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88957992432 도서출판 그리심
[비블리컬 스토리텔링 - 창세기 4]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저자) 조관호
도서출판 그리심 · 2009-08-30 152*221 · 403p
도서출판 그리심 · 2009-08-30 152*221 · 40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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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설명
성경에는 성공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물론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성공을 말합니다.
혹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원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성공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총리라는 관직으로의 櫓茱속를 한 것 때문이지요.
요셉이 자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을 기뻐할까요?
마치 자신을 출세에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모델로 설교하는 걸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공주의의 희생물로 만들어
천박한 인생으로 만든 걸 역겨워 할 겁니다.
요셉의 목표는 출세도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총리라고 하는 출세를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게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치 요셉을 말할 때는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요셉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 • 서 문
사람들은 성공이나 형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성공과 형통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번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권력을 쥔 것을 성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학위를 가진 것을 성공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는 인기를 누리는 걸 성공했다고 보기도 하지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만 이러한 성공에 대한 개념이 교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곧 성공으로 연결이 된 거지요. 예수 잘 믿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물질의 축복, 권세를 얻는 축복, 건강의 축복,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합한 것이 점점 커짐으로 인해 더 위대한(?) 성공자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된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경 인물이 요셉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어려운 일도 잘 견뎠으며 유혹도 이겨냈고 결국 30세의 어린 나이에 그 꿈을 이룬 사람으로 소개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셉의 총리됨을 모델 삼아서 사람들에게 요셉처럼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의 꿈을 가지라는둥, 총리되는 꿈을 가지라는둥, 대법관 되라는 꿈을 가지라는둥,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는 꿈을 가지라는둥, 최고의 연예인이나 최고의 운동 선수가 되는 꿈, 최고 미인이 되라는 꿈을 가지라고 하지요. 물론 그 말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성공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말을 빼놓지 않지만 말입니다.
성공과 하나님의 영광의 모델인 요셉을 인용할 때 힘이 있습니다. 논리도 맞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요셉은 억울합니다. 자신은 성공에 대한 꿈을 단 한번도 꾼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되어 세계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단 한번도 그는 성공에 대한 야심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꿈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요셉인데 사람들은 요셉처럼 꿈을 가지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지요.
어떤 사람은 요셉이 가나안에 있을 때 두 번 꾼 꿈(한번은 형제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와 달, 그리고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했다는 꿈)을 가지고 형들을 다스릴 꿈과 부모에게까지도 절을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성경도 모르고 요셉도 모르는 해석일 뿐입니다. 그 꿈을 꾼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그런 꿈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던 중에 꾸게 된 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겁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요셉을 인용하는 건 죄악입니다. 요셉은 성공에 대한 꿈은 커녕 그런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소원이 있었다면 아버지와 형제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고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었지요.(창45:10)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영원히 머무르는 게 그가 소원한 꿈인 겁니다.(창50:25)
요셉 이야기를 성공의 모델로 인용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성공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요셉 못지않은 성공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요셉을 그렇게 인용한다는 거지요. 거꾸로 말하면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비실비실한 사람은 절대로 요셉 이야기를 할 때 성공 논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될 자신이 없는 사람도 요셉을 성공의 모델로 말하지 않지요. 더 중요한 건 생명에 관심을 둔 사람은 요셉의 인생, 총리됨을 성공의 논리로 보지 않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부분에서 끝이 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들에게 팔린 그 때,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던 그 때,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들어가 있을 그 때, 바로 그 때 그의 인생이 끝났다면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을까 하는 짓궂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런 삶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요셉의 그때의 삶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있습니다. '요셉은 성공중'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대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통하였더라'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요셉에 대한 생각 속에서 그의 총리됨을 지워버려야 그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입은 옷과 그의 화려한 정치적 지위를 지워버려야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려 할 때, 읽기도 전에 그려진 요셉의 세계 통치의 모습을 깨끗하게 잊어야 요셉의 진실한 소원과 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요.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게 너무도 좋았던 사람입니다. 형들에게 그렇게 구박을 받아도 형들과 어우러져 사는 게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그게 요셉의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요셉이 총리가 되어 세계를 다스리는 훌륭한 사람(?) 되는 게 꿈이었고 그걸 위해서 열심히 살았고 그걸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하면 요셉의 마음을 모르는 겁니다. 그는 총리가 되어서도 총리됨을 뿌듯해 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도 자기처럼 성공(?)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있는 게 그의 행복인 거지요. 그리고 죽으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세상 사람들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던 애굽의 화려함을 떠나 가나안에서 만날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입니다. 성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눠 형제자매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거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세속적이고 사탄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님과의 동행을 형통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노예로 팔려 짐승처럼 사는 게 실패가 아닙니다. 노예로 살던 사람이 졸지에 자유의 몸이 된 것이 형통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노예로 산다 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면 성공자입니다. 자유자로 산다 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실패자이지요. 억울하게 죄인이 되고 그 억울함을 해명하지 못한 채 죽는 게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알고 계신지 모르고 계신지가 그가 성공한 사람인지 실패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진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풀려나 떵떵거리면서 살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건 실패의 삶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학위를 받지 못하는 게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공부한 것을 하나님이 알고 있다면 그게 성공자인 겁니다. 그러나 엉터리로 공부하고 남의 것을 베껴 자기 것인 것처럼 속여 학위를 받았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성공했다고 할지 모릅니다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실패한 명단에 적어 놓을 것이지요.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걸 아는 사람은 요셉을 천박한 성공의 모델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다fms 사람에게도 80년의 최고위 공직자로서 천하를 쥐고 살았던 요셉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을 보게 할 것이지요. 천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갖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요셉의 중심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성공이라는 독약에 취해 있습니다. 모두가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성공하면 죄도 용서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거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위험한 겁니다.
목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는 가장 강한 독이 만들어졌습니다. '성공 목회'입니다. 그 말이 복음적이면 모릅니다만(성공 목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복음적 성공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만) 실제 사용되는 성공 목회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 기준의 말인 건 누구나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숫자가 얼마 되지 않으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이냐고 비웃는 시대입니다. 먹고 살 만한 헌금도 걷히지 않는 목회를 하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을 운운하느냐고 조롱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못해 선교비를 구걸(?)하는 주제에 복음적 성공을 말하는 건 자기 교만이라고 무시합니다. 사회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개척교회를 하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이라는 말을 하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게다가 당신들이 말하는 복음적 성공이 진짜라면 하나님이 그렇게 두실 리가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 하나님이 먹고 입고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사람도 붙여 주고 교회도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면서 복음적 성공을 외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은 성공과 비례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어느 경우는 성공이 꼭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합니다만 행동하는 걸 보면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있는 걸 보면 거짓말을 하는 걸 알겠는 겁니다.
이미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는 사탄이 뿌려놓은 성공이라는 독약에 취해 살고 있습입니다. 요셉의 삶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성공의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말 다한 거지요.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요셉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루터기라고 할까요? 우리 민족의 성도들 가운데 성공이라는 독약을 거부한 존귀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목사인 자신의 아버지가 50명 이상의 성도를 앉혀 놓고 설교하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자신이 목사가 되어 뒤 늦게 깨달은 건 자신의 아버지는 섞지 않고 목회를 했기 때문이라는 거랍니다. 섞지 않으면 커질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네요. 그런데 자신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 건 섞어서(?) 목회를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신은 섞어서 목회를 한답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고백하는 선배 목사님이 존경스러웠구요.) 그 말이 늘 생각이 납니다. 섞어서 하는 목회와 섞지 않은 목회, 사람들은 보는 것으로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성공에 대한 평가는 다른 데 있잖아요. 오늘도 죽어라고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고 애를 써도 사람이 모이지를 않는 것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사람들은 은혜가 없다는둥, 설교를 못한다는둥, 목회를 못한다는둥, 실력이 없다는둥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괴로워하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섞지(?) 않는 목회를 하고 있다 인정받기만을 소원하십시오.
요셉, 총리가 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총리였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나 주님은 그가 총리였기 때문에 좋아하신 게 아닙니다. 그 마음이 주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신 거랍니다. 그는 주님과 동행하기에 성공자인 겁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성공자인 겁니다. 당신과 내 마음 속이 주님으로 풍성하다면 주님은 우릴 성공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천사들 앞에서 자랑하고 계신답니다.
캘리포니아 바람 많이 부는 마을에서
조 관 호 목사
물론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성공을 말합니다.
혹 성공이라는 말이 있다면
그건 내가 원하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성공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이 요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총리라는 관직으로의 櫓茱속를 한 것 때문이지요.
요셉이 자신을 그렇게 해석한 것을 기뻐할까요?
마치 자신을 출세에 미친 사람처럼 만들고
출세하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모델로 설교하는 걸 말입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자신을 성공주의의 희생물로 만들어
천박한 인생으로 만든 걸 역겨워 할 겁니다.
요셉의 목표는 출세도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총리라고 하는 출세를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게 요셉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마치 요셉을 말할 때는
출세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요셉 본인은 얼마나 답답하겠는지요.
• • 서 문
사람들은 성공이나 형통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성공과 형통에 대한 기준이 다르지요.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번 것을 성공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큰 권력을 쥔 것을 성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학위를 가진 것을 성공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는 인기를 누리는 걸 성공했다고 보기도 하지요. 언제부터인지는 모릅니다만 이러한 성공에 대한 개념이 교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이 곧 성공으로 연결이 된 거지요. 예수 잘 믿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물질의 축복, 권세를 얻는 축복, 건강의 축복,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을 합한 것이 점점 커짐으로 인해 더 위대한(?) 성공자가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사명(?)이 된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성경 인물이 요셉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갖 어려운 일도 잘 견뎠으며 유혹도 이겨냈고 결국 30세의 어린 나이에 그 꿈을 이룬 사람으로 소개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셉의 총리됨을 모델 삼아서 사람들에게 요셉처럼 꿈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의 꿈을 가지라는둥, 총리되는 꿈을 가지라는둥, 대법관 되라는 꿈을 가지라는둥,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되는 꿈을 가지라는둥, 최고의 연예인이나 최고의 운동 선수가 되는 꿈, 최고 미인이 되라는 꿈을 가지라고 하지요. 물론 그 말만 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성공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말을 빼놓지 않지만 말입니다.
성공과 하나님의 영광의 모델인 요셉을 인용할 때 힘이 있습니다. 논리도 맞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있는 요셉은 억울합니다. 자신은 성공에 대한 꿈을 단 한번도 꾼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되어 세계를 다스리겠다는 생각도 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단 한번도 그는 성공에 대한 야심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꿈에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요셉인데 사람들은 요셉처럼 꿈을 가지라고 하니 얼마나 억울하겠는지요.
어떤 사람은 요셉이 가나안에 있을 때 두 번 꾼 꿈(한번은 형제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곡식 단에 절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해와 달, 그리고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했다는 꿈)을 가지고 형들을 다스릴 꿈과 부모에게까지도 절을 받는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그 야심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건 성경도 모르고 요셉도 모르는 해석일 뿐입니다. 그 꿈을 꾼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스스로가 그런 꿈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던 중에 꾸게 된 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겁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요셉을 인용하는 건 죄악입니다. 요셉은 성공에 대한 꿈은 커녕 그런 생각조차 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의 소원이 있었다면 아버지와 형제들과 가까이 있는 것이고 그들과 교제하는 것이었지요.(창45:10)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에 영원히 머무르는 게 그가 소원한 꿈인 겁니다.(창50:25)
요셉 이야기를 성공의 모델로 인용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세상적 기준으로 성공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석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에게는 요셉 못지않은 성공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요셉을 그렇게 인용한다는 거지요. 거꾸로 말하면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비실비실한 사람은 절대로 요셉 이야기를 할 때 성공 논리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될 자신이 없는 사람도 요셉을 성공의 모델로 말하지 않지요. 더 중요한 건 생명에 관심을 둔 사람은 요셉의 인생, 총리됨을 성공의 논리로 보지 않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부분에서 끝이 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형들에게 팔린 그 때, 보디발의 집에서 일하던 그 때,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들어가 있을 그 때, 바로 그 때 그의 인생이 끝났다면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을까 하는 짓궂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런 삶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요셉의 그때의 삶에 대한 성경의 평가가 있습니다. '요셉은 성공중'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대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통하였더라'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요셉에 대한 생각 속에서 그의 총리됨을 지워버려야 그를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입은 옷과 그의 화려한 정치적 지위를 지워버려야 그의 속에 있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읽으려 할 때, 읽기도 전에 그려진 요셉의 세계 통치의 모습을 깨끗하게 잊어야 요셉의 진실한 소원과 꿈을 발견할 수 있게 되지요.
요셉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게 너무도 좋았던 사람입니다. 형들에게 그렇게 구박을 받아도 형들과 어우러져 사는 게 행복했던 사람입니다. 그게 요셉의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모르고 요셉이 총리가 되어 세계를 다스리는 훌륭한 사람(?) 되는 게 꿈이었고 그걸 위해서 열심히 살았고 그걸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고 하면 요셉의 마음을 모르는 겁니다. 그는 총리가 되어서도 총리됨을 뿌듯해 하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도 자기처럼 성공(?)하라고 말한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저 아버지와 형제들과 함께 있는 게 그의 행복인 거지요. 그리고 죽으면서도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세상 사람들이 기회의 땅이라고 생각하고 동경하던 애굽의 화려함을 떠나 가나안에서 만날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입니다. 성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정상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어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충만한 사람이요, 그리스도의 피를 나눠 형제자매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인 거지요.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이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성공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세속적이고 사탄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주님과의 동행을 형통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노예로 팔려 짐승처럼 사는 게 실패가 아닙니다. 노예로 살던 사람이 졸지에 자유의 몸이 된 것이 형통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노예로 산다 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면 성공자입니다. 자유자로 산다 하더라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실패자이지요. 억울하게 죄인이 되고 그 억울함을 해명하지 못한 채 죽는 게 실패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 사람을 알고 계신지 모르고 계신지가 그가 성공한 사람인지 실패한 사람인지를 평가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진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죄로 풀려나 떵떵거리면서 살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그건 실패의 삶입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학위를 받지 못하는 게 실패한 인생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공부한 것을 하나님이 알고 있다면 그게 성공자인 겁니다. 그러나 엉터리로 공부하고 남의 것을 베껴 자기 것인 것처럼 속여 학위를 받았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성공했다고 할지 모릅니다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이름을 실패한 명단에 적어 놓을 것이지요.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걸 아는 사람은 요셉을 천박한 성공의 모델로 만들지 않을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다fms 사람에게도 80년의 최고위 공직자로서 천하를 쥐고 살았던 요셉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있던 하나님을 보게 할 것이지요. 천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그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갖지 않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요셉의 중심을 보여 줄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사탄이 만들어 놓은 성공이라는 독약에 취해 있습니다. 모두가 성공하라고 말합니다. 성공하면 죄도 용서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거라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위험한 겁니다.
목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망치게 하는 가장 강한 독이 만들어졌습니다. '성공 목회'입니다. 그 말이 복음적이면 모릅니다만(성공 목회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복음적 성공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만) 실제 사용되는 성공 목회는 복음과는 거리가 먼 세속적 기준의 말인 건 누구나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숫자가 얼마 되지 않으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이냐고 비웃는 시대입니다. 먹고 살 만한 헌금도 걷히지 않는 목회를 하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을 운운하느냐고 조롱하는 시대입니다.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못해 선교비를 구걸(?)하는 주제에 복음적 성공을 말하는 건 자기 교만이라고 무시합니다. 사회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개척교회를 하면서 무슨 복음적 성공이라는 말을 하느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게다가 당신들이 말하는 복음적 성공이 진짜라면 하나님이 그렇게 두실 리가 없지 않느냐는 논리로 공격을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을 하면 하나님이 먹고 입고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사람도 붙여 주고 교회도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면서 복음적 성공을 외치는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은 성공과 비례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어느 경우는 성공이 꼭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말하기는 합니다만 행동하는 걸 보면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있는 걸 보면 거짓말을 하는 걸 알겠는 겁니다.
이미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는 사탄이 뿌려놓은 성공이라는 독약에 취해 살고 있습입니다. 요셉의 삶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성공의 모델로 인용하고 있으니 말 다한 거지요.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요셉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루터기라고 할까요? 우리 민족의 성도들 가운데 성공이라는 독약을 거부한 존귀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는 겁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목사인 자신의 아버지가 50명 이상의 성도를 앉혀 놓고 설교하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자신이 목사가 되어 뒤 늦게 깨달은 건 자신의 아버지는 섞지 않고 목회를 했기 때문이라는 거랍니다. 섞지 않으면 커질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네요. 그런데 자신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 건 섞어서(?) 목회를 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신은 섞어서 목회를 한답니다.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 고백하는 선배 목사님이 존경스러웠구요.) 그 말이 늘 생각이 납니다. 섞어서 하는 목회와 섞지 않은 목회, 사람들은 보는 것으로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성공에 대한 평가는 다른 데 있잖아요. 오늘도 죽어라고 기도하고 설교 준비하고 애를 써도 사람이 모이지를 않는 것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정직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데 사람들은 은혜가 없다는둥, 설교를 못한다는둥, 목회를 못한다는둥, 실력이 없다는둥 하면서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괴로워하는 동역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괜찮습니다. 당신은 주님으로부터 섞지(?) 않는 목회를 하고 있다 인정받기만을 소원하십시오.
요셉, 총리가 되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존경받지 못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총리였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나 주님은 그가 총리였기 때문에 좋아하신 게 아닙니다. 그 마음이 주님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신 거랍니다. 그는 주님과 동행하기에 성공자인 겁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성공자인 겁니다. 당신과 내 마음 속이 주님으로 풍성하다면 주님은 우릴 성공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천사들 앞에서 자랑하고 계신답니다.
캘리포니아 바람 많이 부는 마을에서
조 관 호 목사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조관호
서울신학대학과 감리교 신학대학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육군 군목으로 사역하는 동안 전방 부대에서 2년, 군병원에서 3년을 사역했다.
군 제대 후 도미하여 California에 있는 Azusa Pacific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Kentucky에 소재한 남침례교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e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ethodology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LA 근교 은혜로교회(Grace Road Church)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 논 문 ───…*
• Developing A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odel
• For The Sunday School Teachers
┌ 저 서 ───…*
• 처음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창세기1)
• 은혜로 사는 사람들(룻기)
• 영웅으로 살았던 사람들1,2(사사기)
• 하나님 나라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삼상1)
• 훈련 받는 사람(삼상2)
• 홀로 서는 사람(삼상3)
•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삼하1)
• 정상에서 넘어졌던 사람(삼하2)
• 정상으로 회복되는 사람(삼하3)
• 참 예쁜 사람(에스더)
•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에스라·학개·스가랴)
• 그분 오실 때를 아는 사람들(계시록)
서울신학대학과 감리교 신학대학신학대학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육군 군목으로 사역하는 동안 전방 부대에서 2년, 군병원에서 3년을 사역했다.
군 제대 후 도미하여 California에 있는 Azusa Pacific University 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Kentucky에 소재한 남침례교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The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ethodology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LA 근교 은혜로교회(Grace Road Church) 담임 목사로 섬기고 있다.
┌ 논 문 ───…*
• Developing A Biblical Storytelling Bible study Model
• For The Sunday School Teachers
┌ 저 서 ───…*
• 처음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창세기1)
• 은혜로 사는 사람들(룻기)
• 영웅으로 살았던 사람들1,2(사사기)
• 하나님 나라의 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삼상1)
• 훈련 받는 사람(삼상2)
• 홀로 서는 사람(삼상3)
• 정상으로 올라가는 사람(삼하1)
• 정상에서 넘어졌던 사람(삼하2)
• 정상으로 회복되는 사람(삼하3)
• 참 예쁜 사람(에스더)
• 성전 건축하는 사람들(에스라·학개·스가랴)
• 그분 오실 때를 아는 사람들(계시록)
목차
◎ 비블리컬 스토리텔링에 대하여·8
◎ 서 문·16
열한 번째 이야기/ 37-39장
억울한 사람 이야기
1. 시기받는 사람 (37:1-:4)·27
2. 꾸고 싶어 꾼 꿈이 아닙니다! (37:5-:11)·34
3. 시작되는 고통 (37:12-:36)·43
4. 유다의 슬픔 (38:1-:11)·65
5. 유다의 부끄러움 (38:12-:30)·76
6. 당신은 복덩이! (39:1-:6)·90
7. 억울함 (39:7-:18)·97
8. 신비로운 섭리 (39:19-:23)·113
열두 번째 이야기/40-43장
성실한 사람 이야기
1. 당당함!(40:1-:8)·125
2. 꿈을 해석하는 사람(40:9-:23)·134
3. 반드시 더 있어야 했던 감옥(41:1-:8)·143
4. 부름받은 사람(41:9-:36)·147
5. 졸지에 총리가 된 사나이(41:37-:45)·158
6. 위기를 준비하는 사람(41:46-:57)·167
7. 유도 심문(42:1-:17)·175
8. 미칠 것같은 사람들(42:18-:38)·186
9. 낭떠러지에 선 사람(43:1-:15)·199
10.뜻밖의 은혜 (43:16-:34)·209
열세 번째 이야기/44-46장
만나는 이야기
1. 거룩한 음모(44:1-:13)·227
2. 변화된 사람들(44:14-:34)·235
3. 하나가 되기 위해!(45:1-:15)·242
4. 가족을 데려오라!(45:16-:28)·253
5. 하나님의 뜻일까?(46:1-:7)·262
6. 아주 적은, 그러나 한 민족(46:8-:27)·270
7. 그를 만나다!(46:28-:34)·275
열네 번째 이야기/47-50장
축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1. 왕을 축복하는 사람(47:1-:12)·283
2. 계획을 가진 사람(47:13-:26)·293
3. 야곱의 소원(47:27-:31)·302
4. 비밀스런 만남(48:1-:7)·307
5. 이상한 축복(48:8-:22)·312
6. 레아를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1-:15)·321
7. 종들을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16-:21)·333
8. 라헬을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22-28)·338
9.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의 유언(49:29-:33)·344
10. 세기의 장례식(50:1-:14)·347
11. 믿음 없음에 슬퍼하는 사람(50:15-21)·358
12. 반드시 그 땅으로!(50:22-:26)·368
◎ 에필로그 1·373
◎ 에필로그 2·383
◎ 에필로그 3·393
◎ 서 문·16
열한 번째 이야기/ 37-39장
억울한 사람 이야기
1. 시기받는 사람 (37:1-:4)·27
2. 꾸고 싶어 꾼 꿈이 아닙니다! (37:5-:11)·34
3. 시작되는 고통 (37:12-:36)·43
4. 유다의 슬픔 (38:1-:11)·65
5. 유다의 부끄러움 (38:12-:30)·76
6. 당신은 복덩이! (39:1-:6)·90
7. 억울함 (39:7-:18)·97
8. 신비로운 섭리 (39:19-:23)·113
열두 번째 이야기/40-43장
성실한 사람 이야기
1. 당당함!(40:1-:8)·125
2. 꿈을 해석하는 사람(40:9-:23)·134
3. 반드시 더 있어야 했던 감옥(41:1-:8)·143
4. 부름받은 사람(41:9-:36)·147
5. 졸지에 총리가 된 사나이(41:37-:45)·158
6. 위기를 준비하는 사람(41:46-:57)·167
7. 유도 심문(42:1-:17)·175
8. 미칠 것같은 사람들(42:18-:38)·186
9. 낭떠러지에 선 사람(43:1-:15)·199
10.뜻밖의 은혜 (43:16-:34)·209
열세 번째 이야기/44-46장
만나는 이야기
1. 거룩한 음모(44:1-:13)·227
2. 변화된 사람들(44:14-:34)·235
3. 하나가 되기 위해!(45:1-:15)·242
4. 가족을 데려오라!(45:16-:28)·253
5. 하나님의 뜻일까?(46:1-:7)·262
6. 아주 적은, 그러나 한 민족(46:8-:27)·270
7. 그를 만나다!(46:28-:34)·275
열네 번째 이야기/47-50장
축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1. 왕을 축복하는 사람(47:1-:12)·283
2. 계획을 가진 사람(47:13-:26)·293
3. 야곱의 소원(47:27-:31)·302
4. 비밀스런 만남(48:1-:7)·307
5. 이상한 축복(48:8-:22)·312
6. 레아를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1-:15)·321
7. 종들을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16-:21)·333
8. 라헬을 통해 낳은 자식들에 대한 축복(49:22-28)·338
9.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의 유언(49:29-:33)·344
10. 세기의 장례식(50:1-:14)·347
11. 믿음 없음에 슬퍼하는 사람(50:15-21)·358
12. 반드시 그 땅으로!(50:22-:26)·368
◎ 에필로그 1·373
◎ 에필로그 2·383
◎ 에필로그 3·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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