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1291014 홀리투어
[2박3일]순교의 역사와 봉사활동을 하나로 소록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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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초대 기독교인들이 남긴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잊혀져가는 역사적인 신앙의 유적지 순례!!!
순교의 역사가 있고, 한센병환자들과의 만남과 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주축으로 하는 소록도여행

- 각 선교회 모임, 교회기관 수양회, 교회학교 교사 청년회 수련회, 효도 관광, 소그룹 영성훈련은
이제 신앙의 선배들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국내 성지순례로!

최소 구성인원 10명입니다.
10명 이상 단체신청만 받으며, 단체신청시 날짜 지정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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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도 시 교 통 시 간 상 세 일 정 식 사
1일 서울
전라도
전용차량 8:00

12:00

6:00
서울 공덕역 3번출구 집결
녹동항도착,
점심식사
소록도
저녁식사

*숙소 : 소록도중앙교회
조: 
중:한식
석:한식
2일 전라도 전용차량 7:20
8:00

12:00


6:00
소록도에서 녹동항으로
아침식사
애양원
점심식사
지리산노고단선교유적지
(눈올경우 순천기독교순교자기념관)
두암교회
저녁식사

*숙소 : 두암교회 예배당
조:한식
중:한식
석:한식
3일 전라도




서울
전용차량 8:00


12:00

4:30
아침식사
두암교회
김제금산'ㄱ'자교회
점심식사
성경풍물박물관
서울 공덕역
조:한식
중:한식
석: 
상기 일정은 교통여건(항공,선박 등) 및 현지사정으로 인해 다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여행조건 1. 회비에는 차량, 식사(중식), 가이드, 보험, 선박요금 등이 포함됩니다.
2. 조식, 석식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3. 위금액은 단체인원 적용 금액이며, 예약 인원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소록도

한센병(나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들어서 있는 섬으로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불리운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섬이지만 현재는 900여명의 환자들이 애환을 딛고
사랑과 희망을 가꾸고 있다. 또한 소록도병원의 역사와 환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갖가지 자료가 전시된 생활자료관은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 여수 기독교성지 (애양원,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등)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사랑과 자비의 마음으로 세워진 애양원은 1939년 손양원 목사가 부임하여
목회를 시작했으며 애양원 병원 원장을 겸임하면서 사역했던 곳이다.
1939년 일제에 항거한 순천노회의 "원탁회 사건"으로 손양원 목사이외 수많은 교민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50년 6.25 동란때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두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양아들로 삼아 예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였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품안에 돌아오게
하였다. 하지만 손양원 목사님도 끝내는 애양원 환자들과 함께 공산당에게 순교당했다.

현재 애양원 기독 성지 안에는 한센병 환자들의 의료, 직업, 정신적 재활을 돕는 사회복지 법인 애양원이 있고,
병원으로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여수애양병원이 있다.

이 병원안에는 정형외과, 피부과, 마취통증과, 내과등이 있으며 특히 정형외과는 각종 마비현상과 골절,
인공관절등의 수술로 유명하며 연간 4만여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며 3천여 환자를 수술하므로
한국 단일병원 관절 수술로는 한국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또 성산교회(애양원교회)가 설립 100주년을 자랑하고 있으며, 노인 한센병 환자들의 평안한 여생을 위한
쉼터인 애양평안요양소, 애양재활직업보호소 그리고 토풀원장의 신앙정신이 살아있는 토풀하우스와
한센병 치료체험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애양원 역사박물관, 통나무식당, 성경암송관,
초기 한센병 환자 주택, 치유된 환자들의 정착마을인 도성마을, 순교자 손양원 목사 부부와 아들 동인,
동희의 묘지, 그리고 순교기념관등이 잘 가꾸어 보존되어 있다.

▶ 지리산 노고단 선교유적지

북한군이 빨치산이 되어 숨어들어가자 국군토벌대가 주둔하면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터이며
민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뱀사골을 지나 갖가지 야생화가 천국을 이루고 있는 지리산 노고단에
오르면 노고단 정상 바로 밑 매점.대피소옆에 일제강점기시대 외국인 선교사들이 지어놓은 50여채의수양관들이
들어서 있던 장소가 있다.

이곳 수양관지대는 한말과 일제강점기 시대 한국,중국,일본등지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들이 심신의 피로을 풀고
치료하는 안식처로 혹은 영적 재충전하는 장소로 또한 풍토병에 시달리던 선교사에게는 쉬면서 치료를 받던
주요한 곳으로 사용되어 졌던 곳이다. 이곳에서 특히 한글 성경번역과 주요 성경공부 교재의 번역이 이루어졌고
선교전략 계획을 수립하는 장소의 역할로 크게 기여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1948년 10월에 일어난 14연대 사건(일명여순반란사건) 당시 반란군의 거점으로 활용하던 것을
국군토벌대가 점령하였고 6.25 전쟁 시에는 빨치산의 거점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 노고단 밑의 수양관들을
모두 태워 버렸고 건너편 왕시루봉에 있는 몇 채의 집만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그 후 노고단에 조금 남았던 수양관의 흔적들도 사라호 태풍에 모두 훼손되었고
지금은 교회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다. 1925년에 지어진 옛 건물인데도 서양벽난로 등이 설치되 있어
현대적인 건물 구조임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여기 흔적만 남은 이 유적지는 신앙교육, 선교사들간에 단합,
그리고 교회지도자의 수련활동을 하던 곳으로 변요한(DR.Preston)선교사의 책임 하에 세워졌다.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삼면의 벽을 중심으로 복원을 기다리고 있다.
이 건물이 복원되면 한국 교회사의 중요한 유적지 복원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전라남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 그 자료들을 준비중에 있다.

▶ 두암교회

윤임례 집사를 비롯해 23명이 순교한 이곳은 일제시대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교인들은 교회에 가기 위해 멀리 걸어 다녀야 했던 두암 마을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김용은 전도사가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단촐한 기와집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가 창립된 지 얼마 안 되어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가졌는데 평양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임전도사는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이 날 집회도 비판적인 내용을 말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읍에도 공산군이 들어왔고 두암 마을 주변은 공산군과 반공세력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두암 마을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군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로 치부되었고
특히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김용은 전도사를 잡기위해 가족과 성도들을 위협하고
날마다 가택수색을 벌이면서 예배 중지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성도들은 굴하지 않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교회를 굳건히 지켰다.

마침내 몽둥이와 대창을 든 공산주의자들은 성도들과 그 가족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개 패 듯 했고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마을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결국 윤집사와 아이들은 순교했고
김용은 전도사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에 맞아 고부로 옮겨 치료하던 중 순교하였으며
교회와 교인들의 집안에 짚을 넣고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그 불태운 재 때문에 며칠 동안 동네 우물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 날 학살된 교인은 모두 23명으로 후에 공산군이 철수한 후 서명선 목사와 김용례 사모가
두암 마을을 방문해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다고 한다. 시신 수습과정에서 윤임례 집사는 무릎을 굽힌 채
머리 뒤쪽에 칼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죽음에 앞서 기도하다가 뒤에서 칼을 맞아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교의 피는 두암 교회의 귀중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고 김용칠 목사 형제는 성결교회 총회장을 역임 하는 등
교단 발전에 헌신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명이 넘는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교회는 쉽게 복구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교회가 불타고 성도들은 대부분 순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4년 두암 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가 주일학교를 열면서 두암 교회는 재건되었고
그 후 교회를 새로 견축하였고 가매장 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순교자의 묘”로 합장하였다.
1994년에는 순교자 기념교회당이 순교자 묘지 옆에 세워졌고 순교자 기념탑도 아름답게 세워졌다.

▶ 김제 금산 'ㄱ'자교회

100년 전에 “ㄱ”자 형으로 지어진 교회로 지금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하나뿐인 교회이다.

수십 개의 신흥종교들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다시피 하고 있는 곳에 놀랍게도 일찍이 교회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다 기울어져 가고 있던 1904년 무렵 미국의 젊은 선교사 테이트 (L.B.Tate) 목사는
사교가 우글거리는 이 금산리에 꼭 교회를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고 기도하게 되었다.

테이트 목사는 전도를 위해 전주-정읍 간을 말을 타고 왕래하며 그 중간지점인 금산리에 머물곤 했는데
어느날 그는 이 고장 마방의 주인인 조덕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이 일대에서는 가장 큰 부자였고
집안은 대대로 유교를 믿었던 보수 가문이었다.

어느 날 조덕삼이 먼저 마방의 손님인 테이트 선교사에 접근하였고 둘은 서로 많은 교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며 드디어 그는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테이트에게 말한다. “선교사님, 앞으로는 저희 집 사랑채에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십시다."
이래서 오래도록 기도하였던 테이트의 기도 응답이 이루어졌으며 금산리에 기독교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이
시작되었다.

이 금산교회가 시작되는 데는 또 한명의 빼 놓을 수 없는 주역이 있다. 이자익 목사이다.
그는 일제시대에도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지낸 유명한 목사이다.

이 무렵 이자익 청년은 조덕삼 씨의 집에서 일하던 마부였다. 그는 소학교도 변변히 다니지 못한 무학자였지만
매우 총명하여 마부로 일하면서 틈틈이 독학 하였고 또 주인을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이 두사람과 박희서가 세례를 받고 성찬예식을 거행하고 금산교회가 공식으로
출발하는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금산교회는 신앙적으로도 놀라운 일이 또 있었다. 교인이 100명 가까이로 불어나자 장로 한분을
선출하게 되었는데 조덕삼 웅은 떨어지고 머슴인 이자익 청년이 장로로 선출되었다. 반상을 엄하게 따지던
봉건적인 시대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조덕삼 웅은 의연히 교회앞에 나가 말하였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이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그 후 집에 돌아오면 주인과 마부요, 교회에서는 장로와 평신도로 두사람이 열심히 자기 직분을 다하였다.
그 뒤 조덕삼 웅도 장로가 되었지만 그는 선배 장로인 이자익 장로를 평양신학교에 유학시키고 목사가 되기까지
모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고 목사가 된 후에는 금산교회에 초빙하여 담임목사로 시무하게 하여
교회가 더욱 부흥하게 되었다. 그 후 이자익 목사는 세 번씩이나 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며
한국교회에 많은 업적을 남기에 되었다.


※ 왜 교회당을 “ㄱ”형으로 지었는가?

한쪽 날개는 남자석, 다른 한쪽 날개는 여자석. 남녀칠세부동석이라 남녀가 서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 구조이다.
모서리에 강대상이 있고 그 강대상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님만 남녀석을 번갈아 볼 수 있고,
틈새가 나는 중간에는 흰 포장을 치기도 하였다.

관련이미지

소록도교회전경


소록도공원


애양원 순교성지 안내도


지리산-성경번역과 선교전략을 세우던 본부건물


"ㄱ"자 교회와 현재 금산교회 그리고 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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