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57992425 도서출판 그리심
[비블리컬 스토리텔링 - 창세기 3] 험악한 세월을 보낸 사람
(저자) 조관호
도서출판 그리심 · 2009-08-30 152*221 · 354p
도서출판 그리심 · 2009-08-30 152*221 · 35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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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성공을 말합니다.
혹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원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성공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총리라는 관직으로의 櫓茱속를 한 것 때문이지요.
요셉이 자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을 기뻐할까요?
마치 자신을 출세에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모델로 설교하는 걸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공주의의 희생물로 만들어
천박한 인생으로 만든 걸 역겨워 할 겁니다.
요셉의 목표는 출세도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총리라고 하는 출세를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게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치 요셉을 말할 때는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요셉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 • 서 문
야곱을 간사한 사람 혹은 교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린 성경을 알기도 전에 주변으로부터 야곱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인 야곱이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는 거지요. 오히려 야곱을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보되 더욱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성경을 잘 해석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결코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활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이나 이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직한 사람이고 술수를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 관리에 있어서나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을 뿐 아니라 인내심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앙 면에서도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착실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야곱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인격적인 면에서는 물론 자기관리나 지식, 지혜 혹은 성실성과 같은 면에서 좋은 모델일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에서는 성공의 모델일 것이고 교회에서라면 존경받는 장로일 겁니다. 야곱은 결코 간사하거나 교활한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이 야곱이라고 불리는 걸 이해 못했을 겁니다. 아니면 그 이름이 싫어서 그 이름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친 것인지도 모르구요. 하여간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이름 때문에 역사 속에서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부터 나옵니다. 태어나기 전, 태중에 있을 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요. 태 속에서 싸웠답니다. 태어날 때는 형의 발꿈치를 잡았답니다. 그래서 간사하다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지요. 아무 것도 모르던 핏덩이인 자신이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면서 간사한 녀석이라는 이름을 붙혔다는 게 억울한 거지요.
야곱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샀습니다. 그걸 가지고 사람들은 교활하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게 교활한 것일까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 에서는 엄청난 부잣집의 장남으로 집안일을 돌보고 관리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하면서 자기 인생을 즐기는 겁니다. 그 본분을 야곱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장남 에서가 자기 책임을 하지 않았을 때 야곱이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장남이란 태어난 순서가 아닙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먼저 태어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겁니다. 야곱은 그 책임을 다합니다. 야곱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거부 이삭의 재산은 어떻게 되었겠는지요? 리브가는 그걸 알았기에 야곱을 기특해 하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놀다 들어온 에서는 장자의 명분같은 건 필요없다고 하면서 스스로 내던진 겁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거저 장자 명분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간사하다고 한다면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이삭의 축복을 받은 사건도 그렇습니다. 야곱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강권에 못이겨 하기 껄끄러운 일을 한 겁니다. 리브가의 강제적인 행동에 떠밀린 겁니다.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지 않았어야 하는데 축복을 받고 싶어서 거짓을 행한 교활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적 장자 명분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정당한 거래를 통해 장자 명분을 얻었었거든요. 오히려 장자권을 팔아먹은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 한 것이 사기 행위였던 거지요.
에서는 이삭이 장자이기에 축복을 줄 것이라 할 때 자신은 장자가 아니라 야곱이 장자라고 말했어야 바른 겁니다. 야곱은 이 면에서 있어서도 간사함 사람이거나 교활한 사람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야곱은 아내가 넷이나 됩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본다면 야곱이 아내를 넷 얻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이 마치 교활하여 아내를 넷이나 얻은 것처럼 인식 한답니다. 야곱은 오직 한 여자, 라헬만을 사랑했었잖아요! 다른 세 명이 그의 아내가 된 것에 야곱의 의도적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넷 된 걸 가지고 야곱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느냐는 거지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삽니다. 그 가운데 14년은 아내들로 인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살았던 기간입니다. 그것도 마음에도 없는 레아가 아내가 된 것은 삼촌에게 사기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 없이 그녀에 대한 7년 노예 생활을 한 것이지요. 억울해야 할 건 야곱인데도 사람들은 야곱의 이러한 면에는 아주 인색하답니다. 나머지 6년의 세월도 그렇습니다. 라반 집에 있고 싶어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떠나겠다고 할 때 라반이 강제로 붙들어 둔 겁니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를 약속받은 거지요. 그 대가도 라반의 허락을 받은 행동이었습니다. 그 허락 아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얼룩 무늬 짐승이나 점있는 짐승, 아롱진 짐승을 만들어낸 겁니다. 그건 도적질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이 간사한 방법, 교활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것이라고 몰아치고 있는 겁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은혜 혹은 지혜라는 말로 포장할텐데도 말입니다. 유독 야곱에게만은 인색한 거지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사람들은 야곱의 신앙에도 인색합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친 사람도 아니고 또 그걸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먹은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의 투덜거림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축복을 받고 부자가 된 것에 대한 배경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간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삼촌의 집을 떠날 때에도 스스로 결정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인 사람입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는 일 또한 아브라함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도 대단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을 위한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면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의 처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필자는 이 기도는 오히려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서는 찾아볼 수없는 대단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가운데서도 매달린 기도니까요. 게다가 숙곳과 세겜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중 하나님을 더 깊이 의식하고 벧엘의 기념 단을 쌓은 신앙의 모델이잖아요.
그는 생각도 주밀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을 보십시오. 대충하는 게 없습니다.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은 조직적이며 짜임새가 있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행을 보십시오.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덤벙거리면서 만나지를 않습니다. 예의를 갖추는 사람입니다. 행동을 할 때도 들은 즉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기다리는 성품입니다. 자식들이 그리도 속을 썩인다 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슴 찢어지는 사건이 그의 인생을 험난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잘 참습니다. 그런 그를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이라고 말하다니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하나님이 (이름 때문에) 그 억울한 야곱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으니 그 이름을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시는 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은혜였던 거지요.
야곱이라는 사람, 괜찮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산 사람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심과 부지런함 또한 실속있는 열심과 부지런함이었구요.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야곱을 우습게 여기는 겁니다. 야곱에게 배울 게 무척 많답니다.
요셉이나 욥이 고통을 당하면 죄없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면서 편들어 주잖아요. 그런데 왜 야곱이 고통을 당하면 어떻하든지 그걸 대가를 치룬다는 것으로 짜집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지 말자구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당하는 억울함과 고통을 누군가가 오래전 지은 죄와 연결시킨다면 기분이 좋겠는지요? 그렇지 않잖아요.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그리도 성실히 살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시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규정해놓은 울타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소신껏 살라는 강권함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야곱이 잘 참고 인내한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 있는 겁니다. 험악한 인생이지만 그 험악함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고 있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이 살아 야곱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페르시아 땅에서 어둠과 혼돈과 공허의 식민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게 야곱이라는 이름은 위안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고통은 자신들의 고통이지요. 험악한 삶을 산 야곱이 자신들인 겁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억울한 운명으로 규정지어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과 상관없이 야곱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기에 바꿔주실 것이라는 말이지요. 억울한 운명은 사람들이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야곱을 읽으면 그가 많이 가엽습니다. 하나님도 야곱을 보시면서 많이 마음 아파하셨겠지요.
그렇기에 그가 알지 못할지라도 그를 따라 다니시면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가 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를 가엽게 여기시겠지요? 내 뒤에 따라 오시면서 나를 보호하시고 내 앞길을 예비하시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얻는 답니다. 하나님은 멋진 분이시랍니다.
캘리포니아, 바람 많이 부는 마을에서
조 관 호 목사
물론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성공을 말합니다.
혹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원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성공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총리라는 관직으로의 櫓茱속를 한 것 때문이지요.
요셉이 자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을 기뻐할까요?
마치 자신을 출세에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모델로 설교하는 걸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공주의의 희생물로 만들어
천박한 인생으로 만든 걸 역겨워 할 겁니다.
요셉의 목표는 출세도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총리라고 하는 출세를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게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치 요셉을 말할 때는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요셉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 • 서 문
야곱을 간사한 사람 혹은 교활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린 성경을 알기도 전에 주변으로부터 야곱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를 받았답니다. 그래서 야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는 밑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신앙의 조상인 야곱이 교활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는 거지요. 오히려 야곱을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으로 보되 더욱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성경을 잘 해석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결코 간사한 사람이 아닙니다. 교활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아브라함이나 이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직한 사람이고 술수를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며 자기 관리에 있어서나 남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빈틈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구보다도 생각이 깊을 뿐 아니라 인내심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앙 면에서도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살았던 착실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야곱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인격적인 면에서는 물론 자기관리나 지식, 지혜 혹은 성실성과 같은 면에서 좋은 모델일 것이 분명합니다. 사회에서는 성공의 모델일 것이고 교회에서라면 존경받는 장로일 겁니다. 야곱은 결코 간사하거나 교활한 사람이 아닙니다.
야곱은 자신의 이름이 야곱이라고 불리는 걸 이해 못했을 겁니다. 아니면 그 이름이 싫어서 그 이름과 다른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친 것인지도 모르구요. 하여간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이름 때문에 역사 속에서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이라는 기본적인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의 이야기는 창세기 25장에서부터 나옵니다. 태어나기 전, 태중에 있을 때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지요. 태 속에서 싸웠답니다. 태어날 때는 형의 발꿈치를 잡았답니다. 그래서 간사하다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거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지요. 아무 것도 모르던 핏덩이인 자신이 형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하면서 간사한 녀석이라는 이름을 붙혔다는 게 억울한 거지요.
야곱이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샀습니다. 그걸 가지고 사람들은 교활하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게 교활한 것일까요?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 에서는 엄청난 부잣집의 장남으로 집안일을 돌보고 관리하면서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들판에 나가 사냥을 하면서 자기 인생을 즐기는 겁니다. 그 본분을 야곱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장남 에서가 자기 책임을 하지 않았을 때 야곱이 그 일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장남이란 태어난 순서가 아닙니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먼저 태어난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겁니다. 야곱은 그 책임을 다합니다. 야곱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면 거부 이삭의 재산은 어떻게 되었겠는지요? 리브가는 그걸 알았기에 야곱을 기특해 하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놀다 들어온 에서는 장자의 명분같은 건 필요없다고 하면서 스스로 내던진 겁니다. 그렇다고 야곱이 거저 장자 명분을 얻은 것도 아닙니다. 정당한 거래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간사하다고 한다면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이삭의 축복을 받은 사건도 그렇습니다. 야곱의 작품이 아닙니다.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강권에 못이겨 하기 껄끄러운 일을 한 겁니다. 리브가의 강제적인 행동에 떠밀린 겁니다.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을 받지 않았어야 하는데 축복을 받고 싶어서 거짓을 행한 교활한 사람이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적 장자 명분은 야곱에게 있었습니다. 정당한 거래를 통해 장자 명분을 얻었었거든요. 오히려 장자권을 팔아먹은 에서가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 한 것이 사기 행위였던 거지요.
에서는 이삭이 장자이기에 축복을 줄 것이라 할 때 자신은 장자가 아니라 야곱이 장자라고 말했어야 바른 겁니다. 야곱은 이 면에서 있어서도 간사함 사람이거나 교활한 사람으로 행동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야곱은 아내가 넷이나 됩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본다면 야곱이 아내를 넷 얻기 위해 몸부림 친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이 마치 교활하여 아내를 넷이나 얻은 것처럼 인식 한답니다. 야곱은 오직 한 여자, 라헬만을 사랑했었잖아요! 다른 세 명이 그의 아내가 된 것에 야곱의 의도적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아내가 넷 된 걸 가지고 야곱을 못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느냐는 거지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삽니다. 그 가운데 14년은 아내들로 인한 빚을 청산하기 위해 살았던 기간입니다. 그것도 마음에도 없는 레아가 아내가 된 것은 삼촌에게 사기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무 소리 없이 그녀에 대한 7년 노예 생활을 한 것이지요. 억울해야 할 건 야곱인데도 사람들은 야곱의 이러한 면에는 아주 인색하답니다. 나머지 6년의 세월도 그렇습니다. 라반 집에 있고 싶어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떠나겠다고 할 때 라반이 강제로 붙들어 둔 겁니다. 그리고 노동의 대가를 약속받은 거지요. 그 대가도 라반의 허락을 받은 행동이었습니다. 그 허락 아래 경험과 지혜를 가지고 얼룩 무늬 짐승이나 점있는 짐승, 아롱진 짐승을 만들어낸 겁니다. 그건 도적질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이 간사한 방법, 교활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것이라고 몰아치고 있는 겁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 나온다면 하나님의 은혜 혹은 지혜라는 말로 포장할텐데도 말입니다. 유독 야곱에게만은 인색한 거지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사람들은 야곱의 신앙에도 인색합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자가 되기 위해 몸부림을 친 사람도 아니고 또 그걸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먹은 사람은 더더욱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라헬의 투덜거림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축복을 받고 부자가 된 것에 대한 배경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간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삼촌의 집을 떠날 때에도 스스로 결정해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움직인 사람입니다. 가는 곳마다 단을 쌓는 일 또한 아브라함에게 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도 대단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을 위한 애절한 기도가 있었다면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의 처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필자는 이 기도는 오히려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서는 찾아볼 수없는 대단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가운데서도 매달린 기도니까요. 게다가 숙곳과 세겜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중 하나님을 더 깊이 의식하고 벧엘의 기념 단을 쌓은 신앙의 모델이잖아요.
그는 생각도 주밀한 사람입니다. 그의 인생을 보십시오. 대충하는 게 없습니다.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은 조직적이며 짜임새가 있습니다.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행을 보십시오.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덤벙거리면서 만나지를 않습니다. 예의를 갖추는 사람입니다. 행동을 할 때도 들은 즉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기다리는 성품입니다. 자식들이 그리도 속을 썩인다 하더라도 시간을 갖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슴 찢어지는 사건이 그의 인생을 험난하게 만들었습니다만 잘 참습니다. 그런 그를 간사한 사람, 교활한 사람이라고 말하다니요!. 야곱은 억울한 겁니다.
하나님이 (이름 때문에) 그 억울한 야곱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야곱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으니 그 이름을 부르지 말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시는 게 그에게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은혜였던 거지요.
야곱이라는 사람, 괜찮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산 사람이고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열심과 부지런함 또한 실속있는 열심과 부지런함이었구요. 그런데 사람들은 야곱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야곱을 우습게 여기는 겁니다. 야곱에게 배울 게 무척 많답니다.
요셉이나 욥이 고통을 당하면 죄없이 고통을 당한다고 하면서 편들어 주잖아요. 그런데 왜 야곱이 고통을 당하면 어떻하든지 그걸 대가를 치룬다는 것으로 짜집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지 말자구요.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당하는 억울함과 고통을 누군가가 오래전 지은 죄와 연결시킨다면 기분이 좋겠는지요? 그렇지 않잖아요.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라는 사람을 소개하면서 그리도 성실히 살지만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시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나를 규정해놓은 울타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소신껏 살라는 강권함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있어도 야곱이 잘 참고 인내한 것처럼 우리들도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 있는 겁니다. 험악한 인생이지만 그 험악함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알고 있으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전이 살아 야곱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들을 사랑하고 계시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지요.
페르시아 땅에서 어둠과 혼돈과 공허의 식민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게 야곱이라는 이름은 위안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자신들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고통은 자신들의 고통이지요. 험악한 삶을 산 야곱이 자신들인 겁니다. 그러나 야곱처럼 억울한 운명으로 규정지어진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운명이라고 말하는 것과 상관없이 야곱처럼 성실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는 겁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말입니다!
그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그 이름이 어울리지 않기에 바꿔주실 것이라는 말이지요. 억울한 운명은 사람들이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해 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야곱을 읽으면 그가 많이 가엽습니다. 하나님도 야곱을 보시면서 많이 마음 아파하셨겠지요.
그렇기에 그가 알지 못할지라도 그를 따라 다니시면서 그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는가 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살아가고 있는 나를 가엽게 여기시겠지요? 내 뒤에 따라 오시면서 나를 보호하시고 내 앞길을 예비하시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힘을 얻는 답니다. 하나님은 멋진 분이시랍니다.
캘리포니아, 바람 많이 부는 마을에서
조 관 호 목사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조관호
서울신학대학과 감리교 신학대학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육군 군목으로 사역하는 동안 전방 부대에서 2년, 군병원에서 3년을 사역했다.
군 제대 후 도미하여 California에 있는 Azusa Pacific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Kentucky에 소재한 남침례교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e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ethodology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LA 근교 은혜로교회(Grace Road Church)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 논 문 ───…*
• Developing A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odel
• For The Sunday School Teachers
┌ 저 서 ───…*
• 처음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창세기1)
• 은혜로 사는 사람들(룻기)
• 영웅으로 살았던 사람들1,2(사사기)
• 하나님 나라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삼상1)
• 훈련 받는 사람(삼상2)
• 홀로 서는 사람(삼상3)
•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삼하1)
• 정상에서 넘어졌던 사람(삼하2)
• 정상으로 회복되는 사람(삼하3)
• 참 예쁜 사람(에스더)
•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에스라·학개·스가랴)
• 그분 오실 때를 아는 사람들(계시록)
서울신학대학과 감리교 신학대학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육군 군목으로 사역하는 동안 전방 부대에서 2년, 군병원에서 3년을 사역했다.
군 제대 후 도미하여 California에 있는 Azusa Pacific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Kentucky에 소재한 남침례교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e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ethodology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LA 근교 은혜로교회(Grace Road Church)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 논 문 ───…*
• Developing A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odel
• For The Sunday School Teachers
┌ 저 서 ───…*
• 처음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창세기1)
• 은혜로 사는 사람들(룻기)
• 영웅으로 살았던 사람들1,2(사사기)
• 하나님 나라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삼상1)
• 훈련 받는 사람(삼상2)
• 홀로 서는 사람(삼상3)
•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삼하1)
• 정상에서 넘어졌던 사람(삼하2)
• 정상으로 회복되는 사람(삼하3)
• 참 예쁜 사람(에스더)
•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에스라·학개·스가랴)
• 그분 오실 때를 아는 사람들(계시록)
목차
◎ 비블리컬 스토리텔링에 대하여·8
◎ 서문·17
여덟 번째 이야기/ 25-28장
때어난 쌍둥이
1.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 염려(26:1-:11)·27
2. 시기받을 때!(26:12-:22)·39
3.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26:26-:35)·50
4. 콩가루 집안?(27:1-:40)·60
5. 아픔을 이기려는 여인(27:41-:46)·88
6. 야곱을 떠나보내는 사람들(28:1-:9)·94
7. 집을 떠난 야곱(28:10-:22)·99
아홉 번째 이야기/ 29-31장
훈련장에 들어간 야곱
1. 라반을 만나다(29:1-20)·113
2. 사기당한 사람(29:21-30)·129
3. 치유받는 여인(29:31-35)·141
4. 싸우는 여인들(30:1-13)·146
5. 사랑이 나눠지면 상처가 됩니다.(30:14-24)·155
6. 성실함(30:25-43)·162
7. 지혜(30:37-43)·171
8. 아픔이 있는 사람(31:1-16)·177
9. 당당한 사람(31:17-42)·186
10. 겁쟁이(31:43-55)·203
열 번째 이야기/ 32-36장
훈련장을 나온 이야기
1. 에서를 만날 준비(32:1-12)·213
2. 고요한 밤에 거친 싸움(32:13-32)·226
3. 해결되어 있던 일인데...(33:1-17)·242
4. 여정 요약(33:18-20)·255
5. 겁탈당한 외동딸(34:1-17)·258
6. 또 찾아온 두려움(34:18-31)·272
7.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35:1-8)·282
8. 행복해 하시는 하나님(35:9-15)·295
9. 슬픔과 아픔들(35:16-29)·299
10. 이삭이 죽다.(35:27-29)·305
11. 에서의 가족(36:1-8)·308
12. 에돔 족속을 만드는 열 두 이름(36:9-43)·315
◎ 에필로그 1·325
◎ 에필로그 2·334
◎ 에필로그 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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