될 수 있다’고 적힌 거울은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한다.
이외에도 2층에 성서의 변천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2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행된 시대별 성서 40여권이 전시되어 있고, 3층에 상동교회 100주년 특별전시코너가 있다. 기념관 뒤편에는 야외집회장과 개인기도소가 설치되었고, 앞쪽에는 대형 십자가탑과 주기철 목사의 ‘옥중명상’ 시비가 있다.
기념관이 건립된 대지와 임야 10만여 평은 영락교회 정이숙 권사가 헌납하였고 재미사업가 한규빈 씨가 7억원,
고 정주영 회장이 2억원 외에 각 교회와 교인들의 수많은 헌금으로 건립되었다. 최근에는 진흥문화의 박경진 장로가
진입로 새 포장 사업에 거금을 헌금하였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 주님이 ‘너는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답하랴.” (주기철, 옥중명상에서)
▶ 소래교회(한국 최초의 개신교회)
1884년에 이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다.
서상륜이라는 사람은 본래 만주를 오가며 인삼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는데 30세가 되던 1878년에
갑자기 만주에서 열병에 걸려 죽을 위기를 맞게 된다.
친구들이 그를 병원에 입원시키게 되고 그곳에서 로스(John Ross)선교사를 만나 보살핌을 받고,
매킨 타이어(John melntyre)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게 되어 그에게 세례를 받게 된다.
병이 완쾌된 다음 로스 선교사를 도와 성경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하게 되고 번역한 성경을
국내로 반입시키다가 수배당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외가인 소래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전도활동을 하다가
교회를 세우게 된다.
후에 교회 건축을 할 때도 선교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순전히 토착민들의 헌금으로 교회를 건축하게 된다.
현재 이 교회 건물은 황해도에 있는 소래교회를 양지에 있는 총회 신학 대학원 캠퍼스 안에 그대로 복원시켜
놓았다.
▶ 성공회 강화읍교회
어느 독일인이 한국에 와서 특색 있는 교회를 보기 원했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인도하여 여의도 순복음 교회와 소망 교회 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독일인은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교회가 없느냐고 묻는다. 한국인 친구는 그를 강화읍 성공회 성당으로 인도하였다. 그는 교회를
보자마자 “Wunderbar(wonderful), Wunderbar"를 연발한다. 이와 같이 감탄할 정도로 이 교회는 아주 아름답고
가장 한국적인 건축양식을 최대한 살려 지은 건물로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잘 보존되어 왔고 현재도
교회당으로 사용하며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이다.
이 성당 건축을 총 지휘하였던 트롤로프 신부는 경복궁 중수 때 참여했던 권위 있는 대목을 도편수로
고용하는 한편 성당 내부와 세례대, 그리고 축대의 중요부분과 벽돌 공사를 위해 인천에 직접 가서
중국인 석공을 고용하였고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의 뚝섬 목재상에 갔지만 20년 전 경복궁을 재건 할 때
한강 유역의 쓸만한 목재는 모두 벌채 되었으므로 신의주까지 가서 백두산 원시림에서 벌채한 적송을 구하여
강화도까지 뗏목으로 운반하는 열성으로 이 교회가 지어졌다.
교회 내부는 남북 고간이 4간, 동서 도리간이 10간인 총 40간 규모의 건물로서 한 열에 9개의 고주를 세우고
동서 두 곳 끝에는 중간에 한 개씩 세워 20개의 고주가 건물 중간 16간을 중층이 되도록 하고 나머지 24간은
1층이 되도록 한 익공식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내부에는 회중석이 있고 회중석 뒤쪽에는 성수대(세례대)가 있고
앞 쪽에는 지성소, 제대가, 제일 앞 쪽에는 성막(소제대)이 설치되 있다. 부속 건물로는 외삼문과 내삼문,
그리고 주교관이 모두 한국 전통 고유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외부 담장은 10꾀를 흙 반죽으로 쌓아올린 다음
백회 반죽을 바른 수 돌 모양이 드러나게 백회 반죽을 도려내는 방식으로 5m나 높은 축대를 막돌로 쌓아 올렸다.
이 방식은 강화지방에서 오래전부터 활용했던 방식으로 이 지방에서 익힌 솜씨로 쌓은 것 같다.
그 밖에 많은 정원수 중 눈에 띄는 것은 6월에 꽃이 만발하면 사방에서 꿀벌이 모여들고 꽃향기가 그윽한
보리수 두 그루가 있다. 이 보리수는 영국 선교사 한 분이 본국에 휴가 갔다 오던 길에 10년생 묘목을 가져와서
이 곳에 심었다고 한다.
▶ 강화 교산교회 (최초 세운 교회)
강화도 서사(현 양사면) 출신으로 제물포에서 주막집을 운영하던 이승환이 선교사 존스로부터 복음을 받고
인천내리교회에 출석하다가 세례를 받으라는 권고에 ‘나는 세례를 받을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고
거절하였다.
첫째는 연로하신 어머님 보다 먼저 받을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주막집을 경영하기 때문이란다.
몇 달 지난 후 존스 목사는 죽을 날이 멀지 않은 이승환 모친께 세례를 베풀기 위해 배를 타고 강화에
도착하였으나 그 곳 토박이 전통 양반 가문 출신으로 유학자인 김상임을 필두로 기독교를 미워하는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배에서 내려 강화 땅을 밟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승환은 모친을 등에 업고 배로 올라가 선상세례를 받게 하고 자기도 곧이어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선상세례를 받은 이승환은 강화 선교의 하나의 겨자씨가 되었다.
이어 존스 목사는 전도인 이명숙을 파송하여 이승환의 집을 거점으로 4~5 인이 모임으로 강화에
첫 감리교 신앙 공동체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강화 교산 교회이다.
후에 김상임은 존스 선교사의 사려 깊은 행동을 보고 그를 만나 하나님을 영접하고 개종하게 되고
그의 개종은 부녀자와 천민들이나 믿는 종교로 여기고 천시하던 주민들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어 가신과 신당을 불사르고 믿음과 말씀공부에만 전념하여 교인 수는 폭발적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양반과 지식층의 합세로 시루미 공동체는 서민층과 어우러져 균형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고
강화지역 지도급 인사들이 연이어 개종해와 시루미 공동체에서 강화 전역으로 복음을 확장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후에 김상임은 신학을 마치고 목사 후보생이 되었으나 목사안수 한 달을 앞두고 열병환자를 심방한 후
감염되어 55세를 일기로 소천 하였다.
교산 교회는 강화의 다른 지역 섬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전초기지가 되었으며 그 흐름은 크게 세 줄기로,
첫 줄기는 홍의(홍의교회)를 거쳐 강화 읍으로 해서 남쪽으로, 둘째 줄기는 고부(고부교회)를 거쳐 중서부로,
셋째 줄기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섬인 교동으로 연결되어졌다. 이러한 복음 전파의 흐름을 통해 강화는
선교 개시 10년 안에 강화전역에 교회가 설립되는 결과를 얻었으며 현재는 150 여개의 감리교회가 있는 섬이 되었다
관련이미지

제암리 교회 강단 앞에서 기념촬영한 순례자들

성공회 강화읍교회

강화 교산교회

배송 안내
- 배송비 3,000원 · 30,000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 보통 2일 이내 출고 가능 (입금일 기준)
주말·공휴일 제외, 인쇄/배송기간 별도. - 배송사: 로젠택배
- 도서산간 지역은 추가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환/반품 안내
- 상품 수령 후 30일 이내 반품 가능 (상품 불량·오배송의 경우 제외)
- 반품 불가 사유:
- 고객 귀책으로 상품이 훼손·오염된 경우
- 포장 개봉으로 상품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사용·일부 소비로 상품 가치가 감소한 경우
- CD·DVD·도서 등 복제 가능 상품의 포장을 개봉한 경우
- 반품 배송비: 왕복 배송비 고객 부담 (상품 불량·오배송 시 당사 부담)
- 교환·반품 문의: 02-460-0721 · 1:1 게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